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명 교수님(성공회대 겸임교수)이 <프레시안>(2012년 9월)에 기고하신 『왜 열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나』 서평입니다. 김재명 교수님은 십여년 동안 국제 분쟁 전문가로 활동하고 계시며, 『오늘의 세계 분쟁』등 국제 분쟁에 관한 5권의 저서를 집필하였습니다.
그들이 마약에 목매는 진짜 이유는?
- 김재명(국제 분쟁 전문가)
마약 전쟁으로 몸살을 앓아온 멕시코에서 그로 비롯된 사망자 숫자가 최근에 1만 명을 넘어섰다. 마약 갱단은 경찰뿐만 아니라 판사까지 서슴없이 살해하며 멕시코를 전율에 떨게 하고 있다. 멕시코의 마약 전쟁이 기후 변화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면, 그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마약 전쟁과 기후 변화
멕시코와 미국 국경 지대의 도시 후아레스는 영화 <배트맨>의 배경인 고담시가 울고 갈 최악의 범죄 도시다. 후아레스는 2600건이라는 놀라운 살인 사건 기록을 보유한 도시다. 2010년 후아레스의 주요 언론 <엘 디아리오>는 자사의 기자가 저격당해 죽고 나서, 도시 마약 조직에게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1면 사설을 실었다.
<엘 디아리오>는 후아레스에서 마약 왕들을 향해 "당신들이 사실상 도시의 지배자다. 합법적인 정부가 우리 동료의 죽음을 막아주지 못한다"고 이성과 법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무슨 기사를 써도 좋은지 무슨 기사를 쓰면 안 되는지를 묻는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2008년 <포브스>는 멕시코를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라고 묘사했다. 도대체 멕시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그것이 도대체 기후 변화와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크리스천 퍼렌티의 『왜 열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나』는 이 질문에 중요한 답을 하는 책이다.
▲ 이것이 모두 마리화나 한 멕시코 군인이 미국 국경 인근의 한 터널에서 압수한 4.5톤에 달하는 마리화나 앞에 서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멕시코는 마약 유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14장 멕시코의 골고다 언덕)
기후 변화, 국제 분쟁의 새 변수
폭염, 폭우, 초대형 태풍의 잦은 출몰, 극지방 빙하의 소실 등과 같은 최근의 현상들은 기후 변화가 무시할 수 없는 심각한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더 큰 문제는 기후 변화가 인류가 맞닥뜨린 생태적 환경의 격변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분쟁과 내전, 기후 난민을 만들어내면서 기존의 국제 질서에 커다란 충격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퍼렌티의 『왜 열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나』는 국제 분쟁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변수로 주목받고 있는 기후 변화를 특히 열대 중위도 지역에 초점을 맞춰 살펴본 책이다. 유엔은 2007년에 인도적 차원에서 긴급 구호에 나서야 했던 사안 중에 한 건을 제외한 모든 사안이 기후 변화와 연관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이미 기후 변화는 연간 3억 명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중에 30만 명을 죽이고 있다. (19쪽)
스웨덴 정부는 기후 변화로 인한 위험천만한 폭력적 갈등이 야기될 수 있는 곳으로 27억 인구의 삶의 터전인 46개 국가를 들 수 있다고 말했다. (24쪽)
유엔에 따르면 2050년에 기후 난민이 2500만 명에서 10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방글라데시 학자 아티크 라흐만은 "수백만 명이 이동하게 될 것이며, 아무리 많은 핵잠수함으로도 그들을 막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308쪽)
저자는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의 여러 나라들을 직접 취재하면서 기후 변화로 인한 혼돈과 참상을 고발한다. 이 책에서 꼼꼼하게 적고 있는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기후 변화에 가장 적은 책임을 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재난의 구체적인 모습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비극적이다.
이 책은 그러나 단순히 기후 변화에 경종을 울리는 것을 넘어서 더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기후 변화에 가장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나라들, 북방 선진국들의 대응 방식이다.
군사적 대응, '무장한 구명정'
저자에 따르면, 북방 선진국은 이미 안보상의 위협을 미리 내다보고 군사주의적 방식으로 대응책을 마련 중에 있다. 21세기에 기후 변화가 초래한 남방 개발도상국의 사회적 혼란이 새로운 형태의 안보 이슈로 떠올 것이라고 예측한 선진국들은 이미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 중이라는 것이다.
