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본위제도란 무엇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금본위제도의 간략한 역사를 알아보고, 금본위제도로 복귀하자는 주장이 왜 틀렸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금본위제도의 역사와 한계 1편 - 디플레이션을 일으키는 힘>. 지금 나갑니다~
금본위제도로 복귀하자는 주장은 왜 틀렸는가?
- 금본위제도의 역사와 한계1 : 디플레이션을 일으키는 힘
"포트 녹스의 모든 금을 다 준다고 해도 존 맥클레인 그 녀석과 바꿀 수 없다."
- 영화 <다이하드3>에서 제레미 아이언스의 대사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양적완화를 통해 엄청난 양의 통화를 시중에 풀었습니다. 미국이 그렇게 과감한 통화적 팽창을 시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일부 비판자들은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미국의 세뇨리지(화폐 주조 차익)를 비판하고 이것이 미국에 과분한 특권을 제공한다며, 국제 통화 시스템을 금본위제도로 되돌릴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금본위제는 통화 가치를 금에 고정시키는 고정환율제도이므로, 국가나 중앙은행이 통화를 함부로 풀거나 찍어낼 수 없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금본위제도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요?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에서 이러한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근거로 비현실적이고 타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금본위제도는 자원의 커다란 낭비를 초래한다.
금본위제도는 화폐가치를 금의 무게를 기준으로 고정시켜 놓은 통화시스템입니다. 금본위제도는 역사적으로 실재하고 작동한 제도로서, 19세기말에 국제 통화 체제로 확립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나라들이 금과 은을 모두 사용하는 복본위제를 사용했고, 영국만이 파운드화를 금에 연계한 금본위제를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대영제국이 무역과 금융의 최강국으로 우뚝 서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들도 금본위제도로 전환하게 되고, 전 세계의 통화는 금에 기초한 고정환율제도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금본위제도는 그 자체로 자동적인 통화 조절 메커니즘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 나라의 무역에서 수출입의 변동에 따라 금의 유입/유출량이 변동하고, 국내의 통화, 즉 금의 양이 변화함에 따라 물가도 이에 따라 변동하여 다시 무역의 수출입량에 영향을 주게 되어 균형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알기 쉽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나라가 외국으로부터 수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물건을 수입한다면, 그 나라는 물품 대금을 지급하기 위해 외국으로 금이 유출됩니다. 그러면 국내 금(통화)이 줄어들어서 물가가 하락하게 됩니다. 반대로 무역 흑자를 본 상대국에서는 같은 메커니즘으로 금이 유입되어 물가가 상승합니다. 이번에는 무역 흑자국에서는 물가가 싼 무역 적자국의 물건을 수입하게 되고 금은 반대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이렇게 해서 전반적인 무역, 통화, 물가의 균형이 맞춰지는 것이죠. 금본위제도의 이러한 자동 기제를 처음 규명한 사람은 그 유명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배리 아이켄그린의 <글로벌라이징 캐피털 - 국제 통화 체제는 어떻게 진화하는가>를 참고하세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금본위제도는 완전한 통화시스템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를 들어 금본위제도는 자원의 커다란 낭비를 부릅니다. 금을 여러 톤 캐낸 후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지하 금고로 옮겨햐 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금을 모두 캐낸 후엔 다시 또 다른 구덩이로 쓸어 넣어야 하는 것이 금본위제도의 매우 심각한 비용이라고 밀턴 프리드먼은 늘 강조했습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26쪽
영화 <다이하드3>에서 제레미 아이언스가 이끄는 악당들이 부르스 윌리스가 열연한 맥클레인 형사를 엉뚱한 곳으로 따돌려 놓고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지하금고를 터는 인상적인 장면이 기억나실 겁니다. 거기서 악당들은 불도저로 엄청난 양의 금괴를 몽땅 털어갑니다. 중앙은행이 금을 보유하는 것은 금본위제도 시대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본위제도에서는 통화의 가치가 금에 ‘확실히’ 연계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확신이 중요했습니다. 그러한 통화 가치에 대한 믿음이 붕괴하는 순간 사람들은 통화를 버리고 금을 취득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앙은행의 과제는 그러한 연계와 확신을 보증하기 위해 늘 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즉 금광에서 금을 캐서 다른 유용한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또 다른 구덩이로 쓸어 넣는 것이죠.
