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저자 강연④
- 마지막, 질의 응답
아래 내용은 지난 2012년 11월 21일 저녁에 진행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의 저자 이 한 선생님 강연을 녹취, 정리한 것입니다. 세 편으로 나누고 질의응답까지 더해 미지북스 블로그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세 가지 주제에 이어 마지막으로 질의 응답 내용을 정리해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1. "네 몸은 네 것이 아니다!" - 신장 매매 문제
3. 2009년 교원 시국선언, 샌델식 논리의 결론은?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저자 강연 질의 응답
Q. 시국선언 사건과 관련해서 든 생각인데요. 과학 교사가 정치적 견해가 아닌,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는 건 문제가 안 될까요?
A. 전혀 문제가 안 되죠. 롤즈는 공적 이성과 비공적 이성을 구분했습니다. 재판을 예로 들면 간단합니다. 판사가 거짓말 탐지기를 근거로 어떤 사람에게 유죄를 내린다, 이는 공적 이성을 위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짓말 탐지기는 여러 심리학 연구에 의해 신뢰성이 없는 방법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판사가 어제 꿈을 꿨는데 자기가 믿는 종교의 신이 나타나 그가 자기가 맡은 사건에 대해 유죄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판사는 애초에 사법시험을 친 것도 그 신이 나타나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판사가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그 이유로 어젯밤 꿈에 신이 나타나 그렇게 말했다면, 이 역시 공적 이성을 위배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비공적 이성으로서 판사는 자기 꿈에 신이 나타났다는 것을 근거로 자신의 인생 항로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비공적 이성을 지배하는 것을 포괄적 교설이라 하고, 공적 이성을 지배하는 것을 정치적 교설이라고 합니다. 공적 이성에 속하는 게 대표적으로 진화론입니다.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 창조론이나 지적설계론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어젯밤 꿈의 내용을 판결 이유로 기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비판적인 과학적 사고, 종래의 커리큘럼과 다른 사고방식이라면, 과학적 탐구의 방법은 정치적으로 공적 이성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자신의 포괄적 교설에 비추어 비난하고 있다 하더라도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은 공적 이성의 범위 내에 있는 것입니다.
▲ 지난 11월 21일,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4층에서 열린 저자와의 만남 현장 사진입니다. 이 한 선생님이 열강 중이시네요.
Q. 공동체주의는 특정 가치가 맞을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논증을 전개하고, 자유주의는 (잠정적이긴 하지만) 다양한 가치들을 계속 상호비판하면서 보편적 가치를 조금씩 완성시켜 나간다고 봐도 될까요?
A. 제 생각에는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공동체주의에서는 비공적 이성과 공적 이성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것에 있어서 참인 것을 찾으려 한다고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샌델과 같은 덕 중심의 공화주의자들은 공화국이 참을 찾고 이것을 시민들에게 증진·유도, 필요하다면 강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샌델에게 로널드 드워킨이라는 현대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법철학자가 질문을 던집니다. “야, 니가 그렇게 주장해서, 실익이 있는 사안이 뭐냐?” 그랬더니 샌델이 저녁을 먹으면서 한마디로 답합니다. “포르노.”라고. 포르노를 보는 것이 부덕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부덕한 삶이라는 주장이 참이라면 부덕한 삶은 금지되어야 하는 것이 공동체주의적 공화주의자의 논리입니다. 자유주의자는 가치 상대주의자들이 아닙니다. 가치 상대주의라면 자유주의가 옳다고도 말할 수 없겠죠. 자유주의는 인간이 목적인 존재이고 신념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반성, 수정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수용합니다. 이 반성과 수정의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예를 들어 체계적으로 정보를 차단당하고 국가가 허락하지 않은 정보를 수령하지 못한다면, 신념을 제대로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 제대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 여건, 자유주의가 말하는 입헌 민주주의의 여건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포괄적으로 이 모든 것에 있어서 참을 추구하게 되면 이 여건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샌델의 책을 보면 종교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을 안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 전통에 있는 철학자들은 종교적 관용이 자유주의 전통을 만개하게 한 뿌리라는 것을 항상 의식하고 있습니다. 샌델은 『정의의 한계』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자유주의는 종교의 자유를 심각하게,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왜냐면 종교와 덕을 연관 지어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시민들에게 종교의 자유가 특별한 이유는 ‘종교가 시민들의 미덕을 증진시키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즉, 무종교는 악덕이라는 말이잖아요? 무종교가 악덕이면 어떤 방식으로든 종교적 삶을 증진·유도·강제해야 합니다. 또한 종교마다 섬기는 신들이 다 다른데, 그게 다 참일 수는 없잖아요? 만약 포괄적 교설의 영역에서 참을 따지는 것이 정치의 필수적인 부분이라면,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전 국가적으로 검토를 해봐야 할 것입니다. 검토를 해서 신이 있는지, 미덕을 증진하지 않으니 무신론자들은 배제하고, 그런 후에 어느 신이 참인지 알아봐야 하겠죠.
