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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知 - 책 읽기

[서평] 최정운의 『한국인의 발견』을 읽고 - 이택선 교수

[서평] 최정운의 『한국인의 발견』을 읽고

 

한국인들과 그들의 민족국가 대한민국을

거울 앞에 세우다

 

이택선

(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초빙교수, 동아시아 국제관계학 전공)

 

『한국인의 발견』은 『지식국가론』, 『오월의 사회과학』, 『한국인의 탄생』에 이은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최정운 교수의 네 번째 단독저서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저자는 1980년 5월 광주를 다룬 『오월의 사회과학』(1999년)에서 ‘절대공동체’ 개념을 제시하며, 그간에 보수와 진보의 갈등 속에서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학문의 언어로 재기술하였다. 이후 저자의 담론은 광주에 관한 거의 모든 평론에서 언급되었고 올해 개봉되어 1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택시운전사』에 관한 기사에도 등장할 만큼 그 반향이 컸다. 저자는 이러한 공로로 전남대학교가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후광학술상의 일곱 번째 수상자가 되었다. 이후 2013년, 저자는 ‘우리 한국인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하는 노작 『한국인의 탄생』을 출간하여, 19세기 구한말부터 1945년 해방 이전까지 시기를 대상으로 한국 근현대 사상사의 복원에 나섰다. 그리고 2016년 12월 말, 저자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를 다룬 『한국인의 발견』과 함께 돌아왔다.

 

 

    비평자는 『한국인의 발견』이 강조하고 있는 바를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하여 소개보려고 한다. 그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부제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한국 현대사를 움직인 힘의 정체를 찾아간다. ‘힘의 정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는데, 먼저 20세기 역사의 주인공인 한국인, 그리고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사건을 만드는 근본적 힘으로 작용하는 한국인의 시대정신, 그리고 시대정신을 담고 이를 끊임없이 갱신해온 한국인의 내면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를 규명하기 위해 한국 소설들을 다시 읽고 그 안에 담긴 한국인들의 생각과 시대정신을 캐내어 시간 순으로 기술하며, 이를 해방에서부터 1990년대까지의 한국 현대사에 대응시켜, 해방과 건국 → 전쟁 → 한국인의 부활 → 두 개의 혁명(4.19와 5.16) → 역사와 개성의 시대(1960년대) → 분열과 연합의 시대(1970년대) → 투쟁의 시대(1980년대) → 근대로의 진입(1990년대)이란 말로 정리한다.

    전반부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한국전쟁 이후 부활한 한국인이 1950년대 말부터 욕망과 분노의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1950년대를 거치며 비참함을 자각한 한국인들은 좌절된 욕망과 분노를 독특한 형태의 ‘두 개의 혁명’을 통해 표출하게 되는데, 이 두 혁명 즉 4.19와 5.16은 공히 1956년 시점에서 연원한 이란성 쌍둥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저자는 4.19에 대한 ‘공식 정론’, 즉 ‘대학생들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하여 일으킨 사건이자 혁명’이라는 모든 교과서의 기술과 담론을 일축하고, 그게 아니라 4.19는 오랫동안 쌓여온 가난과 좌절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의 표현이었다고 말한다(222쪽). 하지만 당시 민중의 폭발을 두려워한 지식인들은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고 혁명을 거세하여 민주주의를 위한 놀이로 전락시켰고, 이로써 4.19는 혁명으로서 역사적으로 부과된 목표를 이루지 못하였다(261쪽). 그리고 이 대목에서 중요하게는, 혁명을 목전에 두고 무대에서 끌어내려진 4.19세대(대학생)가 출현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4.19세대는 ‘붉은 심장의 설레임’을 가지고 광장으로 진출하였다.

