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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知 - 책 읽기

20세기 초 아마존의 푸투마요 '살인의 추억' - 『아마존: 정복과 착취, 경외와 공존의 5백 년』




『아마존: 정복과 착취, 경외와 공존의 5백 년』

존 헤밍 지음 |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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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강과 생명의 숲, 그 안에서 펼쳐진 사람들의 이야기



알려진 왕국도 없고, 짙푸른 녹음만 한없이 이어져 있는 듯한 곳.

그런 아마존에도 거대한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2013년 3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아마존의 거대한 5백 년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 

『아마존: 정복과 착취, 경외와 공존의 5백 년』이 출간됩니다!


존 헤밍의 열정적인 이야기는 아마존 강의 거스를 수 없는 물살처럼 독자들을 휩쓴다.

- 파이낸셜타임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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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2일 콜롬비아의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은 콜롬비아의 남쪽 끝, 아마존의 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푸투마요 강의 라 초레라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그곳의 원주민들인 위토토족, 오카이나족, 보라족, 우이노나족, 미라냐족, 노누야족, 안도케족의 대표들 앞에서 1백 년 전 그 땅에서 벌어졌던 원주민 잔학상을 사과했습니다. 과거 원주민들은 그곳에 설립된 페루아마존 회사의 노예 시스템에 편입되어 일해야 했고, 1913년까지 무려 10만 명 이상의 원주민이 노동과 학살로 목숨을 잃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세기의 첫 십 년은 고무 붐에 힘입어 아마존이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렸던 시기입니다. 고무나무가 자라는 땅마다 고무 사업소들이 들어섰고 숲의 질서가 급속도로 노동 착취를 목적으로 재편되었습니다. 농장주들은 근처의 원주민을 강제로 노예(혹은 그에 준하는 노동자)로 만들어 고무를 채취하도록 했습니다. 노다지를 맞은 농장주들은 순식간에 부호가 되었습니다. 정부 당국의 치안력은 광대한 아마존 숲을 관리하기에는 턱없이 미미했고, 그 틈새에서 고무 부호들은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합니다.


그중 푸투마요의 라 초레라(급류라는 뜻)는 당시 고무 부호들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았던 훌리오 세사르 아라나란 자의 근거지였습니다. 그는 그곳에 페루아마존 회사 산하의 고무 사업소들을 여럿 두었습니다. 당시 푸투마요 강에는 콜롬비아 고무 세력과 페루(아라나) 고무 세력이 할거하고 있었는데, 아라나는 페루 정부에 군대를 요청해 콜롬비아 고무 세력을 '총'으로 몰아냅니다. 그리고 '총'으로 그곳을 통치합니다. 그렇게 아라나는 푸투마요에서 페루 세력 확대의 첨병을 자임하며 마침내 푸투마요 제국이라 불릴 만한 사업장을 거느리게 됩니다.


원래 고무 붐 초기만 해도 원주민들은 고무를 소량 채취한 것들을 콜롬비아인들에게 팔곤 했습니다. 그러나 아라나는 그러한 고무나무 숲 근처의 원주민들, 즉 위토토족과 보라족 원주민 등을 자신의 고무 노동자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상 노예 노동 시스템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부터 그의 왕국 아래 놓인 원주민들은 "현대에 발생한 잔학 행위 가운데 가장 끔찍하다" 할 만한 잔혹의 시기를 살아갑니다. 숲 바깥의 세상은 고무 농장의 잔학상을 알지 못했고, 원주민들의 처우는 나아질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월터 하든버그라는 한 용기 있는 젊은이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세계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영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훗날 하든버그의 고발을 확인하기 위해 영국의 외교관 로저 케이스먼트가 아마존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는 아마존의 한 고무 사업소를 조사하고 난 후 어느 날 일기에 다음과 같은 소회를 남깁니다.