남들이 지정해준 신념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목적인 존재로서, 어떤 사람은 평생 동안 반성과 수정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처음 선택한 신념이 우연히 좋은 것이어서, 후일 검토해 보니 진짜 좋았다면, 반성은 해도 수정은 하지 않겠죠. 그렇지만 그것은 자신이 검토한 결과로서 나오기 때문이지 등 뒤에서 총을 쏘았기 때문은 아닙니다.
Q. 사법정의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검찰 개혁의 주요한 주제로 기소독점이란 이야기가 있지요. 또 정치적 재판이라는 주제로 여러 사건이 있었고요. 사법정의란 것이, 강연에서 말한 정의와 어떤 점에서 다르고 같은지 궁금합니다.
A. 제가 이해하기로 첫 번째 질문은 정치철학에서 말하는 정의와 사법정의가 어떻게 다른가였고, 두 번째는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인데요. 특히 검찰의 오류 가능성, 권력 남용 가능성을 드셨고.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간략히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한국은 입헌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헌법이 모든 법들의 상위에 있습니다. 모든 법은 헌법의 정신에 비추어서, 헌법이 규정한 기본권을 존중하는 선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헌법은 어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결정 사항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헌법은 추상적인 규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든지, 행복추구권이 있다든지, 권리의 본질적 측면을 침해할 수 없다든지 하는. 그런 규범 진술을 구체적인 사안에서 해석을 하게 됩니다. 해석에는 역사적으로 헌법 제정 당시의 제정자의 의사가 어떠하였는가,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선례가 어떠하였는가, 그리고 이것과 정합성을 가지면서 원리의 측면에서 헌법이라는 문서를 최선의 도덕적 진술로 읽어내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최선의 도덕적 진술로 읽어낸다고 할 때 바로 정치철학적 분석이 개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법학자 중에는 이를 부인하는 사람들도 대단히 많습니다. 법실증주의자들이 그렇습니다. 미국에서는 오리지널리스트, 원본주의자들이 그렇습니다. 헌법 제정자들이 당시에 이 사안을 보고 헌법 조항을 적용해 내렸을 결론만 내려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또는 헌법 제정 당시의 일반 시민들이 이 사안에 대해서 헌법 조항을 적용해 내렸어야 할 결론만 내려야 한다는 거죠.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정치철학적 규범 분석은 법 해석에서 아무런 할 일도 없겠죠. 원본주의자, 배제적인 법 실증주의자들, 텍스트만 보고 텍스트에 나와 있지 않는 것은 법관이 재량으로 하면 된다고 하는 법철학 이론은 틀렸기 때문에, 최선의 도덕 진술을 읽어내는 데서 정의와 사법정의가 결국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검찰의 기소 편의주의와 기소 독점주의는, 역시 롤즈의 차등 원칙에 따라 판단하면 됩니다. 사람들이 롤즈의 차등 원칙을 복지, 분배, 급여에 대한 원칙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권리 기회의 차등에 대한 모든 일반 원리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들, 특히 검사의 기소 결정에 가장 영향을 미치기 힘든, 권력이 가장 작은 사람에게도 이득이 되는 그런 이유 때문에 검사에게만 기소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기소 편의를 준다고 볼 이유가 있을까요? 그런 이유는 없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롤즈가 이야기한 심의 민주주의 제도를 운용해야 합니다. 기소 배심원들을 모집하고, (일본의 사례가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기소 배심원들이 기소 여부를 통제할 수 있도록, 그래서 무리한 기소를 차단하거나 분명히 혐의가 있음에도 기소하지 않은 것을 다시 검토하게 하는 제도를 도입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는 아무런 이유 없이 특정 집단에게 부당하게 독점된 권력을 모든 이에게 이득이 되는 방식으로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정치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관련된 경우에는 보다 심의적인 형태로 나아가야 합니다. 단순히 어떤 다른 엘리트 기관을 세우는 것보다 일반 시민들이 심의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필요해 보입니다.
