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저자 강연③ 

- 2009년 교원 시국선언, 샌델식 논리의 결론은?


아래 내용은 지난 2012년 11월 21일 저녁에 진행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의 저자 이 한 선생님 강연을 녹취, 정리한 것입니다. 세 편으로 나누고 질의응답까지 더해 미지북스 블로그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2009년 교원 시국선언 사건을 통해 살펴보는 샌델식 논리의 결론을 소개합니다. 


1. "네 몸은 네 것이 아니다!" - 신장 매매 문제

2. "노동자의 본성은 … ?" - 비정규직 문제

3. 2009년 교원 시국선언, 샌델식 논리의 결론은?

4. 질의 응답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저자 강연 정리


2009년 교원 시국선언, 샌델식 논리의 결론은?



교원 시국선언 사건, 2012년 대법원 판결

 

세 번째 사례는 교원의 시국선언에 관한 것입니다. 2012년 4월 19일 대법원 선고가 있었습니다. 먼저 판결의 내용부터 간략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현 정부 들어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전 대통령이 자살하는 등 무리한 국정운영에 대해 각계의 비판 성명이 있었습니다. 변호사, 영화계, 문화인들의 성명에 이어 교원들의 시국선언도 나왔습니다. 그 내용인즉슨, 현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비롯해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일제고사 등 교육정책에도 무리가 많음을 비판하면서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변호사들의 성명에 대해서는 누구도 쉽게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교원, 공립학교 교사들의 시국선언에 대해서 검사들이 기소를 했습니다. 유무죄를 다투며 결국 대법원까지 갔고, 대법원은 교원들이 유죄라고 판결을 했습니다. 공무원법 66조 1항, “공무원의 집단행동을 금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들었죠.

 


 시국선언 준비 당시 교과부의 자체 검토 의견. 교과부의 의견과 달리 검찰은 국가공무원법 66조를 적용해 기소했고, 대법원은 결국 유죄로 판결했다. 


실제로 시국선언이 집단행동이기는 합니다. 공무원이 집단행동을 하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죠. 장례식장에 집단으로 참여하거나, 예배(검찰청에서도 기독교인 검사들끼리 모여 예배도 보고 그럽니다), 마라톤 대회, 학술 대회 등등. 세상을 넓고 집단적으로 할 일은 많습니다. 이것들을 모두 처벌하게 되면 문제가 있으니 대법원 판례는 “직무 전념 의무를 해태하게 할 경우”, 즉 직무를 잘못하게끔 영향을 미치는 집단 행위만 처벌하는 것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수업 시간 외에 진행한 시국선언이 여기에 해당이 되는가 하는 법 해석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내 마음 속의 저울 기법 - 자유 vs 공익

 

공무원인 교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저울의 한 쪽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대 주장의 근거로 ‘공익’이 등장합니다. ‘공익’에 무엇이 포함되는가에 따라 (변호사·교수와는 달리) 특별히 교원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처벌할 수 있는 위력의 발휘 여부가 결정되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이 지점에서 정치철학적인 발상, 헌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가 생깁니다. 헌법은 표현의 자유와 정치 활동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되어 있으니까요. 한편 공무원법에는 정치 활동 금지의 조항도 있습니다. 다만 이 조항은 선거운동 금지 조항으로, 이 법은 검사가 근거로 들지 않았습니다. 검사는 시국선언 사건과 관계된 공익으로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들었습니다.

 

이 문제에서 우리는 제가 ‘내 마음 속의 저울 기법’이라고 부르는 사고방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 속의 저울’ 기법이란, 이런 종류의 문제를 두고 규범적인 학문을 공부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태도를 말하는데요. 저울의 한 축에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놓고, 정치적 중립성을 다른 한 축에 두고, 자유 연상으로 무게를 재보는 거죠. 몇 킬로그램이 나가느냐 하는, 결국 무게 재기의 문제입니다. 판사든, 국민 다수든, 이런 식으로 판단하는 게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태도입니다.

 

저는 규범적 판단이 이렇게 내 마음 속의 저울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치들을 추상적인 차원에서 마음 속 저울에 올려놓는 방식으로는 서로 우기는 수밖에 없습니다.(『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에서는 대학생 이외의 과외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제도를 두고 위헌 여부를 논의하는 사례를 들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만 말하는 상황에서는 논증 대화는 종료됩니다. 만약 그것이 전부라면, 우리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궁금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를 많이 낳아서 세뇌시켜야 합니다. 자신의 저울에서 더 무게 있는 가치로 세뇌해서 다수결로 이기면 됩니다.

