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인류

도덕은 진화의 산물인가

프란스 드 발 지음 | 오준호 옮김 | 미지북스 | 2014년 | 388쪽 | 18,000원

 

 

 

신이 없는 세상을 말하기 전에

우리는 도덕적인 인간의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세계적 영장류학자의 눈으로 밝힌

인간 도덕성의 생물학적 기원!

 

 

 

인간의 도덕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이 본래 선하지 않으며, 자연은 약육강식의 야만적인 투쟁의 장이라고 믿어왔다. 거기서 도덕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의 본성을 억누르는 인위적인 문명의 고안물이었다. 종교인들은 도덕을 신에게서 온 명령이라고 보았고, 철학자들은 탁월한 이성의 규칙에서 도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주장은 상반되는 듯 보이지만 도덕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는 점에서 같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여기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었다. 도덕은 종교나 문명이 출현하기 훨씬 전부터 인류의 오랜 진화 과정 속에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도덕은 신의 명령이나 이성의 초월적 원리가 아니라, 인간과 동물이 함께 공유하는 감정에 뿌리박고 있으며,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왔다. 저자는 오랜 세월 영장류를 연구하면서 그들의 사회적 행동들을 근거로 밝혀낸 인간 도덕성의 생물학적 기원을 그의 새로운 저작 『착한 인류』에 오롯이 담아냈다.

 

▲ 일어선 보노보의 사진. 보노보는 서식지가 넓은 침팬지나 고릴라와 달리 콩고 열대우림의 한정된 지역에만 서식한다. 보노보는 유인원 중에 다리가 가장 길며 인간과 가장 유사하여 체형이 우아하고 아름답다. 보노보는 지구상 존재하는 어떤 동물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종이다. 1929년에 처음 발견된 이 종은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해 있고 5천~5만 마리 정도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침팬지는 일상적으로 비혈연 관계의 침팬지를 돕는다. 최초로 수화를 배운 침팬지 워쇼는 자신이 거의 알지 못하는 한 암컷이 멀리서 비명을 지르며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리자 두 개의 전기 철망을 넘어가 물에 빠진 침팬지를 끌어냈다."   

_ 프란스 드 발, 착한 인류 (74쪽)

 

"신 앞의 죄가 법적인 죄로 변하는 동안 우리는 뭔가를 잃어버렸다."  

_ 위르겐 하버마스 (2001년 강연에서)

 

 

 

동물들의 도덕성

동물들에게도 도덕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일까? 그동안 도덕은 다른 동물과 명징하게 구별되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알려져 왔다. 유전자에서부터 종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였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동물들도 남을 돕고, 공감 능력을 갖고 있으며, 공정함과 정의의 감각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동물들은 보상이 없어도 선행을 베푼다. 유인원들은 자기 몫의 일부를 잃을 수 있는데도 자발적으로 문을 열어 동료가 먹이에 접근하게 해준다. 관절염이 심한 늙은 암컷 침팬지를 무리의 다른 암컷들이 도와준다. 몸이 불편한 동료가 이동할 때 도와주고, 물을 떠다준다. 우울해 하는 동료를 안아주고 입 맞추고 위로한다. 포유류는 타자의 감정에 민감하고 그들의 필요에 반응한다.

동물들이 보상 없이 남을 도운 사례는 너무나 많다. 암컷 침팬지가 멀리서 비명을 지르며 물에 빠지는 소리를 듣자 평소 안면도 없던 수컷 침팬지가 두 개의 전기철망을 넘어가 물에 빠진 암컷을 구한 사례도 있다. 아프리카 아이보리코스트에서는 적어도 열 마리의 야생 침팬지 수컷이 어미 잃은 새끼를 입양하여 30년 이상을 데리고 살았다. 짧은꼬리원숭이 무리가 선천적으로 신체가 불편한 원숭이를 돌봐 주었고, 그 원숭이가 오래도록 살아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아 기른 경우도 있다. 시카고대학교 연구의 실험에서는 쥐가 초콜릿 칩으로 달려가기 전에 갇힌 동료를 먼저 구출하였다.

