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이념적 동지들 - 혐오정치를 부추기는 미국 극우파들의 목소리


 

막장에 가까운 막말과 혐오, 선동을 일삼는 트럼프의 인기는 식을 줄 모릅니다. 사회적 불평등의 확대라는 수십년 동안 누적된 문제가 기저에 놓여있습니다만, 이러한 극우파 정치의 부상은 오랫동안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미국 극우파들은 수십 년 동안 방송을 통해 혐오와 선동 작업을 해왔고, 마침내 불평등 문제를 자신들의 이념에 연결시키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주류 정치에 대한 불신, 날 것 그대로의 불만이 터져나와 트럼프의 지지도를 견고하게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아래에 그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성병 외에도 멕시코에서 유입되는 수입품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성병에서 턱수염까지 달린 여자들, 이제는 돼지독감까지 있습니다. 우리가 미개인들을 끌어들이는 매력 덩어리인 모양이지만, 저는 그저 저들은 미개하구나. 생각할 뿐 다른 감정은 없습니다. 미개한 것은 잘못은 아니므로 그것 때문에 비난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모 미개 국가에서 오는 사람들은 단순한 미개인이 아닙니다. 우리한테 들러붙어 피를 빨아먹는 수백만 마리의 거머리들입니다. 게다가 학교, 병원은 물론 미국인의 각종 생활을 파괴하고 있지요”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제이 세베린

 

“미국을 위해 멕시코 국기를 한 장씩 불태웁시다.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멕시코 국기를 불태웁시다. 우리는 민족 의식과 주권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거리로 나가서 여러분이 진짜 남자라는 사실을 보여주세요. 가능하면 멕시코 국기 열 장을 태우라고 권하는 바입니다. 멕시코 국기 하나를 유리창에 거꾸로 붙이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써 놓으세요!”

-방송인 마이클 앨런 위너

 

“화물처럼 배에 실어 돌려보내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 생각해보세요. 우선, 멕시코는 그들이 돌아오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돌려보내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세요. 그렇다면, 니카라과,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멕시코 등지로 반송되기만을 기다리는 1100만 명의 히스패닉들을 어디에 보관할까요? 그들을 어디에다 보관해요? 바로 뉴올리언스에 있는 슈퍼돔입니다! 그래요. 그리고 휴스턴의 아스트로돔입니다. 바로 거기가 히스패닉들을 밀어넣을 적당한 장소입니다.”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닐 부르츠

 

“밀입국자 사면 법안을 무효화시키고, 환영 푯말들을 없애버리면, 그들이 모두 멕시코로 돌아가기 시작할 겁니다. 그때 고별 선물로 다들 핵폐기물 한 상자씩을 주도록 합시다. 작은 핵폐기물 상자를 주고 멕시코로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게 합시다. 그걸로 또띠아를 데울 수 있다고 말해주세요.”

- 닐 부르츠

 

“캘리포니아, 뉴멕시코를 비롯해 미국 서남부의 여러 지역을 멕시코에 넘겨주었으면 하는 멕시코인과 멕시코계 미국인들이 있습니다. 이런 무리들은 이를 레콩키스타라고 하는데, 스페인어로 재정복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수백만에 달하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 특히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영토 탈환을 위한 잠재적인 군대로 간주합니다.”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 진행자 루 돕스

(원래 레콩키스타는 8~15세기 동안 800년에 걸쳐 스페인이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세력을 몰아낸 역사를 말함)

 

“국경의 무력 강화 외에는 다른 대책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일종의 인종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이 그렇습니다. 인종 전쟁입니다. 지금 우리는 로스앤젤레스에 50만 명이나 되는 이민자들이 나타나 멕시코 국기를 흔드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봐, 우리는 여기 있을 권리가 있다고’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불법으로 들어온 사람이라면, 여기 있을 권리가 없지요.”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빌 오라일리

 

“그보다 더 심하게도 하자면 할 수 있어요. 이들 구리빛 피부의 나치들한테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꺼져. 당장! 눈치가 그렇게 없어? 얼른 돌아가라고! 이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겠지요. ‘강제추방 당하기 전에 알아서 떠나시죠.’ 정도가 좋겠네요. 저는 진심입니다. 우리 미국인은 지금 나치한테 억압당하던 유대인 꼴이니까요.”

-합법 이민을 위한 미국인 연합 회장 윌리엄 긴

 

“이제 한때 서구가 지배했던 아프리카, 아시아, 이슬람, 중남미 사람들이 식민 모국의 인구를 채우고 있다. 현재 서구 문명의 위기는 세 가지 치명적이고 절박한 위험으로 구성된다. 바로 인구 감소와 문화적 분열, 침략에 대한 무저항이다. 로마가 사라졌던 것과 같은 이유로, 서구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도나우 강과 라인 강이 로마에게 그러했듯이, 리오그란데 강과 지중해는 미국과 유럽에게 방어하지 않는 문명의 변경이다. ... 광신적인 멕시코계 애국주의자들과 멕시코 첩자들은 선조들이 전쟁에서 패해 빼앗긴 땅을 인구와 문화를 통해 되찾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지금 야만적인 문화전쟁 한가운데 있으며, 우리의 전통 가치들이 벌써 두 세대에 걸쳐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레이건 정부 수석고문 패트릭 뷰캐넌

 


 

저명한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이미 30여 년 전에 저서 『미국 역사에서 반지성주의』와 「미국 정치의 편집증」이라는 글에서 혐오 정치의 세계관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오늘날 트럼프는 엘리트와 주류정치에 대한 환멸에서 에너지를 얻는 아래로부터의 극우파적 힘을 대변하고 있다. 그들의 세계관에 대해 호프스태터가 어떻게 일갈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편집증적인 대변인은 음모의 최종 결과를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본다. 그는 온 세상, 모든 정치 질서, 모든 인간 가치 체계의 탄생과 죽음을 몰래 거래한다. 그는 항상 문명을 지키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에 산다. 종교에서 천년왕국주의자들이 그렇듯이 그는 마지막 날에 살아있을 사람들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때로 세상의 종말 날짜를 정하려 한다. ... 필살의 각오로 되찾으려 하고 파멸을 부를 최후의 파괴적인 행동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그들은 이미 미국의 많은 부분을 빼앗겼다. 과거 미국의 미덕들은 세계주의자와 지식인들에 의해서 이미 훼손된 상태다. 자유 경쟁을 중시하던 과거 자본주의는 계획을 중시하는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에 의해 기반이 서서히 침식되고 있다. 과거 탄탄하던 국가 안보와 독립은 반역 음모들로 서서히 약화되었다. 이런 반역 음모의 가장 강력한 지지 세력은 물론 우리 사회의 아웃사이더와 외국인들이다. 이들은 원래부터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니 놀랄 것은 없다. 하지만 미국 권력의 핵심에 있는 주류 정치인들까지 이런 음모에 가담하고 있다. 그들의 전임자들은 우연히 외부인의 음모들을 발견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현대 극우파들이 발견하는 음모는 윗사람들의 배신이다.”

 

크리스천 퍼렌티, 『열대는 왜 죽음의 땅이 되었나』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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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국가, 작은 국가, 그리고 브렉시트

 

유럽연합에서 탈퇴할지 의사를 묻는 영국의 국민투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탈퇴를 주장하는 쪽은 영국이 독자적인 길을 걷던 시절의 옛 영광을 그리워하는 노년층이 중심이며, 이들은 이민자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주권국으로서의 통제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잔류를 주장하는 쪽은 주로 젊은 세대로서, 유럽연합에 속함으로써 얻는 경제적 안정과 번영을 중시하고, 유럽이라는 새로운 통합 체제의 미래적 비전에 더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영국의 주류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 지식인들은 탈퇴시 영국의 쇠락을 우려해 잔류에 투표할 것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심지어 프랑스 경제장관(에마뉘엘 마크롱)은 브렉시트가 되면 영국은 변방의 작은 섬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브렉시트는 유럽연합을 둘러싼 구심력과 국민주권이라는 원심력이 작용하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만약 영국민이 브렉시트를 선택하게 된다면 유럽연합이라는 큰 국가 연합체를 버리고 영국이라는 작은 나라로 돌아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스코틀랜드까지 독립해버리면 영국은 정말로 유럽 변방의 왜소한 나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리처드 로즈크랜스 교수(하버드대)는 『서양의 부활』(미지북스, 2015년)에서 시대별로 유리한 국가의 크기가 달랐다고 이야기합니다. 크게는 큰 나라(제국이나 왕국)가 유리한 시대와 작은 나라(도시국가나 무역국가)가 유리한 시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크기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국제 상업의 개방성이었습니다. 교역이 자유로운 시대일수록 작은 나라가 유리했고, 그렇지 않은 시대는 영토가 크고 자원이 풍부한 큰 나라가 유리했습니다.

 

로즈크랜스의 기준에 따르면, 기원전 2000년에서 서기 1000년경에는 큰 나라의 시대였습니다. 고대 제국의 시대였죠. 그다음 500년은 다시 베네치아, 제노바,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같은 작지만 강한 무역국가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500년은 그보다는 더 큰 국민국가의 시대가 펼쳐졌고, 그러한 경향이 강해져서 20세기 초반에 대영제국을 필두로 하는 제국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20세기 중반에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양대 강국의 시대가 되었구요. 그러다가 다시 20세기 중후반에는 일본과 아시아의 호랑이들 같은 무역국가들이 잘나가는 막간극 시대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다시 영토와 인구가 광대한 대국들(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등)과 국가연합체(유럽연합)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세계사의 흐름이 상업에서 다시 정복으로 회귀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정복이 아닌 경제적 통합을 통해 몸집 불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아시아에서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무역연합이 경쟁하고 있고, 각국이 경제적 블록을 더 크게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로즈크랜스 교수에 따르면, 아무리 몸집이 크더라도 단일 국가의 역량만으로는 현재 직면한 도전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양의 부활』에서 로즈크랜스 교수는 21세기에 서양 세계가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중국과 인도 등을 필두로 한 동양의 눈부신 부상이라고 진단합니다. 떠오르는 동양과 쇠퇴하는 서양 사이의 힘의 균형이 자칫 잘못하다가는 1차 세계대전과 같은 군사적 재앙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당시에는 패권국 영국과 도전국 독일 사이의 갈등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로즈크랜스 교수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더 심도 깊은 경제적 정치적 통합을 이루어냄으로써 힘의 불균형을 창출하고, 서양이 동양을 공동 번영할 수 있는 체제 속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자의 바람과는 달리 현실은 유럽 내에서의 구심점이 와해될 수도 있는 결정적인 이벤트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과연 영국민들의 선택은 무엇이 될까요? 그들은 당면한 사회적 갈등과 문제를 유럽연합 내 잔류하면서 스스로 소화하고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유럽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꽤 험난해 보이는 독자적인 길을 가는 쪽을 택하게 될까요? 

 

 

서양의 부활

 

리처드 로즈크랜스 지음 | 유강은 옮김 | 미지북스 | 252쪽 | 15,000원

 

 

범대서양연합은 어떻게 전쟁을 방지하고 미국과 유럽을 복원할 수 있는가

 

★★★★ 유명 외교 저널 『포린어페어스』2013년 올해의 책 ★★★★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이 말은 플라톤의『국가』에 나오는 말입니다. 소크라테스가 트라시마코스의 '정의는 강한 자의 편익'이라는 명제에 대해 반론하면서 이렇게 말하죠. 선거를 맞이 하여 정치철학의 고전들에서 석학들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구절들을 선별해보았습니다.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경우에, 그에 대한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한테 통치를 당하는 것일세. 훌륭한 사람들이 정작 통치를 맡게 될 때는, 그런 벌을 두려워해서 맡는 것으로 내겐 보이네. 그리고 그때 그들이 통치에 임하게 되는 것도 그들이 무슨 좋은 일에 임하기라도 하거나, 또는 그런 일로 안락하게 지내게라도 되는 것이어서가 아니라, 부득이한 일에 임하는 것이어서, 그리고 자신들보다도 더 훌륭하거나 또는 자기들과 같은 수준의 사람들에게 그걸 떠맡길 수가 없게 되어서 일걸세. 만약에 훌륭한 사람들의 나라가 생긴다면, 그러한 나라에서는, 마치 오늘날 통치를 맡으려는 것이 싸움거리가 되는 것처럼, 서로 통치를 맡지 않으려는 것이 싸움거리로 될 것 같기에 말일세. 그리고 이 경우에 진실로 '참된 통치자'는 본성상 자신에게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게 되지 않고, 다스림을 받는 쪽에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게 될 것임이 명백해질 것 같기에 말일세. 그래서 식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다 남을 이롭도록 하느라고 수고를 하느니보다는 오히려 남의 도움으로 자신이 이롭도록 되는 쪽을 택할 걸세. 그러므로 나로서는 이 점에 대해서, 즉 올바른 것은 더 강한 자의 편익이라는 것에 대해서 트라시마코스와는 도저히 의견을 같이할 수 없다네."

-플라톤 『국가』(서광사,1997, 101~102쪽)

 

공화국의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름지기 가져야 하는 태도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2천5백년 전 그리스에서나 현대 사회에서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통치하는 편에서의 커다란 과오, 많은 잘못과 폐단을 야기하는 법률, 인간적인 약점에서 비롯되는 모든 사소한 비리를 인민들은 반항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감당한다. 그러나 만약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된 남용, 속임수, 술책 등 이 모든 것들이 동일한 경향을 가지기 때문에 통치자의 의도가 인민들에게 뻔히 보이게 된다면, 그리하여 인민들이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가를 깨닫지 않을 수 없다면, 그들은 들고 일어나 최초에 정부가 수립된 목적을 그들에게 확실히 보장해줄 수 있는 자들의 수중에 통치를 맡기고자 할 터인데, 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한 목적이 달성되지 못한다면 유서 깊은 명칭이나 그럴 듯한 정부 형태도 자연 상태나 순수한 무정부 상태보다 낫기는 커녕 오히려 훨씬 더 나쁠 것이다.

