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美知 - 책 읽기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저자 강연① "네 몸은 네 것이 아니다!" 신장 매매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저자 강연①

- "네 몸은 네 것이 아니다!" 신장 매매


아래 내용은 지난 2012년 11월 21일 저녁에 진행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의 저자 이 한 선생님 강연을 녹취, 정리한 것입니다. 세 편으로 나누고 질의응답까지 더해 미지북스 블로그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신장 매매'에 대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1. "네 몸은 네 것이 아니다!" 신장 매매 문제

2. "노예의 본성은  따라서 노동자의 본성은 … " 비정규직 문제

3. 2009년 교원 시국선언, 샌델식 논리의 결론은?

4. 질의 응답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저자 강연 정리


① "네 몸은 네 것이 아니다!" 신장 매매 문제



오늘 강연은 책 내용을 반복하기보다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 보겠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의 ‘실익’

 

법조계에서는 사투리를 가끔 사용합니다. 그 사투리 중에서 제가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실익’인데요. 실제로 이익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무슨 이익이냐 하면, 논의를 통해서 생기는 이익입니다. A가 a라는 학설을 주장하고 B가 b라는 학설을 주장한다고 합시다. 그리고 법 해석이 있습니다. 둘이서 막 싸웁니다. A처럼 해석하면 a', B처럼 하면 b'라는 해석이 나오고 결론이 다르게 되죠. 이게 실익인 겁니다. 만약 두 학자가 서로 싸우는데 법 적용과 관련해 동일한 결론이 도출된다면, 실익이 없는 문제입니다. 만약 샌델이 실익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즉 샌델도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의 논증이 자유주의와 아무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면, 애초에 저의 비판도 성립하지 않겠죠. 실제로는 실익이 있습니다. 자유주의자와 샌델은 다릅니다. 그러므로 샌델이 만들어낸 실익이 타당한 실익이냐 그렇지 않느냐, 라는 문제가 생깁니다. 유비를 들어보죠. 어떤 사람이 “1+1=2라는 산술 법칙은 1+1=4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문제에서는 실익이 있습니다. 계산 결과의 차이가 생겼으니까요. 차이의 원인이 되는 그 사람의 산술법이 옳은지를 따져야 하겠죠. 저의 책은 실익이 있다는 입장에서 제시된 것입니다.


 

샌델이 신장 매매를 반대하는 근거


첫 번째로 우리가 다루어 볼 문제는, 신장(콩팥) 매매의 문제입니다. 신장 기증을 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고, 다른 한쪽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있다고 해봅시다. 가만히 놓아두면 교환이 일어나겠죠.

 

샌델은 신장 매매를 반대합니다. 이유는? “돈으로 팔 수 없는 것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부패를 의미하며, 특히 돈 있는 사람이 돈 없는 사람을 착취하는 것이므로, 시민들 간의 관계를 부패시키고, 또한 신장을 파는 사람 쪽에서는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본질에서 반하기 때문에 공화국의 미덕을 해치는 것이며,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자신의 신장을 자기 의사에 따라 파는 게 뭐가 문제냐는 자유지상주의의 반론에 대해 샌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몸은 네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소유하지 않는다, 라고 정리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샌델의 해결 방법입니다.

 

사실 ‘돈으로 팔 수 없다.’는 말은 결론입니다. 돈으로 팔 수 없는 것을 팔았기 때문에 부패, 비하, 미덕의 타락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론의 근거를 결론으로 제시하면서 거기에 몇 가지 수사를 덧붙인 것입니다. 어쨌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논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도덕심리학에서는 이를 yuk factor 라고 합니다.(yuk은 우리가 구토감을 느낄 때 내는 소리의 영어식 의성어입니다.) 이런 반응 자체는 결론의 정당성을 입증해 주지 않습니다. 미국 남부에서는 동성애에 대해 실제로 이런 반응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동성애자들을 구타하고,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낙태 수술한 의사를 살해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들이 가진 반감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샌델은 그 반감에 미덕의 이름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미덕의 이름은 침대에 누워 100개라도 덧붙일 수 있습니다.

 

