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하루 앞두고 있는 오늘은 의무 투표 제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투표율만으로도 어떤 후보가 당선될지가 예견되어 "투표 시간 연장"이 뜨거운 화두가 되었습니다. 이제 성숙한 정치 문화의 발전과 함께 우리 사회에도 의무 투표 제도의 도입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의무 투표 제도는 의무적으로 유권자에게 투표에 참여하도록 하는 제도로, 투표 불참자에게 일정한 벌칙이나 불이익을 부과합니다. 현재 32개 나라가 의무 투표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OECD 국가 중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스, 스위스, 터키,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의무 투표 제도가 투표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지, 그리고 투표하지 않을 권리가 기본권에 해당하는지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의 해당 내용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투표하지 않을 자유는 기본권적 자유인가?

 

 

의무 투표 제도는 의무적으로 유권자에게 투표에 참여하도록 하는 제도로, 투표 불참자에게 일정한 벌칙이나 불이익을 부과한다. 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유지하려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충분한 투표율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투표의 특성상, 타인에게 위임해서는 안 된다. 매표나 대리투표는 민주주의 근본을 뒤엎는다. 따라서 자유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충분한 숫자의 시민들이 어떤 활동을 직접 수행해야 한다면, 그 활동은 모든 시민들이 균등하게 부담해야 한다. 투표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의무 투표 제도를 실시할 경우 투표하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므로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상태를 기본권적 자유로 혼동한 것이다. 어떤 상태가 기본권으로 보장되어야 할 영역인가 아닌가를 알아보는 방법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그런 상태를 모든 사람들이 온전히 누린다 하더라도 자유의 질서를 지탱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모든 사람들이 온전히 행사한다 하더라도 사회는 발전한다. 거주지 이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모든 사람들이 온전히 행사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투표하지 않을 자유를 모든 사람들이 온전히 행사할 경우 민주주의 체제는 유지될 수 없다. 투표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은, 오로지 투표 행위를 부담하는 충분히 많은 시민들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자유의 질서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기본권적 자유에는 이런 전제가 없다. 따라서 투표하지 않을 자유는 보편화될 수 없는 무임승차이다.

 

가상의 사례를 들어 문제를 비춰보면 더 명확해진다. 가상의 외계 행성이 있다고 하자. 이 행성은 특수한 에너지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에너지가 조금씩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행성이 현 상태를 유지하려면 매달 특정일에 행성 주민 중 충분한 수의 사람들이 에너지를 대표자에게 보내고 그 에너지를 행성에 투입해야 한다. 이전에는 에너지를 보낼지 말지를 개인의 선의에 맡겼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에너지를 보내는 사람이 줄어들고 그 날만 되면 다들 소풍을 가버린다. 물론 보다 많은 에너지를 보태려는 선의로 부지런히 수련하는 사람도 있지만, 예상할 수 있듯 다수는 아니다. 일단 에너지를 보내고 나면 급격히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이 경우 에너지 보내기를 의무화한다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구성원들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부담을 공적으로 제도화하여 나눈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너지를 보내는 행위를 두고 이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의 발휘이고 특권적인 삶의 영역이며, 행성의 정치의 목적은 에너지를 보내려는 미덕을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주장은 말장난이자 목적과 수단을 뒤바꿔 놓은 것일 뿐이다.

 

오히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자신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특정 수준 이상의 정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지금보다 훨씬 심의적인 장(場)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이다.


 

 



 

위 내용은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이한 지음, 미지북스, 2012) 231~233쪽을 발췌한 것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저자
이한 지음
출판사
미지북스 | 2012-10-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이성적인 시민이 되기 위한 ‘진짜 정의론’을 만나다!『정의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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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ay 2012.12.19 04:26

    궁금해하던 주제였는데 딱! 감사합니다
    국정원 건은 어떻게 봐야할지도 궁금해지네요 이것도 기본권과 관련이 되지않을까요?

