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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북스의 책/인문

[독일 현대사] - 1871년 독일제국 수립부터 현재까지

독일 현대사

1871년 독일제국 수립부터 현재까지

디트릭 올로 지음 | 문수현 옮김 | 852쪽 | 38,000원


두 번의 통일, 제국과 공화국 사이를 오간
근현대 독일에 관한 거의 모든 역사


이 책은 지금껏 국내에 소개된 다양한 독일 역사서와 비교할 때 가장 정통적인 서술 방식을 따라, 전통적인 의미의 이야기식 역사 대신 독일의 국내 정치, 외교관계, 사회경제적 상황, 문화를 네 축으로 삼아 각 시대의 독일사를 풀어내고 있다. 

독일 근현대사는 각각 두 번에 걸친 통일과 세계대전 등 세계를 뒤흔든 주요한 사건들과 비스마르크, 힌덴부르크, 히틀러, 토마스 만, 마를레네 디트리히, 아데나워, 호네커, 귄터 그라스, 메르켈 등 다채로운 빛을 발했던 인물들이 펼쳐 보이는 파노라마다.

국내외 정치, 경제, 문화에 근거한 서술 방식이 일견 진부한 느낌을 줄 수 있는데도, 오히려 지루함 대신 차곡차곡 잘 정리된 서가에서 지적 향연을 누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은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충분히 부각되고, 매우 복잡한 사회적 갈등 구도와 다양한 사회 세력들이 등장하는 독일 근현대사가 응집력 있는 역사 드라마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역사적인 디테일에 대한 지은이의 해박한 지식은 때로 유머와 위트를, 때로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읽는 재미를 더하게 한다. 




잘 정리된 서가를 연상시키는 근현대 독일 이야기

이 책은 독일의 국내 정치, 외교관계, 사회경제적 상황, 문화를 축으로 근현대 독일사를 정밀하게 풀어내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정치사 부문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독일제국과 바이마르 시기의 국내 정치에서 자유주의 세력과 보수주의 세력, 중앙당과 사회주의 세력 등 네 정치 세력 간의 복잡한 관계가 어떻게 변주되었는지, 기민련/기사련, 사민당, 자민당, 녹색당 등 다양한 정당들이 서독의 의회민주주의를 공고히 만들어가는 과정과 사통당이 동독 사회 전반을 장악해가는 동시에 사회 내부의 지지를 잃어가는 과정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정당 정치 구조를 중심으로 하는 설명은 통상 지루함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이 그런 위험에서 벗어나 한 편의 대하 역사 드라마를 보듯 몰입도를 높일 수 있던 이유는 비스마르크부터 앙겔라 메르켈에 이르기까지, 1871년 독일 통일 이후 재임한 거의 모든 총리들과 그들의 정책이 정교하면서도 입체적으로 서술되기 때문이다. 디트릭 올로는 그들의 개인적 면모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 및 권력투쟁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서술로 과거의 역사를 현실로 되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비스마르크, 빌헬름 황제, 히틀러, 힌덴부르크, 콘라트 아데나워, 헬무트 콜, 앙겔라 메르켈 등 우리에게도 낯익은 이름들은 이 책이 친숙하고 생생한 느낌을 주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실제로, 바이마르공화국 후기의 극심한 정치적 혼란상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장의 대립’을 연상하게 하고, 동서 냉전으로 인한 분단 경험과 통일에 이르는 과정 또한 아직도 분단 상태에 있는 우리 사회에 역사적 교훈 내지 반면교사로서의 깨달음을 안겨준다.

독일의 전 총리 게하르트 슈뢰더는 독일인이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자랑스러워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1945년 이후 민주적 성취에 대해 자랑스러워해야만 한다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은 역사적으로 옳고 정치적으로도 빈틈없지만 독일 역사의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인 셈이었다. 하지만 슈뢰더가 자랑스러워한 1945년 이후의 역사뿐 아니라 언급하기를 회피했던 1945년 이전의 역사도 심도 깊게 다루어질 때 독일의 근현대사는 온전히 파악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독일의 국내외 정치, 경제, 문화를 중심으로 1871년 이후의 독일 역사를 차곡차곡 서가를 정리하듯 정교하게 서술한 이 책이야말로 그간 국내에선 볼 수 없었던 독일 근현대사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지금 독일 역사인가?

2019년 대한민국에서는 가히 ‘광장의 정치’라고 불릴 만한 현상이 벌어졌다. 정치적 이해에 따라 갈린 대규모 군중이 세 대결을 벌이는, 의회민주주의 역사가 깊은 나라들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견 국론 분열의 모습으로까지 보이는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실 이를 두고도 극명한 대립만큼이나 정리되지 않은 의견이 무수히 도출되었다. 가늠하기 쉽지 않은 문제가 아전인수격의 해석과 해법으로 대립하는 경우 좀 더 현명하게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비교해볼 만한 사례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보다 먼저 이런 경험을 한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특히 1차대전의 폐허 속에서 탄생한 바이마르공화국의 경험을 살피는 것은 극한 내부 대립을 딛고 일어나 ‘황금기’를 구가했던 사회에서 어떻게 나치가 발흥했으며, 2차대전과 홀로코스트를 일으킨 주역이 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우리가 지금 독일의 역사를 읽어볼 만한 이유이다.