    이미 4.19를 통해 욕망과 양심이 현실과 부딪히게 된 1960년대 초의 상황은 4.19의 이란성 쌍둥이와도 같은 5.16을 출현케 하였다. 5.16은 불법 쿠데타임에 틀림없지만 만약 ‘산업 혁명’이 혁명이라면 5.16도 혁명임에 분명했다(259쪽). 5.16을 통해 한국인들에게는 욕망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그런 가운데 지식인들은 한국의 후진성을 의식하며 서둘러 근대화를 추진할 수 있는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을 만들어냈고, 1960년대에 한국인들은 ‘한국주식회사’ 속에서 일체의 가족, 공동체, 윤리, 도덕, 민족을 벗어던지고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랬던 만큼 한국인들은 더더욱 고독했고, 1970년대에 이르러 한국 사회는 ‘세대’, ‘성별’, ‘지방’, ‘계급’ 등과 같은 다양한 이름의 정체성과 계급으로 분열되었다. 이 ‘분열의 시대’는 한편으로 사회적 정치적 모순이 심각해져 한국 사회 내부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가운데 새로운 사회 운동이 나타나 계급들 사이에 침투하여 연합 전선을 형성하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죽음을 넘어선 투쟁은 극단의 폭력과 금력 만능주의와 극한의 대립을 이루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1970년대의 현실은 폭력과 금력으로 무장한 괴물인 ‘오공(제5공화국)’을 낳았고 그와 함께 시작된 1980년대, 극단의 ‘투쟁의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인들은 민주화를 쟁취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한국인들은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겪어야 했다. 1990년대에 이르러 한국인들은 비로소 롤러코스터 같았던 여정을 되돌아보며 정체성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639쪽, 643~645쪽).

    1990년대는 거칠었던 과거를 돌아보며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본격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시기였다(649쪽). 그러나 저자가 기술을 멈춘 1990년대 말의 IMF 경제 위기를 고비로 한국인들은 다시금 각자의 생존을 도모하며 서로를 불신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분해되고 신뢰와 신용이 바닥으로 떨어진 공동체의 복원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예컨대,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 가운에 노사 관계와 금융 부문에서 거의 꼴찌 수준의 국가경쟁력을 보였고 ‘갈등지수’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가 구성원 모두가 가담하고 있는 사회적 불신, 의혹, 질투, 적대에 있음을 보여준다(641쪽). 이 지점에서 저자는 붕괴되고 있는 우리 사회와 공동체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미 1960년대 이후부터 제기되어온 ‘나’와 ‘우리’의 정체성 위기의 해결 방안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저자는 우리의 모습을 일종의 ‘시간여행’을 통해 지속적으로 거울로 비추어보는 일이야말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제시하며, 이 책 『한국인의 발견』 또한 그러한 구체적 작업의 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 근현대 사상사를 연구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수립하고 있다. 전술한 ‘힘의 정체’에서 ‘힘’은 당대 현실에 반응하여 만들어지고 ‘현실’은 ‘사상’의 변화가 가장 심하게 일어나 세상을 뒤바꾸는 역사, 정치적 사건의 전후 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힘의 정체’는 사상이라는 범주로 합류되기 마련이다. 결국 이 책은 ‘힘의 정체’를 역사 속에서 규명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상사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음을, 사상사를 재구성하는 데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에 관해 저자는 모든 역사와 사회 연구에 있어서 그 출발점은 사물과 집단 또는 어떤 사건 등에 대하여 그 정체를 묻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지적하며, 우리나라 역사와 사회에 관한 연구들 역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가장 평이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저자는 지금까지의 연구들 대부분이 이 ‘평이한 질문’을 회피한 채 철저하게 사료에 근거하여 객관적 사실만을 연구한다는 실증주의 사학 위주로 진행되어 왔다고 비판한다(17~18쪽). 저자는 역사 연구에 있어서 사실에만 국한해야 한다는 실증주의 사학의 방법론의 경우 이미 유럽에서는 19세기부터 문제점을 드러내었으며(27쪽), 애초에 실증주의가 말하는 ‘사실’이라는 것조차도 이미 사람들의 생각, 판단, 해석, 사상이 포함된 주관적인 것, 해석의 대상이라고 말한다(24쪽). 아울러 대부분의 정치적 사건들은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뚜렷한 의미와 목적을 가치고 계획해서 실행한, 이를테면 작품이자 해석 대상이며, 따라서 역사 연구를 겉으로 드러난 사건 진행의 층위에서만 머물러 수행한다는 것은 땅을 파지 않고 농사를 짓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29쪽).

    그리고 저자는 한국 근현대사에는 서양 사상사의 연구자료에 해당하는 텍스트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 자료로서 예술 작품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특히 언어적 진술이 포함된 문학 작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29~33쪽). 하지만 여기에도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 특히 소설 해석의 목적은 작가를 시대정신의 지배를 받는 지식인 집단의 일원으로 생각하여 그가 복무한 시대의 사상을 재구성하려는 데 있는 것이지, 역사에 구애받지 않는 어떤 보편적인 진리, 이를테면 ‘권력이란 무엇인가’, ‘전쟁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이런 것들을 역사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해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35~41쪽).

