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기획회의>의 제안으로 한국 사회과학 출판계의 자존심을 지켜가고 있는 개마고원 출판사의 장의덕 대표님을 미지북스가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를 정리하고 보니 우문현답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0년 넘게 출판계에 몸담은 선배님의 귀중한 조언과 사회과학 분야의 작은 출판사들이라면 누구든 생각해봤을 법한 고민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이 인터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최근 출간한『한국의 출판기획자』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시대 문제의 맥을 건드리는 것

-사회과학 출판 기획이란 무엇인가?

 

- 미지북스 대표 이지열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가운데 합정동의 어느 멋스러운 까페에서 개마고원 장의덕 대표를 만났다. 장의덕 대표는 1989년부터 도서출판 개마고원과 저널룩 <인물과 사상>을 통해 한국 사회과학 출판계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개마고원은 『김대중 죽이기』,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신문 읽기의 혁명』등 우리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다수의 저작들을 출간하였으며, 장 대표는 2011년에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출판인’ 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장의덕 대표에 대한 인터뷰를 처음 제안 받았을 때는 필자가 출판계 사정에 너무 어둡고 무지하여 제대로 인터뷰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나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개마고원 대표를 만날 수있을까? 책장에 꽂힌 10여 권의 개마고원 책들을 보았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살찌우고 즐거움을 주던 사회과학 책들 아닌가? 출판 인생 25년 동안 사회과학이라는 한 우물을 파온 선배를 만나보고 싶었다.

 

합정동에서 만난 장의덕 대표는 매우 온화한 인상으로, 까마득한 후배의 우문에도 솔직하고 차근차근하게 깊이 있는 답변들을 해주었다. 대화의 서두는 최근 들어 매우 어려워진 사회과학 출판계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2013년 사회과학 출판 시장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장의덕 대표는 개인적으로 작년 한 해가 ‘1인 출판사’를 면한 1994년 이래로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 말했다. 출판 시장이 언제고 어렵지 않은 적이 있겠느냐마는 유독 사회과학 분야는 어려워지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이슈의 심층을 움켜쥐는 기획

 

미지북스 이지열(이)—사회과학 책들은 기본적으로 이슈를 따라가기 때문에 책의 생명주기가 짧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사회과학과 역사 분야 책을 비교해봐도 그렇다.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책의 내용이 유효한 쪽은 후자이다. 요즘은 사회과학 출판사가 과연 오래가는 백리스트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개마고원 장의덕(장)—사회과학서의 생명주기가 짧다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기본서로 탄탄한 백리스트를 만들 수 있으며, 그러한 백리스트를 만드는 일이 출판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그런데 대체로 외국의 주요 학자들의 책을 번역해서 기본서를 채우고 있는 것 같다. 국내 필자들을 발굴해서 우리 내부의 지적 역량을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게 사실은 출판사에게도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데 갈수록 잘 해내기가 어려워 나 역시 길을 못 찾고 헤매고 있는 상황이다. 생각보다 공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많게는 기획에서 출간까지 10년이 걸린 적도 있고, 보통 1~2년은 족히 걸린다. 특히 저자를 찾아서 콘셉트에 대한 공감대를 갖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는데 2,000~3,000부로 끝나버리면, 저자나 출판사나 힘이 많이 빠진다.

— 좋은 책이라 생각하고 정성 들여 만들어냈지만 독자들의 냉담한 반응을 맞닥뜨렸을 때 갖는 묘한 감정은 책을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별로라고 생각하는 책들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좋은 책들이 빛을 못 보고 묻힌다고 생각될 때가 있을 텐데?

