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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知 - 책 읽기

저자 최정운, 『한국인의 발견 』을 말하다

[저자의 책 소개]

『한국인의 발견 : 한국 현대사를 움직인 힘의 정체를 찾아서』(2016년)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최정운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본인이 2016년 말에 출간한 『한국인의 발견』(이하 『발견』)은 2013년에 출간한 『한국인의 탄생』(이하 『탄생』)의 속편이라 할 수 있다. 『탄생』은 우리 역사에서 근대의 출발인 구한말부터 해방 전, 즉 일제 강점기까지를 다루었고, 『발견』은 해방 후부터 1990년대까지를 다루고 있다. 우리 민족의 근현대 사상사를 논의하는 이 두 책은, 2001년경부터 집필 준비가 시작되었으니 출간에 이르기까지는 15년이 걸렸다. 본인의 문제의식은 우리나라, 우리 민족의 현대적 정체성을 찾는 것이었으며, 나아가 우리의 근·현대 사상사를 구축하는 데 있었다. 구체적으로 본인은 우리가 그간 ‘무엇을 겪었고’, ‘무엇을 느꼈고’, ‘겪은 것들을 어떻게 해석해왔고’,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바랐는가’의 질문들에 답하고자 하였다. 그간 우리 지성계에서 사상사의 구축이 여러 차례 시도되어 왔지만 대부분은 이념사를 논하는 데 그쳤다. 말하자면 보는 시각을 미리 정해놓고 그 시각을 확인하는 작업에 그쳤으며, 작가의 정치적 입장을 옹호, 강화하고 상대편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사상사를 만드는 일이 시급했다.

    그러나 우리 사상사를 연구하는 데는 여러 난제들이 존재한다. 우리 역사에서는 ‘사상가(思想家)’라고 부를 수 있는 저자들을 찾기 힘들며, 따라서 사상사의 전범(典範)이라 할 수 있는 서양 정치사상사처럼 우리의 사상사를 쓸 수는 없다는 문제가 있다. 우리는 근대의 시작에서부터 서구 문물을 수입하여 새로운 한국인,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 왔으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상사의 주요 텍스트는 서구에 있다. 근현대 한국 지식인들의 고민 또한 서구 사상의 도입과 적용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독특한 문제였다. 사상사 연구는 객관적 현실과 텍스트에 철저히 근거해야 함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텍스트에 정확히 근거하지 않은 사상 논의는 자칫 그것이 상상의 날개를 펴고 어디로 날아갈지 알 수가 없다. 통상적인 사상사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텍스트가 거의 없는 우리 근현대 역사에서 그나마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텍스트는 구한말 서구에서 도입되어 발달해온 근대 소설문학밖에 없다. 서구에서 17세기에 나타난 사실주의(寫實主義, Realism) 소설문학은 ‘현실적이라고 수긍할 수 있는 현실’을 ‘픽션(fiction)’으로 만들었다. 이는 ‘작가의 사상과 이상(理想)을 담아내는 지성적이며 대중적인 포괄적 현실’의 기술 형태이며, 이런 기법으로 만들어진 텍스트들을 해석함으로써 우리는 ‘사상과 이상을 포함하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탄생』과 『발견』은 근현대의 각 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소설문학 작품들을 해석하여 구축한 한국 근현대 사상사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상은 흔히 말하는 ‘정치사상’, ‘경제사상’, ‘사회사상’ 등의 전문화된 학문 분야에 대한 사상이 아니라 삶의 가장 밑바닥 층위에서 기본이 되는 문제들에 대한 생각들을 구별짓지 않고 포괄적으로 논의한 사상이다.