샌델은 자유주의자라면 공정한 계약의 여건을 충족하지 못하므로 반대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부자인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의 절박함을 이용해 신장을 가져간 것이다, 따라서 이런 계약은 공정하지 않으므로 무효이다.’라고 말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의 설명에는 문헌에 기초한 근거가 없습니다. 단순화해서 설명할 뿐입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체 장기 이식 대기자의 15%만 장기 이식을 받고 있다. [장기이식현황(2012. 11) -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주어진 현상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신장이 모자라 죽어가는 사람은 무척 많습니다. 신장 기증을 받는 사람은 대략 10%에 불과합니다.[각주:1] 이들이 꼭 돈이 많은 사람들은 아닙니다. 살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내놓으려 하는 사람입니다. ‘절박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탄광의 광부가 될 수밖에 없고, 어떤 사람은 광부를 고용하는 탄광의 주인이고, 또 어떤 사람은 탄광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변호사라고 해봅시다. 광부가 된 이들은 특별히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없어서,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직업 중에 가장 임금이 높은 일이어서 광부가 되었습니다. 불공정합니다. 그래서 이 불공정에 대한 해결책으로 광부의 일을 금지시키느냐? 금지시키지 않습니다. 다만 60, 70년대와 달리 안전 설비, 작업 규율 등을 도입하고 광산 노동로 인한 질환에 대해서는 산재보상을 적용해주는 등의 방식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그럼 신장 매매와 관련해서는 왜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지 않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답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신장 매매는 금지해야 한다, 그것은 무제한의 자유를 쓸데없이 인정함으로써 시장이 침투하지 않아야 하는 곳에 침투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주어진 현상에 만족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극소수만이 필요한 신장을 얻고 나머지 환자들은 죽어가고 있는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고, 자기 자신의 신장은 기증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의 도덕적인 yuk factor를 이끌어내는 것에서부터 결론을 내리고, 자신을 도덕적으로 불편하게 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최근에 이런 뉴스를 봤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혀 모르는 이에게 신장을 기증했습니다. 그 대가로 한 달간의 휴업 급여만 받았습니다. 신장을 기증하려면 각종 검사를 받아야 하고 전신마취도 해야 하고, 기증 후에는 평생 신장을 하나만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기증을 하면 입원은 2-3주면 되지만, 한동안 본래의 몸 상태로 일하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한 달간의 휴업 급여만 주고 끝입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단지 이타심에만 호소해 신장 기증을 요구합니다. 이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보상 때문에 신장 기증이 적어 생기는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은데 공급이 적을 수밖에 없는 현상입니다. 공급이 적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일을 했는데 그에 마땅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대안의 설계는 미덕의 분석으로 가능하지 않다

 

제가 생각했을 때 어떤 사람이 부담을 지고 그만큼 기여를 했으면 그에 응당하는 보상을 주는 것이 맞습니다. 군인이 열심히 싸웠으면 훈장을 주고, 누군가 공동체의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 그에 대한 보상을 줍니다. (신장 기증과 같은) 큰 부담을 지는데 한 달의 휴업 급여뿐이라니요? 원래 자기가 벌 수 있었던 돈만 주고 마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 부담에 상응하는 정도로 보상을 늘려야 합니다. 그럼 보상을 어떻게 늘릴 것이냐? 이런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보상의 가장 큰 부분은 첫 번째로 장기 기증이 필요한 상황, 신체의 일부의 이식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최우선 순위로, 공짜로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특전을 줘야 합니다. 두 번째로 자신의 신체적 불편과 장래에 염려되는 신체적 능력의 저하를 보상할 수 있는 돈을 줘야 합니다. 특전을 받는 대상의 우선순위로는 살아 있을 때 장기를 기증한 자가 1순위, 2순위는 사망 시 장기 기증을 서약한 사람, 3위는 헌혈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체계적으로 보상 체계를 설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3위까지도 해당 사항이 없을 때 4순위로, 돈을 많이 내는 사람에게 우선순위를 줘야 합니다. 그가 낸 돈은, 보상 기금에 들어가 장기 기증 시마다 기증자에게 지급합니다. 따라서 부자에게 장기를 기증해 준다고 해서 더 많은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가난한 사람에게 기증한다고 해서 더 적게 받는 것도 아닙니다. 매번 계약 체결마다 장기의 값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 공동체가 신체를 희생한 기여에 대해서 공정한 보상을 주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 체계가 시장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에는, 단지 ‘미덕의 타락이다, 부패다, 네 몸은 네 것이 아니다.’라며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보다 정의로운 대안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대안의 기준점은 결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를 제한할 만한 (단순한 수사가 아닌) 정당한 근거가 무엇인가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신장을 자유롭게 계약한다면, 결국 장기가 언제든지 적출될 수 있는 재산으로 취급되어서 담보로 잡힐 것입니다. 장기를 기증한 이들이 이득을 보지 못하고 (본래는 파산 혹은 회생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채권자들에게만 좋은 일을 시키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돈으로 주되 이 돈은 연금이나 혹은 교육비 형태 등 채권자가 가져갈 수 없는 형태, 즉 기증자의 재산 가치에 산정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대안적인 제도를 설계하는 것은 미덕의 분석으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저자
이한 지음
출판사
미지북스 | 2012-10-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이성적인 시민이 되기 위한 ‘진짜 정의론’을 만나다!『정의란 무...
가격비교



  1. 2012년 7월 기준 신장 이식 대기자 숫자는 10964명. 그리고 신장 이식 수술은 한해 전인 2011년 기준으로 1639 건. 출처: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 2011년 장기이식 통계연보.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