— 책이라는 게 ‘이것이 저것보다 더 좋고 더 훌륭하고 더 낫다’는 식으로 평가될 수 있다기보다는 독자와 눈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다시 사회과학 출판 기획으로 돌아가서, 특히 요즘과 같이 이슈가 급변하는 시대에는 사회과학 책만으로 백리스트를 형성하는 것은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는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역동성을 지닌 사회다. 사회과학 출판이 주요 사회 이슈를 따라가는 출판 행위라고 했을때, 과연 출판사가 그러한 이슈의 변화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 싶다. 책이라는 것을 금방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1~2년 준비하다 보면 그 이슈는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출간 후 몇 년만 지나도 상황이 너무 많이 바뀌어버리지 않는가. 과연 사회과학 책만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눈에 명백히 보이는 위험 부담을 안고 가는 것 아닌가?

— 그런 문제에 대해 답변할 만한 처지는 못 되는데, 굳이 하라면 뻔한 모범답안 밖에 할 게 없다.(웃음) 사회과학 출판사나 기획자가 간과해서는 안 될 지점은 피상적인 이슈를 따라가는 것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이슈를 따라가면 이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식어버림과 동시에 그것에 기대어 만든 책 역시 끝나버린다. 그렇게 되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매번 허덕거리게 되고 운영하기가 힘들어진다. 또한 책이 신속성을 무기로 하는 보도 매체나 잡지 등과 경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책은 이들 매체가 담보할 수 없는, 이슈 안에 존재하는 더 깊은 문제들을 다룰 수 있다. 표면은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처럼 보여도 더 근본적인 층위에서의 문제의식들은 상당히 오래간다. 물론 나 역시 잘 해내고 있지 못하지만 사회과학 출판 기획은 그 심층 저류를 움켜쥐는 게 핵심 아닐까 싶다. 그런 관점에서 국내 학자들의 기본서를 기획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 표면적인 이슈 밑에 있는 근본을 건드리라는 이야기인가?

— 그렇다. 다른 분야에 비해 사회과학 책들은 훨씬 현실 밀착적이기 때문에 독특한 폭발성이 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잠재되어 있는 사회적 문제들의 접점을 찾아 짚어주면 독자들은 뜨겁게 반응한다. 특히 사회과학 책은 실제 판매 부수보다 몇 배의 사회적 파급력을 갖고 있다. 이것이 사회과학 출판의 매력이기도 하다. 『김대중 죽이기』의 경우 20만 부가 팔렸지만, 그 사회적 파급력은 훨씬 컸다. 모르는 사람들은 한 백만 부 팔린 것 아니냐고 묻는다. 그만큼 사회과학 출판은 증폭 효과를 갖고 있다.

— 최근의 경우 『88만원 세대』가 그러한 예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역시 사회과학 분야의 폭발성을 보여준 책이라 생각된다. 최근 개마고원에서 나온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오찬호 지음, 2013)에 대한 반응도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운동과 맞물려 꽤 뜨거운 것 같다. ‘20대 괴물론’, 또는 ‘자기계발 논리의 매개가 된 젊은이들’의 실상을 본격적으로 해부한 책인 듯한데, 20대 독자를 염두에 둔 기획인가?

— 20대 독자들과 접점을 찾아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20대의 문제, 20대의 불편한 현실을 전면화하고 논쟁을 촉발해보고자 했다. 실제 대학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긍정적인 평가든 부정적인 평가든 이런저런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런 반응들이 사회적 논쟁으로 이어지고 변화를 불러오게 하는 것이 사회과학 출판사의 역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도 저자의 박사 논문을 대중 독자들을 위한 내용으로 재창조한 것이라서 나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 최근 사회과학 시장의 축소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 개마고원의 경우로 보자면 주력 독자가 40대인데,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독자와 출판사가 같이 늙어간다는 것인데, 결코 좋은 징후라고 볼 수 없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라나는 세대들이 새로운 독자층으로 계속 유입되어야 하는데,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고정 독자층과 함께 늙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개마고원이 20대와 같은 새로운 독자층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미지북스의 경우에도 40대 남성 독자가 주를 이룬다. 사회과학 분야의 책이나 역사 책 모두 그렇다. 아마도 이른바 386이라 불리는 40대가 20대 시절부터 사회과학 책을 많이 읽었고, 경제적으로도 가장 구매력이 높기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30대는 일이나 육아 때문에 책을 읽을 여유가 없고, 20대는 취업이나 학점, 스펙 경쟁으로 책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라고 나름 판단하고 있다. 과거에는 주 독자층이 20대였나?

