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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북스의 책/인문

『괴물과 함께 살기』 -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루만까지 한 권으로 읽는 사회철학

 

괴물과 함께 살기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루만까지 한 권으로 읽는 사회철학

정성훈 지음 | 미지북스 | 232쪽 | 15,000원

 

 

현대 사회가 곧 ‘괴물’이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 만든 사회가

어떻게 개인을 억압하고 지배하는게 되었는가?

 

철학의 거장들이 들려주는 성찰의 메시지

괴물을 제거할 수 없다면,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

인간, 짐승, 괴물… 우리는 어떤 삶의 길을 택할 것인가?

   


 

 

『괴물과 함께 살기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근대의 홉스, 로크, 루소, 마르크스 그리고 20세기의 아렌트, 하버마스, 푸코, 루만에 이르기까지 사회철학의 큰 줄기를 소개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는 역사적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개인들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 만든 사회가 어떻게 개인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괴물’이 되었는지 알고자 했다. 따라서 사회철학의 역사는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치열한 사유의 역사이기도 하다. 저자는 괴물이라는 우회적 상징을 통해 현대 사회의 성격을 새롭게 밝히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 방식을 인간, 짐승, 괴물로 구분하여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어렵지만 짐승이나 괴물로 살지 않는 길에 대해 독자와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봉준호 감독의 2006년 개봉작 <괴물>의 영어판 제목이 the Monster가 아니라 the Host이다.

이는 괴물이 우리 바깥의 객체이거나 제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를 억압하고 우리의 자유를 앗아가는 괴물, 사회

2006년 개봉되어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서 ‘괴물’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당시 이 영화의 함의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괴물은 미국이다”, “괴물은 신자유주의이다”, “괴물은 기득권층이다” 등 괴물을 투쟁과 극복의 대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주를 이루었다. 나름의 방식으로 영화 <괴물>을 재전유하려는 이러한 주장들을 잘 들여다보면, 괴물을 우리 바깥에 존재하며 우리와 뚜렷이 구별되는 적대적 객체로 간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속에서 괴물을 죽이듯 누군가 그런 적대적 객체를 없앨 수 있고, 또 없애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연 괴물은 우리 바깥의 거대한 적이며, 우리가 쓰러뜨릴 수 있는 대상일까? 우리를 억압하고 개인의 자유를 앗아가는 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실 이 물음은 사회철학의 역사에서 결코 낯선 주제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홉스는 근대 국가라는 괴물의 탄생을 밝혀냈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폭로했다. 사회철학의 역사는 사회라는 ‘괴물’과 개인의 관계에 대한 성찰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홉스와 마르크스의 논의를 확장해 괴물은 곧 ‘현대 사회’라고 말한다. 괴물이란, 우리 바깥의 적이 아니라 우리가 빌붙어 사는 주인(the Host)이자 우리와 공생하며, 서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사회’인 것이다. 즉, 괴물은 우리 바깥에 존재하지도 않고, 따라서 우리가 없앨 수 있는 객체가 아닌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개인들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 만든 사회가 도리어 개인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 역설적인 문제를 서양 지성사에서 어떻게 풀어나가려 했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특히 아렌트, 푸코, 하버마스, 샌델 등 현대 철학자들이 제시한 다양한 해법을 살펴보고, 니클라스 루만의 체계이론을 빌려와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모습을 짐승, 인간, 괴물로 구분하여, 반성적 존재로 살아가는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괴물의 탄생 - 홉스

괴물의 존재를 최초로 밝힌 사람은 홉스였다. 홉스는 시민 국가의 주권자를 전설 속의 괴물인 “리바이어던”이라고 불렀고, 같은 이름을 제목으로 한 책의 초판 표지에 이 괴물을 그렸다. 오른손에는 시민 권력을 뜻하는 칼, 왼손에는 종교 권력을 뜻하는 지팡이를 들고 있으며,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는 이 괴물은 군주의 모습, 즉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인간의 몸을 자세히 보면, 그 몸은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의 모습으로 이루어진 모자이크와도 같다. 즉 괴물인 것이다. 자연권을 가진 수많은 자연적 인간들로부터 권리를 양도받아 주권을 행사하는 초인간적인 인간이 바로 리바이어던(국가)이다.