    • Favicon of https://mizibooks.tistory.com BlogIcon 미지북스 2012.12.20 11:09 신고

      감사합니다. 차후에 기회가 되면 또 논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저자 강연①

- "네 몸은 네 것이 아니다!" 신장 매매


아래 내용은 지난 2012년 11월 21일 저녁에 진행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의 저자 이 한 선생님 강연을 녹취, 정리한 것입니다. 세 편으로 나누고 질의응답까지 더해 미지북스 블로그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신장 매매'에 대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1. "네 몸은 네 것이 아니다!" 신장 매매 문제

2. "노예의 본성은  따라서 노동자의 본성은 … " 비정규직 문제

3. 2009년 교원 시국선언, 샌델식 논리의 결론은?

4. 질의 응답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저자 강연 정리


① "네 몸은 네 것이 아니다!" 신장 매매 문제



오늘 강연은 책 내용을 반복하기보다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 보겠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의 ‘실익’

 

법조계에서는 사투리를 가끔 사용합니다. 그 사투리 중에서 제가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실익’인데요. 실제로 이익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무슨 이익이냐 하면, 논의를 통해서 생기는 이익입니다. A가 a라는 학설을 주장하고 B가 b라는 학설을 주장한다고 합시다. 그리고 법 해석이 있습니다. 둘이서 막 싸웁니다. A처럼 해석하면 a', B처럼 하면 b'라는 해석이 나오고 결론이 다르게 되죠. 이게 실익인 겁니다. 만약 두 학자가 서로 싸우는데 법 적용과 관련해 동일한 결론이 도출된다면, 실익이 없는 문제입니다. 만약 샌델이 실익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즉 샌델도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의 논증이 자유주의와 아무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면, 애초에 저의 비판도 성립하지 않겠죠. 실제로는 실익이 있습니다. 자유주의자와 샌델은 다릅니다. 그러므로 샌델이 만들어낸 실익이 타당한 실익이냐 그렇지 않느냐, 라는 문제가 생깁니다. 유비를 들어보죠. 어떤 사람이 “1+1=2라는 산술 법칙은 1+1=4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문제에서는 실익이 있습니다. 계산 결과의 차이가 생겼으니까요. 차이의 원인이 되는 그 사람의 산술법이 옳은지를 따져야 하겠죠. 저의 책은 실익이 있다는 입장에서 제시된 것입니다.


 

샌델이 신장 매매를 반대하는 근거


첫 번째로 우리가 다루어 볼 문제는, 신장(콩팥) 매매의 문제입니다. 신장 기증을 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고, 다른 한쪽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있다고 해봅시다. 가만히 놓아두면 교환이 일어나겠죠.

 

샌델은 신장 매매를 반대합니다. 이유는? “돈으로 팔 수 없는 것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부패를 의미하며, 특히 돈 있는 사람이 돈 없는 사람을 착취하는 것이므로, 시민들 간의 관계를 부패시키고, 또한 신장을 파는 사람 쪽에서는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본질에서 반하기 때문에 공화국의 미덕을 해치는 것이며,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자신의 신장을 자기 의사에 따라 파는 게 뭐가 문제냐는 자유지상주의의 반론에 대해 샌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몸은 네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소유하지 않는다, 라고 정리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샌델의 해결 방법입니다.

 

사실 ‘돈으로 팔 수 없다.’는 말은 결론입니다. 돈으로 팔 수 없는 것을 팔았기 때문에 부패, 비하, 미덕의 타락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론의 근거를 결론으로 제시하면서 거기에 몇 가지 수사를 덧붙인 것입니다. 어쨌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논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도덕심리학에서는 이를 yuk factor 라고 합니다.(yuk은 우리가 구토감을 느낄 때 내는 소리의 영어식 의성어입니다.) 이런 반응 자체는 결론의 정당성을 입증해 주지 않습니다. 미국 남부에서는 동성애에 대해 실제로 이런 반응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동성애자들을 구타하고,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낙태 수술한 의사를 살해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들이 가진 반감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샌델은 그 반감에 미덕의 이름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미덕의 이름은 침대에 누워 100개라도 덧붙일 수 있습니다.