— 그렇다. 예전에는 확실히 20대가 주 독자층이었다. 정말로 386과 함께 늙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20대가 책보다 스마트폰, 게임을 더 가까이 하는 현상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변화(매체 환경의 변화)의 일부로 파악해야지, 그것을 세대론적 관점에서 절대화하면 안 된다고 본다. 젊은 층과의 접점을 찾아내는 데서 실패했다는 점을 반성하게 된다. 젊은 독자층의 고민과 현실을 읽고 그것에 책으로서 답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과제가 크게 다가온다.

 

— 최근 불어닥친 SNS 열풍이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길어지는 것 등 매체 환경의 변화가 사회과학 시장 축소에 영향을 많이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인터넷 환경 또한 SNS 등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소통의 장들이 분절화, 파편화되는 것 같다. 이런 점들이 건전한 사회 비평과 논쟁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가?

— 매체 환경의 변화로 인해 독자들이 책을 더 안 읽게 되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해서는 답이 안 나올 것 같다. 과거에 PC통신이나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도,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다. 인터넷이 실제로 사회적 공론장의 역할을 많이 흡수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단지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새로운 매체와 책은 함께 가는 것이며, 우리의 대안은 독자들과의 접점을 맞추는 더 뛰어난 기획일 뿐이다. <인물과 사상>의 종간 때도 매체 환경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했다. 그러나 공론장이 전적으로 인터넷이나 SNS로 이동하는 것도 아니며, 모든 논쟁이거기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 매체 환경의 변화에 너무 주눅들 필요 없고,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 천착하는 것이 사회과학 출판의 미래라는 뜻인가?

— 그렇다. 신문 한 장만 봐도 사실 기획거리 자체는 무수히 많다. 거기서 제대로 골라낼 줄 아는 역량이 관건일 뿐이지… 예전에 내가 <기획회의>에 기고한 적도 있는데, 기획에는 ‘10:5:1의 법칙’이 있다. 10가지 기획 아이템이 있으면 그중에 5개 정도가 기획안으로 성안되어 저자와의 접촉으로까지 나아가는데, 최종적인 책으로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1개 정도라는 말이다. 이렇게 과정을 보면 결과물이 희소한 것이긴 하지만, 아이디어가 나올 데는 무궁무진하다.

— 많은 훌륭한 아이디어들이 한 권의 책으로 온전히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내 경우엔 가장 큰 이유가 저자를 구하는 게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저자 층이 너무 얇기도 하거니와, 특히 대중서를 쓰는 소위 ‘중간필자’들이 워낙 없다. 왜냐하면 이들이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이 전혀 마련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기획이잘 되려면 중간 필자층이 두텁게 형성되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 기획을 진행하고 책을 만들다보면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오는 경우가 있는가?

— 정말 좋은 원고를 받으면 책을 만드는 중에 환희 같은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한밤중에 자기도 모르게 춤을 추게 되는 그런 순간이랄까(웃음) 느낌이 좋았던 것들은 그 결과도 좋았다. 예를 들어 진중권 교수가 독일유학 시절 썼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경우도 그랬다. 그때만 해도 사회과학 분야에선 진 교수가 그렇게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원고가 독일에서 팩스로 일정 분량이 전송되어 오는데 편집자들이 퇴근도 안 하고 원고를 기다렸다.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웃겨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만든 책이었다. 출판인으로서 행복하다는 건 그런 경험의 순간들 때문이 아닐까싶다. 『신문 읽기의 혁명』 같은 경우에는 저자를 엄청 괴롭히면서 만든 책이다. 저자가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초고가 나오고도 거의 일 년을 고생해서만들었다. 덕분에 이제는 나름 고전격으로 읽히는 책이 되었다.

