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대항해』의 저자이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학자'라 불리는 브라이언 페이건 (Brian Fagan, 1936년~) 교수는 어떤 사람일까요? 한국 언론과 다큐멘터리에서도 자주 소개된 페이건 교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은 누구인가?

 

브라이언 페이건은 1936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고고학과 인류학을 전공하고 아프리카에서 고고학자로 일한 뒤, 40여 년 동안 캘리포니아대학교 인류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고고학계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죠. 그는 지금까지 46권의 책을 집필했고 그중 대다수가 고고학 교양서입니다. 1996년에 미국고고학회에서 "고고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쏟은 공로"로 ‘뛰어난 업적을 보인 고고학자에게 주는 상’(Society of Professional Archaeologists' Distinguished Service Award)을 수상, 2008년에 출간한 책 『뜨거운 지구, 역사를 뒤흔들다The Great Warming는 중세 온난기를 다룬 고고학 교양서로 『뉴욕타임즈』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생용 교재도 7권이나 집필해서 같은 해에 미국고고학회에서 공로상(Presidential Citation Award)을 수상했지요.

 

그는 특히 바다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놀랍게도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항해술을 배운 뱃사람이기도 해서, 나중에는 위성 항법 장치(GPS) 없이 영국에서 미국까지 혼자 대서양을 횡단한 적도 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친구가 어부였던 덕분에 십 대의 나이에 조그만 돛단배를 타고 영국 바닷가를 항해하며 배와 항해술을 익혔다고 합니다. 그 자신이 뱃사람이었기에 『인류의 대항해』(최파일 옮김, 미지북스, 2014년) 같은 책을 쓸 수 있었을 겁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계 곳곳의 바다를 엔진 없이 노와 돛만으로 항해한 경험을 곁들여, 고대인이 바다 위에서 느꼈을 불안과 공포, 설레임의 감정을 생생히 묘사합니다. 해양고고학이라는 생소한 이름과 고고학 교양서라는 분류를 보고 으레 딱딱하고 지루한 책이겠거니 생각하셨다면 오산입니다. 『인류의 대항해』에서 저자는 인류가 왜 한 번도 탐험된 적 없는 낯선 세계 즉 바다로 나아갔으며, GPS나 디젤 엔진, 심지어 나침반도 없이 뗏목과 카누를 타고 어떻게 수천 킬로미터를 항해했는지를 베스트셀러 작가의 필치로 설명합니다.

 

2012년 국내에서 화제가 되었던 KBS 다큐멘터리 《슈퍼피쉬》를 기억하시는지요? 이 프로그램에 브라이언 페이건이 출연했습니다. 사실 《슈퍼피쉬》 4회 ‘금요일의 물고기’의 상당 부분이 그의 책 『Fish on Friday』(2006년)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2013년 한국을 방문한 저자는 미래 인류에게 가장 중요해질 문제로 ‘지속 가능한 수산업’을 꼽았습니다.

 

“물고기는 인류가 존재한 이래 생존의 중요한 기반이었습니다. 지속 가능한 수산업이 없는 세상은 재앙이 될 것입니다.”(중앙일보, "자손들 물고기 못 먹게 남획 계속 할 겁니까", 2013. 8. 30.)

 

오늘날 26억 인구가 바다에 의존해서 살고 있습니다. 2010년 기준으로 인간은 동물성 단백질 섭취량의 17퍼센트를 수산물에서 얻었고, 저소득 식량 부족 국가의 경우 그 비율이 24퍼센트까지 올라갑니다. 저자는 오늘날 어류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우려합니다.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 남획과 기후 변화입니다. 실제로 어족 자원이 매우 풍부한 지역이었던 캐나다 뉴펀들랜드 지방에서 이제 대구는 씨가 말랐고 유럽의 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페인 근해에서 쉽게 잡히던 참치는 먼바다까지 나가야만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산업이 없는 인류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와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변화로 지속 가능한 수산업을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됐습니다. (…)"(조선일보, "26억명에게 단백질 공급하는 바다… 무분별 어획 막아야", 2013. 8. 28.)

