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知 - 책 읽기2012.12.18 11:58


대선을 하루 앞두고 있는 오늘은 의무 투표 제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투표율만으로도 어떤 후보가 당선될지가 예견되어 "투표 시간 연장"이 뜨거운 화두가 되었습니다. 이제 성숙한 정치 문화의 발전과 함께 우리 사회에도 의무 투표 제도의 도입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의무 투표 제도는 의무적으로 유권자에게 투표에 참여하도록 하는 제도로, 투표 불참자에게 일정한 벌칙이나 불이익을 부과합니다. 현재 32개 나라가 의무 투표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OECD 국가 중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스, 스위스, 터키,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의무 투표 제도가 투표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지, 그리고 투표하지 않을 권리가 기본권에 해당하는지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의 해당 내용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투표하지 않을 자유는 기본권적 자유인가?

 

 

의무 투표 제도는 의무적으로 유권자에게 투표에 참여하도록 하는 제도로, 투표 불참자에게 일정한 벌칙이나 불이익을 부과한다. 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유지하려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충분한 투표율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투표의 특성상, 타인에게 위임해서는 안 된다. 매표나 대리투표는 민주주의 근본을 뒤엎는다. 따라서 자유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충분한 숫자의 시민들이 어떤 활동을 직접 수행해야 한다면, 그 활동은 모든 시민들이 균등하게 부담해야 한다. 투표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의무 투표 제도를 실시할 경우 투표하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므로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상태를 기본권적 자유로 혼동한 것이다. 어떤 상태가 기본권으로 보장되어야 할 영역인가 아닌가를 알아보는 방법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그런 상태를 모든 사람들이 온전히 누린다 하더라도 자유의 질서를 지탱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모든 사람들이 온전히 행사한다 하더라도 사회는 발전한다. 거주지 이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모든 사람들이 온전히 행사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투표하지 않을 자유를 모든 사람들이 온전히 행사할 경우 민주주의 체제는 유지될 수 없다. 투표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은, 오로지 투표 행위를 부담하는 충분히 많은 시민들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자유의 질서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기본권적 자유에는 이런 전제가 없다. 따라서 투표하지 않을 자유는 보편화될 수 없는 무임승차이다.

 

가상의 사례를 들어 문제를 비춰보면 더 명확해진다. 가상의 외계 행성이 있다고 하자. 이 행성은 특수한 에너지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에너지가 조금씩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행성이 현 상태를 유지하려면 매달 특정일에 행성 주민 중 충분한 수의 사람들이 에너지를 대표자에게 보내고 그 에너지를 행성에 투입해야 한다. 이전에는 에너지를 보낼지 말지를 개인의 선의에 맡겼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에너지를 보내는 사람이 줄어들고 그 날만 되면 다들 소풍을 가버린다. 물론 보다 많은 에너지를 보태려는 선의로 부지런히 수련하는 사람도 있지만, 예상할 수 있듯 다수는 아니다. 일단 에너지를 보내고 나면 급격히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이 경우 에너지 보내기를 의무화한다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구성원들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부담을 공적으로 제도화하여 나눈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너지를 보내는 행위를 두고 이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의 발휘이고 특권적인 삶의 영역이며, 행성의 정치의 목적은 에너지를 보내려는 미덕을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주장은 말장난이자 목적과 수단을 뒤바꿔 놓은 것일 뿐이다.

 

오히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자신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특정 수준 이상의 정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지금보다 훨씬 심의적인 장(場)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이다.


 

 



 

위 내용은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이한 지음, 미지북스, 2012) 231~233쪽을 발췌한 것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저자
이한 지음
출판사
미지북스 | 2012-10-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이성적인 시민이 되기 위한 ‘진짜 정의론’을 만나다!『정의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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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지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