Q.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을 조야한 공동체주의로 규정하고, 최신의 진화된 진보적 자유주의 내지 사회적 자유주의로 그것을 비판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비판 대상은 너무나 지나치게 단순화된 마이클 샌델 초기의 원시적이고 조야한 공동체주의인데 반해 그것을 비판하는 논지는 진화되고 개조된 최신의 사회적 자유주의인 것이 불공정하지 않나 하는 물음입니다.
두 번째로, 강의 내용상으로는 굉장히 논리적이고 타당한데, 강의실을 벗어나 사회 현실을 바라보면 사회에서 절실한 문제는 만연한 자유주의, 신자유주의적 문제들인 듯한데요. 그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공유하면서 공동체주의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이미 만연한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 궁금합니다.
A. 네. 자유주의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 무척 오해되고 있습니다. 그 책임은 번역자들이 져야 하겠죠. 자유주의는 영어로 리버럴리즘liberalism이고, 우리가 흔히 신자유주의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는 자유지상주의는 리버태리어니즘libertarianism입니다. 그런데 최근 번역자들은 리버럴리즘liberalism을 ‘진보주의’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의사소통이 되려면 용어는 정리를 해야 합니다. 용어 중에서는 세분화된 용어가 더 낫겠고요. 자유주의는 롤즈나 드워킨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정치철학 흐름으로 이해하고, 신자유주의는 프리드만, 하이에크, 자유지상주의는 노직, 이런 종류로 세분화해서 용어 정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치밀한 논증과 분석 없이 분위기, 자유주의는 뭔가 계약의 자유만 주장할 것 같은 분위기, 공동체주의 하면 공동체의 안위를 걱정할 것 같은 분위기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분위기 외에 논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샌델의 최신 논의가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한다면, 최근의 신간을 근거로 삼아야겠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바로 그 책입니다. 띠지를 보면 샌델의 15년 동안의 연구에 걸친 역작이다, 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막상 책을 살펴보면 15년 동안 사례만 모았지 연구는 하나도 안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고 있는 이야기는 똑같습니다. 본질을 규정하고, 본질에서 벗어나면 악덕이다. 예를 들어 선물의 본질은 무엇이냐? 선물은 그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좋을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애써 노력해서 고르고, 마음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샌델은 상품권을 선물로 주는 행위를 두고 상품권은 돈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타락이다, 규정하고 넘어갑니다. 별로 발전된 것이 없습니다. 샌델의 최신의 이론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설명을 해주신다면, 예를 들어 비정규직 혹은 교원의 시국선언 등에 대해서, 자유주의와 실익이 있으면서 그 실익이 타당한 정치한 논증에 근거하고 있는 내용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제가 볼 때는 이런 사고방식은 아까 이야기한 본질을 규정하는 두 가지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의 공동체에 대한 많은 담론은 대부분 단지 느낌, 느낌에 불과합니다. 느낌은 내용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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