 

모호하기만 한 공익

 

교원 측 변호인들은 국가공무원법 66조 1항과 교원노조의 정치활동을 ‘일절’ 금지한 교원노조법 제3조를 가지고 헌법재판소에도 갔습니다.(하지만 헌재는 수년 전 국가공무원법 66조에 대해서는 “합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교원노조법 제3조는 위헌법률 심판으로 제청되어 헌재에 계류 중입니다.) 국가공무원법 66조에 대한 판결에서 헌재는 “근무 시간 내외를 근무하고 일률적으로 정치활동을 금지해도 감수성과 모방성, 수용성이 왕성한 초중등학교 학생들에게 교원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점과 교원의 활동은 근무 시간 내외를 불문하고 학생들의 인권 및 기본 생활습관 형성 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잠재적 교육과정의 일부분인 점을 고려할 때” 정치적 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교원 시국선언을 유죄로 판단한 이번 판결에서 ‘공익’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정치적 편향성, 당파성을 명백히 드러내는 행위와 같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만한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했다고 할 때 공익에 반한다."

 

여기서 헌재가 말한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자, 교원이 있고 학생이 있습니다. 교원이 퇴근 후 정치적인 발언을 한다고 해봅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하고 있는 발언들, 현 정부는 잘못되었다, 4대강은 잘못되었다 등일 수 있습니다. 입헌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공동의 의사 결정에 대한 의견이면 무엇이든 여기에 해당됩니다. 자신이 교사임을 밝히며 인터넷에도 올렸습니다. 학생은 감수성과 모방성이 왕성하기 때문에 교원의 발언을 접함으로써 가치관에 혼란이 온다는 것이죠. 학생들에게 미치는 위와 같은 영향이, 이것을 억제해야 하는 이익이 공익에 속하고 따라서 기본권인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일률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라는 문제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샌델식으로 생각한다면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요? 샌델은 정치 공동체에서 권리와 의무를 규정할 때 ‘구성원들의 미덕을 어떻게 증진하느냐’, ‘공동체의 탁월성을 어떻게 높이느냐’가 주된 관심사입니다. 교사의 행동이 공동체의 미덕을 증진한다면 처벌하면 안 될 것이고, 발언하지 않는 것이 공동체의 미덕을 증진하거나 혹은 발언함으로써 공동체의 미덕이 저하된다면 금지해야 합니다. 샌델 본인이 이 사건을 어떤 말을 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미국 사회에서는 교원의 정당 가입부터 허용이 되기 때문에, 샌델  이에 동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샌델의 결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샌델의 이런 사고방식, 즉 ‘정의 또는 국가 공동체의 규범에 관한 질문들은 근본적으로 미덕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고방식은 결국 흐리멍덩한 분석에 불과합니다. 해당 사건에서 변호인 측은 외국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한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선거 운동의 자유와 정당 가입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으며, 시국선언의 경우는 정책이나 정책 방향에 대한 의사 표시에 불과한데, 이마저 금지하는 나라는 OECD 국가 중에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교원들의 발언은 민주주의의 능동적 시민의 모습이고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논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검사와 판사는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았습니다. 실제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 결과는 없습니다. 그냥 자기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이죠. 미덕을 증진하는지 저하하는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설사 미덕을 저하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권리의 행사를 금지할 이유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몇몇 언론이 한국 사회의 미덕을 저하한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이란 것은,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것이 공동체 전체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두고 의견이 상충하는 사람은 항상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해 샌델은 끝까지 가보자고 말합니다. 미덕을 증진하는지 저하하는지 결론을 내지 않고서는 권리의 문제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샌델의 주장은 한국 사회에서 규범을 다루는 사람들 및 일반 시민들의 생각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실제로 이 판례에서도 ‘부정적’이라는 판단에 근거해 처벌했고요. ‘표현이 미치는 영향이 부정적이라서 처벌한다.’라는 말은 단순한 논리에 불과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학생들이 받은 영향이 대체 무엇일까요? 세뇌나 강제는 당연히 아닙니다. 영향이란 한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한 필연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유명 연예인의 정치인 지지 선언에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영향을 받겠습니까. 지식인, 대학 교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향의 순위로만 생각하면, 교원의 직무 밖에서의 발언이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영향에 정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모두 같은 종류의 영향이므로 어떤 것은 괜찮고 어떤 것은 나쁘다고 말할 근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원이 미치는 영향만 특별히 처벌하려면 특정 원리에 근거해 ‘이것이 부패된 것이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작은 자유를 부여 받는 당사자조차도 납득할 수 있는 이익인가