 

지구 온난화로 어족 자원의 분포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어족 자원은 해수 온도의 변화에 민감합니다. 현재 지구는 점점 더워지고 있고, 언제까지 얼마나 더워질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인간의 활동도 온난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1만 5천 년 전 해수면이 오늘날보다 122미터나 낮았다는 것은 당시 해안선이 오늘날과 매우 달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 한반도, 일본이 모두 육지로 연결되었고 오늘날의 서해와 동해는 없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이어지고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이 베링 육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브라이언 페이건이 최신작 『바다의 역습』(가제, 원제: Attacking Ocean, 최파일 옮김, 미지북스 2014년 출간 예정)에서 해수면 상승의 역사와 미래를 다루는 것도 그것이 인류 사회에 미칠 영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머지않아 인류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의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아래는 브라이언 페이건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독자들의 질문을 추려 답한 인터뷰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노(老) 고고학자가 자신의 고고학 글쓰기에 관해, 그리고 고고학자로서의 삶에 관해 친절히 서술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인터뷰 원문 보기)

 

어떻게 해서 고고학 작가로서 인기를 얻게 되었나요?

 

저는 고고학자로서 발을 내딛었을 때 이제 막 독립 국가가 되는 참이었던 잠비아의 리빙스톤박물관에서 5년 동안 선사 시대 분야 책임자로 일했습니다. 저와 동료들은 학교와 대학에서 쓰일 아프리카 역사 교과 과정을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고, 교재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보통의 교양 독자(general public)와 대화하는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1966년에 미국에 온 뒤에는 금세 전업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제 거의 40년이 다 되어 가네요.

 

책을 쓰는 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나요?

 

거의 대부분 우연적으로 생깁니다. 1975년에 나온 저의 첫 번째 교양서 『나일 강의 범람The Rape Of The Nile』은 1819년 이집트 무덤 도굴꾼으로 유명해진 조반니 벨조니에 관해 『고고학 매거진Archaeology Magazine』에 쓴 짧은 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책들은 산타바버라의 한 카페에서 엘니뇨에 관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시작되었고요. 나는 편집자들과 밀접하게 상의하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형식과 관련된 구상을 개발합니다. 때로는 결론까지도요.

 

고고학자로서 전문 분야는 무엇인가요?

 

저는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2,000여 년 전 석기 시대에 관해 공부했고 이를 바탕으로 아프리카학을 연구하는 고고학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에 아프리카에서 물러났어요. 지금은 고고학의 여러 분야에 전문 지식을 가진 제너럴리스트로서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한편 저는 과거를 다루는 폭넓은 책을 썼지만 성서 고고학에 관해서는 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야는 그 자체로 독자적인 세계이자 고전적인 고고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서 제 분야 바깥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나요?

 

아닙니다. 저는 2003년에 36년간 몸담았던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바버라캠퍼스를 떠났습니다. 그즈음 저는 교육 현장에서 완전히 소진된 상태였습니다. 학생들 때문이라기보다는, 생각하고 배우는 것보다 성적과 시험에만 집착하는 고등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전업 작가이자 강사, 고고학자로 지내고 있습니다.

 

조사 및 집필에 어느 정도 시간을 쏟으시나요?

 

시장에는 이미 많은 책이 나와 있기 때문에 이 세계에 오랫동안 몸담았다 하더라도 출판업자의 눈에 드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 책을 계약하는 일은 매번 점점 더 오래 걸립니다. 저는 여러 차례의 검토 과정을 통과할 수 있는 제안서를 마련하고 일을 시작합니다. 출판업자가 계획을 승인하면, 보통은 집필에 18개월 정도가 걸리고 편집과 퇴고, 제작에 6개월에서 9개월 정도 걸립니다.

 

어느 정도로 편집 과정을 거치나요?

 

저는 초고 단계에서 편집자와 아주 긴밀히 협력해서 작업합니다. 이때 치밀하고 상당한 교정 작업이 진행되는데, 편집자나 저나 둘 다 막판에 가서 갑작스럽거나 복잡한 문제를 만나게 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미리 정리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편집자와 어느 정도로 긴밀하게 관계 맺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지난 세월 동안 매우 운이 좋았습니다. 질문에 대답을 드리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원고는 가벼움에서 중간 정도의 편집을 거치는 편입니다.

 

교재를 쓰는 일에 큰 관심을 쏟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책을 수정하는 일이 귀찮지는 않나요?