영화 <다이하드3>에서 제레미 아이언스가 이끄는 악당들이 뉴욕 연방준비은행 금 저장고를 터는 장면
금본위제도에서 경제는 단기적으로 더욱 불안해진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금본위제도 하에서 경제의 단기 변동성이 훨씬 컸다는 것입니다. 금과 통화가 연동되어 있으면 통화가치가 안정적이므로 물가나 경제가 변동성이 적을 것으로 얼핏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금본위제도에서는 통화 공급량을 중앙은행이 아니라 금 공급량이 결정하기 때문에, 경제의 과열과 침체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대단히 제한적입니다. 예컨대 현대의 중앙은행은 경제가 침체될 때 금리를 낮추어 경기를 진작하고, 경제가 과열될 때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올립니다.
그러나 금본위제도는 이러한 신축성을 전혀 발휘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통화 공급이 금의 공급량에 달려 있기 때문에 경제에 더욱 우연적인 요소가 작용합니다. 경제는 팽창하는데 금 채굴량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디플레이션에 직면하게 됩니다. 디플레이션은 경기가 위축되는 경제적 재앙으로 인플레이션보다 훨씬 무섭습니다. 또 경제는 그대로인데, 어느 날 어디선가 대규모 금광이 발견되면 금 공급량이 늘어나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금본위제도가 완벽한 통화시스템이기는커녕 오히려 경제에 고통을 준 상황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일어났던 디플레이션의 고통과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농민들의 정치적 운동이 격화되었던 유명한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1896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농민들의 편에서 은화 자유 주조 운동을 벌이며 노동자와 농민을 "황금의 십자가"에 매달지 말라고 한 사건입니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경제성장률에 비해 금이 부족했습니다. 금이 충분치 않았으므로 미국 경제는 디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기간 동안 물가는 서서히 하락하는 중이었습니다. 이 물가하락은 특히 농부들에게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농부들은 견디기 힘든 부담을 졌습니다. 자신들의 생산물 가격은 떨어졌지만, 내야 하는 부채 지급액은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였으니까요. 농부들은 농산물의 가격 하락에 의해 압박을 받았고 이 디플레이션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금본위제도로 인해 디플레이션이 초래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금본위제도의 수정 필요성을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했습니다. 특히 그는 은을 금속화폐시스템에 추가하고자 했습니다. 더 많은 통화가 유통되도록 하고 더 높은 인플레이션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는 이런 내용을 19세기 웅변가답게 매우 감동적으로 다음과 같이 연설했습니다. “그대는 가시 면류관을 노동자의 이마 위에 내리누르지 말지어다. 그대는 사람을 황금의 십자가에 못 박지 말지어다.”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정직하고 근면한 농민들이 금본위제도에 눌려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31~32쪽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1860~1925)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농민들의 열망을 대변한 민주당 후보는 결국 패배하여 공화당의 윌리엄 맥킨리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맥킨리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고수하고자 했는데, 이는 달러는 경화(hard money)이며, 통화 안정을 제1의 목표로 둘 것임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디플레이션은 엉뚱하게도 호주, 남아프리카, 알래스카에서 새롭게 발견된 금광과 새로운 시안화 금 추출 기술의 개발로 해결되었습니다. 또한 부분 지급 준비금 은행업(상업은행이 창출하는 통화의 일부만을 준비금으로 보유하는 제도)의 발전으로 금본위제와 디플레이션의 연계성이 점진적으로 해체됩니다. 금본위제는 다시 공고해졌죠. 위기를 모면한 금본위제는 다시 연장되었다가 사상 최대의 경제적 재앙인 대공황으로 인해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 * *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벤 S. 버냉키 지음 | 김홍범, 나원준 옮김 | 미지북스 | 2014년 | 246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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