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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중국의 지도부 교체, 어떻게 볼 것인가?

지난 11월 8일 제18차 중국공산당 당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중국의 차기 지도부가 확정되었는데요. 국내 여러 매체에서는 미국 대선 못지않게 비중 있게 이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미지북스 역시 이번 지도부 교체를 관심 있게 지켜 보았고, 미지북스의 책 『중국, 자본주의를 바꾸다』을 번역하신 하남석 선생님께서 이번 지도부 교체를 두고 짧은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중국의 지도부 교체, 어떻게 볼 것인가? 



하남석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중국학과에서 중국 정치 경제를 전공하여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중국의 체제 이행과 신자유주의의 문제,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 사회와 사회적 모순에 저항하는 대중 운동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다. 『중국, 자본주의를 바꾸다』(훙호펑, 조반니 아리기 외 지음, 미지북스, 2012),「중국은 미국의 집사인가」(『뉴 레프트 리뷰』 3호) 등을 옮겼다. 



2012년 11월은 G2라고 불리는 세계의 양대 강국, 미국과 중국에서 권력교체가 예정되어 있어 크게 주목받았다. 작년만 해도 오바마의 재선은 불투명해 보였고, 중국의 지도부 교체는 안정적으로 진행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미국의 대선은 별 쟁점도 없이 오바마의 압승으로 싱겁게 끝난 반면, 중국에서는 봄부터 보시라이 사건과 쿠데타 루머 등으로 시끄러웠으며, 막후에서 계파 간에 치열하게 권력투쟁이 벌어진 것으로 관측되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했던 중국 공산당 내부의 계파들과 주요 정치인들의 이름이 주요 언론들에 오르내렸으며, 중국의 정치 시스템이나 권력 이양 제도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높아졌다. 이 글에서는 이번 중국 공산당의 지도부 교체의 현황에 관해 알아보고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가에 대하여 간략하게 논해보고자 한다.       


5세대 지도부의 등장


중국의 모든 권력은 공산당에 집중되어 있고, 중국 공산당은 여전히 레닌주의식 민주집중제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중국에서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는 집단은 권력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이다. 중국 공산당의 당원 수는 8천만 명이 넘는데 전국대표대회에 모이는 인원이 2천여 명이고, 이 중에서 중앙위원회로 선출된 인원이 2백여 명(후보위원은 160여 명)이다. 이 중앙위원회에서 25명의 중앙정치국원이 추려지며, 또 이 중에서 7명이 상무위원회를 구성하게 된다. 이 7명의 상무위원들이 각각 공산당을 비롯하여 전인대(전국인민대표대회), 국무원(중국의 중앙정부), 정협(인민정치협상회의) 등 주요 국가기관의 책임자를 맡아 중국을 통치해 나가는 것이 중국 정치의 시스템이다.

 

당대회에서 이러한 주요 직책의 인선이 내정되면, 이듬해 3월 우리로 치면 국회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 전인대에서 인준을 받게 되어 있다. 물론 당에서 내린 결정이 전인대에서 뒤집어지는 일은 없다. 중국 사람들 사이에 “당이 손을 흔들면, 국무원은 일을 하고, 전인대는 거수로 통과시키고, 정협은 옆에서 박수친다”는 우스개가 있는데, 한마디로 중국의 정치시스템을 정리한 말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에 열린 18차 당대회(2012년 11월 8일~14일)에서 시진핑은 후진타오로부터 당의 총서기 및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을 승계 받았고 리커창은 원자바오로부터 국무원 총리를 이어받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 나머지 5명의 상무위원이 새로 선임되었으며, 이로서 중국 공산당은 5세대 지도부가 이끌게 되었다.    


 

 현 중국공산당 주석 시진핑이 전임자 후진타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엘리트주의 분파 VS 인민주의 분파?


이번 지도부 교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 중 하나가 계파간 갈등이었다. 다수의 중국 전문가들이 중국 공산당의 계파를 엘리트주의 파벌과 인민주의 파벌으로 나누고 이 틀 속에서 중국 정치를 파악한다. 엘리트주의 파벌은 상하이방[각주:1], 태자당[각주:2]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제 성장과 수출을 중시하고 연해지역의 발전에 역점을 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민주의 파벌은 공청단[각주:3] 출신으로 내수와 분배를 중시하고 낙후한 내륙 농촌 지역의 발전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파악된다. 많은 국내외 언론들이 이 틀 속에서 새로 구성된 상무위원회 성원의 성향을 분석하여 이번 지도부 교체를 보수파(엘리트주의 파벌)의 승리와 개혁파(인민주의 파벌)의 패배로 평가했다. 즉 이번 상무위원회의 인적구성[각주:4]으로 볼 때 태자당과 상하이방 연합세력이 공청단파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결론을 내리기에 중국 정치의 파벌구도는 훨씬 더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 정치의 파벌은 출신배경에 따라 태자당, 공청단파 등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한국처럼 ‘친이’면 ‘친이’, ‘친박’이면 ‘친박’이라는 식으로 딱 떨어지기 보다는 개인이 지방에서 중앙까지 성장해 오면서 맺게 된 여러 꽌시(관계 關係)들과 은퇴한 당 원로들의 후원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개인의 성향과 파벌의 성향을 일치시키기기 힘들다. 