침팬지들은 표범이 덤비는 상황에서도 서로를 구한다. 범고래가 귀신고래의 새끼를 공격하자 혹등고래가 나타나 귀신고래의 어미를 도와준 일도 있다. 다람쥐는 소리로 다른 다람쥐들에게 위험을 경고한다. 코끼리는 쓰러진 동료를 일으켜 세우려고 애쓴다. 동물들은 왜 다른 동물을 돕는 행동을 할까? 이것은 자연의 법칙에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인간은 원래 악하고, 도덕은 위에서 아래로 왔다?

다윈이 진화론을 제시한 후 오랫동안 자연은 약육강식의 야만적인 투쟁이 벌어지는 검투장과 같은 곳으로 묘사되었다. 동물은 자기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며, 인간도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도덕성이란 우리의 이기적인 본성을 겨우 가려놓은 얇은 판뚜껑에 불과하다는 이른바 '판뚜껑 이론'(veneer theory)이 지난 30년간 인간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로 자리잡았다. 오늘날에도 종교인들은 신이 없다면 인간은 도덕적으로 살 수 없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철학자들 역시 초월적인 이성의 원리에서 나온 도덕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인간 행위에 부과된다는 점에서 동일한 관점을 공유한다.

 

신이 없다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살 수 없을까? 우리 조상들은 종교가 없던 시절에는 사회 규범도 없이 살았던 걸까? 드 발은 인간의 도덕성이 신이나 도덕 원리 같은 저 높은 곳에서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에 닻을 내리고 있다고 말한다. 생긴 지 겨우 2천 년 정도 된 현대 종교가 나타나기도 훨씬 전에, 도덕성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이미 출현했다. 우리는 합리주의적 반성 과정을 거쳐 차근차근 도덕성을 발전시킨 게 아니다. 도덕성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배경으로부터 강력한 압력을 받은 결과로 형성된 것이다.

 

도덕성의 뿌리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있다. 포유류들의 공감 능력과 타자를 배려하는 능력에서 우리는 도덕의 기원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영장류 사회에서 공동체 내의 협약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자연은 피투성이 싸움판이 아니며, 도덕성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적인 혁신이 아니다. 이제 도덕성은 우리의 존재 깊숙한 곳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주장이 대세가 되었고, '인간 본성은 원래 악하다'는 판뚜껑 이론은 심장마비가 걸린 것처럼 죽어 증발해버렸다.

 

우리 안의 보노보와 침팬지

지구상에서 단 한 곳, 아프리카 콩고의 정글에서만 사는 보노보는 1929년 처음 발견되어 1930년대에 새로운 종으로 판명되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여키스는 보노보를 침팬지로 잘못 알고는, 이 침팬지(보노보)가 어떤 유인원보다 섬세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채고 '천재 유인원'이라고 불렀다. 그는 세상에 보노보를 소개하면서도 그것이 보노보인지를 몰랐던 것이다. 보노보는 암컷이 무리를 이끈다. 수컷은 어미의 절대적인 영향권 하에 있고 침팬지 사회에서 보는 것과 같은 심각한 폭력 사태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인류학자들이나 생물학자들은 영장류 연구를 통해 폭력과 전쟁을 강조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보노보는 인류의 진화를 남성 지배와 타자 공포증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공감과 평화의 추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화적인 보노보 사회를 설명할 길은 이 사회가 어린 보노보들을 보호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암컷이 지배적인 성이므로 자기 새끼들을 잘 지킬 수 있다. 자유분방한 섹스는 모든 어른 수컷들을 모든 새끼들의 잠재적 아버지로 만든다. 어떤 수컷이 새끼를 공격하면 전 공동체가 들고 일어나 그 수컷을 공격한다. 이것은 보노보 사회의 축제판 같은 겉모습 저 안쪽에 존재하는 보호막의 존재를 보여준다. 그것은 곧 가장 약한 존재의 이익을 보호하는 도덕적 관습이며, 우두머리도 그것을 침해할 수는 없다.

