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知 - 책 읽기2014.04.23 12:16

금본위제도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 금본위제도란 무엇이며, 금본위제도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왜 타당하지 않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금본위제도 내부의 중요한 취약점들을 살펴보고 오늘날의 정치 제도와 양립 가능한지를 알아봅니다. (1편에 이어 계속)

 


 

금본위제도로 복귀하자는 주장은 왜 틀렸는가? 

 

- 금본위제도의 역사와 한계2 : 세상이 바뀌었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볼 때, 국제 금본위제도의 필요를 충족시킬 정도로 금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근본적인 사실은, 세상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49쪽

 

 

 

금본위제도에서는 통화 정책의 효과가 타국으로 전염된다

 

금본위제도로 복귀하자는 주장은 왜 틀린 것인가를 따져보는 일은 20세기 초 금본위제도가 종말을 맞게 된 상황을 살펴보는 일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금본위제도는 일종의 국제 고정환율 시스템으로서, 각국의 통화 가치는 금과 다른 나라의 통화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00년 달러화 가치는 금 1온스당 대략 20달러 정도였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영국 사람들은 금 1온스당 대략 4파운드 정도로 금 태환 비율을 정하고 있었습니다. 20달러가 금 1온스와 같고 금 1온스가 4파운드와 같으므로 결국 20달러가 4파운드와 같은 셈입니다. 그러므로 두 나라가 모두 금본위제도 하에 있는 경우 두 나라 통화의 가격 비율은 근본적으로 고정됩니다.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격이 오르내릴 수 있는 오늘날과는 달리, 가국 통화간 상대가격이 변동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지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27쪽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금본위제도에서는 한 나라가 충격을 경험하거나, 잘못된 정책이 시행되거나, 통화 공급량이 변화한다면 다른 나라들에 그 영향이 파급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까지도 중국의 위안화는 미국 달러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컨대,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져 연준이 금리를 낮춰 경제에 자극을 주면 중국에서도 통화 정책이 원칙적으로 완화됩니다. 그런데 그 낮은 금리가 중국에는 적절치 않을 수 있고, 중국으로서는 원치 않는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게 됩니다. 금본위제도는 고정환율제도이기 때문에 개별 국가가 자국만의 통화정책을 관리할 독립성을 잃게 됩니다.

 

금본위제도의 이러한 문제점은 대공황 시기에 극적으로 표출되었습니다. 밀턴 프리드먼이 지적했듯이 대공황기에 통화긴축을 시행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엄청난 실수로 통화와 경제가 급격히 수축하게 되었는데, 그 충격은 금본위제도를 타고 전 세계로 전달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공황은 세계 대공황이 되었고, 국제 금본위제를 유지하려는 생각은 대공황을 훨씬 깊고 오래가도록 만들었습니다.

 

대공황은 금본위제를 타고 미국에서 유럽으로 전달되었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크레디트 안슈탈트 은행의 부채는 정부 예산보다 많았다. 유럽 정부들은 은행 체계와 금본위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상황에서 주저없이 전자를 택했다. 

 

결국 미국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3년에 집권하면서 금본위제도를 포기하였고 그때부터 미국 경제는 반등 기류를 탔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잇따라 금본위제도를 포기하면서 침체로부터 회복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금본위제도의 끝이 경제 회복의 시작이었던 셈입니다.

 

 

금본위제도는 투기적 공격에 노출된다

 

금본위제도의 또 다른 문제는 투기적 공격을 받기 쉽다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금본위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통화와 금을 교환해준다는 확신이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합니다. 이를 ‘태환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중앙은행은 금을 모두 보유하는 것은 아니고 일부만 준비금으로서 보유합니다. 이를 두고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금 박막(a thin film of gold)”이라고 일컬을 정도였습니다.

 

영란은행이 보유하던 금은 소량에 불과했지만 자신에 대한 일반의 신뢰 -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영란은행은 금본위제도를 사수할 것 - 에 의존하고 있었으므로, 결과적으로 금준비 규모가 작다는 점을 들어 영란은행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금본위제도를 유지하겠다는 중앙은행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만약 시장이 잃게 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 나라의 통화는 투기적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일이 영국사람들에게 일어났던 것이지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29쪽

 

위의 글은 1931년 영국 파운드화에 대한 투기 자본의 공격에 영란은행이 항복했던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영란은행이 보유하던 금은 금방 동이 나버렸고, 영국은 금본위제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때 영국 재무부 관료는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부하 직원이 뛰어와서 “우리나라가 금본위제도를 포기했습니다!”라고 알려줬더니, 그 관료가 “우리가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처럼 금본위제도에서 투기적 공격과 다수의 금융 패닉이 있어왔습니다.

 

 

금본위제도는 현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 폴라니 테제

 

버냉키는 금본위제도로의 복귀가 왜 틀린 주장인가에 대해 가장 중요한 이유로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바뀌었다니, 이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앞서 본 것처럼 금본위제도가 유지되려면, 중앙은행이 금과 연계된 자국 통화의 가치를 방어하는 데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적어도 시장에 금본위제도 유지가 중앙은행의 최우선 임무라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 말은 다른 정책 목표들, 실업이나 경제 활성화 같은 문제들보다 통화 안정이 중앙은행의 훨씬 중요한 목표라는 뜻입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그럴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노동자와 일반 국민들에게 투표권이 없었습니다. (투표권은 재산이 있는 남성에 제한되었습니다). 불황으로 가장 고통 받는 노동자들은 투표권이 없으므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마음껏, 무자비하게 불황기에 금리를 올림으로써 통화를 방어할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실업을 측정하는 일조차 하지 않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실업과 경기변동에 훨씬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요. 그러므로 요즘 세상에서 금본위제도에 대해 확약한다면, 이는 실업이 얼마나 악화되든 통화정책을 이용하여 그에 대처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임을 맹세하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50쪽

 

이것이 바로 글로벌라이징 캐피털에서 배리 아이켄그린이 검토하고자 한 폴라니 테제의 내용입니다. 즉, 국민 경제의 정책 결정이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에 개방됨으로써 금본위제라는 국제 통화 체제가 몰락했으며, 보통선거권과 노동조합, 노동자 정당의 성장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재정치화했다는 것입니다. 경제라는 것이 인간 사회에서 독립된 힘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나 사회와 깊은 연관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금본위제는 불황에 대처하는 그 자신의 방식 때문에 역사 과정에서 민주주의에 의해 밀려났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세상에서 금본위제로 다시 돌아가자는 말은 전혀 타당하지 않습니다.

 

  

버냉키 전 의장의 더 많은 이야기들이 독자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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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벤 S. 버냉키 지음 | 김홍범, 나원준 옮김 | 미지북스 | 2014년 | 246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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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지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