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전투에서의 M26 전차. 기동력과 기계적 신뢰성에는 다소 문제가 있었지만 강력한 화력과 방어력으로 전세 역전에 크게 기여했다.

 

미 해병대는 처음 한국에 침략자로 왔으나 훗날 한국전쟁에서는 말 그대로 한국을 구한 주역이었다.

낙동강 방어 전선 당시만 해도 한반도 대탈출 계획(남태평양 서사모아로 한국인 집단 이주)까지 세울 정도로 전세가 어두웠지만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반전되었다. 자기 숭배에 빠져있으며 상륙작전 중독자였던 맥아더는 어느 면으로 보아도 불필요한 작전 명령을 내렸다. 서울을 수복하여 서울 북쪽에 있던 제10군단을 빼내어 바다로 한반도를 한 바퀴 돌아 원산에 상륙시켜 함경도로 진군시키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미 해병대가 원산에 상륙했을 때는 이미 남쪽에서 육로로 진격한 한국군에 의해 원산이 함락된 상태였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이 "벽안의 쇼군"은 한국전쟁 당시 현장 시찰을 위해 한국에 오더라도 그날로 바로 일본으로 돌아갔으며, 단 하루도 한반도에서 잠을 잔 적 없었다.

 

맥아더는 태평양전쟁 때부터 해병대원들에게 ‘대피호 더그’라는 멸칭으로 불렸다. 맥아더가 필리핀 주둔 미군 사령관일 때 참호 깊숙이 숨어만 있다가 대통령의 명령이 오자 기다렸다는 듯 부하들을 버리고 호주로 탈출해버렸기 때문이다. 맥아더는 제10군단장에 에드워드 아몬드를 낙하산으로 꽂았는데, 군단장 아몬드의 무능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맥아더는 아몬드에게 인천상륙작전의 총지휘를 맡겼다. 상륙작전 당일 아몬드는 맥아더와 마운트 매킨리호 함상에 함께 있었는데 한 해병대 장교에게 수륙양용장갑차(LVT)가 “바다에서도 뜰 수 있는가”라고 물을 정도로 무지했다. 미 해병대가 원산에 상륙한 이후에도 아몬드는 계속해서 잘못된 명령을 내림으로써 아군의 생존을 위협했다.

 

에드워드 아몬드 제10군단장.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성 가운데 가장 큰 논란의 대상 중 한 명이다. 

 

영웅 놀이와 언론 플레이에 신이 난 맥아더는 두 달 안에 압록강-두만강 국경에 도달하고 크리스마스까지 병사들을 귀국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중국군이 한반도 안으로 대규모로 들어왔으며 깊숙이 남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미군 지휘부는 이 사실을 몰랐고 소규모 부대의 산발적인 저항이라고 생각했다. 아몬드는 미 해병대에 장진호를 거쳐 압록강으로 진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개마고원에 겨울이 왔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대의 남태평양 정글에서 싸웠던 해병대는 전대미문의 혹한에 엄청나게 고생했다. 설상가상으로 사방에서 중국군이 포위하여 백척간두의 상황이었다.

 

살인적인 추위와 중국군의 대공세 속에서 해병대원들의 고난도 커져만 갔다. 

 

장진호 전투 당시 해병대를 지휘한 제1해병사단장은 올리버 스미스 장군이었다. 그는 유능한 지휘관이었다. 사단장 스미스는 북쪽으로 쾌속 진격하라는 군단장 아몬드의 명령에 최대한 불복하면서 오히려 전략적 요충지인 하갈우리 남쪽에 비행장을 지었다. 아몬드가 건설 중인 비행장을 보면서 “무슨 이유로 비행장을 짓느냐”고 묻자 스미스는 “사상자를 실어나르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는데 아몬드의 반문이 걸작이었다. “사상자라니, 무슨 사상자?” 나중에 사단 전투력의 절반에 가까운 4500명의 부대원이 이 비행장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아몬드의 명령대로 압록강을 향해 쾌속 전진했다면 사단 전체가 고립되어 전멸했을 것이다.

 

제1해병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교수"라는 별명을 가졌던 스미스 사단장은 한국전쟁의 진정한 영웅 중 한 명이다.

 

중국군의 대공세로 전세는 역전되어 맥아더는 흥남으로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해병대는 비행장을 통해 항공 철수할 수도 있었지만, 중장비를 모두 버리고 가야 했고 최후에 남은 부대가 생존할 수 없었다. 따라서 사단장 스미스는 중국군의 포위망을 뚫고 육로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남쪽으로 공격”하는 치열한 전투 끝에 해병대는 무사히 흥남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많은 사상자를 내었지만 미 해병대가 주력 부대를 보존한 채로 질서정연하게 후퇴한 덕에 전체 전선이 급격히 붕괴하는 것을 막았다. 한편, 군단장 아몬드는 흥남 철수 당시 수많은 민간인 피란민들을 배에 태워서 많은 인명을 구했다고 하니, 모든 사람에게는 역사 속에서 자신의 역할이란 게 있는 지도 모른다. 

 

 

* 이 글은 <미 해병대 이야기>(한종수, 김상순 지음)의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미 해병대 이야기

한종수, 김상순 지음 | 592쪽 | 22,000원

 

극한의 환경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른 미 해병대의 살아 있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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