-로크 『통치론』(까치, 1996, 212쪽)

 

로크는 저항권을 기초한 자유주의 철학자입니다. 로크가 『통치론』에서 저항권을 웅변하는 부분 정부가 인민에게 언제나 성실해야 함을 역설하는 언제 읽어도 서슬 퍼런 구절들입니다.

 

 


 

 

인민은 철학자들이 아니라 신들과 절대주의 왕들의 계승자인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옳은지를 모를 수는 있지만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것)을 할 권리를 주장한다.

- 마이클 왈저 『정치철학 에세이』(모티브북, 2009, 42쪽)

 

마이클 왈저는 전쟁에 관한 철학자로 더 유명하지만, 민주주의의 옹호자로 존경받는 미국의 철학자입니다. 위의 말은 현대 사법부의 권력이 정치의 영역, 즉 인민의 입법적 권한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현한 글에서 따온 인상적인 문구입니다. 여기서 철학자는 헌법을 해석하는 대법원의 판사들을 말합니다. 편집자는 '인민 주권을 침해하는 사법 권력'이라는 왈저의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란 인민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와는 상관없는, 인민이 원하는 것을 산출하는 제도라는 왈저의 정의는 정곡을 찌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 특히 군주의 행동에 대해서 우리는 언제나 결과만을 보게 된다. 그러기에 군주라면 무엇보다도 전쟁에 승리함은 물론 나라를 유지하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모든 사람은 그의 수단을 언제나 가치있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며 또한 찬양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중은 언제나 일의 피상적인 외양에 의해, 그리고 일의 결과에 의해 감명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은 오직 이러한 대중으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서울대출판부, 1995, 169쪽)

 

선거는커녕 근대적인 공화주의 개념도 없던 시절에도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세상의 전부는 '인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통치와 관련된 정치적 혜안과 대담한 테크닉을 군주에게 알려주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민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투표권을 가지고 지도자를 스스로 선출할 수 있게 된 우리는 일의 피상적인 외양이나 결과에 현혹되어서는 안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자유 민주주의는 전혀 야심적이지 않은 민주주의 목표에 안주하기 때문에 내가 포스트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부상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기만족 상태에 빠져 있다. 포스트민주주의 모델 하에서도 선거는 분명 존재하고 정부를 교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의 공적 논쟁은 설득 기술에 능란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경쟁적 선거 캠프에 의해 운영되는 치밀하게 통제된 스펙터클일 뿐이며, 이런 선거 캠프에 의해 취사선택된 협소한 쟁점들만 고려에 넣는다. 시민 대중은 수동적이고 조용하고, 심지어 냉담한 역할을 할 뿐이며, 그저 그들에게 주어진 신호에 반응할 뿐이다. 선거 게임이라는 이 호화로운 구경거리의 수면 아래에서, 선출된 정부와 기업 이익을 압도적으로 대변하는 엘리트들 간의 상호 작용을 통해 진짜 정치가 만들어진다. 

- 콜린 크라우치 『포스트민주주의』(미지북스, 2008, 6~7쪽)

 

콜린 크라우치는 영국의 사회학자로 21세기 민주주의가 약화되는 모습을 '포스트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는데요, 신자유주의 경제의 정치적 쌍생아로서, 보시다시피 상당히 비관적인 풍경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모습이기도 하죠). 절차적 민주주의는 유지되지만 실상은 정부가 기업과 부자들에 봉사하고 시민의 기본권과 사회적 공공성은 후퇴하게 되는 현상은 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되묻고 있습니다. 이에 크라우치 교수는 거대 기업을 제어하고, 정당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며, (현재는 극우파들이 선점한) 정체성의 정치를 새롭게 재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소말리아 해적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 왜 소말리아 어부들은 해적이 되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소말리아 해적의 탄생에 얽힌 비극적 역사와 그들의 멘털리티를 살펴봅니다. 1편보다 더욱 흥미진진합니다! 

 


 

 

▲ 아프리카의 뿔을 중심으로 점점 확대되는 소말리아 해적의 활동 범위

 

 

왜 소말리아 어부들은 해적이 되었나?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바다에 불법으로 들어오는 배들을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 에이들, 15년 형을 선고받은 소말리아 해적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소말리아는 긴 해안선으로 인도양을 마주하고 있다. 소말리아는 처음에 어자원이 풍족했다. 그러나 1991년부터 시작된 내전으로 소말리아는 사실상 국가 붕괴 상태에 이르렀다. 법과 제도가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군벌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지배하는, 폭력과 전쟁, 기아로 점철된 생지옥으로 변해갔다.

 

정부가 붕괴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법의 지배가 끝났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위생과 식수 같은 사회 인프라 역시 사라졌고, 빈곤과 기아가 기승을 부렸다. 소말리아 아이들의 25퍼센트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사망한다. 법과 질서를 갖춘 체계적인 사회는 거의 20여 년 전에 사라졌다. 여기서는 총을 가진 사람이 곧 법이다.

 

중앙 정부가 없는 틈을 타서 수많은 외국 어선들이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불법적인 조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다 건너 예맨 어부들이 출몰하면서 소말리아 어장을 노략질하기 시작했다. 곧 아무런 규제 없이 어업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세계 각지(특히 서구)에서 대형 어선들이 몰려왔다.

 

▲ 소말리아는 풍부한 어장으로 유명했다. 사진은 내전으로 폐허가 된 수도 모가디슈 거리의 상어잡이 어부.   

 

소말리아 어부들은 고갈되는 어장을 보며 절망에 빠졌다. 그들은 외국 어선들을 처음에는 위협하여 쫓아내었지만, 쇄도하는 외국 어선들의 수는 줄지 않았다. 소말리아 어부들의 폭력 수위도 점점 높아졌고 마침내 오늘날의 산업화된 해적 행위로 발전했다.

 

불법 조업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서구 선진국들은 1980년대부터 자국의 유독한 쓰레기들을 소말리아 앞바다에 무단으로 투기했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 해양 투기가 있어왔다.

 

일례로 2004년 크리스마스에 인도양을 휩쓴 쓰나미의 물결이 소말리아까지 덮쳤을 때, 소말리아 해변은 막대한 양의 쓰레기들로 뒤덮였다. 소말리아인들도, 쓰나미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유엔 관계자들도 그 광경에 깜짝 놀랐다. 이것들은 다 뭐고, 도대체 어디서 온 것들인가? 그 쓰레기 더미들은 모두 서구 세계의 폐기물이었다. 소말리아 앞바다에 투기되어 해저에 가라앉아 있던 쓰레기들이 쓰나미의 충격에 의해 해변으로 밀려온 것이었다. 유엔환경계획이 펴낸 2006년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방사성 우라늄 폐기물, 납, 카드뮴, 수은, 산업 폐기물, 병원 폐기물, 화학 폐기물, 가죽 가공에 쓰이는 약품, 기타 유독성 폐기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폐기물 대부분은 컨테이너 또는 소형에서 탱크 크기까지 다양한 일회용 통에 담긴 채 그대로 연안에 버려졌다. 현지 주민들의 건강과 환경 파괴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없었다."

 

폐기물 처리 비용은 유럽에서 1톤에 250달러 정도지만 소말리아에서는 2.5달러 밖에 안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폐기물도 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 소말리아 해안에 밀려온 유독 폐기물. 서구의 기업들은 소말리아 바다에 불법으로 폐기물을 투기하기도 하고, 소말리아 정부와 비밀 협약을 맺고 버리기도 했다.  

 

서구가 주축이 된 불법 조업과 쓰레기 해양 투기는 소말리인들이 해적 행위에 나서는 중요한 사회경제적 배경이 되었다. 여기에 내전이 지속되면서 많은 양의 무기가 소말리아로 유입되었고, 경제적으로 곤궁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찾지 못한 청년층이 인생을 건 도박으로 해적질에 가담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말리아 해적 행위는 바로 빈곤, 내전, 외국의 착취라는 삼중고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어부들의 몸부림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소말리아 해적을 해상에서 총으로 퇴치하는 일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다. "총을 들고 가난과 싸울 수는 없다".

 

 

해적의 변화

 

그러나 오늘날에는 '어자원 고갈로 해적 행위를 하는 절망한 어부'라는 이미지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 현재 소말리아 어장은 물고기들이 풍부했던 옛 모습을 되찾았다. 오늘날 소말리아의 해적 행위는 어장 고갈보다는 해적 비즈니스 자체의 높은 수익률에 때문에 이루어지고 있다.

 

유엔안보리의 무기 금수 조치 감시단의 2008년 보고서에 따르면, 쉽게 큰돈을 버는 특성 때문에 자금과 인력이 몰려들면서 해적들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바다를 떠도는 오합지졸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충분한 자금 지원을 받으면서 효율적으로 활동하는 중무장 범죄 조직으로 변모했다. 이들 가운데는 군사력과 자금 면에서 소말리아 당국에 필적하거나 오히려 능가하는 조직들도 있다. 해상을 누비는 무장 집단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이유는 무기, 탄약, 장비 등이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소말리아에는 2개의 거대 해적 조직망이 있다. 하나는 푼틀란드를 거점으로 하는 마제르텐 씨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소말리아 중부를 거점으로 하는 하바르 기디르 씨족이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해적들은 소말리아 중부를 장악한 이슬람 과격 세력에게 무기를 공급하는 밀수업에 점점 깊이 관여하고 있다.

 

▲ 소말리아 남부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알 샤바브.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도 미래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용병으로 흡수하고 있다. 알 샤바브는 최근 케냐 등 인근국가에서 폭탄 테러 등을 자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변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납치 현장에 동원되는 해적들은 해적 산업이라는 거대한 장기판의 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고 충원되고 소모될 수 있는 보병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진짜 해적이 아닙니다. 그들은 군대로 말하자면 보병에 불과합니다. 실권도 없고 얻는 것도 많지 않은데 궂은 일만 도맡아서 하는 사람들입니다. 진짜 해적들은 엄청난 돈을 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체포하기는 어렵지요. 아주 부유한 사람들이 자금을 대고 있습니다. 소말리아 해적 행위는 거대한 사업입니다." 

- 음왕구라, 동아프리카선원지원프로그램 운영자

 

 

해적의 멘탈리티

 

소형 배트와 배짱, 약간의 무기만 있으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 젊은이들은 성공한 해적이 되는 것에 매혹된다. 성공하기만 하면 커다란 자동차를 몰고 매출 좋은 상점을 몇 개씩 운영하고 근사한 파티를 열면서 그야말로 폼 나게 살 수 있다. 해적은 가장 아름다운 여자들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아내를 해외로 보내서 출산하게 한다.

 

"해적들은 못된 문화를 들여왔어요. 번쩍번쩍 광나는 차를 타고 와서, 돈을 긁어모으고, 떠납니다. 아이들이 그런 못된 짓에 물들까 걱정입니다."

- 압디 히르시, 해적 도시 에일의 주민

 

해적이 받은 몸값은 소말리아 지역 경제에 트리클다운 효과를 일으키며 해적 도시에 부를 쌓는다. 지역 상인들에게 해적들은 돈을 많이 쓰는 고객이기 때문에 좋다.

 

"그 사람들은 누가 좋은 차를 모고 가는 것을 보면 차 주인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얼마짜리요? 3만 달러짜리라면, 여기 4만 달러 받고 열쇠를 넘기쇼."

- 소말리아 지역 상인

 

해적은 수백만 달러의 꿈을 좇는 소말리아 특유의 '사업가'로 인식된다. 그들은 고속 모터보트와 총, 위성 전화를 사기 위해 어선을 팔고,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며 십여 년 동안 고기잡이로 번 돈을 모두 날리기도 한다. 위험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보상이 워낙 크기 때문에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렵다. 그들에게 합리적인 다른 대안이 없는 한 말이다.

 

"18년이나 혼란이 계속된 끝에 소말리아 젊은이들은 기회만 주어지면 무슨 일이든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해적이 되는 젊은이나 알 샤바브 민병대에 들어가는 젊은이들이 모두 그런 상황입니다". 

- 아지즈, 소말리족 케냐 기자

 

 

21세기의 해적은 언제 사라지게 될까?

   

해적 국가』의 저자 피터 아이흐스테드는 서구 사회가 과거 아프가니스탄에서 저지른 것과 똑같은 엄청난 실수를 소말리아에서도 반복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은 198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이 패퇴한 뒤에, 다시 말해 공산주의의 위협이 사라진 뒤에 아프가니스탄을 혼란 속에 표류하도록 방치했다. 아프가니스탄은 피비랜내 나는 내전에 휩싸였고,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탈레반이 탄생했다.

 

▲ 1993년 모가디슈에서 발생한 블랙호크 추락 사건. 미군이 수행한 무리한 작전 와중에 미군 헬기가 추락하고, 이를 구출하러 가는 과정에서 격렬한 시가전이 발생, 미군과 소말리아 군벌 사이에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오른쪽은 영화<블랙호크다운(2001)>의 한 장면이며, 왼쪽은 최근 공개된 사건 당시의 실제 영상이다.  

 

소말리아는 아프가니스탄을 그대로 복제하고 있다. 소말리아는 1991년 이후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다. 블랙 호크 다운의 패퇴 이후 미국이 취한 불간섭 정책은 소말리아를 전쟁과 무질서의 소용돌이 속에 남겨두었고, 그로 인해 해적이라는 형태로 거대한 질병의 징후가 나타났으며, 알 샤바브라는 이슬람 극단주의가 소말리아를 접수하기 좋은 상황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국제 사회가 마치 미봉책처럼 해상에서 해적을 퇴치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해적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은 소말리아 그 자체이다. 따라서 국제 사회는 소말리아에 건강한 정부가 들어설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해적 행위는 바다가 아니라 육지에서만 멈출 수 있습니다. 소말리아에 법과 질서를 부여할 강력한 중앙 정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 슐레이만, 해적 협상가

 

*        *        *

  더 많은 이야기가 기다립니다.