 

 

    『발견』은 해방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른바 ‘해방공간’은 구한말의 ‘홉스적 자연상태’가 되돌아온 대혼란 상태였다. 이 ‘해방공간’에서는 본격적인 문학 작품들이 쓰이지 못하였다. 다만 몇몇 단편 소설들에 나타나는 한국인들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의 위력에 미리 겁을 먹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가 건설에 참여할 용기도 없고 관심도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국가 건설은 미군정에 의해 시작되고 우리 지식인들의 참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 핵심 문제는 당시 한국에는 국가 건설에 필요한 인적 자원, 물적 자원들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부족한 자원들을 차분히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미리 공산국가 건설을 위한 청사진을 갖고 있었고, 토지 개혁, 국가 건설, 군비 확장을 신속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남한에서는 공산주의에 맞서는 자유민주주의적 국가 건설을 서둘러야 했다. 다시 말해 이때 우리에게는 국가 건설에 필요한 자원들뿐만 아니라 시간이 모자랐고, 따라서 대한민국의 건설은 ‘날림 공사’를 모면할 수 없었다. 구체적으로 인력의 부족은 일제 잔재를 받아들이는 결정으로 이어졌고, ‘친일파’의 대거 영입, 일제 권위주의, 군국주의 문화의 용인으로 이어졌다. 나아가서 물적 자원의 부족은 우리를 미국의 원조에 철저히 의존적이게 만들었다. 문제는 국가를 부족한 자원으로 성급하게 만들었다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건국 과정에서 일제 잔재와 미국에 의존한 존재 양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크게 훼손하였고, 따라서 이 나라에는 정치적 위기가 상존하였다. 이 국가는 국가로서의 능력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능력 부족과 정통성의 위기 상황을 강하게 의식하는 국가로서 생존을 위해 무리하게 폭력을 행사했으며, 그 결과 대한민국은 초기에 변태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취약 국가’로 태어났다.

    1950년의 6.25 또는 한국전쟁은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누구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리라는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은 여러 층위의 전쟁들이 응축된 특수한 전쟁이었다. 우선 미국, 소련, 중국 등 세계의 초강대국들이 엄청난 병력과 최신 무기를 총동원한 전쟁이었고, 남한과 북한은 민족통일을 목표로 전쟁을 치르면서 각각 국가 말살의 위기에 직면하여 총력전, ‘절대전’을 치렀다. 그런가 하면 계급투쟁이 한반도 전역에서 전개되어 민간인들 간에도 모든 개인적 원한들이 동원되는 내전이 전개되었다. 나아가 초강대국들은 그들 간의 ‘3차 대전’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전투 행위를 한반도 안에서만 이루어지도록 전쟁을 ‘제한전(Limited War)’으로 관리하였는데, 그 결과 한반도는 그야말로 ‘아궁이’, ‘용광로’, 지옥의 전쟁터가 되었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미국의 참전을 독려하고 그들의 적극적 개입을 보장받기 위해―당시는 미국의 도움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다―전쟁의 모든 의사결정, 나아가 주체성마저 미국에 양여했고, 국민들은 ‘남의 전쟁’에서 죽어야 하는 상황, 자포자기 상태에 처하였다. 결국 1953년 휴전이 성립되었을 때 대한민국은 휴전조약의 당사자가 되지 못하였고, 그런 가운데 민족 분단을 영구화할 휴전에 반대하는 데모를 벌이자고 선동하면서 미국이 지켜주는 가운데 또 다른 절박한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휴전으로 전쟁이 멈추었을 때 한반도 남쪽은 죽음의 그림자뿐이었다. 국민들은 극빈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지만, 그들의 의식에서 한국인들은 모두 죽은 시체, 죽어가는 병자 또는 언제 어디서라도 죽음에 붙들리고 그리하여 저승사자에게 끌려가는 존재들이었다. 안 그래도 작은 우리 민족은 이제 영구히 분단되어 생존할 길이 없다는 비관 속에서, 게다가 전쟁 통에 죽고, 불구가 되고, 더구나 살인자가 된 이들은 살려달라고 하늘에 애원할 면목도 없는 존재였다. 편재(遍在)한 죽음은 우리의 ‘아프레게르(après guerre)’의 풍경이었다.