    다음으로 지금까지 소개한 최정운 교수의 『한국인의 발견』이 국내외 학계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측면과 방향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첫째, 이 저서는 국내외 한국학계가 요구하고 있는 상호 통합의 텍스트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책이다. 한국학의 모태인 한국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과 함께 불어닥친 한류 현상 등으로 인하여 해외 한국학계 역시 양적으로 크나큰 팽창을 이루어왔다. 하지만 양적 팽창의 이면에는 국내 한국학계와 해외 한국학계의 소통 부재와 불통 현상이 심각한 지경에 도달해 있다. 동아시아학이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학제 간 연구를 추구하고 있는 흐름에서 그 일부인 한국학 역시 해외 연구자들과의 소통과 대화를 위해서는 안과 밖의 이론적 논의를 모두 소화하고 학문 간 통섭이 가능한 저서를 제시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해졌다. 국내 학계가 해외 한국학의 흐름을 포섭하고 장기적 학문 발전 방향까지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한국학은, 예를 들면 태권도가 국제화되면서 그 세계 챔피언이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니게 되었듯이, 무관의 제왕으로 전락하지 말란 법이 없다.[각주:1]

    실제로 조지타운대학교의 외교학대학원 아시아연구소에서 5년간 연구를 수행한 비평자는 올해 3월 중순경 토론토에서 개최된 아시아학회(Association for Asian Studies)의 연례 학술회의, 그리고 한국국제교류재단과 동북아역사재단 후원의 코리안 나이트(Korean Night) 행사에 참석하여 많은 해외 한국학 교수들을 만나 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한국학 태동의 기본이 되는 한국어와 역사, 문학, 철학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가장 수요가 높은 한국전쟁이나 민주화 그리고 북한 핵문제 연구의 기본이 되는 정치, 외교에 관한 지식까지 아우르는 저서의 필요성을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충족하는 저서는 매우 부족하며, 그에 앞서 국내 한국학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자들 자체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해외의 이론적 논의를 바탕으로 국내 학계의 담론들을 포괄하면서도 한국인의 현실에 맞는 논의를 구축하기 위해 독자적 방법론을 제시한 최정운 교수의 이 책은 이러한 학계의 요구에 가장 부합하는 저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현재의 추세는 해외 한국학을 주도하는 인물들이 점차 언어, 역사를 담당하는 인문학자들에서 민주화나 북한 이슈를 주 전공으로 하는 사회과학자들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감안할 때, 정치외교학자이면서도 인문학에서 주로 다루어온 문학 작품과 역사를 재해석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나아가 “분야란 교육을 목적으로 한 작위적 설정일 뿐 인간의 생각 자체에 분야의 구별은 무의미하다”(38쪽)고 말하는 저자야말로 현재 안과 밖의 한국학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연구자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한국의 뭇 학자들이 역사적으로 서양 학문의 도입이라는 일차적 의무에 평생을 바치는 동안 정작 우리 사회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기여해야 할 학자로서의 중임을 소홀히 함으로써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된 현실을 아쉬워하며, 한편으로는 1870년대부터 벌인 대학 개혁운동을 통해 순수 학문들의 수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급기야 세계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게 된 미국을 예로 들어, 우리 학자들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한다(651~652쪽). 어떤 의미에서 저자가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나라로서 스스로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모색해야 할 우리의 한국학과 조우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둘째, 최근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사회 갈등에 대해 이 저서는 진단과 처방의 텍스트로서 구체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686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통해 저자가 제시한 논의 중에서 비평자의 눈을 사로잡은 키워드는 단연 ‘취약국가론’과 ‘반지성주의’였다. 최정운 교수는 민족국가 대한민국은 취약국가로 태어났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민족국가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국가 건설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하여 이를 외국에서 빌려와 만들어진 초라한 국가였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친일파들이 국가의 공권력을 담당하는 경찰과 군대, 공무원 조직에 대규모로 영입되고, 미국에 대한 물적·정신적 의존이 심화되어 정통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채 첫걸음을 뗀 국가였다(72~73쪽).