 

 

해적국가

소말리아 어부들은 어떻게 해적이 되었나

피터 아이흐스테드 지음 | 강혜정 옮김 | 미지북스 | 2011년 | 16,000원

 

소말리아 해적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동아프리카를 종횡으로 누비며 취재한 본격 르포르타주. 해적과 납치된 선원, 고향을 등진 난민, 비밀스러운 해적 후원자들, 테러리스트, 유럽연합 해군 장성 등 소말리아 해적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만나 해적 문제의 본질에 접근한 책. 하루가 멀다 하고 세계적인 해운 회사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해적들은 정말로 자포자기한 어부 무리일 뿐일까? 아니면 조직적인 범죄 집단일까? 해적 행위는 소말리아를 사로잡고 있는 극단주의라는 광기와 연계되어 있는 걸까?

 

지은이 피터 아이흐스테드

오랜 경력의 베테랑 기자이자 작가로,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분쟁 및 인권과 관련된 사건들을 취재하고 있다. 특히 <우간다 라디오 네트워크> 선임 편집자와 <전쟁과 평화 보도 연구소> 아프리카 담당 편집자로 활약하며 아프리카의 여러 문제들을 심층 보도해왔다. 우간다 내전을 다룬 책 『먼저 네 가족을 죽여라: 우간다 소년병과 신의 저항군』으로 2010년 ‘콜로라도 도서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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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캡틴 필립스>는 2009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되었던 미국 상선 머스크앨라배마 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소말리아 해적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정말로 자포자기한 어부 무리일 뿐인 걸까요? 아니면 조직적인 범죄 집단일까요? 그들과 소말리아를 사로잡고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알 샤바브)와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소말리아 해적을 본격 해부하는 글 두 편을 미지북스가 준비했습니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어떻게 배를 납치하는가?

 

소말리아 해적들은 작은 모터 보트에 소수의 인원이 타고 아덴 만을 지나는 선박을 상대로 해적 행위를 한다. 이때 모터 보트는 육지가 아니라 규모가 훨씬 큰 모선에서 출발하는데, 모선은 보통 해적 행위로 빼앗은 대형 트롤 어선인 경우가 많으며 해적들의 움직이는 해상 기지 역할을 한다.

 

AK-47, 기관총, 로켓포와 같은 소형화기로 무장한 해적들은 모터 보트를 타고 목표물로 삼은 배가 다가가 위협 사격을 하여 배를 멈추게 한다. 목표가 되는 배는 화물선, 유람선, 유조선 등 다양하다. 대형 선박이 멈추지 않으면 해적들의 작은 보트가 충돌하거나 물살에 휩쓸려 침몰할 위험도 있다. 대개 총이나 로켓포로 위협 사격을 하면 비무장 상태인 대형 선박들은 엔진을 멈춘다.

 

배가 멈추면 해적들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타서 배를 장악한다. 아덴 만을 오가는 선박들은 대개 많은 화물을 싣고 있어서 선체가 수면에서 높지 않은 상태로 항해하므로, 해적들이 쉽게 배에 오를 수 있다. 매년 약 3만 척의 선박이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소비될 많은 양의 상품을 싣고 소말리아 해역을 지나간다. 아덴만은 폭이 워낙 좁아서 대형 선박들에게 일종의 병목 구간이기 때문에 해적들의 입장에서는 납치하기가 식은 죽 먹기처럼 쉽다.  

 

영화 속 소말리아 해적. 실제 해적들은 사다리가 짧아서 배에 오르지 못하는 웃지못할 상황을 마주하기도 하고 모터보트 엔진이 고장나 대형선박이 쉴새없이 오가는 바다에서 며칠씩 위험천만하게 표류하기도 한다.

 

배를 장악한 후에는 모선으로 끌고 가서 모선에 있는 해적 무리와 합류한 후 미리 정해놓은 주변의 항구나 해변 마을로 가서 정박한다. 그러면 이제 몇 개월이 걸릴지도 모를 협상(주로 선주나 해운사와의 몸값 협상) 단계로 들어간다.

 

이 단계는 수많은 관계자들의 협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대한 비즈니스이다. 우선 납치한 배를 안전이 보장되는 항구에 정박시키고, 인질과 해적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붙는다. 외국어 능력을 갖춘 협상가, 지방 관료, 심지어 부족 공동체의 장로, 정치적인 보호막을 제공할 정부의 고위 관료, 몸값을 합법적인 은행 계좌로 넣어줄 돈 세탁 전문가 등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자금을 댈 자본가를 물색하는 것이다!

 

협상이 타결되면 몸값은 납치된 선박의 갑판 위에 떨어뜨려 주는 것이 상례다. 배에 타고 있던 해적들은 그 자리에서 돈을 나누고 헤어진다. 납치범들은 통상 30퍼센트를 갖는다. 납치범들끼리는 전체 금액을 균등하게 배분한다. 다만 처음에 오른 사람, 즉 '점퍼'는 두 배 혹은 별도의 보너스를 받는다.

 

해적 비즈니스의 투자 수익률은 얼마 정도일까?

 

해적 일을 하려면 당연히 장비가 필요하다. 우선 모선으로 사용할 트롤선이 필요하다. GPS, 레이더, 수중 음파 탐지기 같은 고가의 기기가 구비된 트롤선은 한 척당 5만 달러에 이른다. 그다음 800달러짜리 위성 전화가 있어야 한다. 물론 사용한만큼 통화료가 나온다. 해적 한 명이 AK-47소총으로 무장하는데 200달러 정도 들고, 권총은 100달러 정도이다. 기관총과 로켓포는 더 비싸다.

 

▲ 실제 소말리아 해적 사진. 해적들은 몇년 동안 고기잡이로 번 돈을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는데 탕진하곤 한다.

 

일반적인 해적 작전에는 최소 10~12명의 인원이 필요하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해적과 인질들을 먹이고 재우는데도 상당한 비용이 든다. 지역 상인들은 해적들에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식량이며 물건들을 판다. 담배 한 갑에 25달러, 염소 한 마리에 250달러, 콜라 한 캔에 10달러. 부르는 게 값이다.

 

사실 한 편의 납치극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 투자자들은 하루 비용을 대략 5000달러로 추정한다. 5000달러면 해적들에게 필요한 장비를 대주고, 먹이고 입히고, 납치한 배와 인질을 관리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즉 한 달에 15만 달러가 든다. 여기에 지역 공동체와 부족 지도자들에게 납치한 배를 정박하게 해주는 대가로 10만 달러 이상을 줘야 한다. 지역 상인들의 바가지가 더해져서 협상이 두세 달씩 지연되면 비용이 심각할 정도로 늘어나 이익을 갉아먹게 된다.  

 

납치 한 건에 지불되는 몸값은 어느정도일까? 통상적인 액수는 200만 달러이다. 현장의 해적들이 그중 30퍼센트를 갖는다. 그리고 배를 정박시킨 사람들이 10퍼센트, 지역 사회 협력자들(부족 장로, 지방 관료, 주민들)이 10퍼센트, 돈을 댄 자본가가 20퍼센트를 가진다. 그 외 나머지 조력자들이 30퍼센트를 갖는다.

 

유엔은 소말리아 해적들이 2009년에 대략 8200만 달러를 몸값으로 벌어들였다고 추정한다. 그해 해적 행위에 들어간 총비용은 대략 2500만 달러로 추산되는데, 비용을 제해도 5700만 달러의 이익이 남는다.

 

해적 행위의 수익과 비용을 나타낸 그래프(좌)와 수익 분배 구조(우) 

 

이것은 자본이 움직이는 거대한 사업이다. 자본가들은 아덴 만이라는 무대에서 인형들을 이리저리 조종하는 인형극 공연자와 같다. 몸값으로 흘러들어온 돈은 케냐와 같은 주변 국가의 부동산에 투자되어 건설 붐을 일으킬 정도이다.

 

그렇다면 실제 납치 작전에 나서는 해적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2편에서는 보다 무거운 주제인 소말리아 해적의 역사적 사회적 기원과 해적들의 멘텔리티에 대해 알아보자.

 

*        *        * 

 

해적 국가

소말리아 어부들은 어떻게 해적이 되었나

피터 아이흐스테드 지음 | 강혜정 옮김 | 미지북스 | 2011년 | 16,000원

 

소말리아 해적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동아프리카를 종횡으로 누비며 취재한 본격 르포르타주. 해적과 납치된 선원, 고향을 등진 난민, 비밀스러운 해적 후원자들, 테러리스트, 유럽연합 해군 장성 등 소말리아 해적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만나 해적 문제의 본질에 접근한 책. 하루가 멀다 하고 세계적인 해운 회사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해적들은 정말로 자포자기한 어부 무리일 뿐일까? 아니면 조직적인 범죄 집단일까? 해적 행위는 소말리아를 사로잡고 있는 극단주의라는 광기와 연계되어 있는 걸까?

 

지은이 피터 아이흐스테드

오랜 경력의 베테랑 기자이자 작가로,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분쟁 및 인권과 관련된 사건들을 취재하고 있다. 특히 <우간다 라디오 네트워크> 선임 편집자와 <전쟁과 평화 보도 연구소> 아프리카 담당 편집자로 활약하며 아프리카의 여러 문제들을 심층 보도해왔다. 우간다 내전을 다룬 책 『먼저 네 가족을 죽여라: 우간다 소년병과 신의 저항군』으로 2010년 ‘콜로라도 도서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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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인간의 진화된 본성인가?

 

- 전 세계 및 한국의 종교 분포, 그리고 세속주의자들

 

 

 

휴머니즘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주의적 기조를 갖고 있다. 그것은 자연 바깥에서 구원을 기다리는 절망의 신학이나 이데올로기를 거부한다.  - 폴 커츠

 

 

전 세계 인구의 14%만이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2010년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 unaffiliated'의 비율은 대략 16.3%, 69억 인구 가운데 11억 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출처: 이코노미스트 


그렇다면 한국인의 종교 분포는 어떨까요? 지난 200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당시 한국인 중 종교가 없다('무교')고 응답한 비율은 46.9%에 달했습니다. 2천 2백만 명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단위는 퍼센트)
     


 연도 무교  불교  개신교  천주교  기타 

 1985

57.4 

19.9  16  4.6  2.1 
 1995

49.3 

23.2  19.7  6.6  1.2 

 2005

46.9 22.8  18.3  10.9 

 출처: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1985년, 1995년, 2005년.


생각보다 많은 숫자입니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 중 절반이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한 셈입니다.(다만 한 가지 인상적인 점은, 이 비율이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관련한 사실 하나를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무교' 항목에 따르면,  특히 동유럽 및 구 사회주의 국가와 동아시아에서 '믿는 종교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 즉 '무교' 비율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2006년 Dentsu Communication Institute와 Japan Research Center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인의 51.8%가 무교라고 응답했고, 한국인은 36.4%였습니다.



무신론과 정교분리 


오늘날 많은 나라의 시민들이 세속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교분리 원칙을 헌법으로 채택한 국가가 다수이며, 몇몇 나라는 '무신론'을 국가의 교리로 채택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나라가 중국입니다.

 

국가의 태도는 실제로 국민들의 종교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앞의 위키피디아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종교를 믿지 않는 국민들의 비율의 순위를 보면 중국을 포함해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였던 동유럽 및 러시아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종교를 가지지 않은 16%의 인류(11억 명) 중 다수를 중국인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인의 문화 및 가치관을 고려하면 이 중 '무신론자'의 수는 더 적을 것입니다. 실제로 '믿는 종교가 없다'고 대답한 중국인 중 44%가 조상신을 믿는다고 답한 사실이 이 점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많은 중국인들이 '믿는 종교가 없다'고 응답한 데는 중국 공산당 및 국가의 교리로 '무신론'을 택하고 있는 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직접 특정 교리를 지정하는 것은 세속적 휴머니즘의 정신에 어긋납니다. "국교에 대한 두려움은 국가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이끌어냈고, 정교분리의 원칙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 새겨졌다."(『세속적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 본문 28쪽) 무신론을 국가의 교리로 지정하는 것은 모든 종교적 활동에 대한 박해를 의미하게 됩니다. 현대 이전의 대다수 국가가 특정 종교를 국가의 종교로 지정함으로써 사상의 자유를 탄압했다면, 오늘날 중국은 오히려 '종교를 가지지 않을 자유'를 국가가 직접 미덕으로 지정하고 칭송함으로써 '종교를 가질 자유'를 탄압하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과 일본, 프랑스, 미국 등을 포함한 현대 국가들 중 다수가 '정교분리' 원칙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교분리란 국가의 공적 영역, 예를 들어 학교, 관공서, 행정부와 사법부 등의 영역에서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나 종교의 경전을 근거로 주장을 펼치거나 타인에게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정교분리는 유럽의 16세기 종교 개혁 그리고 이어진 종교 전쟁의 결과로 세속주의(secularism)가 새로운 가치관으로 등장한 이후 점진적으로 유럽 각국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1791년 미국의 수정헌법 10개조의 제1조는("미 합중국 의회는 특정 종교를 옹호하거나 자유로운 종교 행위를 금지하거나, 언론 또는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또는 조용히 집회하고 피해를 구제받기 위하여 정부에 청원하는 인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정교분리의 원칙을 헌법에 명시한 최초의 사례입니다. 



무신론과 비신론


'믿는 종교가 없다'와 '무신론'은 다른 말입니다. '종교'란 제도화된 종교로서, 하나의 조직으로 사회 안에서 기능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교단과 성소를 갖춤으로써 체계화된 하나의 조직입니다. 이에 비해 무신론 혹은 비신론은 초자연적인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인데, '무교'보다 강하고 포괄적인 태도입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초자연적인 실재를 인정할 수 있으며, 개인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세속적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폴 커츠는 무신론(atheism)과 비신론(non-theism)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세속적 휴머니스트들은 자연을 두 영역(자연과 초자연)으로 나누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의심스러워한다. 그들은 전지전능하고, 자애로운 신이라는 신의 고전적 정의를 이해할 수 없으며, 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에 제시된 증거들이 결정적이지 못하고, 악과 신성한 정의를 조화시키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본다. (...)