 

게다가 실제 정책적인 면을 살펴보면 엘리트주의 파벌과 인민주의 파벌의 차이는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 이 두 파벌의 대립이 마치 1960-70년대의 마오주의파와 당권파(개혁파)의 대립처럼 좌파와 우파의 갈등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민주의 파벌의 경우, 분배를 강조하고 있고 “균형 잡힌”, “지속가능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경제 성장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엘리트주의 파벌의 경우도 현재와 같이 양극화된 사회 속에서 분배의 측면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보시라이의 경우, 태자당으로 분류되지만 충칭에 부임해서는 인민주의 파벌보다 더 좌파적인 색채를 나타내기도 했다. 리커창의 경우 후진타오의 뒤를 잇는 공청단파의 수장이지만, 올 3월 본인의 주도 하에 세계은행과 함께 내놓은 <중국 2030 보고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금융시장 개방과 민영화 등 국가개입을 비판하고 시장 중심의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이 두 파벌이 격하게 대립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허구적인 구도일 수도 있다.   

 

메리토크라시? 클렙토크라시?


이번 지도부 교체에서는 최고 권력층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청렴한 이미지로 중국 인민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원자바오 총리 일가의 엄청난 규모의 재산이 서구 언론을 통해 보도되어 논란이 일었다. 심지어 올 여름에 시진핑 일가의 재산 규모가 4천억 원에 달한다고 보도한 블룸버그 통신은 한동안 중국에서 인터넷 접속이 차단되었고 당국으로부터 여러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보시라이 사건은 마치 헐리우드의 삼류 첩보치정극 같아 보였다.  

 

많은 전문가들이 개혁개방 이후 중국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공산당의 통치 성격을 놓고 능력과 실력을 갖춘 엘리트들이 효율적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라고 판단해 왔다. 하지만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관료들의 부정부패 사건에다 이번에 드러난 최고위층들의 양태를 보면 중국 정치는 ‘클렙토크라시(kleptocracy)’, 즉 권력을 쥔 자들이 국가 재산을 약탈해가는 ‘도둑정치’에 가까워 보인다. 

 

게다가 이번 지도부 교체에서 혁명 원로의 자식들인 태자당이 대를 이어 최고 권력의 지위를 누리게 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상대적으로 공청단파들은 평민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집안 배경들을 살펴보면, 최고위층이 아니어서 그렇지 대부분 중간관료의 자식들이 많다. 우리 역사에 빗대어 보자면, 태자당이 성골이나 진골이라면, 공청단파는 육두품쯤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도 중국의 앞날을 둘러싼 커다란 갈등은 공산당 내부의 파벌이나 노선 경쟁에 있기보다는 당과 인민(특히 개혁개방 이후 삶의 안정성이 크게 파괴된 노동자와 농민들) 사이에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에서 “官二代, 富二代, 窮二代(관직도 세습되고, 부도 세습되고, 가난도 세습된다)”라는 말이 유행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과잉중복투자를 낳고 있는 후계양성 시스템


한편, 중국 공산당의 후계 양성과 선발에 관해서도 한번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덩샤오핑이 생전에 차기와 차차기 지도자로 지명했었다. 반면 시진핑을 비롯한 5세대 지도부들은 뒤에서 당의 원로들이 끌어준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본인들이 지방에서 근무하면서 좋은 실적을 기록하고 그것이 자신의 성과가 되어 중앙정치에 진입하게 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방에서의 성과라고 하는 것은 결국 경제성장률일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각 지방들 사이의 경쟁으로 나타나게 된다. “중국에는 31개의 발전국가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 각 지방정부들은 경쟁적으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되고, 결국 중국 전체로 보면 이러한 투자경쟁은 과잉중복투자로 나타나게 되어 중국경제에 커다란 거품을 형성하게 되었다. 게다가 각 지방들이 서로 자기 지역의 기업을 육성하고 세원을 키우기 위해서 유무형의 보호주의 정책을 사용하게 되면서 중국 전체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기도 하다. 

 

전망


위에서 지적했듯이 여러 문제들이 산적해 있고, 국내외에 많은 불안감을 주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번에 중국 공산당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5세대 지도부들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이 과정을 보면,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과 같이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기보다는 집단이 지도부를 구성하여 권력을 분점하는 시스템이 어느 정도 안정화, 제도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지도부 내부에서 서로를 견제할 수 있기 때문에 파벌 간에 협력과 균형을 잘 맞춰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권력이 분점되어 있는데다 기존에 비해 원로들이나 전임지도부의 입김도 세질 것으로 보여 5세대 지도부들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든 조건이 형성된 것으로도 보인다. 기존의 정책 기조를 끌고 나가면서 그럭저럭 중국 사회를 관리해나가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위기가 닥쳐왔을 때 어떻게 잘 대처하는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블딥 상황, 특히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중국의 경착륙을 우려하는 상황 속에서 새 지도부가 어떻게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특히 인민들은 현재의 중국 사회를 양극화된 “격차사회”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민생을 우선하겠다는 정책이 수사적 차원을 넘어 실질적으로 어떻게 실행될 지도 잘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1. [편집자주] 상하이방: 덩샤오핑의 차기 후계자였던 장쩌민을 중심으로 한 세력. 장쩌민이 상하이 시장 재임 시절 같이 일했던 인물들을 주석 취임 이후 중용하면서 형성되었다. [본문으로]
  2. [편집자주] 태자당: 중국 공산당 혁명 원로의 자제와 친인척으로 구성된 세력. 지난 18차 대회에서 주석으로 취임한 시진핑 역시 태자당계 인물로 분류된다. [본문으로]
  3. [편집자주] 공청단: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의 약자. 전 주석 후진타오가 공청단계 인물이다. [본문으로]
  4. [편집자주] 2012년 11월 현재 태자당이 3석, 상하이방이 2석, 공청단이 2석.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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