케이스먼트는 원주민들의 아름다움에 무척 감탄했다. 그는 보라족 남자들을 ‘키나 몸집이 크지는 않지만 대단히 우아하고 늘씬하다. 그들은 마치 기계처럼 흐트러짐 없이 걷고 …… 많은 이들이 비록 어디를 봐도 근육이 두드러지게 발달하지는 않았지만 강한 팔, 아름다운 허벅지와 다리, 보기 좋은 사지를 갖췄다. 여유로운 야생의 삶의 시절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그야말로 두루두루 튼튼하고 완벽하게 만들어진 숲의 자식들이었다.’고 묘사했다. ……  ‘반면 그들을 억압하는 이들을 보라. 역겹고 흉악한 얼굴들, 음험하고 잔인한 입술, 음탕한 입과 육욕에 가득 찬 튀어나온 눈. 선행이 불가능한 인간들이다.’ 회사의 대리인들은 육체노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 한줌의 살인자들이 문명의 이름으로, 그리고 영국 신사들과의 대단한 친분으로 위장하고서, 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타고난 착한 사람들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케이스먼트는 아마존에 발을 딛기 전에 콩고에서 벌어진 불법적인 노예제와 인권 유린 실태를 이미 서구 사회에 폭로한 바 있는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이번에는 아마존에 있는 "페루아마존 회사"와 그것의 푸투마요 강 주변 고무 사업장을 조사해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아마존으로 건너간 케이스먼트는 독자적인 채증 작업을 실시하여 그곳의 끔찍한 실태를 낱낱이 기록합니다. 위 글은 그 와중에 그가 느꼈던 비애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월터 하든버그가 찍은 가슴 아픈 사진. 위토토족 여자들이 쇠사슬에 묶여 있다.


아라나의 푸투마요 제국이 한창 번창하던 1907년, 월터 하든버그라는 한 미국인 청년이 고무 붐이 야기한 철도 건설 붐에 참여하고자 친구와 함께 아마존으로 향합니다. 그는 배를 타고 푸투마요 강에 도착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하필 아라나에게 쫓겨난 콜롬비아인을 만납니다. 여관주인이 조심하라고 경고했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그를 따라 본격적으로 아라나의 푸투마요 제국을 모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라나의 사업장에 진입하자마자 총포 세례를 받습니다.


탐조등이 그들의 카누를 비추었고, 그 작은 배를 침몰시키라는 명령과 함께 일제 사격이 쏟아졌다. 하든버그와 그의 동행은 마치 영화 《아프리카의 여왕》에서 …… 험프리 보가트와 캐서린 헵번이 꼼짝없이 당한 것처럼 완전히 제압당했다. 이키토스호로 다가오라는 명령을 받은 하든버그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배 위로 홱 끌어올려졌고 페루 군대의 아르세 베나비데스 대위와 …… 커피색 피부의 병사들, 선원들, “문명화 사업을 하는 회사”의 직원들에게 아주 비열한 방식으로 발길질과 구타, 모욕을 당했다. …… 말 한마디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푸투마요 악의 제국을 세상에 폭로한 월터 하든버그(왼)와 그 제국의 주인이었던 훌리오 세사르 아라나(오)


당시 서구인들은 원주민들을 흔히 무능하고 게으른 인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존』을 보면, 당대의 석학이든 열정적인 선교사든 아니면 원주민을 부려먹는 사람이든 그들의 관찰은 대개 인종적 편견을 드러냅니다. 하든버그 역시 아마존에 막 도착했을 때는 당시 서구인들이 흔히 그랬듯이 무기력한 원주민이란 인상을 공유했습니다. 그러나 하든버그 본인에게 또는 같은 서구인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보면서, 또 원주민들에 대한 잔인한 통치를 목격하면서 점점 생각이 바뀝니다.


엘 엔칸토에서 하든버그는 야위고 말라리아에 걸린 남녀들이 보트에서 짐을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얼마 안 되는 양의 마니오크 가루와 때때로 정어리 통조림 4분의 1을 받았다. ‘이것은 그들이 하루를 버티는 양으로, 그들은 하루 24시간 가운데 16시간을 가장 힘든 노동에 바친다. …… 아파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움직이지 못한 채 그리고 고통에 빠진 그들을 도와줄 사람도 없이 집 주변과 인근 숲에 쓰러져 있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광경이다. 이 가련하고 비참한 사람들은 치료도 받지 못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추위와 비바람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가 결국 죽음으로 고통에서 해방된다. 그러면 가족이나 친지들이 그들의 차가운 시체를 강으로 날랐고 …… 탁하고 누런 카라-파라나 강물이 말없이 그들을 뒤덮었다.’ 하든버그는 이 ‘지속적이고 악랄한 범죄의 카니발’에 격분했다.


그리하여 아직 어리고 변변찮은 젊은이에 불과했지만 하든버그는 악의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이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하든버그는 아라나에게서 해고당한 사람들, 그나마 인간적인 양심을 간직한 직원들, 그리고 희생자들을 상대로 집요하게 증거를 수집합니다. 그리고 언론에 제보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무시당하거나 아라나에 의해 훼방당합니다. 그러다 마침내 페루의 한 언론이 그가 수집한 증거를 기사화합니다. 끔찍한 묘사로 가득차 있습니다.


 고무 붐 시기 많은 원주민들이 마체테에 난자당했다. 마체테는 넓고 무겁고 날이 하나인 검보다 짧은 무기로 아마존 밀림을 탐험하기 위한 필수품 중 하나이다. 서구인이 최초로 도래한 시기부터 수풀을 헤쳐나가는 용도로 애용되었다. (사진의 인물은 본문과 관련이 없음.)