기본적으로 세속적 휴머니스트들은 비신론자들이다. 즉 그들은 신의 존재, 특히 인격적인 유일신의 존재를 믿기에는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본다. 세속적 휴머니스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이 무신론자라고 노골적으로 선언하고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비신론과 무신론의 차이는 무신론자들이 보통 자신들을 유신론에 대한 반대자로 주요하게 정의하는 데 반해, 비신론자들은 자신들의 비신앙적 태도를 더 넓은 과학적·철학적·윤리적 관점의 일부로 간주하는 것이다. (49~55쪽)


비신론은 종교 혹은 신앙과 관련해서는 불가지론과 유사한 맥락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에 더해 "자신들의 비신앙적 태도를 더 넓은 과학적, 철학적, 윤리적 관점의 일부"로 간주하는 셈입니다. 이는 폴 커츠가 '세속적 휴머니즘'의 특징으로 든 나머지 다섯 가지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학적 연구 방법, 자연주의적 우주관, 휴머니스트 윤리, 민주주의적 전망, 전 지구적 휴머니즘이 그것입니다. 



종교는 인간의 본성인가


인류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는 것만으로도, 종교가 인간의 진화된 본성에 속한다는 주장을 반박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더구나 신뢰할 만한 설문 조사의 결과 전 세계 인구의 84%가 '종교'를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는 결과가 나온 만큼 반박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그러나 『신 없는 사회』(마음산책)의 저자 필 주커먼은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시민들을 심층 인터뷰한 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 사회의 종교성이 약해진 만큼 사회가 위험해진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며, 오히려 더 도덕적이고 풍요로운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앞서 위키피디아에 수록된 조사가 보여주듯 스웨덴 국민 중 '믿는 종교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46%에서 85%사이,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습니다.(덴마크는 Eurobarometer의 2005년 조사 결과로는 19%이지만 『신 없는 사회』가 인용한 결과에 따르면 그보다 많습니다.) 또한 필 주커먼이 인터뷰한 100여 명의 스칸디나비아인들들은 대부분 어릴 적에는 종교인으로서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종교를 갖지 않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인간은 오히려 환경에 따른 적응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84%의 인류가 종교를 가지고 있고, 그보다 많은 숫자가 초자연적인 실재를 적극적으로 인정함에도 오늘날 대다수 국가의 헌법이 '정교분리' 원칙을 포함하고 심지어 '무신론'을 국가 교리로 택한 사실이 인간의 자율성을 증명합니다. 『세속적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의 부제는 '모든 인간적 가치에 대한 옹호'입니다. 인간의 보편적 조건으로서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계에서 시작하자고 주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세속적 휴머니즘'입니다. 



 『세속적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 모든 인간적 가치에 대한 옹호 책 소개 바로 가기

 

 

2008부터 영국에 등장해 화제가 된 무신론자들의 버스 광고. "신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은 그만하고 인생을 즐겨라."는 문구 옆에 무신론의 선도자 리처드 도킨스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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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돌아보기

  

나를 괴물이나 학살자로 불러도 좋다. 이스라엘을 유대인 나치 국가라 불러도 좋다. 죽은 성자보다는 그게 낫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전 총리 (샤브라-사틸라 난민촌 학살에 대해)

 

유럽인 한 명을 살해하는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왜냐하면 이는 억압자 한 명과 피억압자 한 명을 동시에 해방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살해로 인해 한 명의 죽은 자와 한 명의 자유인이 남게 된다.

-장 폴 사르트르 (알제리 민족 해방 전쟁에 대해)

 


 

이스라엘은 인구 720만명, 면적 약 2만㎢ (남한 면적은 약 10만㎢)의 작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현재 이스라엘은 중동의 군사 최강국이며 유일한 핵보유국입니다. 20세기 전반기에만 해도 (대부분의 중동 국가들이 그러하듯) 이 ‘유대인 국가’는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말 시작된 시오니스트 운동은 세계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는 과업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박해를 받았으며, 특히 ‘홀로코스트’라는 사상 초유의 민족 멸절을 경험한 유대인들은 시오니즘에 고무되어 20세기 전반기에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대거 이주했습니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중동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는 땅이었습니다.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던 영국은 중동의 아랍인들을 설득해 오스만 제국에 반란을 일으키도록 했습니다. ‘아랍 봉기’라고 불리는 변방의 이 작은 전쟁은 영화<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배경이 됩니다. 이 때 영국은 아랍인들에게 전쟁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아랍인들의 독립을 약속합니다. (1915년 맥마흔 선언). 한편으로 영국은 독일과의 전쟁에 미국의 참전을 유도하기 위해 미국 내 유대인들의 영향력과 재원을 활용하기로 합니다. 그 조건으로 영국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약속하는데 (1917년 벨푸어 선언), 이는 결과적으로 일종의 이중 계약이 되고 맙니다.

 

 

4차례의 전쟁과 유대인 국가 건설

 

20세기 전반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한 유대인 민족주의자들은 자체적으로 국가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원주민인 아랍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준군사 집단인 이르군과 하가나를 창설하고 아랍인과 영제국을 상대로 무장 투쟁을 벌입니다. 한 민족 공동체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정치 지도부와 민병대를 구성하고 무력 항쟁을 수행하는 일은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독립 선포와 더불어 군사적 승리를 통해 주권을 확보한 뒤에 국제 사회의 승인을 얻는 일련의 과정을 국가 형성(nation-building)의 일반적인 경로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의 유일한 민족이 아니며, 이미 아랍계 선주민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 영국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에 넘깁니다. 유엔은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할하여 2개의 국가, 즉 유대인 국가와 아랍인 국가를 세우는 방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아랍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1948년 건국 초기부터 실제로 ‘군사력을 통해 지도상에서 이스라엘을 지워버리려는’ 아랍 국가들로부터의 도전을 극복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국가 건설은 이후 4차례에 걸쳐 일어난 중동 전쟁을 통해 공고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동지도 건국 초기부터 이스라엘은 주변의 아랍 강대국들의 위협 속에서 생존을 도모해야 했다.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 등 이스라엘 주변의 아랍 국가들은 군사력이나 인구 측면에서 압도적인 상대였고, 20세기 중후반 내내 ‘유대인 국가 파괴’라는 목표를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예를 들어 1973년에 이집트와 시리아가 일으킨 욤키푸르 전쟁(4차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재래식 군사력에 의한 국가 사멸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시리아와 이집트가 주축이 된 아랍 연합군은 48시간 만에 이스라엘군 17개 여단을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시리아-이집트 연합군의 기습으로 패전 위기에 몰린 이스라엘 군부는 마지막 카드로 핵무기 사용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이스라엘 여성 총리였던 골다 메이어는 핵무기 사용에 반대하면서 비밀리에 미국 워싱턴으로 날아가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외교 안보 보좌관에게 매달렸다. 키신저의 회고록 『위기Crisis』에 따르면 외교적 프로토콜을 무시하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워싱턴에 나타난 메이어 총리는 1시간 동안 닉슨 대통령을 붙들고 눈물로 도와달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미국은 신형 무기들을 이스라엘로 긴급 공수하고 첩보위성기로 아랍군의 동태를 알려줘 전쟁의 흐름을 뒤집었다. 막판에 승리하긴 했지만, 이스라엘이 지불한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아 전사자가 2500명, 부상병 7500명에 이르렀다. (김재명,『오늘의 세계 분쟁』, 235쪽)

 

4차 중동 전쟁을 끝으로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평화협정이 맺어지면서 대이스라엘 전쟁 동맹은 해체되고 유대인 국가 존립의 문제도 사라지게 됩니다. 이집트는 평화조약을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받게 되었습니다. 소련과 긴밀히 연계하던 이집트가 미국의 대외 원조 2위 국가가 된 것이죠. 물론 미국의 대외 원조 1위는 이스라엘입니다. (미국 전체 대외 원조액의 20%인 30억 달러). 중동에 모두가 바라는 평화가 찾아온 대신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의 문제는 아랍 형제들로부터도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점령지: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의 영토적 기초

 

4차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예상과 달리 성공적으로 생존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영토를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967년에 벌어진 3차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전쟁준비를 하던 아랍 국가들을 선제공격하여 영토를 크게 확장시켰는데, 전쟁이 6일 만에 끝났다고 하여 ‘6일 전쟁’이라고도 합니다.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새로 획득한 영토는 요르단 강 서안 지구, 가자 지구, 시리아의 골란 고원,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로 본래 영토의 7배가 넘는 크기였습니다. (이중 시나이 반도는 1973년 평화협정으로 이집트에 반환). 바로 이때 획득한 영토가 바로 ‘점령지’로 불리는, 오늘날 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심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움켜쥐고 있는 점령지야말로 팔레스타인인들이 건설해야할 국가의 기초적 영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점령지에서의 이스라엘군 주둔이 장기화되고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가혹한 억압이 지속되자 1987년에 대규모 민중 봉기인 1차 인티파다가 일어났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항쟁은 전 세계 여론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이스라엘의 무단 통치에 대한 비판을 이끌어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년간 살인, 납치, 폭탄 테러 등으로 악명을 떨쳤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도 이스라엘의 완전한 제거라는 원래의 노선을 포기하고 ‘2국가 공존’으로 방향을 틀게 됩니다. 이러한 전환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역사적인 분수령인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중재로 야세르 아라파트 PLO 총재와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팔레스타인 자치에 관한 협약을 맺음). 


 

 ▶ 이스라엘 점령지 연두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6일 전쟁 후 이스라엘이 획득한 영토이다. (왼쪽부터 가자지구, 서안지구, 골란고원) 


전쟁 윤리학의 대가이자 미국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왈저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국가를 필요로 하듯이 팔레스타인인들도 자신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국가를 필요로 한다고 말합니다. 왈저는 6일 전쟁 이전의 국경선(현재의 점령지를 포함하지 않은 원래의 국경선)으로 규정된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한 전쟁이 정당한 것처럼,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의 점령을 끝내고 독립 국가를 창설하려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전쟁도 정당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6일 전쟁 이전의 국경선 회복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화해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인 것입니다.

 

반대로 왈저는 ‘유대인을 지중해로 쓸어버리려는’ 아랍 국가들의 전쟁이나 점령지에 대한 지배 또는 병합을 추구하는 이스라엘의 전쟁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떤 이들인지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 분쟁과 중동의 평화가 위협받을 때는 언제나 이런 과격하고 공격적인 입장을 지닌 세력이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우파의 전략

 

우선 이스라엘 내 우파들을 들 수 있습니다. 리쿠드당으로 대표되는 우파들은 기본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2국가 공존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들은 점령지에 대한 군사적 통제를 지속하여 팔레스타인 국가가 영원히 불구의 상태로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처음에는 1967년 방어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결과로 이스라엘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된 지역들은 미래의 평화를 위해 사용될 협상용으로 여겨졌다. 이 시기에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인들 모두 이스라엘의 점령이 단지 일시적인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10년 후 메나헴 베긴 총리(리쿠드당)는 “점령 지역” 같은 것은 없다고 못 박아 말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통제력 행사하고 있는 모든 지역은 이스라엘의 영토라는 주장이다.

(마이클 왈저, 『전쟁과 정의』, 166쪽)

 

우파는 평화협정보다는 이스라엘이 현재 누리고 있는 힘의 우위를 통해 현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또한 유대인 국가의 존속이라는 안보 논리를 내세워 점령지에 대한 가혹한 정책을 추구하며, 아랍인들과의 대결적 국면을 조성합니다. 우발적인 폭력 사태나 의도된 테러가 발생하게 되면 이스라엘 국민들이 가지게 되는 불안과 공포를 이용해 이스라엘 국내 정치에서 주도권을 쥡니다. 팔레스타인인의 테러 행위는 이스라엘 내부에서 자유주의 진영이나 좌파 진영에게는 재앙으로 작동하며, 그들을 주변화시키는 효과를 가집니다. 

 

▲ (좌) 요새와도 같은 이스라엘 정착촌 전경 (우) 서안지구 내 점점이 흩어져 있는 정착촌 위치를 표기한 지도

 

특히 서안 지구 내의 유대인 정착촌 문제는 한편으로는 점령지에 대한 노골적인 식민화 정책이기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파가 성공적으로 기획한 정치적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번 건설된 정착촌은 철수가 어렵기 때문에 이것은 이스라엘 국내 정치에서 일종의 ‘쐐기’ 역할을 합니다. 정착촌 주민들은 점령지 정책을 역으로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우파 운동의 보루가 되는 것이죠.

 

중동 현지를 취재하면서 인상적이었던 점 하나는 팔레스타인 곳곳에 세워진 유대인 정착촌들이 대부분 외부의 공격에 대항할 수 있도록 요새화됐다는 것이었다. 팔레스타인 마을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연붉은색의 지붕을 한 현대식 주택들이 반듯반듯하게 지어져 있다면 틀림없이 정착촌이다. 현재 서안 지구에는 40만 명의 정착민들이 살고 있다. 유대인 정착민들은 이스라엘군의 보호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자체적으로도 무장을 한, 말하자면 준군사 집단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김재명,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375~376쪽)

 

마이클 왈저는 정착촌 이주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던 이스라엘 노동당 정부(라빈, 바라크 총리)가 정치적으로 큰 실수를 한 것으로 판단합니다. 정착촌 문제를 방기함으로써 이스라엘 정치에서 우파에게 유리한 지형이 형성되도록 허용했다는 것입니다. 정착민들도 ‘이스라엘 국민’이므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주둔해야 한다는 우파의 입장이 강화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것입니다.

