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의 생태학적 계보
오늘날 대부분의 플라스틱은 석유로 만들어집니다. 석유는 탄화수소입니다. 탄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유기화합물이죠. 석유는 과거 수 억 년에 걸쳐 바다에 가라앉은 플랑크톤과 해양 생명체들의 사체가 오랫동안 땅 밑에서 열과 압력을 받아 생성된 것입니다.
‘돌에서 나는 기름’인 석유는 역사 시대 초창기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구약 성서에도 사람들이 석유를 사용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예리코 성벽에 역청을 발랐고 고대 바그다드의 도로를 아스팔트로 포장했으며, 캘리포니아의 츄마시 인디언들은 카누에 역청을 발랐습니다. 13세기에 마르코 폴로는 중국으로 가면서 오늘날 러시아 남쪽의 아제르바이잔을 지나갔는데 그곳의 유정에서 나오는 기름의 양이 “매일 여러 척의 배를 채울 수 있을 만큼”이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석유는 내연 기관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사용처가 미미했습니다. 근대에 들어서도 석유의 주요 용도는 조명용 연료였습니다. 무색의 가연성 액체인 등유는 섭씨 150~275도에서 원유로부터 분리되는데, 등유가 사용되기 전인 19세기만 해도 광원은 향유고래에서 추출된 기름이었습니다. 날로 가격이 치솟는 고래 기름을 구하기 위해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고래를 학살하는 서양인들의 위험천만한 모험담은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년)의 『백경』에서 극적으로 표현됩니다.
당시 포경업은 오직 조명용 고래 기름과 코르셋에 쓸 연골을 얻기 위한 극도로 약탈적인 산업이었습니다. 살과 가죽, 내장, 즉 고래의 몸 대부분은 그대로 바다에 버려졌습니다. 1850년대에 이르러서야 벤저민 실리언 주니어에 의해 석유로부터 조명용 기름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그 덕분에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의 멸종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석유가 고래의 멸종을 막은 것처럼 플라스틱도 코끼리의 멸종을 막았습니다. 19세기 중반에는 당구의 열기도 어마어마했는데요, 당구공은 코끼리 상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많은 코끼리들이 무자비하게 사냥되었습니다. 고래 기름과 마찬가지로 상아에 대한 치솟는 수요는 자연스럽게 저렴한 인공 대체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미국 최대의 당구 장비 회사였던 펠런앤콜렌더 사는 상아 당구공을 대체할 신소재의 개발에 1만 달러의 상금을 내걸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상금이었죠. 그리고 마침내 미국인 존 웨슬리 하이엇에 의해 나무 펄프 섬유(셀룰로오스)에 질산과 황산을 첨가하여 만든 최초의 합성수지인 ‘셀룰로이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석유와 플라스틱이 처음 개발된 동기는 자연물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자연을 가장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주역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날 석유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분류되어 사용됩니다. 하나는 휘발유, 윤활유, 아스팔트 같은 석유 제품이고, 다른 하나는 플라스틱, 페인트, 살충제, 의약품과 같은 석유 화학 제품입니다. 석유 1배럴이 있으면 그중 42퍼센트는 석유 제품을 만드는데 사용됩니다. 처음에 원유는 크래킹(cracking)이라는 분해 과정을 거치는데요, 원유를 실린더에 넣고 촉매와 열 또는 압력을 가하고 휘저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무거운 성분은 아래로 내려가고 가벼운 성분은 위로 올라갑니다. 화학적으로 서로 다른 성분들이 탑 속에서 수직의 층으로 나누어지고, 탑 위쪽에 부착된 관은 나눠진 성분들을 빨아들여 각각 정제와 가공을 위한 곳으로 보냅니다. 그래서 흔히 정유 공장 바로 옆에 화학 공장이 있고 대개 종종 파이프라인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세계에서 3번째와 4번째로 큰 정유 공장이 한국에 있다고 하네요).
우리의 주인공 플라스틱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폴리에틸렌, 폴리스티렌, 폴리프로필렌 등으로 만들어져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각종 포장재와 1회용품, 전자제품, 장난감, 건축 자재 등으로 세상에 나옵니다. 거대한 공장에서 대규모로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양은 어마어마해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연간 3억 톤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미국화학협회에 따르면 플라스틱은 1976년 정점을 찍은 이래 줄곧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물질이었습니다.