▲ 어린 보노보의 응시하는 눈을 통해 우리는 이들의 감정 깊은 곳에 우리와의 강한 연속성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침팬지와 보노보가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것은 기껏해야 200만년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평화적인 보노보와 폭력적인 침팬지 어느 쪽이 우리의 진화적 조상에 더 가까울까? 답은 보노보와 침팬지 둘 다 우리와 가까운 정도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분리된 뒤 그들도 서로에게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 종은 두 유인원의 특성을 모자이크로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양극성 유인원이다. 기분이 좋을 때면 보노보처럼 친절하고, 기분을 잡치면 침팬지처럼 지배하려 들고 폭력적으로 변한다.

 

 

도덕은 진화의 산물이다

판뚜껑 이론은 이타주의를 생명체가 할 수 있는 가장 비논리적인 행위이고, 심지어 '실수'라고 보았다. 이타주의자가 되는 일은 즐거움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누구도 스스로 이타주의자가 되길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이타주의가 반드시 고통의 유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비용이 들 뿐이다. 지금은 '고통스런 이타주의 가설'과는 반대로, 우리는 타인과 함께 살며 그들을 돌보도록 신체적, 정신적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언제나 자연은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들과 쾌락을 연관 짓는다. 인간은 먹어야 하기에 음식 냄새를 맡으면 침을 흘리고 식사를 즐거운 행위로 느낀다. 인간은 재생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섹스는 집착인 동시에 쾌락이 된다. 새끼를 기를 수 있도록 자연은 어미와 자식 사이에 무엇보다 강력한 애착을 주었다. 마찬가지로 남을 돕는 일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우리의 본성에 어긋나지 않는다. 먼 친척이거나 혈연이 아닐 경우에는 도움의 정도가 줄어들지만 희생의 본질은 똑같다. 이미 2세기에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남을 돕는 일처럼 본성에 일치하는 행동은 그 자체가 보상이다"라고 자신의 통찰을 기록했다.

 

원숭이와 유인원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권력을 추구하고 섹스를 즐기고, 안전과 애정을 원하며, 영토를 점령하고 신뢰와 협동을 소중히 여긴다. 우리에게 컴퓨터와 비행기가 있긴 하지만 우리의 정신구조에는 사회적 영장류의 정신구조가 남아있다. 유인원들도 타자의 관점에 설줄 안다. 문제를 겪고 있는 동료의 입장에서 상황을 볼 줄 안다. 유리에 부딪혀 기절한 새를 보노보가 구해주기도 하고, 침팬지가 야생의 삶에 미숙한 인간을 잡아당겨 독사를 피하게 한다. 침팬지 암컷들은 수컷이 싸움을 끝내면 서로 등을 돌린 수컷들을 끌어당겨 손에서 무기를 빼앗고 화해시킨다. 죽어가는 늙은 침팬지를 위해 젊은 암컷이 대팻밥으로 푹신한 쿠션을 만들어주고 몸을 뉘어주기도 한다.

남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돕는 이러한 능력이 인간뿐만 아니라 유인원과 다른 포유동물에게도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러한 사실은 감정이 도덕의 발생적 근원이며 기초적 자원임을 알려준다. 독일의 심리학자 클라우스 셰레는 “감정은 특정한 시기에 유기체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고려하여 투입과 산출을 제어하는 지능적인 인터페이스”라고 정의한 바 있다.