 

우익 세력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만일 이스라엘인들이 요르단 강 서안 지구 내에 위치한 유대인 마을인 아리엘과 키리앗 아르바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인들은 머지않아 텔아비브와 하이파를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하게 되리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아리엘과 키리앗 아르바를 위해 싸우면 진정한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마이클 왈저, 『전쟁과 정의』, 170~171쪽)

 

1993년 미국의 중재로 이루어진 오슬로 평화협정의 침몰 역시 같은 시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슬로 평화협정은 기본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2국가의 공존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지지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노동당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였고 팔레스타인 측 지도자는 야세르 아라파트였습니다. 그러나 2국가 체제는 강경파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극우파에 의해 라빈 총리가 암살되고, 팔레스타인에서는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자살 폭탄 테러를 자행해 화해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이어 우파 리쿠드당의 베냐민 네타냐후가 총리가 되자 이스라엘은 강경 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

 

▲ 1993년 오슬로 협정 왼쪽에서부터 라빈 이스라엘 총리, 클린턴 미국 대통령, 아라파트 PLO총재  

 

노동당이 다시 정권을 잡았을 때 평화협상(2000년 캠프 데이비드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중재)이 재개되었으나 협상을 반대하는 리쿠드 당수인 아리엘 샤론이 예루살렘의 이슬람 사원에 무장 호위병을 대동하여 의도적으로 난입함으로써 유혈 충돌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충돌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자극해 2차 인티파다로 불리는 민중 봉기로 발전하였고, 이번에는 1차 인티파다와는 달리 팔레스타인 무장 집단들이 동원된 준전쟁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7천 명의 사망자를 낸 2차 인티파다는 이스라엘에서 우파 정권이 들어서고 팔레스타인에서도 온건파보다 과격파들이 득세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후 이스라엘 우파 정권은 미국의 조지 부시가 이끄는 네오콘 정부와 깊은 유대를 맺고, ‘힘의 우위에 기반한 현상 유지’를 팔레스타인 정책의 기조로 삼았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은 주변 국가들의 군사적 위협으로 국가 존립을 걱정하는 처지에서 중동의 최강자로 등극하였기 때문입니다. 군사력에 의한 일방주의가 협상에 의한 평화를 대체한 것입니다.

 

 

유대인 국가의 지속과 이스라엘판 아파르트헤이트

 

이스라엘 국내 정치에서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인구 지형 문제로 이스라엘을 유대인 국가로서 지속하는 문제입니다. 이는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의 문제나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유로운 이주에 관한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우파들은 이스라엘 내 아랍인 인구가 증가하는 것이 유대인 국가에 심대한 위협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이스라엘 전체 인구 720만 명 가운데 유대인이 550만 명, 아랍인이 170만 명입니다. 즉 4명 가운데 1명꼴이 아랍인인 셈이며 현재 이 수치는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유대인에 비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출산율이 비교도 안될 만큼 높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이런 인구 균형은 머지않아 무너질 전망이다. 아랍계 가정에는 산아제한이라는 개념이 없다. 나는 중동 취재를 갈 때마다 10명 넘는 아들딸을 두고 있는 집이 흔한 것을 보며 새삼 놀라곤 했다. 반면 유대인 가정은 종교적으로 아주 보수적인 사람들 빼고는 한두 명의 자녀를 두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의 아논 소퍼 교수는 이미 2003년에 “2040년이 되면 이스라엘과 점령지에서의 아랍계 인구가 거의 60%에 이를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PLO총재인 아라파트도 “시오니스트들에 대항하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아랍 여성의 자궁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김재명,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314~315쪽)

 

서안 지구에 건설되고 있는 높이 8m, 길이 720km의 거대한 분리 장벽도 인구 지형 변화를 최대한 막기 위한 이스라엘 우파의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점령지의 아랍계 인구가 이스라엘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수차례의 전쟁으로 주변 국가로 뿔뿔이 흩어진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엔에 따르면 현재 430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서안지구, 가자지구,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에 존재하며, 그중 130만 명이 난민촌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아랍 세계에서 이스라엘로 탈출한 유대인 난민도 70만 명 정도 되는데 이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하층을 이루고 있으며 이슬람에 적대적인 극우 성향을 띱니다. 이처럼 인구 지형의 변화는 장기적으로 이스라엘의 진보 진영에 유리할 수 있으나 단기적으로는 ‘유대인 국가’라는 정체성을 둘러싸고 우파의 인종차별주의적 정책을 강화하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 분리 장벽 이스라엘이 서안 지구에 건설하고 있는 높이 8m, 길이 720km의 분리 장벽.

 

 

팔레스타인: 파타당과 하마스의 대립

 

그럼 이제 팔레스타인 쪽을 알아보겠습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에는 각기 다른 이념을 가진 여러 가지 정파가 존재하지만 주류는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끌던 파타당(팔레스타인 민족해방운동)이었습니다. 파타당은 세속주의와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으로 오랜 동안 팔레스타인 독립의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이스라엘 국가 파괴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여 무수한 테러를 자행했으나 현재는 유대인 국가와 공존하는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로 노선을 바꾸었습니다. 파타당은 서안 지구에 근거지를 두고 이 지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는데 부패로 악명이 높아 민심을 잃고 2006년 총선에서 하마스에 참패를 당했습니다.

 

또 다른 주요 정당으로 하마스(이슬람 저항운동)가 있습니다. 하마스는 아흐메드 야신이 1987년 1차 인티파다 직후에 창설한 단체로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에 입각해 이스라엘을 상대로 지하드를 수행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하고 있습니다.

 

하마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팔레스타인에 이슬람 신성국가를 뜻하는 ‘움마’를 세우는 것이다. 하마스의 방향과 운동의 대의를 밝힌 것이 하마스 헌장이다. 이 가운데 제11조는 “어떤 당파도 팔레스타인 땅을 포기할 권리가 없다”고 되어 있고, 제13조는 “지하드야말로 대이스라엘 투쟁의 유일한 해결책”이며 중동 평화를 위한 국제회의 따위는 “시간 낭비이며 어린애 장난”이라고 비판했다. (김재명,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275쪽)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테러 공격을 수행해왔습니다. 하마스 창립자의 아흐메드 야신은 한 인터뷰에서 테러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야신은 2004년 이스라엘군 헬기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

 

“유대인은 나치 학살의 희생자들이지만 지금 이곳에서 그들이 나치에게 배운 짓을 그대로 저지르는 모습이다. 대대로 살던 사람들을 난민으로 쫓아내고, 다시 총으로, 대포로, F-16으로 죽이는 것은 국가 테러나 다름없다. 그들이 우리의 저항 운동을 테러라 부른다면 일종의 ‘테러 균형’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김재명, 『오늘의 세계 분쟁』, 85쪽)

 

하마스는 현재 가자 지구를 통치하고 있으며 세속주의적인 파타당과 경쟁,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종교적인 범이슬람 국가 공동체를 추구하기 때문에 세속적인 근대 민족국가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마스 헌장에서 알 수 있듯이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인들에게 내어주는” 오슬로 협정을 하마스가 지지할리 없습니다. 아라파트는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하마스 요인 수백 명을 체포하는 등 경쟁 세력인 하마스를 탄압했습니다. 이것은 이집트의 세속적 민족주의 정권이 무슬림 형제단을 탄압해왔던 것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스라엘이 초창기에 파타당을 약화시키기 위해 하마스를 지원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미국이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탈레반을 지원한 것과 유사합니다.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토니 코데스먼에 따르면 “당시 이스라엘은 아라파트의 PLO를 견제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야신의 무슬림 형제주의 조직을 밀어주었다. (김재명,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269쪽)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한결같은 무장 투쟁과 함께 학교와 병원을 짓는 등 사회사업으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였고, 2006년 총선에서는 의석의 5분의 3을 석권하여 제1당이 됩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파타당의 마무드 압바스를 지원하고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규정, 배제하는 정책을 취합니다. 하마스와 파타당의 대립은 더욱 격화되었고, 2007년에 하마스는 가자 지구에서 유혈 쿠데타를 일으켜 이 일대를 장악합니다. 이로써 팔레스타인에서 파타당과 하마스에 의한 권력의 지리적 분할이 완료됩니다. 즉 파타는 서안 지구, 하마스는 가자 지구를 각각 통치하게 된 것이죠.  

 

 

▲ (좌)가자지구 지도  (우) 하마스 창립자 아흐메드 야신과 가자 시내 자택에서 인터뷰하는 김재명 성공회대 겸임교수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 지구는 길이 40km, 폭 4~10km로 면적은 360㎢인 좁다랗고 작은 땅입니다. 자동차로 1시간이면 종단할 수 있는 이 좁은 땅에 15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높은 인구 밀도도 문제지만 북쪽으로 이스라엘, 남쪽으로는 이집트로 가는 길이 봉쇄되어 있고 이스라엘이 해상 루트도 봉쇄하고 있어 주민 전체가 “거대한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를 두고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정치범 수용소”와 같다며 가자 지구 봉쇄 해제를 촉구할 정도였습니다. 가자 지구는 1차 중동 전쟁 때 발생한 난민이 주민의 절반이며, 경제적으로도 매우 침체되어 인구 60%가 하루 2달러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테러리스트의 침입을 막겠다는 이유로 가자 지구를 봉쇄하고 있지만, 같은 아랍 국가인 이집트는 왜 가자 지구를 봉쇄해왔던 것일까요? 이것은 세속적인 독재 정권이었던 역대 이집트 정부가 하마스의 이슬람 근본주의가 이집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는 무슬림 형제단에 대해 대대적으로 탄압했으며, 후임인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은 무슬림 형제단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2011년 무바라크 정권 몰락 이후 이집트에서는 무슬림 형제단이 집권했으나 여전히 가자 지구에 대한 봉쇄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이후 이집트의 이슬람주의 정권은 2013년 군부의 쿠데타로 전복되었습니다).

 

파타당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해 전쟁을 유도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킨다고 비난하며, 하마스는 파타당이 이스라엘, 미국, 서유럽의 하마스 압살 음모에 가담하여 팔레스타인을 분열시킨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파타당과 하마스의 대립 양상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측도 강경파와 온건파 간의 갈등을 겪고 있으며,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을 때마다 분쟁이 고조되고 평화 협상이 요원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강경파들은 국외에서 대결적 국면을 조장하고 그것을 다시 국내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자양분으로 삼는데, 이 과정에서 폭력의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반면 평화를 바라는 온건파는 쌍방 간의 충돌이 치열해질수록 국내 정치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주변화됩니다.

 

 

평화로 가는 길

 

평화로 가는 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상대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20세기에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국가를 건설했듯이 아랍인들의 국가 건설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양측 강경파들이 그려놓은 국가의 이미지에서 탈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평화라고 하는 것은 대이스라엘주의와 종교적 구원에 대한 희망의 포기를 의미한다. 이 두 가지는 종교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광신자들 중 소수이지만 매우 열성적인 분파가 영토적 ‘광대함’과 연관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국가의 평화는 매우 작은 국가라고 하는 정신적 제한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매우 작은 국가라는 물리적 제약에 대해 적응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평화는 작은 크기의 이스라엘보다도 더욱 작은 ‘팔레스타인’을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이클 왈저, 『전쟁과 정의』, 158쪽)

 

마이클 왈저는 2차 인티파다(2002년) 직후에 쓴 글에서 이스라엘인들은 점령정책을 포기해야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은 테러리즘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특히 이스라엘이 먼저 정착지에서 철수하고 포용의 손길을 내밀 때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도 온건파가 힘을 얻고 더 개방된 형태의 정치가 이루어지면서 절충적 평화에 대한 지지가 표출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곧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가 스스로 겪어야할 내부적 진통의 시작을 의미하며 공존과 평화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역사는 그와는 정반대의 길, 즉 강경파들의 드라이브와 두 번에 걸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은 사상자 수의 극적인 불균형과 무고한 다수의 민간인 사망자로 인해 학살이나 마찬가지라는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대결적 국면은 앞으로도 당분간 강경파들의 국내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1. 소감 2017.08.14 01:28

    아마존의 부족 전쟁이 생각납니다

미국의 대선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오바마가 그의 비전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으로 생각되는, 미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의 연설을 중심으로 오바마가 생각하는 미국의 현재, 그리고 미래는 어떤 것인지 가늠해보려고 합니다. 연설은 2012년 9월 6일에 있었습니다.

 

오바마의 이번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의 연설은 이전의 연설들에 비해 한층 구체적이면서 풍부한 내용으로 미국의 현안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점은 현역 대통령으로서 강점이 드러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차기 4년에 대한 오바마와 민주당의 자신감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끔 일부 문장들, 예를 들어 롬니의 공격에 대답하는 내용들 중에 거두절미 위트 섞인 한두 마디들이 있긴 하지만, 문장 곳곳에 역사와 정치철학, 경제 이론과 국제정치 이론, 그리고 그의 지난 4년간 백악관에서의 경험이 잘 녹아 있습니다.

 

최근의 전당 대회 연설을 중심으로, 유명한 당선 인사 연설인 <Yes We Can> 연설과 취임 연설을 참고하여 일부 함께 인용하였으며, 연설문 인용의 경우 의역이 가미되었음을 미리 밝힙니다. 원문 링크는 글 하단 참고자료에 있습니다.

 

 

오바마와 캐치프레이즈들

 

 

오바마의 미국

 

연설에서 오바마의 말들은 “가치(value)”와 “비전(vision)”, “미래(future)”를 구체화하는 데 충실히 동원되고 있습니다. 마치 석공이 돌덩이를 떼어내어 잠재된 석상을 완성해가듯이, 점차 “우리 미국인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우리가 원하는 미국은 어떤 미국인지” 그 답을 찾아 갑니다. 그는 이번 대선이 단순히 “오바마냐 롬니냐를 고르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두 개의 문 뒤에 있는 “두 개의 미국 중에 하나를 고르는 문제”, 즉 한 번 건너면 돌아올 수 없는 국가의 경로에 관한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는 미국인들이 2차 세계 대전 시기를 전후하여 누렸던 호시절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호시절을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고 도달해야 할 일종의 지향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시절은, “한때 지구상에 존재했던 그 어느 나라들의 그것보다 두터웠고 다수였던 중산층(middle class)과 가장 번성했던 경제를 가졌던” 시절입니다. 그리고 미국을 넘어 타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평화를 위해 기꺼이 그러한 이념의 보루가 되어 “조부가 패튼 군대의 일원으로서 노르망디에 상륙 작전에 참가했고, 조모는 전폭기 조립 라인에서 묵묵히 복무했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또 “파시즘과 대공황에 승리한 나라”이자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경제를 가진 나라”, “세계 최대 생산국”이기도 했던 나라였습니다. 요컨대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세계를 실현한 나라와 그 안의 시민들이었던 것입니다.