 

극단적 사회는 책 읽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

 

— 최근 개마고원에서 나온 『리얼 노스코리아』(안드레이 란코프 지음)를 인상적으로 읽었다. 북한이 비이성적이고 미친 국가가 아니라 극단적 국가 이성이 작동하는 곳이라는 해석이 설득력 있었다. 통일 문제에 대한 공허한 이념 대립 속에서 현실주의적인 진단이 빛나는 책이다. 좌우의 시각 틀에 갇히지 않은 대안이라는 측면에서 오늘날 매우 양극화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 문화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느꼈다. 그런 측면에서 어떤 의도된 기획이라고 봐도 되는가?

—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양극화된 정치 지형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는 교집합이 존재한다. 합리적인 보수는 현실적인 진보와 서로 통하고 함께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가 무한 대립이 아니라 상호 접점을 찾는 데 기여할 수 있겠다 싶어 고른 책이다.

나는 정치 문화가 너무 양극화되고 극단화되는 것이 출판인의 관점에서도 좋지 않다고 본다. 사회가 울퉁불퉁해지고 불안정하면 사회과학 출판사가 출간할 소재들이 많아지니까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사회가 안정적일 때 책을 더 많이 읽는다. 대형 사건들이 펑펑 터지면 사람들이 그쪽으로 관심이 확 쏠리는데 책을 읽을 여유가 있겠는가? 따라서 거창한 비전이 아니라 소박한 출판인의 이해 차원에서도 사회가 극단화되지 않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과 연성화된 권위주의 체제의 재등장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많다. 출판사들마다 각기 출판의 의의와 목표가 다르겠지만 장 대표는 출판인의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사실 그런 큰 이야기에 그럴듯하게 답을 하기보다는 “책을 낸다는 것은 곧 출판인으로서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이라는 정도로만 말하고 싶다. 그것을 통해 꼭 필요한 사회적 아젠다가 만들어지는 데 일점이라도 기여할수 있다면 중요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 아니겠나. 그렇게 동시대인(독자들)과 문제의식을 함께 보고 듣고 느끼고 나누는 가운데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일종의 탈출구로서 다른 분야로 진출하여 수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시도를 어떻게 보는가?

— 경영에 실패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인데, 원래 잘 안될 때는 난국을 한 방에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싶다. 그때 조심해야 한다. 사회과학은 미래가 없는 것 같고 다른 분야는 더 잘 되는 것 같지만, 원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다. 나는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다른 분야에서 수익을 창출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단계로 올라서기 전까지는 좀 신중한 게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선택과 집중의 원칙이 유효한 때가 있는 것 같다.

— 책을 내는 데 비용과 노력, 시간은 많이 들어가는데 시장 크기는 제한되어 있다고 하자. 어차피 사회과학 분야의 판매 부수가 고만고만하다면 다품종 소량 생산 전략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한 권의 책을 정성들여 만드는 것보다는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종수를 늘리는 것이 유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 권의 책이라도 공을 많이 들이는 출판사들이 경영 악화로 경쟁력을 오히려 상실하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또한 규모가 큰 출판사들이 임프린트 형식으로 시장을 독식한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 책 종당 고정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그런 전략을 채택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책 종수를 무조건 늘리는 것으로 특정 시장을 장악하겠다고 판단하는 곳이 과연 있을지는 모르겠다.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책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많은 종수로 나온다 해도 그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 아닌가. 중요한 것은 기획을 제대로 하고 책의 품질을 좋게 하는 것이다. 큰 출판사들이 작은 시장을 독식한다는 비판도 그렇게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좋은 책을 내는 작은 출판사들을 위해서 이런저런 지원 정책에서 일종의 적극적 평등조치(affirmative action) 같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정부의 지원 사업들(우수도서선정 사업)의 경우에 매출 100억 이상의 출판사들은 자율적으로 출품을 자제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책은 다 똑같은 책인데, 왜 어떤 책은 되고 어떤 책은 안 된다는 것이냐는 반론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상품을 주고 대금을 받는 것인데 그게 왜 ‘지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원제도라고들 하니, ‘우수’도서에 방점을 찍는 게 아니라 ‘지원’제도라는 데 방점을 찍는다면 그 취지에 더 부합하는 방안 아니겠나 싶다.