    1950년대는 한국인들에게는 비참한 시기였고 동시에 위대한 시대였다. 먹고살기 위해 모든 고통과 고난과 모독(冒瀆)을 감수해야 했지만, 어떤 이유와, 원인과 과정에서건 죽었던 한국인이 부활한 시대였다. 국가권력이나 어떤 정치 집단이나 지식인 집단이 이끈 것도 아니었지만, 한국인 시체들은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하고, 생명을 되찾고, 욕망을 되찾고, 자신의 모습에 분노하고, 좌절하였다. 이런 새로운 모습들은 대표적으로 손창섭의 단편 소설들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1950년대를 통해 쓰인 그의 많은 단편 소설들은 어둡고 음침하고 처참한 전후 한국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었기에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 작품들로 평가받아 왔지만, 그런 오해들을 뒤로 하고 그의 소설들을 면밀히 살피면, 독립된 각각의 작품들은 마치 연속된 작품처럼 이어지며 그 속에서 죽은 한국인이 부활하는 모습이 뚜렷이 나타난다. 1950년대는 전쟁을 겪은 한국인들이 죽고 죽어가는 비참한 상태에서 시작하여 다시 살아나고, 살아난 후에는 욕망과 분노를 회복해가던 기적(奇蹟)의 시대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 시대는 두 개의 다른 형태의 혁명이 동시에 잉태(孕胎)된 시대였다.

    1960년 2월 말 학원의 자유를 외치는 고등학생들의 ‘데모’가 시작되었고, 데모는 곧 전국에 파급되었다. 무엇보다 3월 15일, 너무나 뻔뻔스런 자유당의 부정 선거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가전을 벌였고, 눈에 최루탄이 박혀 죽은 고등학생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에 온 국민은 분노에 떨었다. 이러한 국민들, 특히 도시 빈민들의 저항이 공산주의 혁명으로 발전할 것을 우려한 지식인들은 대학생들을 동원하여 당시 데모 사태를 민주주의 회복만을 요구하는 데모로 대체하려 했고, 이러한 노력이 성공하여 4월 18일에는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등장하여 시위를 벌였다. 그날 저녁 그들은 자유당의 하수인 ‘정치깡패’들에게 테러를 당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고, 이에 다음 날 4월 19일에는 분노한 대학생들이 광화문에 모여 역사적인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이날 오후 경찰은 시위 군중에게 발포하여 수많은 희생자들을 냈다. 이에 분노한 국민들의 시위가 계속되었고 4월 말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자유당 정권이 붕괴함으로써 ‘4.19혁명’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후 언론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은 대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겼다. 결국 자유당이 붕괴되어 공백이 된 권력은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이들이 세운 정권은 의원내각제라는 민주 정치를 실험했을 뿐 4.19혁명의 직접적 원인들, 국민들의 좌절과 분노를 야기했던 문제들은 전혀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드러냈다.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쌓여갔고 이는 결국 다음 해 5.16군사정변의 명분을 제공하였다. 5.16군사정변은 이미 1956년경부터 계획되어온 것이었고, 그 목적은 부패한 권력과 사회를 일소하고 혁명적 변혁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고 반공에 기반해 안보를 확보한다는 것이었다. 5.16 세력은 애초에 1960년에 정변을 시도하려 했다가 4.19 때문에 이를 연기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제 역사의 흐름은 5.16 세력으로서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4.19가 먼저 발발하여 국민들에게 깊은 좌절을 안겨주었기에 5.16은 성공적으로 우리 역사에 흔적을 깊이 남길 수 있었다.