『라 펠파』는 아라나의 구역 소장들 …… 이 어떻게 모든 구역의 인디오마다 5아로바(75킬로그램)의 고무 할당량을 부과했는지 가르쳐주었다. 인디오들과 그의 아내들, 아이들이 이 말도 안 되게 무거운 양의 고무를 힘겹게 들고 와 무게를 달았다. 바늘이 요구한 양을 가리키면 그들은 기뻐서 웃었다. 그러나 바늘이 정해진 눈금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그들은 엎드려서 처벌을 기다렸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살점이 떨어져 나올 때까지 채찍으로 50대를 맞거나 아니면 마체테로 난자당했다. 이 야만적인 광경은 나머지 사람들,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자행되었다.’ 


훌리오 무리에다스라는 증인은 노르만드의 사업소 라 초레라에서 한 인디오가 도망치면 ‘그들은 그의 어린 자식들을 잡아다가 손발을 묶어 매단 후 불 위에 구우면서 아버지가 어디에 숨었는지 실토하게 고문한다.’고 말했다. 무리에다스는 고무를 충분히 갖고 오지 않은 인디오들이 ‘총에 맞거나 마체테로 손발이 잘린 후 집 밖으로 내던져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부족장 네 명이 매질을 당하는 것도 보았다고 보고했다. 쿠요 족장은 ‘채찍에 맞아 죽었고 다른 족장들은 채찍질을 당한 후 여러 달 동안 쇠사슬에 묶여 있었는데 모두가 부족 사람들이 회사에서 정한 양만큼 고무를 가져오지 않은 “죄” 때문이었다.’


고무 농장에서 일하는 원주민들에게는 할당량이 부과되었고, 그것이 학대의 주된 명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고무 사업소 소장들의 원주민 학대와 학살은 본질적으로 유희이자 그곳의 문화 그 자체였습니다. 


노르만드는 나이가 지긋한 여자 세 명과 그들의 두 딸에게 다가가 나머지 부족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습격자들을 피해 숲속으로 뿔뿔이 달아났다. ‘그러자 노르만드는 마체테를 집어 들어 그 불운한 다섯 명을 아주 태연하게 살해했다.’ 시체는 집 근처에 내버려졌고 곧 노르만드의 개들이 달려들어 시체를 갈가리 물어뜯었다. ‘거의 매일 아침 토막난 팔이나 다리를 입에 문 개들이 이 괴물의 머리맡에 나타났다.’ 나머지 포로들은 나무둥치로 만든 차꼬에 채워졌고 노르만드는 그들에게 아무런 음식도 주지 말라고 명령했다. 이내 ‘그들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고 고통과 절망에 찬 비명을 토해냈다. 그럴 때마다 노르만드는 마체테를 집어 들어 그들을 난자했다.’ 3주 후, 또 다른 무리가 족장과 그의 가족을 끌고 왔다. 왜 그의 부족이 고무를 원하는 만큼 가져오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자 족장은 요구량이 너무 많아서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이 대답에 노르만드는 족장의 손과 발을 쇠사슬로 묶은 후 그 불행한 희생자 주위로 장작단 세 개를 갖다 놓도록 명령했고 …… 그가 직접 …… 거기에 불을 붙였다.’  


오거스터스 월콧은 케이스먼트에게 아우렐리오 로드리게스의 명령에 따라 한 인디오가 불태워지는 것을 목격한 일을 이야기했다. ‘“그는 카우초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달아났고 한 무차초(소년 병사)를 죽였습니다. 그들은 그의 두 팔과 무릎 아래 두 다리를 자르고 그의 몸뚱이를 불태웠습니다.” 질문: “그가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까?” 답변: “예,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 질문: “그가 살아 있었다는 게 확실합니까? …… 그 사람들이 그를 불속에 던졌을 때 말입니다.” 답변: “예, 살아 있었습니다. 확실해요. 그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눈을 뜨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위와 같은 증언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아마존』 책에도 20여 건이 넘는 증언들이 발췌되어 1900년대 초 아마존 푸투마요 강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모두 하든버그의 채증 작업으로부터 기록되기 시작한 것들입니다. 기록되지 않은 것들은 더 많았을 겁니다.

이러한 충격적인 증언들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아라나는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든버그는 점차 아마존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영국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영국에서도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든버그는 아라나를 중상하는 모리배로 치부됩니다.