 

예를 들어 동사무소 공무원이 특정 단체를 지지한다고 해봅시다. 등본을 발급 받으러 갔더니 그 직원이 이렇게 말합니다. “발급 전에 제가 나누어 드리는 이 정책 자료집을 읽어보시고, 다 읽었다는 것을 쪽지 시험을 쳐서 80점 이상을 받으면 등본을 발급해 주겠습니다.” 하버마스는 이를 ‘불투명한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논거의 질 혹은 논거의 질과 관련해서 획득하고 있는 신뢰가 영향력으로 전환할 경우에는 투명한 전환입니다. 반대로 논거의 질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경우, 예를 들어 돈, 협박, 무력, 다른 일을 하라고 주어진 권력이나 권한을 남용한 것이 영향력으로 전환하는 경우 이를 불투명한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스스로 수용할 의사가 있어서 찾아보는 것 이외의 것을 강제로 듣거나 봐야 하지 않는다는 공정한 권리를 침해한 것입니다. 만약 교사가 교실에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소속 정당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면? 지금 여러분들은 저의 이야기를 듣다가 언제든지 떠날 수 있습니다. 교사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학생은 떠날 수가 없습니다. ‘갇힌 청중’이 되는 것이죠. 교사가 학생들에게 말할 수 있는 권한은 보편적인 교육을 하라고 주어진 권한이지, 자신의 특수한 정강이나 종교적 신념을 설파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종교의 경우에 비추어 보면, 자신이 교원임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신앙 고백을 할 경우 간접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선생님의 고백을 듣고 선생님을 평소 존경하던 학생이 자신도 교회에 가고 싶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투명한 전환입니다. 영향은 받았지만요. 종교 활동의 경우 그런 영향이 미친다 하더라도 금지할 수 없고, 또한 교원이 아닌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금지할 수 없다면, 교원의 경우에만 이를 금지하는 것은 어떤 원리에도 어긋나며 특히 공정성의 원리에 어긋납니다.

 

이 분석은 공정성을 핵심으로 합니다.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으로서 정책에 대해서 비판적 의견을 밝힐 자유가 있는데, 만약 이 자유를 특수한 사람들에게만 축소하려면 그 근거가 모든 시민들에게 납득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그 자유를 줄일 수밖에 없는, 가장 작은 자유를 부여받는 당사자조차도 납득할 수 있는 이익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이익이 다른 경우와 아무 일관성이 없고 단지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이익이라면,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공동체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치철학적인 규범 분석의 필요성

 

이렇게 분석했을 때, (미덕 이론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한국 사회 시민들이 일반적으로 좌변에는 자유나 어떤 권리를 놓고, 우변에는 그와 대립한다고 생각되는 가치를 놓고, 끌림에 의해서 판단하고 그 결과 자유를 제한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토대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헌법상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또는 국민에 대한 봉사의 의무라고 했을 때, 발톱 깎는 것부터 변기의 물을 내리는 것까지 국민 모두에게 봉사한다는 것, 혹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정치적 중립을 모든 경우에 지키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투표를 하지 않아야 되겠죠. 언어 자체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정치철학적인 규범 분석이 현실의 법 해석에 도입될 수밖에 없고, 또한 입법의 고려사항으로 도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사건에 대한 판단을 피할 수는 없지만, 뭉뚱그려 한쪽에 공동체의 이익을 놓고 다른 쪽에 사익(교원의 정치적 표현에 관련된 사익)을 놓고 저울질하는 방법이 우리 사회의 시민의 지위를 끊임없이 왜소화하는 심각한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저자
이한 지음
출판사
미지북스 | 2012-10-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이성적인 시민이 되기 위한 ‘진짜 정의론’을 만나다!『정의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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