    4.19 이후의 한국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준 작품은 단연 최인훈의 『광장』이었다. 4.19를 겪은 시대의 한국의 대학생, 서울 문리대 철학과 3학년 이명준은 자신의 특별한 운명을 믿고 있었고, 그 운명을 이루기 위해 광장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남한에서 그리고 북한에서, 남북 분단의 현실에서 이명준은 광장을 찾지 못해 좌절한다. 그런 가운데 그는 그래도 무언가를 챙기기 위해 자신을 부정하고, 악마의 탈을 쓰고, 옛 친구를 고문하고, 옛 애인을 강간한다. 결국 포로수용소에서 운명에 좌절하고 정체성 배반의 수치 속에서 이명준은 남과 북 어느 쪽도 택하지 못하고 제3국행 배에 올라 인도로 가는 길을 택한다. 그러나 이명준은 배 위에서 시종 자신을 추적하고 수치를 문초하는, 양심을 일깨우는 갈매기의 매서운 눈초리에서 애정을 느끼고 바다로 뛰어들고 만다. 욕망의 방출의 시대에, 혁명의 문턱에서 거부당한 한국의 엘리트 대학생이 겪을 비극을, 최인훈의『광장』은 예견하고 있었다.

    5.16 이후, 쿠데타가 성공하고 급속도로 서슬 퍼런 혁명 정부가 들어선 가운데 이 시대를 대표한 작품은 최인훈의 『구운몽』이었다. 주인공 독고민의 욕망은 하나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여러 욕망들이며 또 정체성을 분열시키고 의식을 뒤섞어버리는 욕망들이었다. 옛 애인을 다시 만나는 꿈을 꾸고, 회사의 사장이 되고, 시회(詩會)의 지도자로서의 멋진 예술가가 되고,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애인이 되는 등 다양한 욕망들이 지나간다. 그러나 결국 그의 이 모든 욕망들이 부정되고 밑바닥에서 피어오르는 궁극적인 꿈, 욕망은 광장 가운데 서 있을 동상 같은 멋진 지도자가 되거나 권력에 도전하는 반군(叛軍)의 지도자, 불멸(不滅)의 스타가 되는 것이었다. 5.16 이후에 아직 경제 발전이 시작되기 전, ‘혁명’, ‘쿠데타’가 성공하고 새로운 가공할 권력이 나타났을 때 이미 한국인들은―너무나 오랫동안 혁명을 꿈꾸어왔지만 좌절만을 겪어온 그들은―다른 세상, 모든 욕망들이 난무하고 꽃피는 세상을 보고 있었다.

    1960년대는 최인훈과 김승옥의 시대였다. 그들의 소설들은 새로운 시대를 일깨우는 작품들이었다. 1963년에 최인훈이 출간한 『회색인』의 주인공 독고준은 1958년으로 돌아가 5년 전 그때는 지금과 얼마나 다른 시대였는지를 보여준다.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불과 몇 년 전 자신들이 지금과 얼마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친구들과의 이야기들 또한 얼마나 달랐는지를 일깨워주었고, 다시 말해 1963년이라는 현재, 모든 게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그 시대가 얼마나 독특한 시대인지를, 다시 말해 역사와 현재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1966년에 출간된 『서유기』에서 최인훈은 독고준을―1958년으로 보내졌던 그를―1966년으로 데려오는 ‘시간여행(time travel)’을 감행한다. 주인공은 고전 『서유기』를 방불케 하는 희한한 모험을 겪으면서 일찍이 막스 베버(Max Weber)가 보여주었던, 그리고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소개했던, 자신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합리적 근대인’으로 변모하며, 나아가 그러한 자신을 의식하고, 그러한 삶을 살기로 결의하는 모습, 새로운 한국인으로 재탄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승옥의 단편 소설들은 서울대 문리대 주변의 세속화하고 타락한 이명준 같은 인물들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의 외모를 위협적으로 꾸며 서로에게 해를 끼치는 강한 존재인 양 스스로를 드러내지만 사실 그 내면이 비밀스런 좌절과 죄의식으로 가득 찬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공동체를 떠나온, 잊어버린 외로운 개인들이었고, 그들 각각은 누구로부터도 이해를 구하지 못하는 존재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자기답지 않은 행동을 하고 다니며 정체성 위기가 상존하는 아슬아슬한 존재들이었다. 1960년대 후반이 되면 그들은 현실주의의 지혜를 배우고, 자기의 주제를 찾아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와 함께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1960년대 이 소설들에서 한국인들은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로서의 민족공동체로 귀결되고 말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 한국 사회는 여러 부분들이 따로 움직이며 부각된다. ‘청년’ 문화가 등장하고, 강한 여성상이 부각되는 반면 남성들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급기야 1970년대 초에는 가난한 사람들, 노동자계급이 살아가는 ‘상스러운’ 모습들, 그리고 그들이 고용주들과 권력과 맞서 싸우는 모습들이 부각되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당시 새롭게 출현한 도시 중산층 ‘부르주아’들의 모습이 뚜렷이 나타났다. 한마디로 1970년대에 들어서면 한국 사회는 여러 집단들, 계급들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들의 관계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이제 계급들의 전쟁터였다.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1970년대에는 새로운 사랑의 이야기들이 출현했다.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의 오경아는 살벌한 계급 사회를 가로질러 추락하는 인물로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을 베푸는 비련의 천사였다. 경아나 그녀의 애인 김문오는 장래를 생각하고 준비할 능력이 없는 새로운 세대의 바보들이었다. 영악한 계급투쟁의 사회에서 이들 계급들을 소통하고 엮어내기 위해서는 장래와 이해(利害)를 따질 능력이 없이, 사랑에 빠져드는 바보들이 필요했다. 이들은 대중 소설의 인기몰이를 위해 창조된 주인공들이었지만 나아가 우리 역사를 다시 움직이도록 하는 역사적 임무를 떠맡기기 위해 창조된 인물들이기도 했다. 이들의 존재 위에서 1970년대 후반에 새로운 ‘운동권’이 출현하였다.