 

샌델은 자유주의자라면 공정한 계약의 여건을 충족하지 못하므로 반대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부자인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의 절박함을 이용해 신장을 가져간 것이다, 따라서 이런 계약은 공정하지 않으므로 무효이다.’라고 말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의 설명에는 문헌에 기초한 근거가 없습니다. 단순화해서 설명할 뿐입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체 장기 이식 대기자의 15%만 장기 이식을 받고 있다. [장기이식현황(2012. 11) -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주어진 현상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신장이 모자라 죽어가는 사람은 무척 많습니다. 신장 기증을 받는 사람은 대략 10%에 불과합니다.[각주:1] 이들이 꼭 돈이 많은 사람들은 아닙니다. 살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내놓으려 하는 사람입니다. ‘절박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탄광의 광부가 될 수밖에 없고, 어떤 사람은 광부를 고용하는 탄광의 주인이고, 또 어떤 사람은 탄광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변호사라고 해봅시다. 광부가 된 이들은 특별히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없어서,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직업 중에 가장 임금이 높은 일이어서 광부가 되었습니다. 불공정합니다. 그래서 이 불공정에 대한 해결책으로 광부의 일을 금지시키느냐? 금지시키지 않습니다. 다만 60, 70년대와 달리 안전 설비, 작업 규율 등을 도입하고 광산 노동로 인한 질환에 대해서는 산재보상을 적용해주는 등의 방식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그럼 신장 매매와 관련해서는 왜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지 않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답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신장 매매는 금지해야 한다, 그것은 무제한의 자유를 쓸데없이 인정함으로써 시장이 침투하지 않아야 하는 곳에 침투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주어진 현상에 만족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극소수만이 필요한 신장을 얻고 나머지 환자들은 죽어가고 있는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고, 자기 자신의 신장은 기증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의 도덕적인 yuk factor를 이끌어내는 것에서부터 결론을 내리고, 자신을 도덕적으로 불편하게 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최근에 이런 뉴스를 봤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혀 모르는 이에게 신장을 기증했습니다. 그 대가로 한 달간의 휴업 급여만 받았습니다. 신장을 기증하려면 각종 검사를 받아야 하고 전신마취도 해야 하고, 기증 후에는 평생 신장을 하나만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기증을 하면 입원은 2-3주면 되지만, 한동안 본래의 몸 상태로 일하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한 달간의 휴업 급여만 주고 끝입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단지 이타심에만 호소해 신장 기증을 요구합니다. 이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보상 때문에 신장 기증이 적어 생기는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은데 공급이 적을 수밖에 없는 현상입니다. 공급이 적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일을 했는데 그에 마땅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대안의 설계는 미덕의 분석으로 가능하지 않다

 

제가 생각했을 때 어떤 사람이 부담을 지고 그만큼 기여를 했으면 그에 응당하는 보상을 주는 것이 맞습니다. 군인이 열심히 싸웠으면 훈장을 주고, 누군가 공동체의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 그에 대한 보상을 줍니다. (신장 기증과 같은) 큰 부담을 지는데 한 달의 휴업 급여뿐이라니요? 원래 자기가 벌 수 있었던 돈만 주고 마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 부담에 상응하는 정도로 보상을 늘려야 합니다. 그럼 보상을 어떻게 늘릴 것이냐? 이런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보상의 가장 큰 부분은 첫 번째로 장기 기증이 필요한 상황, 신체의 일부의 이식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최우선 순위로, 공짜로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특전을 줘야 합니다. 두 번째로 자신의 신체적 불편과 장래에 염려되는 신체적 능력의 저하를 보상할 수 있는 돈을 줘야 합니다. 특전을 받는 대상의 우선순위로는 살아 있을 때 장기를 기증한 자가 1순위, 2순위는 사망 시 장기 기증을 서약한 사람, 3위는 헌혈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체계적으로 보상 체계를 설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3위까지도 해당 사항이 없을 때 4순위로, 돈을 많이 내는 사람에게 우선순위를 줘야 합니다. 그가 낸 돈은, 보상 기금에 들어가 장기 기증 시마다 기증자에게 지급합니다. 따라서 부자에게 장기를 기증해 준다고 해서 더 많은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가난한 사람에게 기증한다고 해서 더 적게 받는 것도 아닙니다. 매번 계약 체결마다 장기의 값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 공동체가 신체를 희생한 기여에 대해서 공정한 보상을 주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 체계가 시장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에는, 단지 ‘미덕의 타락이다, 부패다, 네 몸은 네 것이 아니다.’라며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보다 정의로운 대안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대안의 기준점은 결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를 제한할 만한 (단순한 수사가 아닌) 정당한 근거가 무엇인가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신장을 자유롭게 계약한다면, 결국 장기가 언제든지 적출될 수 있는 재산으로 취급되어서 담보로 잡힐 것입니다. 장기를 기증한 이들이 이득을 보지 못하고 (본래는 파산 혹은 회생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채권자들에게만 좋은 일을 시키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돈으로 주되 이 돈은 연금이나 혹은 교육비 형태 등 채권자가 가져갈 수 없는 형태, 즉 기증자의 재산 가치에 산정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대안적인 제도를 설계하는 것은 미덕의 분석으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저자
이한 지음
출판사
미지북스 | 2012-10-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이성적인 시민이 되기 위한 ‘진짜 정의론’을 만나다!『정의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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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년 7월 기준 신장 이식 대기자 숫자는 10964명. 그리고 신장 이식 수술은 한해 전인 2011년 기준으로 1639 건. 출처: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 2011년 장기이식 통계연보. [본문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의 저자 이 한 선생님과 독자와의 만남 자리가 열립니다! 저자 강연 후 질의응답, 사인회 등의 시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출간 기념 저자 이 한 과 독자와의 만남


