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샌델이 해결했다고 자신있게 선보인 문제, "구제 금융을 받은 금융 회사의 보너스 파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과연 이번에도 샌델의 해답은 아무런 문제도 없을까요?
“구제 금융을 받은 금융 회사의 보너스 파티가 잘못인 이유는 뭘까?”
“실패에 포상했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성공에 포상하길 원해!"
샌델은 포상의 본질은 성공에 대한 것인데, 구제 금융을 받은 금융 회사는 “실패를 포상했기” 때문에 (본질에서 벗어났으므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샌델 식으로 말하자면, 파산 위기에 처한 회사에 대한 구제 금융 자체도 악덕이 될 수 있습니다. “실패한” 회사에 돈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파산 도미노로 경제가 붕괴할 위험이 생기고, 궁극적으로 모든 납세자들의 삶이 훨씬 힘들어지더라도 구제 금융을 하지 않아야 할까요? 반대로, 금융 투기를 일삼아 성공 가도를 달리는 금융 회사의 보너스 파티는 문제가 없을까요? “실패를 포상하면 안된다”는 미덕이 보편적인 원칙이 될 수 있다면, 실업자에게 수당을 지원하는 것 역시 정당화될 수 없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실업자는 노동시장에서 “실패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샌델의 해법은 건실한 정치철학적 논증이라기보다는 대중의 분노에 ‘미덕’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합니다.
샌델이 도덕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어떤 사안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안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파악한다.
2. 본질을 만족시키면 미덕, 본질을 벗어나면 악덕이고 타락이다.
즉, 샌델의 이야기는 본질이 무엇인지에 따라 결론이 이미 정해져있는 노골적인 순환 논증의 형태를 띱니다. 그 근거로는 미리 정해진 결론이 미덕이라는 이름으로 제시됩니다. 그렇다면 샌델은 본질을 어떻게 파악할까요? 샌델의 철학에서 본질이란 대개 (샌델 자신의) 머릿속에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특성들일 뿐입니다. 그것이 너무 독단적이라고 생각되면, 샌델은 공동체 구성원의 다수가 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말합니다(“우리는 이야기를 써나가는 존재이다”). 만약 두 번째 방식이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뿐이라는 비판을 받으면 다시 첫 번째 방식, 미덕과 본질을 분석하는 아리스토텔레스 방식으로 연구한다고 대답합니다.
이것이 샌델이 철학하는 방법입니다. 샌델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봉합해 버립니다. 봉합이란 문제의 심층적인 전제를 정합성 있게 해명하지 않고, 떠오르는 답을 그럴듯하게 덧붙이는 태도를 뜻합니다. 봉합은 문제를 결론과 수사로 꿰매어서 핵심을 보이지 않게 만들고, 다양한 문제 사이에서 일관성 있게 사고할 수 있는 원칙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샌델은 중요한 정치철학적 문제를 두고 직관과 감성을 근거로 들어 결론을 내리면서 미덕, 타락, 비하 같은 문학적 수사를 붙여 정당화합니다.
시민들이 정치철학에 기대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문제 해결의 지침을 제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치철학은 숨겨진 심층적인 전제를 밝히고, 시민들이 문제를 둘러싼 원칙과 근거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마이클 샌델의 철학은 오히려 문제를 흐릿하게 만들고 이성적 탐구를 방해합니다.
* 위 글은 미지북스의 신간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이 한 지음) 책 소개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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