1차대전의 패망과 더불어 해체된 독일제국을 대신해 탄생한 바이마르공화국은 권위주의 전통이 강했던 독일 사회에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다원주의를 이식하려고 했지만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 기간이 10여 년에 불과했던 탓도 컸고, 구엘리트층을 포함한 많은 독일인들이 자신들의 축소된 지위와 영향력, 전쟁에서의 패배, 강대국으로서의 지위 상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만성적인 경제적, 재정적 문제를 정치적 근대화 탓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일부 지도자들의 진지한 노력과 경제적, 사회적 진보, 문화생활의 의심할 나위 없는 광휘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바이마르 시기가 신보수주의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체제의 복원과 나치의 발흥에 빌미가 되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사실 나치즘은 반유대주의와 원민족적 통합에 대한 갈망 등 몇몇 오래된 독일 전통에 뿌리를 두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대공황이 이미 마모된 사회의 가치 합의 구조를 붕괴시켰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기 5년 전인 1928년 선거에서 나치당의 지지율은 단 2.6퍼센트에 불과했지만 대공황으로 대표되는 경기 불황을 거치며 독일의 주요 정치 세력이 되었다. 하지만 히틀러와 그의 심복들이 권좌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수백만 독일인들에게 구제를 약속했기 때문이 아니다. 의회민주주의를 거부했던 하인리히 브뤼닝, 프란츠 폰 파펜, 쿠르트 폰 슐라이허 등의 신보수주의 총리들이 그릇되게도 자신들의 통제하에서 나치가 비스마르크와 빌헬름 황제 시기의 영광을 회복시킬 것이며, 당연하게도 구 엘리트층에게는 익숙한 권력과 명망의 자리를 되돌려줄 수 있다고 오판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가 익히 아는 세계적 비극이 벌어졌다.

독자들은 독일 근현대사를 돌아봄으로써, 한국을 비롯한 오늘날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직면한 새로운 정치적 도전들에 대한 역사의 교훈과 심오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지리적 이름에 불과했던 독일을 비스마르크가 통일했다면, 히틀러는 반대로 독일의 통일을 파괴했다. 그러나 전쟁 후 서독은 안정적인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정립하고 재통일을 이루었으며, 오늘날 유럽연합을 이끌어가고 있다.   


다가오는 통일 시대, 한국인이 꼭 읽어야 할 책

2차대전 후 거의 40년간 독일의 두 절반은 남북한의 경우처럼 매우 다른 방식의 독자적인 사회였다. 하지만 1989년 말 소비에트 블록의 해체와 더불어 동독에서 벌어진 극적인 사건들은 사통당 일당독재 체제의 내적인 불안정성과 취약성을 갑작스레 드러냈다. 연로한 사통당 지도자들이 즉자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개혁을 약속했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평화로운 혁명이 진행되면서 동독인들은 이들을 권좌에서 쓸어버렸다. 갑작스럽게 통일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영국과 프랑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몇 달을 보낸 뒤 미국의 지지를 얻어 독일은 다시금 통일된 국가가 되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동서독의 통일은 현실이 되었다.

여전히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에게 독일의 통일 과정과 그 후에 발생한 문제들은 역사적 교훈 내지 반면교사로서 생각할 거리를 준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회담으로 시작된 평화의 기운이 강해질수록 다시금 부각될 ‘퍼주기’ 논란을 서독 사회는 어떻게 해소했는지, 공산 독재 체제하의 인권 문제 등의 쟁점들을 동서독은 어떻게 넘어섰는지, 독일 통일에 우호적이지 않은 이웃 강대국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갔는지, 통일된 독일 사회가 통일 비용, 과거 청산, 극우 정당, 이민자 통합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그리는 데 매우 유용할 것이다.

▲ 통일로 가는 길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통일 이후에 맞닥뜨리게 될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      *      *


지은이 디트릭 올로 

미국 보스턴대학 역사학과 명예교수. 1937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미시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윌리엄앤드메리대학, 시라쿠스대학, 보스턴대학 등에서 재직했다. 1968년 출간된 《발칸반도의 나치들The Nazis in the Balkans》부터 2015년 출간된 《사회주의 개혁가들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붕괴Socialist Reformers and the Collapse of the German Democratic Republic》에 이르기까지 10여 권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을 출간했다.


옮긴이 문수현 

서울대학 서양사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빌레펠트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 역사연구소, 경희대학 인문학연구원, 유니스트 기초과정부를 거쳐 현재 한양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Wie viel Geld für wie viel Leistung?: Weichenstellungen in der Frauenlohnfrage in Westdeutschland nach 1945》, 《서양 여성 근대를 달리다》(공저)가 있으며, 독일 근현대사, 한독 관계사 분야에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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