참여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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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중 한 곳에, 참석하고 싶은 이유와 참석 인원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동반 1인 가능) 

(위 이미지의 초대 인원 20명은 각 서점별 모집 인원입니다. 해당 서점 인원이 찼다면 다른 서점에서 신청해 주시면 되어요.)


일시  11월 21일 수요일 저녁 7시 30분

장소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4층 소회의실 (그림 속 오시는 길 참고)

신청기간  11월 6일(화)~11월 15일(목)

발표  2012년 11월 16일(금)

문의사항  미지북스 070-7533-1848

 

저자 이 한

변호사 이한의 글은 꼼꼼하고 치밀하다. 모호한 딜레마로 독자를 현혹하지 않는다. 이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는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마이클 샌델의 정치철학을 깊이 해부한다.

그는 샌델의 저서 전부와 여러 학자들의 논의를 직접 검토한 다음, 샌델의 철학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다. 그 결과 철학적 연구 방법뿐만 아니라 흥미진진한 사례 뒤에 숨은 주장이 매우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존 스튜어트 밀, 로버트 노직, 존 롤즈 등 샌델이 왜곡한 정치철학의 거장을 본격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샌델의 철학이 가진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이를 통해 현대 정치철학의 모습을 복원하고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여, 개인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정의론을 제시하려 한다.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시민교육센터(www.civiledu.org)의 공동 대표로 있으면서 대안 민주주의와 정치철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 및 집필을 하고 있다.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란 어떤 사회인지, 어떻게 하면 그런 사회를 이룰 수 있는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는 중이다.

지은 책으로 『이것이 공부다』(2012년), 『너의 의무를 묻는다』(2010년), 『철학이 있는 콜버그의 호프집』(2005년), 『탈학교의 상상력』(2000년), 『학교를 넘어서』(1998년)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 『사치열병』(2011년), 『포스트민주주의』(2008년), 『이반 일리히의 유언』(2010년), 『계급론』(2005년), 『성장을 멈춰라』(2004년)가 있다.



이번에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샌델이 해결했다고 자신있게 선보인 문제, "구제 금융을 받은 금융 회사의 보너스 파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과연 이번에도 샌델의 해답은 아무런 문제도 없을까요? 




“구제 금융을 받은 금융 회사의 보너스 파티가 잘못인 이유는 뭘까?”
“실패에 포상했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성공에 포상하길 원해!" 