간단히 숫자로 예를 들어볼까요?
* 비틀즈 시대만해도 꿈에서나 볼 생수병은 지금 매년500억 개씩 만들어집니다.
* 1970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플라스틱 쇼핑백(비닐봉지)은 2011년에 5000억 개가 사용되었습니다.
* 해마다 수만 마리의 앨버트로스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플라스틱 병뚜껑과 마개는 매년 1조 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 3년 이상 사용하기 때문에 내구재로 분류되는 컴퓨터는 1년에 1억8000만 대 정도가 버려집니다.
* '빨대가 붙어있는 네모난 주스통'으로 잘 알려진 테트라팩은 매년 220억 개씩 생산됩니다.
* 1970년 처음으로 탄산음료에 플라스틱병을 사용한 코카콜라는 매일 전 세계에 15억개의 음료를 배달한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 전 세계 160개국에서 매일 1400만개의 펜을 판매하는 미국의 빅 사는 2005년에 1000억 번째 빅 크리스털 펜을 생산했습니다.
* 미국에서 매립되는 쓰레기의 3분의 1은 포장재이며 총8300만톤으로 화물차 690만대에 해당하는 무게입니다. 그중 플라스틱이 절반을 넘습니다.
* 유엔환경계획은 2009년에 바다가 떠안고 있는 플라스틱이 6억1500만톤이라고 마지막으로 계산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예 계산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 2년치 플라스틱 생산량은 지구 상의 모든 남녀와 어린이의 몸무게를 합친 것과 맞먹습니다.
-『플라스틱 바다』에서
그 많은 플라스틱은 결국 다 어디로 갈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바다에서 생성된’ 석유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플라스틱을 만들어 그것을 다시 바다에 버리고 있습니다.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들은 햇빛과 파도와 물고기들에 의해 부서지고 잘게 쪼개져 바다 표면에 떠다닙니다. 어쩌면 바다에서 지구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하고 억겁의 세월동안 변화를 거듭한 끝에 만들어진 ‘최종 산물’이 플라스틱 표류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플랑크톤과 해조류가 수십 억 년 동안 해저에서 살고 또 죽어갔다. 이 어마어마한 퇴적물들은 지각 변동으로 땅속에 갇히게 되었고 여기에 압력이 가해지자 탄화수소를 잔뜩 함유한 끈적끈적한 액체가 되었다. 어찌 보면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바다는 가장 극적이면서 가장 나쁜 재순환 과정의 예시이기도 하다.
-『플라스틱 바다』에서
이 막대한 석유-플라스틱 순환 시스템의 스위치를 통째로 꺼버리려면 헤라클레스라도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찰스 무어 선장은 플라스틱을 ‘석유의 고체 단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광범위하게 흩어진 기름 유출 사고처럼 우리 주변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수백 년간 지속되고 유독 물질을 빨아들이며 먹잇감들을 흉내 내고 해양 생물들을 위협하며, 마침내 우리 자신을 포위하고 있다고.
우리는 거부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만든 플라스틱의 세상을.
생명을 창조하고 기후를 조정하고 우리 생물권의 주된 특징을 이루는 바다는 권리를 부여받고 그것을 주장할 자격이 있다. 우리는 바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야 하며 바다의 불평에 귀를 기울이고 바다를 보호해야 한다. 바다는 아주 깊다. 건강할 수도, 아플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바다의 국선 변호인을 자처하면서 바다를 대신해 의견서를 내려고 한다. 바다는 문명이 만든 유독성 폐기물로부터 해방될 권리가 있다. 오존층에 구멍을 내는 프레온 가스를 우리가 직접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제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다를 항해하며 독성 폐기물을 모두 치우기란 불가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바다에 쌓여가는 쓰레기의 흐름을 차단하는 일이다. 그리고 바다의 소화 능력이 우리의 플라스틱 배설물을 무해한 수준까지 분해할 기회를 주는 일이다.
-『플라스틱 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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