홉스 이전에는 괴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폴리스는 개인을 압도하는 괴물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 본성을 완성하는 곳이었다. 즉 폴리스는 인간의 목적(텔로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오면서 목적론적 우주론이 유물론적 자연관으로 바뀌면서, 정치철학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홉스는 개인들이 전쟁 상태를 피하기 위해 주권자에게 권리를 양도하는 계약을 맺고 국가를 만든다고 보았다. 이때부터 인간을 보호할 목적으로 만든 초인적 존재에 개인들이 복종해야 하는 딜레마가 정식화된 것이다.

 

자유주의의 길과 공화주의의 길 - 로크와 루소

홉스 이후 계약론자들은 각기 인간에 대한 다른 이해를 바탕으로 17세기 자유주의와 18세기 공화주의의 길로 양분되었다. 로크를 필두로 한 초기의 자유주의 철학자들은 괴물을 잘 다스리면 모든 개인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며, 부와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낙관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전하면서, 불평등과 인간 억압의 문제가 전면에 등장했다. 괴물을 길들일 수 있다는 낙관이 재산을 가진 자들의 기만임이 폭로되고 괴물에 적응한 인간을 만들기 위한 체제가 인간의 자연 본성을 억누른다는 것이 간파되면서, 점차 괴물의 억압성이 부각되었다.

18세기 루소와 같은 공화주의자들은 개인을 괴물과 완전히 결합시킴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민 주권’으로 표현되는 이러한 발상은 개인이 주권자에게 권리를 전면적으로 양도함으로써 전체와 구분되지 않는 한 몸이 되어, 전체에 대한 복종이 곧 나에 대한 복종이 되게 한다는 것이었다. 19세기 사회주의자들은 공화주의의 길을 더 밀고 나갔다. 마르크스는 괴물 비판을 경제 영역으로 확장하여 괴물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급진적 방책을 제시했고, 그의 사상을 따라 사회혁명으로 국가를 소멸시키려는 거대한 실험이 20세기 초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결과로 더 강력한 정치적 괴물이 등장했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이다.

 

괴물과 함께 살아가는 네 가지 방법

아렌트

현대 철학의 거장들이 괴물에 어떻게 대처하고자 했는지는 크게 4가지 태도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한나 아렌트와 마이클 샌델로 대표되는 입장으로, 고대의 폴리스 전성기를 참조하여 정치경제학적인 사회(자본주의 및 거대권력)에 맞서 공적인 것으로서의 인간 공동체를 회복하자고 주장하는 태도이다. 아렌트의 주장은 한마디로 “사회라는 괴물에 맞서 정치적인 것을 회복하자”로 요약할 수 있다. 아렌트에 있어서 정치란 정당 활동과 같은 대표행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다수의 인간들이 서로 간의 차이를 기반으로 토론하고 참여하는 항구적인 행위를 말한다. 샌델 역시 아렌트를 계승하여, 주권의 분산과 자치의 부활을 주장했다. 낯선 국가보다는 친숙한 공동체의 형성을 강조한 것이다.

 

하버마스

두 번째 태도는 하버마스로 대표되는 주장이다. 하버마스는 아렌트로부터 폴리스적인 정치 공동체의 회복에 관한 문제의식을 이어받으면서도 현대적 조건을 고려하였다. 그는 오늘날의 사회를 체계와 생활세계의 2단계로 구분하고, 체계가 생활세계를 식민화하는 흐름을 저지하자고 주장한다. 하버마스는 언어적 의사소통이 필요 없는 두 개의 강한 체계인 정치와 경제가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세계로부터 자립하여 생활세계를 위협하는 경향에 대해 우려한다. 권력과 화폐로 상징되는 정치와 경제는 자기 고유의 논리를 따르며, 그 논리를 개인들이 살아가는 생활세계에 강요한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적 이성이 살아숨쉬는 공론장을 복원하고, 토의 정치로 운영되는 민주적 법치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푸코

세 번째 입장의 대표자는 푸코이다. 푸코는 우리가 사는 일상적 삶 속에서도 권력의 그물이 쳐져 있으며 미시적인 권력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현대 사회를 괴물의 영역과 해방적 잠재력을 가진 인간의 영역으로 나누는 발상을 거부한 것이다. 푸코는 우리 자신이 괴물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괴물을 변형할 수는 있지만 괴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푸코는 괴물이 우리에게 부과한 한계를 분석하고, 가능한 위반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괴물 전체를 근본적으로 변형하려는 무모한 시도보다는 일정한 한계 속에서 바꾸려고 노력해야 하며,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잘 돌보라”는 말로 요약되는 존재의 미학을 강조했다.