샌델은 포상의 본질은 성공에 대한 것인데, 구제 금융을 받은 금융 회사는 “실패를 포상했기” 때문에 (본질에서 벗어났으므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샌델 식으로 말하자면, 파산 위기에 처한 회사에 대한 구제 금융 자체도 악덕이 될 수 있습니다. “실패한” 회사에 돈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파산 도미노로 경제가 붕괴할 위험이 생기고, 궁극적으로 모든 납세자들의 삶이 훨씬 힘들어지더라도 구제 금융을 하지 않아야 할까요? 반대로, 금융 투기를 일삼아 성공 가도를 달리는 금융 회사의 보너스 파티는 문제가 없을까요? “실패를 포상하면 안된다”는 미덕이 보편적인 원칙이 될 수 있다면, 실업자에게 수당을 지원하는 것 역시 정당화될 수 없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실업자는 노동시장에서 “실패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샌델의 해법은 건실한 정치철학적 논증이라기보다는 대중의 분노에 ‘미덕’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합니다. 
샌델이 도덕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어떤 사안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안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파악한다. 
2. 본질을 만족시키면 미덕, 본질을 벗어나면 악덕이고 타락이다. 

즉, 샌델의 이야기는 본질이 무엇인지에 따라 결론이 이미 정해져있는 노골적인 순환 논증의 형태를 띱니다. 그 근거로는 미리 정해진 결론이 미덕이라는 이름으로 제시됩니다. 그렇다면 샌델은 본질을 어떻게 파악할까요? 샌델의 철학에서 본질이란 대개 (샌델 자신의) 머릿속에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특성들일 뿐입니다. 그것이 너무 독단적이라고 생각되면, 샌델은 공동체 구성원의 다수가 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말합니다(“우리는 이야기를 써나가는 존재이다”). 만약 두 번째 방식이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뿐이라는 비판을 받으면 다시 첫 번째 방식, 미덕과 본질을 분석하는 아리스토텔레스 방식으로 연구한다고 대답합니다. 
이것이 샌델이 철학하는 방법입니다. 샌델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봉합해 버립니다. 봉합이란 문제의 심층적인 전제를 정합성 있게 해명하지 않고, 떠오르는 답을 그럴듯하게 덧붙이는 태도를 뜻합니다. 봉합은 문제를 결론과 수사로 꿰매어서 핵심을 보이지 않게 만들고, 다양한 문제 사이에서 일관성 있게 사고할 수 있는 원칙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샌델은 중요한 정치철학적 문제를 두고 직관과 감성을 근거로 들어 결론을 내리면서 미덕, 타락, 비하 같은 문학적 수사를 붙여 정당화합니다. 
시민들이 정치철학에 기대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문제 해결의 지침을 제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치철학은 숨겨진 심층적인 전제를 밝히고, 시민들이 문제를 둘러싼 원칙과 근거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마이클 샌델의 철학은 오히려 문제를 흐릿하게 만들고 이성적 탐구를 방해합니다. 


* 위 글은 미지북스의 신간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이 한 지음) 책 소개에서 발췌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저자
이한 지음
출판사
미지북스 | 2012-10-22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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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책소개
이성적인 시민이 되기 위한 ‘진짜 정의론’을 만나다!『정의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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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에도 소개된 적 있는 “철로를 이탈한 전차”는 정치철학의 대표적인 딜레마입니다. 마이클 샌델은 이 사례를 통해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정치철학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과연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이 딜레마를 해결했을까요?




샌델은 “전차의 딜레마”를 해결했을까?


자, 당신은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전차의 기관사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차의 브레이크가 고장나 버렸습니다! 이대로는 철로 위에서 일하고 있는 인부 다섯 명을 덮치고 맙니다. 

첫 번째 상황. 전차의 경로를 비상 철로로 바꾸면 철로 위에 있는 행인 한 명이 죽습니다. 선로를 변경해야 할까요? 
두 번째 상황. 당신은 다리 위에서 전차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당신 옆에는 덩치 큰 행인이 서 있습니다. 행인을 밀어서 기차에 부딪히게 만들면 인부 다섯 명을 구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행인을 밀어 인부 다섯 명을 구해야 할까요?

사람들에게 두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졌을 때,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번째 상황에서는 선로를 변경하겠다고 답하고, 두 번째 상황에서는 행인을 밀어 넘어뜨리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샌델은 여기서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질문을 던지기만 할 뿐 직접적인 해답은 제시하지 않고 넘어갑니다. 