    이러한 설명을 바탕으로 저자는 대한민국이 국가로서의 능력이 형편없는 수준에서 출발했다고 주장하며(74쪽), 한국의 초기 국가가 일제 시기의 과잉 발전과 국가기구를 그대로 계승했다는 ‘과대성장 국가론’을 반박한다. 아울러 취약국가의 병폐로 인해 대한민국은 파시즘 국가론이 제기될 여지가 없지 않지만 이 나라는 차라리 민족주의가 부족한 나라였지 민족주의 감정을 이용하는 나라가 아니었다고 기술하여(77쪽) 이 역시 비판하고 있다. 즉 ‘민족국가’, ‘민주공화국’을 만들었지만 대한민국은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시달렸고 좌파와 북한의 공작에 맞서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과도한 민족주의 ‘오버액션’을 남발하는 나라였다(642쪽).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성급하고 충동적으로 폭력을 사용하여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리게 되었고, 국가가 민족주의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 나머지 국가 밖에 ‘민족’이 존재하는 상황이 초래되었으며, 이러한 취약성은 지금까지도 해소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설명은‘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 그리고 ‘광우병 사태’와 ‘촛불혁명’의 과정과 이후 벌어진 극심한 국론 분열 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충분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한편 이는 ‘반지성주의’로 이어지는데, 우리 사회가 정부 수립 시기부터 시작된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격렬한 역사를 써오는 동안 ‘반지성주의’가 은밀하고 잘 무장된 제도화 상태로 전개되어 개인과 사회 전체, 학계를 포위하는 현 상태로까지 발전해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반지성주의’를 학문의 소비자주의와도 연관시킨다. 대부분의 제도, 사상, 학문, 철학을 서구에서 배워와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것을 역사적 의무로 삼아온 지식인들은 부지불식간에 ‘반지성주의’에 기여해왔다(23쪽). 우리 지식인들에 의한 서구의 정치 제도와 사상의 도입은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현실적 조건과 문제 등을 고려한 것이라거나 그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 상당수의 학자들은 자신의 학문적 입장에 발 딛기보다 보수와 진보의 진영 논리에 따른 투쟁에 복무하고, 그 과정에서 합리적 토론의 자리는 맹목적 믿음으로서의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예컨대 이 과정에서 철학을 억압하고 기피하는 문화가 발전되어, 혹 누군가 다른 생각을 하면 골치 아픈 문제들을 들추는 존재로 분류되어 억압받고 기피되어 한국 근현대 정치사상사가 발전할 수 없는 풍토가 조성되어 왔으며(22~23쪽), 중요한 정치 사건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사건을 규정하고 찬양가를 부르면 역사가 바로 선다고 믿는 바로 그 사람들에 의해 우리 역사의 수많은 심연이 묻히고 우리의 기억과 존재가 지워지고 있다는 것이다(25쪽).

    학문의 소비자주의는 앞서 다른 논자들에 의해서도 지적된 바 있지만[각주:2] 이를 ‘반지성주의’와 연관시키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은 저자가 유일하다. 특히 보수와 진보의 역사 논쟁이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한 지금, 저자의 기술은 그에 관한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가 지향할 바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마지막으로 비평자는 이제 독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이번 저서에서는 상세하게 기술되지 못한 ‘반지성주의’와 ‘오공(제5공화국)’에 관한 최정운 교수의 후속작들을 기대하며 본고를 마친다.

 

 

 

 

* 이 글은 아래 출처의 글을 좀 더 읽기 쉽게 윤문한 것임을 밝힙니다.

 

출처:  이택선, "(서평: 최정운의 한국인의 발견을 읽고)한국인들과 그들의 민족국가 대한민국을 거울 앞에 세우다", 『현대사광장』, 제10호(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17), 138~145쪽.

 

* 출판사 리뷰 - http://mizibooks.tistory.com/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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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브루스 커밍스, 도널드 베이커 교수 등이 주축이 된 해외 한국학 연구자들은 2020년 출간을 목표로 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를 통해 한국사전집을 저술하고 있다. 이는 일본학이나 중국학에 비해서는 30~40년 이상 늦은 것이지만 역사뿐만 아니라 문학과 철학 그리고 정치, 국제관계까지를 망라한 이들의 연구가 전 세계의 동아시아 강의나 한국 관련 강의에서 교과서 또는 참고자료로 쓰인다면 향후 한국학의 주도권은 해외 한국학계가 쥐게 될 것이다. 특히 한국 대학들의 영어강의 개설 열풍과 A&HCI급 등재저널 게재가 점차 정년보장 교수 채용의 필수요건이 되고 있는 현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우려는 결코 기우가 아닐 것이다. [본문으로]
  2. 김경만(2015),『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한국 사회과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 』문학동네. 김종영(2015),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돌베개. 홍성민(2008), 『지식과 국제정치』, 한울아카데미.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