 

루만

마지막 네 번째 태도를 대표하는 철학자는 니클라스 루만이다. 약간은 난해한 루만의 이론에서 사회는 체계이며, 특히 현대 사회는 정치, 경제, 법, 학문, 예술, 종교 등 각각의 영역들로 기능적으로 분화된 체계이다. 기능적으로 분화되었다는 것은 각각의 영역이 차단되어, 서로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선미가 통합된 세계가 아니라 ‘진리를 위한 진리’, ‘예술을 위한 예술’, ‘사랑을 위한 사랑’이 가능한 세계인 것이다. 현대 사회 이전에는 도덕이 다른 영역을 지배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각 영역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만 도덕적 커뮤니케이션이 들끓게 되고, 기능체계들의 작동이 정상화되면 도덕은 다시 뒤로 밀려난다.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루만의 시각도 전통적인 사고와는 다르다. 루만에 따르면 개인은 사회의 일부가 아니다. 인간은 사회라는 체계를 둘러싼 ‘환경’에 있는 존재이다. ‘환경’은 체계에 양분과 에너지를 공급하지만 체계와 구별된다. 개인은 사회적 체계의 환경 속에서 유일무이한 개인으로 존재하다가 커뮤니케이션 체계 속에 편입됨(사회화)으로써 사회라는 체계에 포함된다.

그런데 루만은 말년에 탈분화의 징후들에 대해 경고했다. 탈분화란 정치면 정치, 경제면 경제, 도덕이면 도덕 등 각 영역의 자율성과 차단막을 무너뜨리고 그 위에 군림하는 슈퍼코드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루만은 그 슈퍼코드가 포함과 배제라고 보았다. 기능체계에 포함되지 못하고 배제될 때, 그리고 포함되느냐 배제되느냐의 차이가 더 첨예할수록 각 영역의 고유 규칙들이 무력화된다는 것이다. 배제되지 않기 위해 부정의한 전쟁에 찬성할 수 있고(국익을 위한 파병), 배제되지 않기 위해 진리를 무시할 수 있고(황우석 사태), 배제되지 않기 위해 사랑 없는 결혼을 할 수 있고(결혼정보 업체의 활성화), 경제적으로 배제되지 않기 위해 사랑과 결혼을 포기할 수 있다(삼포세대). 그리고 총체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은 권력, 화폐, 도덕 그 무엇에도 호소할 수 없다면, 그들의 선택지는 폭력, 약탈, 자살 같은 반사회적 행동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루만의 관점에서 개인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걸까? 우선 우리가 사회적 체계 속에서 부여받은 사회적 역할과 자기 자신(유일무이한 개인)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대규모 배제와 비참이 양산되는 사회 현실 속에서 체계가 더 나은 방식으로 재생산되도록 기여해야 한다. 그 대안이 근본적이거나 전체적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우리는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 사회에 관여하면서 가끔 기여하는 자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짐승, 사람, 괴물

저자는 현대 사회 속에서 개인이 살아가는 양태를 짐승, 사람, 괴물로 구별한다. 짐승은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이나 사회화가 덜 된 상태를 말한다. 루만 식으로 말하자면 분화된 커뮤이케이션 매체를 사용하는 법을 습득하지 못한 상태이다. 기능적으로 분화된 현대 사회에서도 인간은 몇 만 년 전과 마찬가지로 짐승으로 태어난다. 그래서 말하는 법, 도구를 사용하는 법, 인사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짐승처럼 살아가게 된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것들만 배워도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에서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쳐야 한다. 글을 읽고 쓸 수 있어야 하며, 화폐로 물건을 사고 팔 수 있어야 한다. 실정법을 대략이라도 파악해 불법을 저지르지 않도록 처신할 수 있어야 하고, 성적 욕구를 연애라는 문명적 절차를 거쳐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 사회가 화폐, 권력, 법, 진리, 사랑 등 분화된 커뮤니케이션 매체들을 확립하자, 인간 역시 이렇게 복잡하게 분화된 매체 영역들에 대한 학습과 숙련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사람’이 된다는 것이며, 루만 식으로 말하자면, 인격(person), 곧 커뮤니케이션의 주소지가 된다는 것이다.