 

도덕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은 무리 생활을 하는 영장류의 진화적 압력에서 나왔다. 그것은 공감 능력, 공정성에 대한 감각뿐만 아니라 개인보다 집단을 앞세우고 협력 사회를 추구하는 능력을 우리의 내면에 갖추어 온 과정이었다. 규율 잡힌 사회에는 대개 위계질서가 있기 마련이다. 누가 먼저 먹이를 먹고 누가 먼저 짝짓기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그 위계질서는 궁극적으로 폭력에 기반한다. 사회적 위계질서는 거대한 금지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인간 도덕성을 진화시킨 배경이다. 인간의 도덕 역시 일종의 금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긴 세월 동안 영장류, 유인원, 그리고 우리 인간은 충동을 통제하는 능력을 내면화해왔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유인원 사회에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원칙 같은 호의와 냉대의 사회적 경제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그런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기대와 의무를 발전시키고, 누군가 신뢰를 깨면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침팬지 사회에서 우두머리 침팬지는 무리에서 경찰처럼 행동한다. 이러한 조정 역할은 야생 침팬지들 사이에서 종종 보고된다. 그들은 공격을 가한 당사자가 심지어 자기와 가장 친한 친구라도 도리어 약자를 방어해준다. 침팬지의 불편부당성은 자신의 사회적 편향성을 초월하여 진심으로 무리 전체에 최선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컷 침팬지가 암컷을 강간하려고 하면 다수의 암컷이 달려와 공격자를 쫓아버린다. 수컷끼리 싸움에서 암컷은 친구나 가족이 아닌데도 화해를 주선하여 무리의 분위기를 개선하고 평화를 이루어낸다. 침팬지들은 수컷끼리 큰 싸움이 나면 구경꾼들이 자고 있던 우두머리를 깨워서 중재하기를 기대한다. 이미 유인원 사회에서 도덕은 개체들 간의 일대일 관계의 문제에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협약으로 도약했다.

▲ 공동체의 싸움을 중재하는 수컷 침팬지. 갈등이 끝날 때까지 양측의 가운데에서 팔을 벌리고 서서 갈등을 조정한다.   

▲ 어린 침팬지를 공격하는 수컷을 말리는 우두머리 암컷 침팬지. 어른 수컷을 달랜 후 어린 침팬지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이 어린 침팬지는 우두머리 암컷의 새끼가 아니다.    

 

 

도덕성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출현했다. 도덕법칙은 하늘에서부터 또는 탁월한 이성적 원칙으로부터 부여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조직하는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그리하여 도덕은 고대부터 몸에 뿌리 깊게 밴 가치들로부터 솟아났다. 그것의 근본에는 집단생활에서의 생존이라는 가치가 있다. 어딘가에 속하고, 함께 생활하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우리가 의지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을 촉구한다. 다른 사회적 영장류도 이 가치를 우리와 공유하며, 우리처럼 감정과 행동 사이에 여과장치를 갖고 있다. 그 덕분에 그들은 상호 동의할 수 있는 신사협정에 도달한다. 공정함과 정의의 감각은 오래된 능력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가운데 공동체의 화합을 유지해야 할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종교의 자리는 어디인가?

오늘날 우리는 사회에서 종교가 어디쯤 있어야 하는가를 놓고 논쟁한다. 최근 리처드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같은 전투적인 무신론자들은 종교야말로 악의 근원이며 거짓과 미몽이라고 외친다. 그들은 인간이 과학적 지식을 확장하면서 수천 년 동안 부당하게 권력과 권위를 누려왔던 종교를 점점 사회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무신론자들은 말 그대로 종교와 싸운다. 우리는 과연 신이 없는 세상을 그려낼 수 있는가? 그 세상은 좋은 세상인가?

드 발은 종교를 공격하며 종교인들을 모욕하는 신(新)무신론자들의 시도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과학과 종교는 인간 삶에서 다루는 영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은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오게 되었는지를 알려줄 수 있지만, 인생의 의미나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말해줄 수 없다. 인간이 종교를 만들었으며, 도덕의 기원이 종교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과학이 종교를 대체할 수는 없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하듯 "신 앞의 죄가 법적인 죄로 변하는 동안 우리는 뭔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종교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드 발은 장구한 진화 과정에서 도덕의 발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한편으로 종교를 인간 사회의 지평 속으로 집어넣어 그 역할이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도덕은 종교보다 훨씬 일찍 출현했지만, 종교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면서 그것을 강화해주었다. 종교는 도덕의 기원이 아니지만, 나중에 들어온 후원자인 것이다. 우리는 거꾸로 종교의 기원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선사 시대에는 종교가 필요하지 않았다. 영장류 무리처럼 작은 집단에서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규칙을 잘 따르고 남들과 원만하게 지내야 한다. 인격에 대한 평판을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큰 사회를 이루자 얼굴 대 얼굴 메커니즘이 허물어지고 더 큰 집단을 관리하게 위해 신에 대한 요구가 나온 것이다. 캐나다 심리학자 에이라 노렌자얀이 말하듯 "인간을 도덕성으로 인도한 존재는 신이 아니다. 신은 우리가 스스로 옳다고 느끼는 길을 갈 때 우리를 돕도록 그 자리에 놓인 것이다."