 

 

                      

주요 국가의 세계 경제에서의 GDP 비중(서기 1년~2008년)

미국은 녹색이고, 1950년대가 정점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비단 2차 대전을 전후한 시기뿐만 아니라 개척 시기, 독립 전쟁, 남북 전쟁, 투표권의 확대 등 미국 사회가 오롯이 기억하는 역사들도 고루 활용하며, 미국인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를 찾는 준거로 삼고 있습니다. 다만 마치 전근대 중국인들이 그리워하고 또 복원하고 싶어 했던 ‘요순의 치’처럼, 오바마는 팍스 아메리카나가 실현된 시기를 하나의 이정표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레이건식의 강한 미국을 연상시키는 구절은 없었습니다.)

 

확실히 지금 미국은 과거의 영광스러웠던 패권적 지위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위 그래프에서 보듯 한때 40%를 넘나들던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국내 총 생산 비중(GDP)이 1950년대를 정점으로 꾸준히 감소하여 (여전히 굉장하지만) 지금은 20% 중반 정도를 차지하는 시대를 살고 있고, 치명적으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의 경제 성장률은 더 참담합니다. 경제력의 위축은 국가 권력의 위축을 의미한다고 볼 때, 대외적으로도 오바마는 부시 시절의 일방주의 태도를 버리고, 지구 곳곳에 흩어진 미국의 자원을 거둬들이는 한편, 다자주의와 동맹 우호 관계의 확산을 통한 의사 관철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미국

4.1 

0.3 

2.45 

3.1 

4.4 

3.2 

3.2 

1.1 

-2.6 

2.8 

1.7 

미국의 실질 경제 성장률(물가 상승 반영한 수치)

 

이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이 2000년부터 10년 동안을 “잃어버린 10년(the Lost Decade)”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역시 “지난 10년”을 미국이 대공황 이후 맞은 최악의 시기로 규정합니다. 이것은 부시 정권 8년에 대한 오바마의 총평이기도 할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총평을 풀어 보자면,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벅찬 이라크와 아프간 두 개의 전쟁을 시작하고 수행 중이었고, 경제적으로 “수입에 의존한 경제, 빚에 의존한 경제”였으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를 정점으로 각 가정은 “집이 없어지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사업장이 문을 닫고, 의료 비용은 너무 비싼” 상황을 맞고 있었습니다. 또, 새로운 시대를 경고하는 나날이 치솟는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체 에너지 산업은 지지부진 방해를 받고 있었고”, 미래를 짊어질 사회 성원을 길러내야 할 “학교 인프라는 정체하고 낡은 상태에다 지나치게 많은 학생들이 유급하고 낙오”하고 있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미국 일방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미국은 점점 더 많은 적을 낳고 강화시키고 있었으며”, 국제적으로 국제 경찰로서의 미국이 아니라 “위협적인 국가로 인식”되기도 하고, 동맹 우호 관계가 전체적으로 삐걱거리고 있었습니다. 이것들이 일관되게 가리키는 방향은 아마도 '쇠퇴'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오바마가 더욱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이 땅의 사람들이 자신감을 잃어가는 것”이었고, 또 “미국의 쇠퇴를 떠올리고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바마는 미국인이란 어떤 생각을 가진 집단이며 어떤 미국을 원하는지를 논하기 위해 찬란했던 '과거'를 거론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미래'의 영역으로 옮겨 놓고서 시민들에게 그곳을 향하여 "전진"하자고 말합니다. 오바마는 일종의 "국가 형성 혹은 국민 형성(nation-building)"을 도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오바마는 시종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행간에는 꿈틀대는 야망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잃어버린 10년”을 딛고 다시 팍스 아메리카나, 혹은 미국의 르네상스, 만약 그것도 어렵다면 최소한 몰락하지 않게 하는 데 그의 시대적 사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고 어떤 미국을 구상하고 있을까요?

 

 

중산층에 깃발을 꽂은 정권

 

오바마는 중산층에 깃발을 꼽고 있습니다. 위에 언급했듯이 오바마는 가장 화려했던 시절 미국의 번영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두텁고 다수였던 중산층”의 존재 때문이라고 믿고 있고, 현재 국력의 쇠퇴, 유지, 상승의 기로에 선 미국의 갈 길은 사활을 걸고 중산층을 살리는 데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는 일자리를 제공할 기업에 대한 혜택을 공공연히 말하고 있으며, 중산층을 포함한 이하 계층을 우대하는 감세 정책을 주장합니다. 감세 정책을 좀 부연하자면, 부시 정부 당시 마련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감세 정책이 원래대로라면 당장 내년 1월에 폐기됩니다. 오바마는 이것을 연장하되 연 소득 25만 달러를 기준으로 그 이하인 중산층에 대한 혜택은 유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의 부유층은 이전 부시 정권 시기에 내던 세금, 즉 클린턴 시기에 내던 소득세를 다시 내야 합니다. 중산층을 옹호하는 이런 모습 때문에, 공화당과 롬니로부터는 “세금(income tax)을 내지 않는 국민”을 방기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So Rich So Poor 라는 책을 쓴 피터 에델만(Peter Edelman) 같은 빈곤 퇴치를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중산층에 초점을 집중한 나머지 빈곤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재임 직전과 직후 오바마 눈에 비친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실업률이 최고점 10%를 향해 치닫던, 또 그 수치의 상승에 이바지한 계층 다수가 중산층이었던 시기였음을 상기하면, 구태여 적을 만들고 비판의 모멘텀을 그들에게 안겨줌에도 불구하고 왜 그가 적극적으로 중산층을 끌어 안고자 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연설에 포함한 모든 정책들은 이 “중산층” 건설을 도모하는 것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모기지론이나 주식에 의존하지 않는, 가계 재무 구조의 개선을 보장하는 제조업 일자리의 창출, 한시적이지만 중산층 가정들의 재무 상태가 호전되도록 기다려주는 감세 정책에서의 우대, 중산층으로의 진입을 촉진할 교육 인프라와 인적 자원의 전면적 업그레이드와 등록금 부담 완화, 취업 교육의 강화, 몰락의 한 원인이 되었던 의료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의료보험 개혁, 주거 비용 등 각종 생활 비용을 줄이도록 돕는 대체 에너지 산업 활성화 등 정책들 면면을 따져 보면 일관되게 중산층과 그 이하 계층을 건설하기 위한 맥락에 있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경제 - 제조업 부흥의 시대를 위하여

 

오바마는 한때 미국이 가졌던 강력한 제조업의 시대를 상기하며, 다시 한 번 제조업의 부흥을 말합니다. 그는 강력한 중산층의 전제 조건이 제조업 분야에서의 일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기업들이 “더 많은 수출을 하되” 미국 안에서 생산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는 기업과 공장의 해외 이전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10년을 “수입에 의존한 경제, 빚에 의존한 경제”라고 규정하면서, 어떤 경제 주체든 막론하고 안일한 경제 습관에서 벗어나, 다시금 과거 강력했던 생산 기지로서의 미국의 모습을 어느 정도 회복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린 지금 다시 기본에 충실한 시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미국이 항상 해왔던 최선의 것을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공장들이 가동되기 시작했고, 우린 다시 직접 제품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말이 가리키는 방향이 무엇인지는 명백할 것입니다.

 

또 단도직입적으로 그의 기업관을 드러내길, 그의 지난 4년은 “국내에 일자리를 유치하는 재계 지도자들과 일해온” 것이라고 자평합니다. 그리고 동정적인 해석을 경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 노동자들이 인건비가 저렴한 값싼 노동자라서가 아닙니다. 우리 노동자들은 세계 어느 곳보다 유능하며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기업들이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수백만의 고객들을 만나 제품들을 팔 수 있도록 무역 협정들을 체결해냈습니다. 그 제품들에는 하나 같이 자랑스러운 세 단어가 찍혀 있을 것입니다. 'Made in America'가 인쇄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 나라들 중에는 한국도 끼어 있습니다.

 

그는 지난 2년 반 동안 ‘제조업 부문’에서 5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자평합니다. 대략 연간 20만 개의 일자리인 셈입니다. 그리 많지 않은 수라고 할 수도 있지만, 현재 미국 전체 산업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1% 정도임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표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제조업의 비중.

파란색이 제조업. 붉은색은 금융 보험 부동산 렌탈리스 산업.

 

그는 정부의 기업에 대한 통제력에 관하여도 언급합니다. 공화당이 주장하는 내용처럼 “기업들에 대해 세금을 감면해주고 낙수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세금을 거둬 “미국 안에 새로이 공장을 열고 노동자를 훈련시키고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을 보상하는” 용도로 쓰겠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말하길, “(단순히 대기업이 아닌) ‘큰 공장’들과 소상공업자들이 그들의 수출을 배가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차기 4년 동안 1백만 개의 제조업 부문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바마 자신이 아무리 희망어린 장밋빛 미래를 말하더라도, 결국 유권자들은 오바마의 지난 4년간 경제 성적표에 대해서 말할 것입니다. 유명한 경제사학자인 니얼 퍼거슨은 8월 19일 뉴스위크 기고글에서 대단히 까칠한 태도로 오바마의 경제 성적을 혹평합니다. 


"올해 초 사적인 자리에서 대통령은 경제의 민간 부문이 잘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분명 그렇긴 하다. 주식이 그가 취임하던 2009년 1월보다 74퍼센트나 올랐으니까. 그런데 웬걸, 민간 부문의 총 일자리 수는 2008년 1월 당시보다 430만 개나 줄어들었다... 2010년도 회계 예산을 보면 대통령은 2010년에 3.2%, 2011년에 4.0%, 2012년에 4.6%의 성장을 예상했다. 그런데 실제 결과는 2010년에는 2.4%, 2011년에는 1.8%이고, 2012년에는 거의 대부분 전망이 2.3%를 넘기 어려울 거라고 한다... 실업률도 지금쯤이면 6%가 됐어야 할 텐데, (이 글을 기고한 8월 당시까지) 8.2%다... '오바마의 미국'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인구 절반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 그리고 또 그 세금 내지 않는 절반이 정부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혜택을 받는다. 반반의 미국이 되고 있다. 절반은 세금을 내고, 절반은 그걸 받아먹고 있다." - 니얼 퍼거슨, <뉴스위크> 2012년 8월 19일.

 

이외에도 따따부따 대단히 높은 강도로 까고 있습니다. 이 기사의 파장이 워낙 커서 사회 각계에서 이에 대해 조롱과 반론 역시 봇물처럼 쏟아졌다는 사실도 여기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하단 참고자료에 주요 코멘트가 있는 사이트 링크도 있으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대표적인 반박 하나만 언급하자면 폴 크루그먼은 일자리 문제에 대해,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 "지금까지의 '추세'를 보는 게 더 올바른 경제 상황 판단"이라고 말합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실업률이 대략 9.3%를 고점으로 지속적인 하강 국면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고공행진하던 실업률이 취임하던 당시와 똑같은 수치로 내려왔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당장 이 7%대의 수치에 대해서도 최근 며칠 동안 또 설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9월의 실업률 발표가 오바마의 인기에 영향을 준다고 판단한 잭 웰치 등 몇 공화당 성향의 인사들은 "실업률이 조작됐다"며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오바마 정부 기간 동안 월별 실업률 변동 추이 

 


 미국 내 민간 부문 월별 일자리 창출 수. 2012년 9월의 막대는 10만 4천 개를 가리킨다.


또한 크루그먼은 "조만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인해 일자리 수요 증가 폭이 둔화되어 매달 "9만 개 정도"를 창출해내면 충분할 거라고 하면서, 2012년도 9월 10만 4천 개의 일자리가 생겼고, 이 역시 '추세'를 보면 낙관할 근거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의 2012년 현재 누적 재정 적자는 15~16조 달러로 추산됩니다. 더욱이 최근 4년간 매년 재정적자가 1조 달러를 웃돌고 있습니다. 일단 오바마는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소박하게 4조 달러를, 물론 우리의 금전 감각으로 환산하면 4000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지만, 절감하겠다고 공약하고 있습니다. 전쟁 비용의 감소, 재정적자 감축 프로그램 가동 등으로 절감한다고 하는데, 상당히 재정적으로 고통스러운 4년을 맞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대국 미국

 

오바마는 교육의 힘을 이렇게 말합니다. “교육은 저에게 기회의 문이었습니다. 나의 아내 미셸에게도 그러하였습니다.”

 

오바마의 한국 교육에 대한 예찬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입시 제도를 예찬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부러워하는 것은 높은 교육열과 그에 비례하여 대부분 낙오 없이 의무 교육을 마친다는 점과 높은 대학 진학률, 그리고 평균적으로 훌륭한 지적 소양을 갖춘 사회 구성원을 배출해낸다는 점일 것입니다. 한국의 급속한 발전의 토대로 교육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바마는 그의 집권이 공화당 롬니보다 “미국인들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교육을 이수할 기회를 더 많이” 낳을 거라고 말합니다. 또 “약속하건대, 우리는 지구상의 어느 나라든 그들을 능가한 교육을 해내고, 그들보다 경쟁 우위에 설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교육과 발전의 함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 아래 교육 부문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입니다. “(나를 뽑는다는 것은) 향후 10년 동안 과학 교사와 수학 교사를 10만 명 더 고용한다”는 의미이며, “조기 교육이 개선된다”는 의미이며, “2백만 명의 노동자가 새로이 그들 지역의 시설에서 재취업 교육을 받는다”는 의미이자, “향후 10년 동안 대학 등록금의 인상률이 지금의 절반 이하 수준이 될 것”이라는 의미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언급 이면에는 롬니가 당선되면, 위와 같은 작위가 없을 거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습니다.

 

아주 근본적입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진취적인 마음을 심어주고 영감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교장 선생님들은 리더십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들은 배움에 대한 뜨거운 목마름을 느끼게 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배움에 대한 타는 목마름” 이런 표현은 눈여겨 봐 둘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교육이 시민 개인들의 낙오를 막는 최선의 사회보장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개인의 경쟁력을 담보하는 것이자 미국의 대외 경쟁력을 창출할 힘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업들에게 말합니다. 해외에서 직원을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 땅에 당신들이 찾던 능력을 갖춘 최선의 인재가 있습니다.”

 

 

오바마의 국제정치관 -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 그리고 외교.