이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이 한 지음)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바로 행인이 그 자체로 목적인 존재,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행인을 밀어 넘어뜨리기를 망설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행인을 밀거나 밀지 않을 권리가 없습니다. 자신의 몸을 던져 전차를 멈추고 다섯 명의 인부를 구할 것인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행인 자신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전차의 딜레마는 단순히 흥미로운 도덕적 딜레마를 제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가 각자의 주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을 웅변하는 사례입니다. 즉 스스로가 목적인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개인의 자기 결정권, 이것이 바로 마이클 샌델의 정치철학이 외면하는 것이며 현대 자유주의가 옹호하는 핵심 가치입니다. 

이것에 반해, 전차의 딜레마에 대한 샌델의 숨겨진 해답은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타인을 위한 희생은 공동체가 규정한 훌륭한 미덕이며, 개인은 공동체적 자아의 일부분이므로 그 행인은 자발적으로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행인은 악덕을 저지른 것이고, 공동체에 의해 비난받아야 한다."

샌델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본질 분석에서 최고로 치는 미덕은 단연 “공화국 시민들의 미덕을 고양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공화국 시민으로서 가져야 하는 미덕을 타락시키면 잘못된 것, 고양하면 옳은 것입니다. 특정한 근거가 다른 근거들과 충돌할 때는 별다른 논증 과정 없이 거의 언제나 시민적 덕성을 강화하는 일이 우선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정치철학자 피터 스타인버거는 “샌델은 자신의 견해를 논증하기보다는 주장하고 있다”고 갈파하기도 했습니다. 


위 글은 미지북스의 신간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이 한 지음) 책 소개에서 발췌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이 한 지음, 미지북스, 2012



130만 한국 독자들이 열광한 『정의란 무엇인가』

왜 미국 현지에서는 10만 부도 팔리지 않았을까?


정의를 찾지 못한 당신, 문제는 마이클 샌델에게 있었다! 



"쓰나미처럼 우리 지성계를 강타했던 샌델 신드롬을 잠재우며 

정한 정의가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하는 자유주의적인 비판서."

- 황경식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정의란 무엇인가』의 열풍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의를 갈구하고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샌델이 정의론의 정답은 아니다."

- 조 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흥미진진한 딜레마 뒤에 숨은 위험한 주장과 허술한 철학

거품에 가려진 마이클 샌델의 철학을 본격 해부한다.

직관과 감성에 항복하는 일을 멈추고

냉철한 이성을 갖춘 시민이 되기 위한 진짜 정의론!


미지북스의 신간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는 현대 정치철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마이클 샌델의 정치철학을 비판하는 본격 정치교양서입니다. 이 책은 마이클 샌델의 철학적 방법론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예시들 뒤에 숨겨진 주장이 매우 위험하다는 점을 꼼꼼히 논증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정의론의 대가로 알려진 마이클 샌델이 실제로는 정의의 ‘한계’를 주장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에게서 뚜렷한 정의론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탄탄한 논리에 기반한 이성적인 문장은 정치철학의 진면목을 독자들에게 선사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는 일단 마이클 샌델의 베스트셀러『정의란 무엇인가』의 구성을 따라갑니다. 그 여정에서 샌델이 엉터리로 비판하고 왜곡한 자유주의 정치철학을 복원하고, 그 핵심 가치인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대 정치철학에서 자유주의와 경쟁하는 주요 사상 조류인 공리주의와 자유지상주의에 대한 샌델의 곡해를 걷어내고, 정치철학의 거장들이 제기한 아이디어들의 진정한 가치를 재음미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합니다. 저자는 샌델의 (공동체적 자아를 상정한) 목적론적 철학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시민의 정치적 지위를 허물어뜨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진지하게 경고합니다. 

더불어 독자 여러분들은 이 책을 통해 자유와 평등의 딜레마, 재산 소유권의 한계, 징병제와 모병제의 문제, 과거사에 대한 집단 책임의 문제, 탄소배출권 제도, 의무 투표 제도, 재능 공유제 등 다양하고 풍부한 정치철학의 문제들을 풀 어가는 지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정의란 무엇인가>의 대표적인 딜레마, "전차의 딜레마"를 살펴볼까요?

샌델은 “전차의 딜레마”를 해결했을까?