 

종교가 진실이냐 거짓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종교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종교를 없애버리면 무엇으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을지 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삶에서 종교를 제거하려 들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고민했다. 그는 새로운 교리 체계가 종교의 모든 심리학적 특징들을 계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사적으로 종교를 추방하려 했던 체제와 운동은 종교를 정교하게 흉내냈다. 교조주의, 경직성, 위험한 열정 등 종교와 똑같은 모습의 독단론들이 진리를 자처했다.  

 

▲ 리처드 도킨스(좌)와 같은 전투적 무신론자들은 종교를 사회에서 밀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프로이트(우)는 종교가 사라졌을 때 무엇이 그 자리를 대신할 지를 고민했다.   

 

드 발은 과학자로서 무신론자로서 종교의 역할을 줄이자는 생각에 찬성한다. 그러나 그는 신무신론자들의 공격적인 행태에 대해, 종교에서 가치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을 모욕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우리가 종교를 천천히 부드럽게 없앨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종교의 유산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는 감사해야 하고,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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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장류학자이자 대중 저술가로 폭넓은 명성을 얻고 있는 프란스 드 발은 1948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교에서 동물 행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영장류학계의 최고권위자 중 한 명이며, 2007년에는 『타임』이 선정한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고, 2011년에는 『디스커버』의 “47인의 과학계의 위대한 지성”으로 선정되었다. 현재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학교 심리학과 C.H.캔들러 석좌교수이며, 미국에서 가장 유구한 역사와 큰 규모를 자랑하는 여키스 국립영장류연구센터 산하 리빙링크스센터의 책임자이다.

드발의 첫 번째 저작 『침팬지 폴리틱스』(1982년)는 당시 학계에서 흔히 ‘영혼 없는’ 실험 객체로 취급받던 침팬지와 그 사회에도 인간과 같은 마키아벨리적 권력 투쟁이 있음을 보여주었고, 그에게 큰 명성을 안겨주었다. 그 뒤로도 『영장류 평화 만들기』, 『보노보』, 『내 안의 유인원』등 연이은 저작을 통해 영장류의 공격적인 성향뿐만 아니라 도덕적이고 평화적인 모습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영장류 사이에 마치 평행선처럼 대비가 가능한 이야기들을 찾아내었다. 이 책 『착한 인류』에서 그는 마침내 영장류와 인류의 평행선이 처음 분리되어 나온 곳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옮긴이 오준호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역사, 민주주의 등 여러 주제에 대해 책을 쓰고 번역했다. 『노동자의 변호사들』, 『소크라테스처럼 읽어라』, 『반란의 세계사』를 썼으며, 『보이지 않는 주인』,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를 우리말로 옮겼다.

 

 

추천사

 

드 발은 우리의 이타적인 충동들이 영장류의 오랜 계통 속에서 진화된 결과일 수 있다고 말한다.

_『뉴욕 타임스』

 

독보적이고 훌륭한 역작이다.

_『네이처』

 

이 책은 인류의 선함이 종교적인 가르침을 통해 부여된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종에 내재한 생물학적인 특질임을 말해준다.

_ 데즈먼드 모리스,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

 

드 발은 다른 종과 우리 종의 공통성을 드러냄으로써 우리에게 더 많은 공감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영장류의 눈을 보면서 거기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보지 못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_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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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지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