 

이라크 전쟁 종식은 오바마의 업적 중의 하나입니다. 비록 롬니로부터 “수천 미국 장병의 피로 일궈낸 승리를 위태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고 비판받고 있지만, 오바마는 “4년 전, 저는 이라크 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종식시켰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부시식의 테러 집단 비호 국가를 공격하겠다는 논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9.11을 안긴 (당사자인) 바로 그 테러리스트를 다시 조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습니다.” “무너진 자리에 새로운 타워가 뉴욕의 스카이라인 위로 지어지고 있습니다. 알 카에다는 패퇴 일로에 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죽었습니다.” 이러한 대외 전쟁에 대한 태도는 아프간 전쟁에도 그대로 관철됩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성공적으로) 탈레반의 영향력을 후퇴시켰습니다. 그리고 2014년이 되면, 이 길고 길었던 전쟁 하나도 종식될 것입니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의 사망자 수 통계(2012년 10월 11일 현재)

 

표에서 보듯이 이라크에서 미군의 사망자 수는 줄곧 800~900명(부상자는 더 많습니다)을 유지하다가 2008년에는 314명, 철수를 끝마친 2012년 현재는 단 1명으로 줄어듭니다. 전쟁 종식에는 재정적인 이유도 당연히 크게 작용했습니다. National Priorities Project의 측정에 의하면, 2001년 이래 두 전쟁에 소요된 비용은 1조 3천억 달러(이라크 전쟁: 8천억 달러, 아프간 전쟁: 5천 7백억 달러)가 넘습니다. 이에 오바마는 “우리 시민 수천 명의 목숨 값과 1조 달러 이상을 앗아간 두 개의 전쟁은 이제 할 만큼 했고, 지금 시기는 다시 일종의 국가건설(nation-building)을 해야 할 때”라고 단언합니다. 롬니의 비판을 마냥 흘려듣기에는 여전히 이라크 내에 종교 갈등과 이란-이라크 갈등을 축으로 무장 세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 롬니는 전쟁의 계속을 주장할 뿐, 오바마가 비꼬듯이 “그는 우리가 어떻게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끝마칠 수 있을 것인지 말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오바마는 종식하겠다는 계획을 분명히 하며, “종식시킬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오바마가 전 세계에 투사된 미국의 영향력을 회수하고 틀어박히겠다는 식의 고립주의를 취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권력의 공백에는 항상 다른 권력이 들어와 채우기 마련입니다.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든 곳에는 다른 세력의 영향력이 채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아랍에서 진행 중인 역사적 변화는 독재자의 철혈 주먹이나 극단주의자의 증오로 채워져선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기꺼워하는 그 같은 권리를 향해 가는 보통 시민들의 바람으로 채워져야 할 것입니다.” 이 말은 만약 권력 공백의 자리에 “주먹”이나 “극단주의” 정권이 들어설 경우 미국이 개입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역시 이전 정권들과는 미묘하게 다른데, 클린터 시기와 부시 시기의 국가전략보고서에는 미국 특유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 외에 마치 세 쌍둥이처럼 자유시장의 확산에 대한 믿음이 포함되어 있는데 반해, 필자가 본 연설과 자료에서는 일단 오바마가 자유시장 경제를 따로 강조한 흔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오바마의 미국은 클린턴 식 민주적 평화론이나 부시 식의 일방주의보다 한결 덜 공격적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더욱이 오바마는 많은 표현에서 “세계와 함께”라는 전제를 답니다. 앞서 언급한 이란에 대해서, 이란이 핵 무장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에 반대하는 전 세계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언사라든지, “전 지구를 아울러 ... 핵 확산을 막기 위한 새로운 연합체를 만들었습니다” 등의 말이 그렇습니다. 일방주의적 오만을 누그러뜨리고 다자주의적 태도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부시의 연설도 항상 “세계”를 등에 업고 있었음을 떠올리자면, 한편으로 현실 국제정치는 수사와 실리가 반드시 함께 움직이지 않는 게 다반사이기도 하고, 이 부분은 단순한 수사일 수도 있겠습니다.

 

한편 오바마는 미국의 국익에도 충실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도 설파합니다. 그는 “전 지구를 아울러, 기존 동맹 관계를 강화했으며, 미국 노동자들을 위해 중국 앞에 섰습니다. 버마에서 리비아, 남수단에 이르기까지 우린 전 세계의 인권과 인류의 존엄을 진보시켰습니다.” 평화의 사도 같은, 얼핏 블록버스터 영화 주인공 같은 역할을 자임하는 관념, 그리고 그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생각이 오바마에게도 유효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타국의 인권 증진과 민주화, 평화가 미국의 이익으로 이해되는 내용은, 여전히 이전 행정부들의 그것과 마찬가지의, 타국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운 민주평화론의 맥락과 닿아 있습니다만, 이 점은 미국의 대외 정책을 관찰할 때 거의 상수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골치 아픈 문제지만, ‘선의의 개입’이라고 골수 깊이 미국인들의 정치 유전자에 각인된 내용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부시 시절과는 사뭇 다른 지점을 보자면, “우리의 이스라엘에 대한 개입 의지는 양보할 수 없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화를 추구한다는 원칙 역시 위배되어선 안 됩니다.” 오바마에게는 유태계의 로비가 안 먹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격이긴 하지만 '평화'가 이스라엘에 대한 홀대의 명분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굳이 연설에 담지 않아도 될 내용을 담은 이유는, 미리 못 박아두거나 향후 이스라엘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제정치관도 분명히 합니다. “결국, 우린 러시아를 우리의 제1의 주적으로 명명하지 않습니다. (롬니에게 묻자면) 상대는 알 카에다가 아니라 러시아입니다. 만약 당신이 낡은 냉전 시대의 사고를 하고 있다면 러시아가 제1의 주적일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당신은 베이징과도 외교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테러와의 전쟁도 계속됩니다. “테러리스트들의 음모는 분쇄되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이 절의 첫머리에서 언급했으므로 더 논하지는 않겠습니다. 

 

 

복지 - 오바마케어는 계속된다

 

롬니는 당선되면 오바마의 의료 개혁들을 되돌려 놓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주된 요지는 시민들이 원하는 노후 복지와 의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오바마는 “빈곤층과 노년층과 장애인 등 수백만 미국인들을 위한 건강 보험을 폐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난 절대로, 절대로, 메디케어를 (수혜자가 바우처라는 일종의 상품권을 받고 원하는 의료 서비스를 구입하게 하는) 바우처 체제로 전환되도록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미국인도 그들의 황금기를 바쳐 마련한 노후를 보험 회사들의 손에 저당잡히도록 해선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로상품권 같은 것이, 공공근로자에 대한 임금 보조 개념으로 지급되고 그랬습니다만, 이 제도가 수혜자에게 서비스 선택의 자유를 넘겨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수혜자를 2등 고객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고 또 상대적으로 공급자에게 무게를 두는 정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바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메디케어를 장기간의 인내를 들여서 개혁하고 강화할 것입니다. 우린 그 재원을 기존 헬스케어의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마련할 것입니다. 사회의 원로 노년이신 분들에게 수천 달러씩 더 뜯어내진 않을 것입니다.” “사회보장 체제를 약속드립니다. 그것을 강화하기 위한 책임 있는 한 단계 한 단계를 진행하는 한편, 절대 그것을 월스트리트의 처분에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환경과 에너지 -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나은 지구를 물려주기 위하여

 

오바마의 대체 에너지에 대한 시각은 에너지원 다변화나 소비자 물가 안정 같은 수준을 넘어, 경제 체질 개선과 산업화 비전으로 이어집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30년 동안 에너지 산업은 부작위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10년은 다릅니다. 우린 석유 에너지 효율 기준을 올렸고 이제 몇 년 안에 자동차들은 1갤런의 석유로 두 배 더 먼 거리를 달리게 될 것입니다.” “우린 재생 가능 에너지의 소비를 두 배로 늘렸습니다. 그리고 수천 명의 미국 노동자들은 지금 풍력 발전용 터빈과 고효율 배터리 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당장 작년 한 해 동안만 우린 하루 평균 1백만 배럴의 석유 수입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근 10년간 가장 낮은 원유 수입량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 내 자체 생산량 감소까지 감안하자면, 오바마의 말대로 이 수치는 “최근 20년 동안 석유 수입 의존도가 가장 낮다”는 평가를 주기에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연간 원유 수입량과 생산량(자주색이 수입량, 파란색이 생산량) /

미국의 1일 평균 원유 수입량.


그렇다고 화석 연료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린 지난 3년 동안 석유와 가스 탐사를 위해 새로이 수백만 에이커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더 채굴할 것”이라고 합니다. 또 여기에도 오바마식 화법이 하나 더 덧붙는데, “저는 오일 회사(또는 석유 재벌)들이 이 나라의 에너지 정책을 좌지우지한다거나 우리 해안가에 기름을 쏟게 한다거나 또는 보너스 잔치로 40억 달러의 세금을 나눠 먹도록 하진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에너지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린 바람과 태양과 청정 석탄에 투자하는 미래, 농부들과 과학자들이 협력하여 만든 바이오 연료로 차를 굴리는 미래, 건축 노동자들이 에너지 효율 높은 집과 공장을 짓고 있는 미래, 우리 발 밑에 매장된 수백 년치의 천연 가스를 활용하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미래를 선택한다면, 2020년까지 원유 수입은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고, 언급한 지하 천연 가스 산업에서만 60만 개의 일자리가 파생될 것입니다.” 수백 년치의 천연 가스는 아마도 최근 주목받은 '셰일 가스'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채산성이라든지 지반 안정성이라든지 논란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일국의 대통령의 언급으로 확인하자니 꽤 유력한 미래 비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오바마는 이런 언사들 속에 지속적으로 친환경, 에너지 절감, 국내 산업화 모색, 일자리 창출 등의 안건이 서로 연계된다는 사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좀 더 효율적인 미국 경제, 좀 더 저비용 구조의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을 이렇게 풀어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지구 온난화는 미 민주당 내에 하나의 유전자처럼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오바마 역시 그의 연설들에서 분량이 적든 많든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항상 거론하고 있습니다. “나의 계획은 지구를 뜨겁게 만드는 이산화탄소 농도를 계속해서 줄여나가는 것입니다. 기후 변화는 음모론이 아닙니다. 점점 더 많은 가뭄이 일어나고 홍수가 지고 건조한 야생의 자연에 화재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은 장난삼아 하는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기후 변화에 관해서, 최근 저희 미지북스에서 나온 책 『왜 열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나』 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기후 변화가 한 나라의 자원을 소진시켜 버리고 제도를 무력화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기후 변화와 그로 인한 지구적 재앙이란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데서 일종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조금씩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을 심화해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박원순 서울 시장도 페이스북의 한 글에서 지난 8월 ‘열대성’ 태풍의 위협을 경고하며 ‘전 지구 차원의 기후 변화’, 즉 고장난 기후는 얼마든지 인간의 예측과 준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주의를 환기한 바 있습니다. 오바마는 말합니다. “가뭄, 홍수, 산불 그런 것들이 미래 우리 아이들에게 위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여러분은 그것을 막기 위해 일조해야 합니다.”

 

 

큰 정부 vs 작은 정부, 시장 vs 분배

 

오바마는 공화당의 비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우리의 상대는 감세가 과감할수록 그리고 규제가 최소화될수록 좋다고, 그게 유일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정부는 모든 것을 해낼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록 더 좋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오바마는 롬니와 공화당이 정부가 작을수록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고전주의 경제학 특유의 사고를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오바마는 롬니의 비판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정부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공화당과 롬니가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에게 헬스케어 혜택이 없다면, 평생 아프지 않길 바라는 게 나을 것입니다. 기업이 대기중에 독성 물질을 배출해대고 여러분 아이들이 그 공기를 마시면, 그것조차 발전에 따른 부수적인 비용이니 감내해야 합니다. 창업을 하고 싶으시다고요? 대학에 가고 싶으시다고요? 롬니의 조언을 받으십시오. 그는 당신들 부모님한테는 돈이 있을 거라고 말할 것입니다.”

 

노동자 임금에 대해서는 포드주의를 염두에 둔 말을 합니다. “우린 알고 있습니다. CEO들이 그의 자동차 조립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조립한 자동차를 살 정도로 충분한 임금을 지불하면, 그의 회사도 좋아지게 됩니다.” 무분별한 주택담보 대출에 대해서도 정부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만약 한 가정이 속아서 모기지론 계약을 했는데 대출금을 상환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그들은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들의 집이 바로 사람들의 보금자리들이고 그들의 보금자리들이 바로 우리의 국민 경제입니다.”

 

국가의 시혜적 복지 정책에 대한 공격을 염두에 둔 발언도 내놓습니다. “교회와 자선 단체들이 종종은 국가가 해내지 못하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자활의 의지조차 없는 이들에게 동냥을 해주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바른대로 말하자면 우리 정부는 법을 깨뜨리면서까지 은행들에게 구제금융을 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무능력한 금융권을, 사실상 그들이 비난하는 ‘사회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비용덩어리 거지’와 다름 없다고 조롱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정부가 필요한 지점을 거론하면서,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정부가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흥미로운 네거티브한 이야기를 하는데, “여러분께서 여러분의 목소리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는 순간, 다른 세력의 목소리가 그 공백을 메우게 될 것입니다. 로비스트와 몇몇 특수한 이익 집단들의 목소리로 말입니다. 또는 1천만 달러로 이번 선거를 사버리고 싶어하는 그들 말입니다.”

 

 

* * *


오바마의 말을 최대한 신뢰하면서 연설을 살펴 보았습니다. 이 때문에 조금은 나이브한 관찰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느낌은 오바마 자신도 조금은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바마 스스로 굳이 "나이브"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자신이 내뱉은 말들을 주워담을 기회를 달라고 지지를 호소합니다. 


"오늘밤 저는 이전 어느 때보다 미국에서 희망을 봅니다. 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답을 들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작금의 도전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할 만큼 순진해서도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있기에 희망을 봅니다."