 

제가 처음 가르치는 일을 시작할 때는 좋은 대학 교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출판업자가 제게 교재를 써 보라고 권했죠. 그때 이후로 저는 여러 권의 교재를 썼습니다. 새로운 세대가 과거의 일에 관심을 갖게 하는 데 좋은 교육용 자료가 필수적인 도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수년이 지난 다음에는 수정 사항들이 생겼고, 잘 짜여진 공정에 따라 그것을 반영해 나갔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배워야 할 새로운 사항들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교재의 가장 큰 장점은 독자가 새로운 정보를 따라가도록 만들어 준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교재 분야는 매우 극적인 변화를 거치는 중입니다. 아무도 오 년 혹은 십 년 뒤에 일어날 일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계속 교재와 관련된 일을 할 생각입니다.

 

고고학에서 가장 좋아하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특별히 좋아하는 분야는 없습니다. 이건 저에게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옛 세계를 온전히 자유롭게 궁금해하고 탐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유적지에 대해서도 같은 대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고고학자를 직업으로 추천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고고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단, 고고학자가 되고자 무한한 열정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고고학 분야는 이미 사람이 넘치고 직업 수는 매우 적습니다. 예외가 있는데 오늘날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문화 자원 관리(cultural resource management, CRM) 영역입니다. 기본적으로 개발 중인 고고학 유적지를 조사하고 관리하는 일입니다. 전문 고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고고학과 인류학 분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가 필요하고, 대학에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박사 학위가 필수입니다. 만약 당신이 부자가 되고 싶다면, 그리고 인내심과 사소한 것에 대한 열정, 유머 감각이 없다면 고고학자가 되는 것은 포기하는 게 좋습니다.

 

캘리포니아 앞바다 항해에 관해서 글을 쓰신 적이 있는데, 다른 지역의 항해에 관해서는 책을 쓸 생각이 있으신지요?

 

몇 년 전 닻으로 정박하는 것(anchoring)에 관해 『Staying Put』이라는 책을 쓴 적 있습니다. 그 책에서 저는 닻으로 정박하는 일이 기술이자 일종의 기예라고 서술했는데, 머지않아 절판되고 말았습니다. 용선업(chartering)을 다룬 『Bareboating』이란 책도 마찬가지가 되었고요. 수년 동안 저는 『항해 매거진Sailing Magazine』에 항해에 관한 온갖 종류의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다가 어느 순간 그만두었습니다. 그때 계속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때 계속했었어야 하는데…"의 마음이 아마도 『인류의 대항해』 집필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노 고고학자가 인류 최초의 뱃사람들에게 바치는 장대한 서사시를 인류의 대항해』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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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대항해

- 뗏목과 카누로 바다를 정복한 최초의 항해자들

브라이언 페이건(Brian Fagan) 지음 |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2014년 | 2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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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대항해』가 5월 2주 주말 언론사 서평란을 장식했습니다. 서평의 수와 분량에 편집자도 놀랐습니다. 

 



<이코노믹리뷰> [주태산서평]“고대 인류, 대양의 머나먼 섬들을 정복하다”


<조선비즈> [經-財 북리뷰] 인류의 대항해


<뉴스1> [신간] 인류의 대항해


<중앙일보> [책 속으로]15세기가 대항해 시대였다고? 2000년 전 열린 위대한 바닷길


<동아일보> [책의 향기]GPS도 없이 바다를 정복한 고대 뱃사람들

"수십 분 거리의 약속장소를 찾는 데도 인터넷 지도에 길을 묻고 휴대전화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내 위치를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한 현대인의 희미해져버린 모험본능에 불을 댕기는 책이다."


<매일경제> 유럽보다 먼저 대항해 떠난 사람들


<서울신문> 10만년에 걸친 여정… 고대 인류 항해의 역사

"바다와 인류 사이에 기술이 한 겹씩 늘어날 때마다 인류는 그만큼 바다로부터 멀어졌고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을 잃은 채 오히려 무지해졌다는 주장이다. 최근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한국일보> 때론 두렵고 때론 경외스런 바다, 생생한 인류의 해양사


<경향신문> [책과 삶]뗏목·돛단배로 대양 누빈 고대인류


<문화일보> 그 옛날 인류는 왜… 未知의 땅을 찾아 망망대해를 건넜나?