도시는 아라나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의 인척이 그곳의 시장이었고 그 자신은 상공회의소의 회장이었으며 그의 가족과 직원, 대리인을 통해 많은 활동을 지배했다. …… 하든버그는 런던에 도착하자 세인트판크라스 역 맞은편에 숙소를 정하고 신문사들을 찾아갔다. 놀랄 일도 아니지만 어느 편집장도 스물두 살짜리 농장 출신 미국 청년의 터무니없는 고발을 다루려 하지 않았다. 그들 눈에 하든버그는 머나먼 아마존 정글 구석에서 참상이 자행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 영국 지도층 인사가 포함된 회사를 비난한 사람으로 비쳤다.


하든버그는 낙담했습니다. 그러나 돌파구가 생깁니다. 하든버그는 당시 호주 원주민보호협회와 교류하며 반노예제협회에 몸담고 있는 존 해리스 목사를 만나게 됩니다. 존 해리스 목사는 로저 케이스먼트와 함께 콩고 스캔들을 폭로한 바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든버그의 말을 신뢰했고 케이스먼트에게 "페루아마존 회사" 조사위원회에 참여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케이스먼트는 직접 아마존을 조사한 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영국 정부에 요청해 공식 조사단을 발족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조사단의 공식 보고서가 외무성에 제출됩니다.


1911년 3월 17일 외무성에 제출된 케이스먼트의 135쪽짜리 보고서에는 바베이도스인들이 증언한 말로 형언하기 힘든 범죄 행위가 모두 담겨있었다. 에드워드 그레이 경은 ‘현대에 발생한 잔학 행위에 대해 읽은 것 가운데 …… 푸투마요 강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기록이 가장 끔찍하다.’고 말했다. 외무성은 케이스먼트의 보고서를 페루에 있는 외교관들에게 보냈다. 페루의 아우구스토 레구이아 대통령은 자신이 충격에 빠졌으며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 로저 케이스먼트. 그는 위대한 인도주의자였다. 후일 아일랜드 독립을 지원하다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마침내 훌리오 세사르 아라나 제국의 실상이 공문서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페루 언론들이 국수주의 성향을 드러내며 본질을 호도하고 아라나 역시 그들 뒤에 숨어 허울뿐인 청문회를 비웃었습니다. 심사을 거듭하던 1913년 4월 어느 날, 아라나는 늘상 그랬듯이 형식에 지나지 않도록 잘 처리해두었던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날도 그는 진실과 허구를 섞어 말을 늘어놓으면 평소처럼, 페루에서도 영국에서도 잘 나가는 인사로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날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극적인 상황을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아라나는 마나우스에 있었지만 영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처음에 그는 특별위원회 앞에서 직원들의 채찍질과 인디오들을 사냥한 행위에 대한 질문에 ‘차분하고 자신감 있게’ 답변하고 ‘결단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인상’을 풍기며 호감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의원들은 원주민들에게 사용된 라이플총이나 그들에게 자행된 만행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아라나의 항변의 신빙성을 점차 무너트렸다. 그는 거듭해서 하든버그가 위조한 신용장을 제시하고 회사를 협박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미국인 젊은이에 대한 중상을 계속하는 동안 스위프트 맥닐은 회심의 결정타를 날릴 수 있었다. 그는 갑자기 아라나에게 말했다. ‘돌아서 보십시오. 돌아서서 당신 눈앞에 하든버그를 보시오.’라고 말했다. 4년 전 푸투마요 강의 스캔들을 처음 폭로한 장본인이 하원의 위원회실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아라나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실없는 소리나 하는 청년으로 몰아냈던 하든버그가 4년의 시간을 돌아 다시 그 앞에 나타났습니다. 하든버그는 어떤 증언을 했을까요?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당시 아마존 곳곳에 존재했던 수많은 고무 사업소들은 그러면 결백했던 것일까? 아라나의 푸투마요 제국이 유독 극악했던 것일까? 저자 존 헤밍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아라나는 어쩌면 단지 재수가 없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하든버그의 용기 있는 행동이 없었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 사실을 영영 몰랐을지도 모르니까요. 


어쩌면 그보다 더 우려스러운 사태는 1911년 초에 페루의 다른 지역에서 영국 고무 회사들이 인디오들을 학대한 증거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이 회사들은 페루 북서부 마드레 데 디오스 강의 수원인 이남바리 강과 탐보파타 강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 미국 회사들도 거명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들에는 여론을 환기할 만한 월터 하든버그가 없었다. 그래서 …… 결코 조사받은 적이 없었고 어느 가해자도 처벌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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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출간 예정!


『아마존: 정복과 착취, 경외와 공존의 5백 년』

생명의 강과 생명의 숲, 그 안에서 펼쳐진 사람들의 이야기



... 더 많은 이야기가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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