 

오바마의 4년은 아직 평가하기에 이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이 말은, 유권자들이 그가 역설한 "미국의 미래"를 확신할 근거가 아직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러 의문이 따라옵니다. 어떻게 기업들의 비용 절감을 하고자 하는 본능을 틀어 국내에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 또 국제적으로 자원 회수 명목으로 거둬들인 대외 영향력은 차후 다시 원한다고 내밀 수 있는 것이라고 볼 때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지, 미국 내에서 반-반의 미국의 만들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또 미국이란 대국의 역사에서는 낯설게도 얼핏 동아시아 개도국 지도자의 연설이라고 해도 될 만한 일부 내용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등 생각해 볼 지점들이 보입니다. 


 



인도에는 마오주의자들이 삽니다. 지금 인도에는 최소한 수백만의 사람들이 “낙살라이트” 또는 “마오주의자”란 이름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열대는 왜 죽음의 땅이 되었나>에도 소개된 바로 그 인도의 “마오주의자”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인도에는 행정구역상 28개 주와 600여 개의 지구가 있습니다. 그중 10여 개 주, 180여 지구가 낙살라이트라고 불리는 반군의 영향 아래 놓여 있습니다. 주마다 또 시기마다 반군의 영향력에 차이가 있지만, 70년대 이래 그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 지도는 2007년 당시의 반군 현황입니다.

 

 

지도를 보면, 인도 안에 모종의 지정학이 펼쳐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인도 남동부의 커다란 붉은 지역은 안드라프라데시 주입니다. 거의 주 전체가 붉은 세력 아래 있습니다. 또 북동부의 자르간드 주와 서벵골 주, 비하르 주 일부에 걸쳐 붉은 지역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붉은 지대를 중심으로 인도 남부와 동부를 잇는 전역에 걸쳐 붉은 기운이 번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붉은 지대를 일러 “붉은 회랑(the Red Corridor)”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회랑 지대가 인도의 마오주의자들을 품고 있습니다.

 

 

 

 (왼) 낙살라이트의 영향권 / (오) 붉은 회랑 또는 낙살라이트 회랑

 

이들은 반란군입니다. 인도 정부와 전쟁 중인 무장 집단입니다. 또한 이들은 게릴라입니다. 일부 해방구에서는 대로를 활보할지 몰라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숲과 정글에 몸을 숨긴 채 지하에서 게릴라 투쟁을 하는 집단입니다. 또한 이들은 마오주의자입니다. 인도에 웬 마오주의냐고 반문할 분들이 있을 텐데, 이들은 분명히도 1960년대부터 마오의 이념을 이상으로 삼아 투쟁해 온 마오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며, 그들도 인도 정부도 서방 언론도 그들을 낙살라이트 또는 마오주의자라고 부릅니다.

 

 

  

 (왼) 마오쩌둥 문양이 그려진 깃발을 든 인도 청년 / (오) 마오쩌둥의 사진

 

낙살라이트라는 이름은 인도 서벵골 주의 낙살바리(Naxalbari)라는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낙살바리는 서벵골 주 다르질링 지구에 속하는 마을로 플랜테이션 농업이 이뤄지던 곳이었습니다. 이곳의 농업 노동자들은 토지와 소출에 관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곤 했는데, 그러다 사건이 터졌습니다. 1967년 5월 25일 경찰이 실탄을 발포하여 9명의 농민과 2명의 어린 아이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마른 장작에 불이 붙은 것처럼 이 사건은 향후 낙살라이트 운동이 인도 전국으로 확산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낙살바리 마을은 인도 서뱅골 주의 북쪽 끝에 있다.

 

낙살리즘을 관찰할 때 이 1967년은 여러모로 중요한 해입니다. 왜냐하면 1967년의 이 사건을 기점으로 인도 공산당이 대대적으로 분기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인도 공산당-마르크시스트(the Communist Party of India-Marxist, CPI-M)는 점차 정당을 통한 의회 정치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더욱이 서뱅골 주와 케랄라 주에서의 선거 승리에 힘입어 그러한 추세가 강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전년의 중앙위원회에서는 반동 정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을 아우르는 선거 동맹체를 구성하자는 등의 내용을 논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편에 이러한 합법 노선을 '개량주의'라고 비판하며, 무장 혁명 노선을 주장하는 강경 세력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낙살바리 봉기를 이끌었던 사람들입니다. 낙살바리 봉기는 강경파들이나 중국 공산당의 눈에 “터질 게 터진” 것으로 보였고, 그들은 조만간 봉기의 물결이 전 인도를 휩쓸게 될 것으로 보았습니다. 인도 정부는 곧바로 낙살라이트를 불법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고 진압에 나섰습니다. 낙살바리 봉기는 일단은 불과 몇 달 만에 진압되었습니다.

 

여기서 이들이 왜 '마오주의'인지 알기 위해 차루 마줌다르라는 지도자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 마오주의의 원류가 그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독립 운동에 참여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살인적인 노동 조건으로 고통 받던 다르질링 차 플랜테이션의 농업 노동자를 비롯한 최하층의 농민들을 조직하고 그들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는 인도를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로 규정하고 미국의 원조를 받는 것은 미 제국주의에 예속되는 길이며 오직 농민에 의한 농업 혁명을 통해서만 인도의 식량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음을 제시했습니다. 흐루쇼프의 수정주의 노선이 지배하는 소련 또한 제국주의로 규정하고 소련의 지원도 거부했는데 그는 당시 중·소 논쟁에서 철저하게 중국의 편에 섰습니다. 그들의 슬로건은 ‘마오쩌둥은 우리의 의장’이었습니다.

 

 

 

(왼) 차루 마줌다르 / (오) 마오쩌둥과 차루 마줌다르의 흉상

 

1967년 봉기가 진압되었지만, 차루 마줌다르 등 지도자들 다수는 살아남아 흩어졌고, 이는 인도 "붉은 회랑"에서 동시다발적인 무장 투쟁이 벌어지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1969년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한 인도 공산당-마르크스레닌주의(CPI-ML)을 창설하며 기존의 인도 공산당과 완전히 갈라서게 됩니다. 그리고 1972년 차루 마줌다르가 인도 당국에 의해 죽은 후, 이 CPI-ML은 수십 개 분파로 갈라져 지하 투쟁을 전개하게 됩니다.

 

인도 정부는 이미 낙살라이트 운동이 출현한 이래 이들을 불법 세력으로 규정하고 집요하게 진압해왔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도 정부는 1967년의 낙살바리 봉기 때부터 대대적인 진압을 실시하고, 또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만, 그러한 성공은 한시적이었습니다. 이들은 항상 다시 돌아왔습니다. 좀 더 조직화되고, 영리해지며, 은닉한 상태로 돌아와서 저항하였습니다. 이것은 70년대, 그리고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복되는 양상입니다. 2005년 인도의 만모한 싱 당시 총리는 한 연설에서 낙살라이트를 일러 "인도 국내 안보상의 가장 심대한 위협"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위협 인식에 준하는 진압 작전을 예고하는 말이기도 하였지만 말입니다.

 

낙살라이트가 면면히 그 흐름을 이어지는 데는 여러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전통적인 요인으로 인도 농민들의 상시적인 빈곤과 중앙 정부에 통합되지 않는 숲과 정글을 배경으로 생활하는 부족 집단들의 존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인도 농민들의 빈곤 문제는 대단히 심각한 상태입니다. 크리스천 퍼렌티는 <왜 열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나> 책에서 인도 농민들이 맞은 구조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인도 농민들은 정부로부터는 외면당하고, 지주와 고리대금업자 사이에 치여 빚의 족쇄에 걸려 움쭉달싹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들은 미친듯이 물을 빨아대는 유전자 조작 목화의 포로가 되어 다른 종자를 키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채무자이고, 채권자인 고리대금업자들이 목화 재배를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채권자들은 채무자들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을 수 없는 작물이자 언제 어디서든 교환이 가능한 목화를 대출의 조건으로 내겁니다. 그리하여 농민들은 목화에 물을 댈 우물을 파기 위해 돈을 빌립니다. 정부는 경제 자유화 원칙 아래 관개수로 사업을 지방 차원에서는 사실상 방관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농민들은 자비로 우물을 파야 합니다. 한편 목화가 지력을 흡수해 황폐해진 토지에 뿌리기 위해 화학비료도 구입해야 합니다. 지하수 우물은 점점 수위가 낮아지고, 땅의 지력은 점점 더 쇠약해집니다. 빚은 점점 늘어나고, 다시 돈을 빌려야 하는 악순환에 갇힙니다. 그리하여 많은 농민들이 생계를 위한 사투 끝에 자살하거나 혹은 이웃한 숲에 있는 낙살라이트가 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립니다.

 

한편 부족 집단들의 존재도 꼽을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빈곤했으며, 영국 식민지 시기부터 영국 정부에 저항해 온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중앙 정부의 개발이 그들의 이주와 격리를 의미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토대 위에 마오주의가 스며듭니다. 마오주의자들은 그들을 해방시켜줄 거라는 믿음을 주는 한편, 중앙 정부에 저항할 능력을 제공합니다. 이렇게 변두리 부족민들이 낙살라이트화하면서, 인도 정부의 개발을 통한 통합 전략이 숲과 정글 곳곳에서 좌초됩니다. 결국 인도 정부는 국가 권력의 본능과 자본가 개발업자들의 요구에 부응해 다시 무력 진압의 수단에 손을 가져가게 됩니다.

 

지리적 요인도 꼽을 수 있습니다. 인도의 텔레그라프 인터넷판 2009년 9월 3일자 기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Y.S. 라자세카르 레디가 마오주의자들을 안드라프라데시 주 바깥으로 몰아냈지만, 이런 성공은 근처 오리사 주, 자르칸드 주, 차티스가르 주, 그리고 벵골 주에 있어서 재앙과 같았다. 왜냐하면 도망친 반군들이 그곳들에다 기지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즉, '붉은 회랑'이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일거에 일소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인도 동부와 남부 전역에 걸쳐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을 소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2000년대 들어서는 한 가지 더 심각한 요인이 낙살라이트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바로 '가뭄'입니다. 다시 크리스천 퍼렌티의 견해를 빌려오자면, 그는 낙살라이트 전통이 이제 '가뭄 반란군'의 형태로 진화하여, 계급 투쟁을 넘어 '메마른 분노의 폭탄'을 던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가뭄이 들면, 은퇴했던 혹은 반쯤 은퇴했던 게릴라들이 숲으로 들어가 낙살라이트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인도는 2010년 현재 전 국토의 40% 남짓만이 관개수로 정비가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을 놓은 상태입니다. 즉, 가뭄의 충격을 완화해줄 인프라가 없기 때문에 다수의 농민들이 가뭄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됩니다. 농민들 혹은 귀향한 낙살라이트들이 다시 터전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가뭄'과 싸워 이겨야 하는데 이길 수가 없습니다. 지하수의 수위가 낮아지고,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는 요원한 사업이 됩니다. 위의 낙살라이트 영향권 지도와 아래 인도의 강우 지도를 대조해 보면, 장차 강우량이 적은 지역에 대한 정부 통제력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연간 강우 지도. 2006년 당시.

해안에 면하는 서고츠 산맥 이남과 비교하여 내륙의 강우량은 현저히 낮은 편이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인도 11개 주에서는 낙살라이트와 관련된 사상자가 주별 평균 1,500명이었다고 합니다. 11개 주이므로 곱하기 11을 하면 대략 붉은 회랑에서 15,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03년 안드라프라데시 주의 총리 찬드라바부 나이두는 클레이모어 지뢰 공격을 받았다. 사진은 그가 탔던 차.

 

2004년에 낙살라이트들은 안드라프라데시 주의 인민전쟁그룹과 비하르 주의 마오공산주의센터를 통합하여 CPI-Maoist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렇지만 낙살라이트는 그 조직의 방식도, 투쟁의 방식도 정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직은 통일되기보다 부족 단위에 충실한 분파의 형태로 거의 부족의 수에 준하는 숫자의 개별 단위가 존재한다고 하며, 투쟁의 방법도 학생과 도시 지식인의 공개적인 정치적 지지에서부터 소작농 조직들의 도로 점거 같은 비폭력 직접 행동, 게릴라 집단들의 테러 방식(암살이나 지뢰 매설) 등이 뒤섞인 특이한 운동입니다. 즉, 지식인과 도시민들과 농민과 부족민과 게릴라 어느 집단으로 특정하기가 난망하게 꼬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도에서 유명한 낙살라이트 작가 바라바라 라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의회는 달콤한 독과 같다. 과거 TDP(지역 정당) 정부는 항상 우리와의 대화를 배척했는데 현재 의회는 평화와 대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협상 테이블 마련이라는 만남을 가장하여 혁명가들을 색출하고 죽이려는 속셈이다.

 

인도는 어떻게 이 갈등을 해결해야 할까요? 크리스천 퍼렌티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칠까 합니다.

 

남부 도시에서는 정보통신 기술과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 붐으로 새로운 억만장자 계층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도 인도의 정치 지도층은 절대다수의 국민에게 전력, 물, 기본적인 의료 및 교육 서비스도 제공하지 못한다. 아니, 그러려는 의지가 없다. UN의 다차원 빈곤 지수에 따르면 인도의 여덟 개 주에 사는 빈곤 인구가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의 빈곤 인구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인도의 지배 계층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각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후 변화가 그들을 파멸로 몰아갈 것이다. 인도가 어떻게 낙살 게릴라들에 맞서 싸워야 할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경제 재분배, 사회 정의, 지속가능한 개발로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길만이 반란을 진정시키고 평화와 질서를 회복하는 길이다.

-  <왜 열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나>, 261쪽.

 

 * 최초 글 완료 시 2004년에 출범한 CPI-Maoist에 대해 합법 정당이라고 표기하였으나, 정호영 선생님(인도 자다푸르대학교 사회학 박사과정)께서 불법 단체라고 지적해주셔서 수정하였습니다. 현재 인도에서는 CPI-Maoist에서 나온 문서를 소지하거나 읽는 것만으로도 처벌이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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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자 2021.04.08 01:34

    정말 너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왜 이런 블로그를 이제야 알게된건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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