북방 선진국들은 분쟁, 테러, 기후 난민과 같은 새로운 위협에 맞서 나라 밖에서는 '테러와의 전쟁'과 같은 항구적인 대게릴라전을 진행하고, 국내에서는 철조망을 둘러친 장벽을 세우고 억압적 수단을 강화하는 요새화 작업, 소위 '무장한 구명정' 정책을 준비 중에 있다.
사실 이런 종류의 대응책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유럽 열강들이 식민지에서 했던 방식들, 20세기 미국이 중남미와 세계의 전략적 요충지에서 벌여온 '더러운 전쟁'들이 21세기 기후 변화라는 국면에서 새롭게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북방 선진국들의 군사적 적응이야말로 세계 각지에서 출몰하고 있는 기후 변화의 진정한 얼굴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적응'이라는 말은 적극적인 탄소 배출 감축으로 기후 변화의 근본 원인을 없애려 하기보다는, 기후 변화를 기정사실로 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는 정책이다.
미국의 대게릴라전 방침은 21세기 들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까지 이어지고 기후 혼돈에 대한 군사적 대응에서까지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더러운 전쟁'이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달라진 점이 있긴 하다. 트리폴리와 아바나 항구에 상륙하던 미 해병대원이 아닌, 원격으로 조종되는 무인 항공기 '프레데터'와 같은 첨단 기술의 총아가 테러분자 사냥에 동원되기 시작했다.
▲ 무인항공기 MQ-1 프레데터 적진 정찰용으로 개발되었지만, 점차 미사일을 탑재하고 폭격이 가능하도록 개량되었다. 1995년 이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소말리아 등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에 투입되고 있다. (3장 작은 전쟁: 군사적인 적응)
재앙의 씨앗, 냉전과 신자유주의
저자는 모든 분쟁이 순수하게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20세기를 걸쳐 이미 분쟁의 씨앗들은 뿌려져 있었다. 바로 냉전과 신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저자가 취재한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의 나라들은 '냉전'과 '신자유주의'라는 20세기적 트라우마 가운데 어느 하나는 안고 있는 지역이었다.
냉전 시기에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이 벌어졌던 땅은 이미 정상적인 사회 관계망이 해체되어 국가 붕괴를 경험했다.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나라들 역시 민중의 삶이 파탄 나고 광범위한 사회적 불평등이 만연했다. 빈곤과 기아, 폭력이 이미 이 나라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여기에 기후 변화가 생태적 위기를 불러오고 기존의 분쟁에 새로운 연료가 되어 증폭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이 책은 날카롭게 지적한다.
기후 변화는 폭력의 증폭기
저자는 묻는다. 케냐의 유목 민족들이 가축을 약탈하기 위해 총격전을 일상적으로 벌이는 것이 미개한 동아프리카 부족들의 전통인가? 아니다. 기후 변화가 살인적인 가뭄을 가져왔고, 생존 수단인 가축들이 뜯을 목초지가 줄어들었다. 그들에게 있어 가축은 삶의 모든 것이다.
소말리아, 우간다,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났던 전쟁(이 전쟁들은 본질적으로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이었다)은 'AK-47'과 같은 개인 화기를 동아프리카 사회에 널리 유통시켰다. 유목 부족 간의 작은 전쟁은 창이 자동 소총으로 대체되면서 끝없는 살상의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기후 변화는 기존의 폭력을 증폭시킨 역할을 맡았다.
▲ 투르카나 족 전사 언제 있을지 모를 가축 약탈에 대비하여 AK-47을 든 채로 투르카나족 남성이 염소들에게 물을 먹인다. 투르카나 족은 케냐 북서부의 한 목축민 부족이다.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아프리카 목축민들의 손에는 창이 아닌 총이 쥐어졌다. (4장 어느 가축 약탈의 지정학)
아프간 농민들, 왜 아편 재배에 매달리나
아프가니스탄은 왜 테러와 마약의 온상이 되었나? 저자는 여기서도 기후 변화가 치명적인 증폭기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인구 대다수가 농업에 의지하는 아프가니스탄 중부 산악 지대의 스노우팩(만년설 빙괴氷塊는 물 공급에 있어 결정적인 요소다)의 감소는 치명적이다. 이미 오랜 내전으로 빈사 상태에 빠진 아프가니스탄의 농민들은 양귀비 재배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양귀비는 밀 재배에 필요한 물의 6분의 1만 있으면 된다. 밀보다 더 많은 소득 원천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전 세계 아편의 90퍼센트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되고, 아편 거래는 아프가니스탄 공식 국내 총생산(GDP)의 절반에 이른다.