<세계일보> 배와 맨몸만으로 바다 누빈 고대 인류 해양사


<서울경제> GPS는커녕 엔진·나침반 지도조차 없이… 인류는 왜·어떻게 망망대해로 나아갔나

"소박하지만 광대한 인류의 대항해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480페이지가 넘는 책의 분량도 부담없이 술술 넘어간다."


<연합뉴스> 돛과 노만 믿고 수천㎞ 바다 누빈 고대 인류


<광주일보> 고대인들은 어떻게 GPS도 없이 망망대해를 건넜나


<파이낸셜뉴스> 위대한 고대인에겐 너무나 소박했던 바다

"스마트폰 없이는 몇 시간을 못 버티는 요즘 사람들에게 망망대해 뗏목 위에서 노 하나로 길을 찾아보라는 미션은, 젖먹이 아이더러 혼자 방문을 열고 볼일을 보라는 주문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대 인류는 달랐다. 뗏목과 카누를 타고 나침판도 없이 노 하나만 붙들고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수천 킬로미터를 누볐으니, 대체 이 대범함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그 밖에 <조선일보>, <경인일보>, <주간조선>, <채널예스>, <한국경제>, <국민일보>, <레디앙>, <일요신문>에서 『인류의 대항해』 출간 소식을 다루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새 서평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계속해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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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계의 거장 브라이언 페이건 신작

호모 사피엔스 최후의 팽창을 그린 장대한 서사시


『인류의 대항해

- 뗏목과 카누로 바다를 정복한 최초의 항해자들

브라이언 페이건(Brian Fagan) 지음 |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2014년 | 2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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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대항해

- 뗏목과 카누로 바다를 정복한 최초의 항해자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2014년 | 520쪽 | 24,000원



고고학계의 세계적 석학 브라이언 페이건 신작

호모 사피엔스 최후의 팽창을 그린 장대한 서사시


GPS, 디젤 엔진, 나침반도 없이 

고대 인류는 어떻게 대양의 머나먼 섬들을 정복했는가?

인류는 왜 한 번도 탐험된 적 없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갔는가?




오늘날 인류에게 바다는 해독이 완료된 곳처럼 보인다. GPS(위성 항법 장치)와 디젤 엔진, 점점 거대해지는 대형 선박 안에서 인류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바다에서 안전해졌지만 그만큼 바다로부터 멀어졌고 무지해졌다. 수천 년 전 돛과 노, 태양과 별으로 연안 바다와 대양을 항해한 고대 인류에게 바다는 인격적인 존재였다. 고대 인류는 창의력과 눈부신 적응력, 억누르기 힘든 활동성을 기반으로 10만 년에 걸친 여정, 호모 사피엔스 최후의 위대한 팽창을 매듭지었다. 


고고학계의 세계적 석학 브라이언 페이건은 인류의 가장 초기 항해의 역사로 거슬러 가서 다음의 물음에 답한다. 인류는 왜 한 번도 탐험된 적 없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갔는가? 무엇이 사람들을 수평선 너머로 이끌었는가? GPS, 디젤 엔진, 나침반조차 없이 어떻게 대양의 머나먼 섬을 정복했는가? 


수천 킬로미터의 망망대해를 건너 하와이 제도와 이스터 섬 그리고 어쩌면 남아메리카 대륙까지 항해한 폴리네시아 카누부터, 기원전 10세기에 발사 나무 뗏목을 타고 멕시코까지 오간 안데스인의 여정, 서기 10세기에 북아메리카 동쪽 끝에 발 딛은 노르드 바이킹에 이르기까지 브라이언 페이건은 바다와 인류 문명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되살려낸다.



▲ 본문 4~5쪽에 수록된 세계 지도. 『인류의 대항해』가 다루는 지역과 주요 항해 경로를 간략히 보여 준다. 