<정의란 무엇인가>에도 소개된 적 있는 “철로를 이탈한 전차의 사례”는 정치철학의 대표적인 딜레마입니다. 샌델은 이 사례를 통해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정치철학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과연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딜레마를 해결했을까요?

자, 전차의 브레이크가 고장 났습니다. 이대로는 철로 위에서 일하고 있는 인부 다섯 명을 덮치고 맙니다. 첫 번째 상황. 전차의 경로를 비상 철로로 바꾸면 철로 위에 있는 행인 한 명이 죽습니다. 선로를 변경해야 할까요? 두 번째 상황. 당신은 다리 위에서 전차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당신 옆에는 덩치 큰 행인이 서 있습니다. 행인을 밀어서 기차에 부딪히게 만들면 인부 다섯 명을 구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행인을 밀어 인부 다섯 명을 구해야 할까요?

사람들에게 두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졌을 때,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번째 상황에서는 선로를 변경하겠다고 답하고, 두 번째 상황에서는 행인을 밀어 넘어뜨리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샌델은 여기서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질문을 던지기만 할 뿐 직접적인 해답은 제시하지 않고 넘어갑니다. 

이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바로 행인이 그 자체로 목적인 존재,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행인을 밀어 넘어뜨리기를 망설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행인을 밀거나 밀지 않을 권리가 없습니다. 자신의 몸을 던져 전차를 멈추고 다섯 명의 인부를 구할 것인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행인 자신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전차의 딜레마는 단순히 흥미로운 도덕적 딜레마를 제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가 각자의 주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을 웅변하는 사례입니다. 즉 스스로가 목적인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개인의 자기 결정권, 이것이 바로 마이클 샌델의 정치철학이 외면하는 것이며 현대 자유주의가 옹호하는 핵심 가치입니다. 

이것에 반해, 전차의 딜레마에 대한 샌델의 숨겨진 해답은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타인을 위한 희생은 공동체가 규정한 훌륭한 미덕이며, 개인은 공동체적 자아의 일부분이므로 그 행인은 자발적으로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행인은 악덕을 저지른 것이고, 공동체에 의해 비난받아야 한다."

샌델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본질 분석에서 최고로 치는 미덕은 단연 “공화국 시민들의 미덕을 고양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공화국 시민으로서 가져야 하는 미덕을 타락시키면 잘못된 것, 고양하면 옳은 것입니다. 특정한 근거가 다른 근거들과 충돌할 때는 별다른 논증 과정 없이 거의 언제나 시민적 덕성을 강화하는 일이 우선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정치철학자 피터 스타인버거는 “샌델은 자신의 견해를 논증하기보다는 주장하고 있다”고 갈파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는 샌델에게 만족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진짜 정의론을 찾는 나침반이 될 것이며, 시민의 지위를 공격하려는 모든 공격에 맞서기 위한 방패일 뿐만 아니라,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책입니다.



지은이 이 한 


변호사 이한의 글은 꼼꼼하고 치밀하다. 모호한 딜레마로 독자를 현혹하지 않는다. 이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는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마이클 샌델의 정치철학을 깊이 해부한다. 그는 샌델의 저서 전부와 여러 학자들의 논의를 직접 검토한 다음, 샌델의 철학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다. 그 결과 철학적 연구 방법뿐만 아니라 흥미진진한 사례 뒤에 숨은 주장이 매우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존 스튜어트 밀, 로버트 노직, 존 롤즈 등 샌델이 왜곡한 정치철학의 거장을 본격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샌델의 철학이 가진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이를 통해 현대 정치철학의 모습을 복원하고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여, 개인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정의론을 제시하려 한다.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시민교육센터의 공동 대표로 있으면서 대안 민주주의와 정치철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 및 집필을 하고 있다.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란 어떤 사회인지, 어떻게 하면 그런 사회를 이룰 수 있는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는 중이다. 지은 책으로 『이것이 공부다』(2012년), 『너의 의무를 묻는다』(2010년), 『철학이 있는 콜버그의 호프집』(2005년), 『탈학교의 상상력』(2000년), 『학교를 넘어서』(1998년)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 『사치열병』(2011년), 『포스트민주주의』(2008년), 『이반 일리히의 유언』(2010년), 『계급론』(2005년), 『성장을 멈춰라』(2004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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