이 분화된 질서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매우 힘겨운 일이기 때문에 누구도 사람이 되기는 쉽지 않다. 기능적으로 분화된 영역들의 경계를 무시하고 전근대인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사회화되지 못한 존재 또는 ‘짐승’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인간은 짐승으로 태어나 사람이 되고자 하지만 결코 사람으로 완성되지 못한다. 다른 한편으로 체계에서 배제되어 문명적 방식을 통해서는 신체적 욕구를 실현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시민권이 없어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고, 취직할 수 없는 인간들, 그래서 연애와 결혼도 포기해야 하는 인간들은 공권력의 처벌을 피할 수만 있다면 짐승처럼 행동할지도 모른다.

 

우리 사람 되는 건 힘들지만 괴물은 되지 말자

그렇다면 괴물(monster)은 무엇인가? 괴물과 짐승을 나누는 기준은 폭력의 강도나 야만성의 정도가 아니다. 저자는 괴물(monster)을 큰 괴물(the Host, 사회)과 함께 살면서 ‘고유한 사람 되기’라는 힘겨운 과제를 포기하고 사회의 여러 조직들로부터 부여받은 역할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인간, 그래서 자신의 역할 수행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인간으로 규정한다. 사회화된 개인으로 살아가는 길, 사람 되기의 길은 종점이 없는 길이다. 이 길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다른 가면들을 바꿔 써야 하고, 여러 가면들의 삶을 되비추어 보며 살아야 한다. 괴물(monster)은 그러한 가면(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과 실제 자신(고유한 개인)을 동일시 해버리는 존재이다. 큰 괴물이 시키는 길을 아무런 반성 없이 살아가는 것이 바로 괴물이다. 반성하지 않는 삶으로 인해 평범한 인간이 괴물이 되어 악마적 행위를 한 대표적인 사례가 유대인 학살 전범 칼 아이히만의 사례이다. 아렌트가 일갈했듯이 ‘악의 평범성’은 사유하지 않음, 성찰하지 않음에서 온다. 세월호 침몰 사고 역시 평범한 인간들의 무반성성, 개인들이 조금씩 갖고 있는 괴물화 경향이 한데 합쳐져서 생긴 참사였다.

따라서 사회라는 괴물과 함께 살면서 짐승도 괴물도 아닌 사람으로서 살기 위한 길은 끊임없이 반성하는 길밖에 없다. 저자는 개인은 사회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함께 산다고 말한다. 나는 사회와 동일화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일부도 아니다. 사회가 나에게 부여한 역할들 중 어느 것도 진정한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나는 나다’라는 공허한 동어반복을 인정할 때,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되비추어볼 수 있을 때만 ‘사회와 함께 살며 사람 되기’라는 힘겨운 과정을 계속해갈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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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정성훈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서양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 분야는 니클라스 루만과 사회철학이며, 도시 공간과 사랑 등으로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고려대학교법학연구원 연구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지금은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사회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학부 시절에는 주로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었으며, 이후 대학원에서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과 코뮤니즘을 프랑크푸르트학파와 비트겐슈타인을 참조해 재구성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박사과정 중에 있던 어느 날 니클라스 루만의 책을 우연히 펼쳤다가 다시 닫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놀랍도록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거대 사회이론에 매혹되었고, 국내에서는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는 점에 놀라며 루만 연구에 대해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박사학위 논문인 「루만의 다차원적 체계이론과 현대 사회 진단에 관한 연구」(2009년)는 그에 관한 국내 최초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사회철학과 루만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면서, 철학과 현실의 구체적인 접점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이 책은 사회철학의 고전적 화두인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철학사(哲學史)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풀어나가는 그 첫 번째 시도라 할 수 있다.

지은 책으로 『도시 인간 인권』(2013년), 『사랑 이후의 도시』(2015년, 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 『니클라스 루만으로의 초대』(2008년), 『열정으로서의 사랑』(2009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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