 

 

최초의 항해자들은 어떻게 바다에서 길을 찾았을까?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은 대부분의 인생을 육지에서 보내는 이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다. 육지에서 멀어질수록 해변이나 눈에 띄는 곶 같은 친숙한 지형지물로부터 벗어나, 주위를 둘러싼 수평선이 유일한 우주가 된다. GPS와 컴퓨터, 엔진이 없으면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배에서 우리 현대인들은 불안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그리고 선조들이 거쳐 간 거리가 어머어마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항해가 아니었다. 역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들이 항해를 나섰던 바다 풍경은 결코 어둠과 미지의 세계가 아니었다. 최초의 뱃사람들은 오늘날 우리보다 바다와 훨씬 더 가까웠다. 바다와 인류 사이에 기술이 한 겹씩 늘어날 때마다 인류는 그만큼 바다로부터 멀어졌고, 수천 년에 걸쳐 쌓아온 경험을 잃고 무지해졌다. 선조들의 배는 오늘날의 기준에서 볼 때 보잘것없는 카누와 뗏목뿐이었지만, 그들은 바다에 관한 매우 방대하고 세부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다. 


▲ 19세기 초 피지인이 이용한 돛 단 아웃리거 카누. 11~13세기 남태평양을 항해한 폴리네시아인의 카누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고대 인류가 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을 수천 킬로미터 항해하는 데는 노와 돛이 있는 튼튼한 선박 이상의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고대 인류는 별을 보고 방위와 위도를 측정했고 풍향이 언제 바뀌는지를 오랜 시간에 걸쳐 확인하며 귀환 가능성을 높였다. 서기 11~13세기 폴리네시아인은 돛 단 카누를 타고 나침반도 없이 수천 킬로미터의 망망대해를 건넜다. 기원전 10세기 안데스인은 오늘날의 에콰도르 해안에서 발사 나무로 만든 뗏목을 타고 수천 킬로미터를 가로질러 마야 문명과 왕래했다.



고대인들에게 바다는 어둠의 심연이 아니라 친숙한 삶의 일부였다


오늘날과 달리 인류는 언제나 바다를 두려워했고 존경을 담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육지와 바다는 확연히 구분되는 경계가 아니라 하나로 어우러진 풍경을 이루었다. 바다는 조상과 초자연적 존재가 지배하는 영역이었다. 고대인이 바다를 신화적 질서 안에 놓고 항해에 제의적 의미를 부여한 것은 인류 최후의 낯선 자연을 육지와 연결된 우주론의 일부로 포섭하려는 것이었다. 고대인들에게 바다는 점점 살아 있고 친숙한 것, 인격적인 존재가 되었으며 인간과 바다는 정신적으로 연결되었다. 


항해는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세계 각지에서 연안 바다를 탐험하는 것은 강과 호수를 건너는 물가에서의 삶을 연장한 것에 불과했다. 연안 바다는 지형지물을 활용하고 수심과 조수의 흐름을 파악하며 물길을 탐사하는 기본적인 항해 기술이 활용되는 장이었다. 


그다음 카누나 뗏목이 육지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나아가는 결정적 순간이 찾아왔다. 기원전 1200년 이후 남서태평양에서 라피타인이 카누를 타고 뉴기니 동쪽의 오세아니아 원해까지 진출했다. 더 이후에 인도양에서는 몬순 계절풍을 이용해 홍해와 아라비아, 동아프리카에서 인도 남서부 해안과 그 너머로 항해했다. 기원전 2세기에 이미 그리스인 히팔루스는 아라비아에서 인도까지 직항으로 항해하고 있었다. 15세기 유럽인이 대항해시대를 개막하기 수백 년 전에 이미 북유럽의 노르드인은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거쳐 북아메리카 연안에 당도했다. 그러나 그 모든 영웅적인 항해 이면에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역사의 조명을 받지 못한 연안 항해의 끝없는 움직임이 존재했다. 영구 운동 기관과도 같은 이 교역과 교류의 물결은 인간이 바다로 첫발을 내딛은 이래로 끊이지 않고 이루어졌으며,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태평양 - 지구 상에서 가장 외진 섬들을 식민화한 호모 사피엔스 최후의 팽창


태평양은 광활한 바다이다. 작디작은 섬이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고 어떤 섬은 대단히 먼 거리에 외따로 떨어져 있다. 수천 년 전에 이 섬들을 최초로 발견하고 이주한 사람들은 라피타인이다.

여러 고고학 정보를 바탕으로 추정한 결과 인류 최초의 장기 항해는 5만 5천여 년 전 동남아시아 앞바다에서 일어났다. 당시에 해수면은 오늘날보다 낮았으므로 육지 간 거리는 상대적으로 짧았다. 수만 년에 걸쳐 오세아니아 근해(뉴기니 섬 동쪽 앞바다로 비스마르크 제도, 솔로몬 제도를 포함한다)에 사람들의 이주가 완료되었다. 