탈레반은 아프간 농민들의 생존책을 허용하지만, 나토 점령군과 아프간 정부는 양귀비 박멸 작전을 진행 중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빈곤과 절망은 일자리가 없는 청년층을 양산하고 이들은 떠밀리듯 탈레반 군대에 합류하게 되고, 결국 전장에서 미국 무인 항공기의 희생양이 된다.
▶ 고마운 꽃 양귀비의 끈적끈적한 수액으로 아편을 만든다. 기후 변화로 인한 오랜 가뭄은 아프가니스탄 농민들이 양귀비 재배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도록 만든다. (9장 아프가니스탄의 기후 전쟁)
멕시코 농민 울린 신자유주의
이 글 맨 앞에서 언급한 멕시코 역시 기후 변화의 희생양이다. 멕시코는 1917년 혁명을 통해 제정한 헌법에서 토지와 석유를 비롯한 모든 천연자원은 국가 소유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시작된 외채 위기는 1980년대 국제통화기금(IMF)이 강제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불러들였다.
신자유주의는 수많은 멕시코 농민들이 농토를 잃게 만들었고, 부패를 양산하고, 사회 양극화를 가져왔다. 또 경제 자유화는 어업 분야의 규제를 완화하면서 외국의 대자본에 의한 남획을 부채질하여 해양 자원의 고갈과 어민들의 생존을 위협했다. 여기에 기후 변화는 농업과 어업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월드워치연구소 자료를 보면, 멕시코의 건조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막화 때문에 매년 60~70만 명이 이주한다. 농토를 잃은 농민들, 어업을 포기한 어민들이 북쪽으로, 미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이들은 지하 마약 경제의 덫으로 밀려들어가고 있다.
1994년에 발효된 북미자유협정(NAFTA)은 플로리다 마약 루트의 엄중한 단속과 함께 마약이 미국으로 운송될 수 있는 더 수월한 유통 경로를 제공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현실이 오늘날 멕시코 마약 전쟁의 배경을 이룬다고 비판한다.
이미 시작된 위기, 해법은?
발버둥치는 남방 개발도상국들은 결국에는 부유한 선진국 경제까지 파멸로 이끌면서 붕괴할 것이다. 기후 변화가 모든 경제와 국가들을 파괴하도록 내버려 둔 상태에서는 담장, 총칼, 가시철조망, 무장한 무인 항공기, 상시적으로 배치된 용병 등을 아무리 많이 준비해도 지구의 절반으로부터 나머지 절반을 구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27쪽)
얼핏 묵시론적으로 느껴지는 저자의 취재기에서 우리는 무슨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저자에 따르면, 다행히도 우리는 이미 답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당면한 기후 변화라는 과제에 대처할 만한 많은 것들을 갖추고 있다. '기술'과 '자본'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태양과 풍력을 이용하는 청정에너지 기술과 2008년 금융 위기를 야기한 풍부한 금융 자본이 그것이다.
저자는 '반드시 자본주의가 없어져야만 기후 변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근본주의적 생태주의자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지구가 유한하다는 사실과 배치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일부 환경론자들의 테제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우리의 에너지 생산 방식을 바꾸려는 노력만으로도 당면한 과제를 풀어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들은 책을 덮으면서 '기후 변화 문제를 풀려면 결국은 북방 선진국들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된다'는 생각을 거듭 하게 될 것이다. 적극적인 탄소 배출 완화와 지구적 차원의 부의 재분배는 이미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북방 선진국들은 군사주의를 멀리하고, 열대 중위도 지역의 가난한 나라에 대한 항구적인 대게릴라전이 아니라 더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공존의 길로 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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