 

— 그동안 유명 저자들과 많이 작업을 해왔다. 어떤 식으로 저자들을 섭외하는가?

— 특별한 섭외 노하우 같은 걸 묻는 거라면, 사실 그런 건 없다. 기획이 우선이고, 저자는 그 기획에 가장 알맞은 사람을 찾은 결과일 뿐이다. 사실 그 유명 저자들이라는 분들도 접촉 단계에서는 서로 전혀 안면이 없거나 유명한 상태가 아닌 경우도 많았다. 저자와 출판사가 함께 커온 격이라고 할까. 나는 말주변이 없어서 주로 메일로 저자에게 기획을 제안하고 공감대를 형성했다. 강준만 교수 같은 경우에는 첫 대면을 한 게 그의 두 번째 책(『김대중 죽이기』)을 내고 난 다음이었다. 고종석 선생 같은 경우도 오랜 시간 같이 작업을 해왔지만, 친해지는 데 10년 걸렸다.(웃음) 처음에는 다 똑같다. 무작정 제안하고, 만나고, 인연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 많은 편집자들이 저자 앞에서 지식이나 여러 면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고, 대등한 위치에서 작업하기가 어렵다고 느낀다. 편집자는 저자를 대할 때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한다.

— 편집자는 저자에게 ‘독자의 대표’로서 말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저자는 그 분야에 대해 일가를 이룬 사람이다. 책을 쓸 정도로 그 분야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인데 편집자가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는가? 편집자들이 해당 분야에 대해 저자만큼 알 수도 없고, 알아야 되는 것도 아니다. 저자와 편집자의 대등함이란 그런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편집자는 편집의 전문가이다. 어떤 분야든 독자의 눈으로 보는 사람이다. 반면 저자는 그 분야의 전문가이다. 서로의 전문 분야가 다른 것이다. 따라서 저자 앞에서 편집자가 위축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편집자는 “내가 이해 못 하면 독자들도 이해못 한다”고 저자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편집자인 나도 설득 못 하는데 독자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할 수 있는 역할에서 편집자의 힘은 나온다고 본다.

 

— 마지막으로 후배 출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아직 그런 거창한(?) 얘기할 ‘급’이 못 된다. 이제 감각적으로 많이 뒤쳐져 있다는 자각은 확실히 갖고 있다. 이를테면 『닥치고 정치』 같은 책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만든다. 우리 세대의 감각으로는 좀 ‘이상한’ 사회과학서, 아니 뭔가 사회과학서 같지가 않다.(웃음) 그래서도 우리가 오히려 후배들에게 거꾸로 배워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가장 왕성할 때 같이 고민을 공유하고 같이 출구를 찾을 수 있는 동료 출판인들과 교류하길 바란다. 너무 외곬으로 지내는 것은 좋지 않다.

어떤 문제들은 선배들이 유용한 조언을 줄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조직이 커지면서 겪는 문제들이 그렇다. 소수의 인원이 일할 때는 시스템 없이도 사장 개인이 조직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지만, 인원이 늘어나게 되면 그럴 수 없게 된다. 그런 문제들에 관해서라면 경험을 가진 선배들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서점 중심의 시장이니 전자책이니 하는 출판환경의 변화 아래서 영업이나 기획에 대해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고민과 과제를 붙들고 있을 또래 출판인들끼리 서로 교류하며 배우고 고민을 나누기를 권한다. 외로운 섬처럼 각자도생하지 말고.

 

인터뷰를 끝내고 근처에서 소박한 뒤풀이 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오늘날 출판 유통 환경의 문제점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나 너무 방대한 가지로 뻗어나가는 쟁점들이라 따로 정리하지는 않았다. 사회과학 출판의 본질과 출판인의 마음가짐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신 장의덕 대표께 감사드리며,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기획회의>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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