    1980년대는 5.18과 ‘신군부’, ‘5공’과 함께 시작된 투쟁의 시대였다. 학생 운동권이 주동이 되어 투쟁에 나섰지만, 온갖 사회·정치적 모순들이 중첩된 세상에서의 투쟁은 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었다. 한편으로 5공 정부는 경제 발전과 물질적 생활 향상을 위해 진력했으며 따라서 사회는 투쟁과 물질주의와 쾌락의 문화가 뒤섞인 대혼란이었다. 1980년대 후반 사회 여러 분야에서의 문제는 정체성의 혼란이었고 이는 사람들을 살인적인 위기로 몰아갔다.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은 1990년대에 들어 새로운 주제로 이어졌다. 즉 우리의 정체성이란 ‘멋지게’ 보이는 모습을 선택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모습을 생각하며 스스로 창조하고, 가꾸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임을 새롭게 발견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이 시대에 쏟아져 나온 이른바 ‘회상 소설’들은 운동권 투쟁의 과정에서 선택했던 가면(假面)을 벗고 진정한 자신에게 다가가는 삶의 길을 보여주었다. 나아가서 일각에서는 개인주의적 삶을 서서히 극복해나가고 공동체적 관계를 회복하는 지혜를 이미 우리 한국인들이 실천해온 모습도 새로이 확인하고 있었다.

    본인은 『발견』에서 우리 한국인들이 해방 이후 겪은 수많은 시련들과 그 과정에서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어떻게 그 괴로움을 겪고, 좌절하고, 참고,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한국인들의 사상을 문학 작품들을 통해 해석해가며, 궁극적으로는 현대 사상사를 일구어 보려고 했다. 이러한 작업의 기저에 깔려 있는 질문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가,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들이었다. 이 질문들에는 결코 ‘해답’이 없으리라는 판단에 자위하지만, 답하기 위해 물어나가는 과정은 보람 있는 고통이었다.

 

 

 

 

 

* 이 글은 아래 출처의 글을 좀 더 읽기 쉽게 윤문한 것임을 밝힙니다.

 

출처:  최정운, "(신작 소개: 『한국인의 발견 : 한국 현대사를 움직인 힘의 정체를 찾아서』)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현대사광장』, 제10호(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17), 130~137쪽.

 

* 출판사 리뷰 - http://mizibooks.tistory.com/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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