그러던 중 대단히 뛰어난 항해가이자 식민지 개척자 집단이 나타났다. ‘라피타인’이라 불리는 이 집단은 농경민족이자 해양민족으로 기원전 1200년경부터 장거리 항해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들은 오세아니아 근해에서 동쪽으로 더 멀리 나아가 피지, 사모아, 통가, 바누아투 등 폴리네시아 전역의 무인도를 개척했다. 그들은 지구 상에서 최초로 식량 공급원을 외부에서 들여와 의도적으로 번식시켰다. (라피타(Lapita)라는 명칭은 캘리포니아대학교 인류학자 에드워드 기퍼드가 1952년 뉴칼레도니아 고고학 탐사에서 발견한 유적지에 라피타라는 이름을 붙인 데서 기원했다.)


약간의 휴지기를 거쳐 제2차 대항해가 일어났다. 서기 1000~1300년에 폴리네시아인은 돛을 단 카누를 타고 4천 킬로미터 이상을 항해하여 북쪽의 하와이 제도와 남쪽의 뉴질랜드, 그리고 동쪽으로 이스터 섬(라파누이)을 개척했다. 라피타인의 후손들은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대륙을 통일한 13세기에 태평양의 머나먼 섬을 모두 정복했던 것이다. 그들은 단 3세기 만에 호모 사피엔스의 10만 년에 이르는 전 세계에 걸친 여정의 마지막 장을 썼다.


어쩌면 그들은 라파누이에서 3,500킬로미터 떨어진 남아메리카까지 항해했을지도 모른다. 폴리네시아인의 남아메리카 발견에는 유력한 증거들이 있다. 그중 가장 명백한 증거는 칠레 해안 유적지에서 발견된 닭 뼈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통가와 피지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칠레 해안의 닭 뼈는 유럽인이 도착하기 전인 1321~1407년의 것이었다. 



▲왼쪽이 아웃리거 카누, 오른쪽이 쌍동선으로 된 현대 요트이다. 


그들은 어떻게 인적미답의 대양을 건너 그 먼 거리를 항해할 수 있었을까? 한 가지 비결은 바람이었다. 그들은 몇 달 동안 풍향이 바뀌지 않고 부는 우세풍을 이용했다. 동쪽으로 떠날 때는 무역풍이 잦아드는 시기를 활용하거나 우세한 무역풍의 맞바람을 받으며 나갔다가 돌아올 때는 그 바람을 타고 무사 귀환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매우 보수적이면서도 확실한 귀환 전략이었다. 또 한 가지 비결은 아웃리거 또는 쌍동선으로 변형된 카누였다. 폴리네시아인 고유의 이러한 선박 형태는 먼바다 항해에 있어 안정성과 속도를 모두 충족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해와 별의 위치를 통해 방위를 찾아냈고, 배가 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알아냈다. 수만 년에 걸쳐 내려온 항해 경험의 유산과 카누 기술에서의 진보, 육지의 가시거리에서 벗어나 항해할 수 있는 항해술, 장기간 바다에 머무를 수 있는 식량 저장 능력이 없었다면 식민 개척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라피타인은 미지의 태평양을 향해 왜 끝없이 앞으로 나아갔을까? 점차 증가하는 인구 압력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흑요석과 같은 값나고 귀한 물건을 교역하기 위한 상업적 동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종교적 열정이나 단순한 호기심이었을까? 여정의 동기에 관해서는 이론이 무성하지만, 손위 형제자매를 우대한 사회 조직이 가장 유력한 요인으로 꼽힌다. 폴리네시아 사회는 대대로 맏이가 토지, 재산, 특권적 지식을 독점적으로 물려받았다. 따라서 아우들은 자신의 가계를 새롭게 수립하기 위해 식민지 개척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들은 자식들에게도 양질의 자원을 물려줄 수 있는 새로운 땅을 찾는 대담한 전략을 택했던 것이다.



지중해와 인도양 - 예측 가능한 바람이 만들어 낸 최초의 진정한 지구적 해상무역 네트워크


지중해와 인도양에서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교역 기회를 따라 바다로 나갔다. 기원전 2600년경에 이미 이집트는 레바논산 통나무를 지중해를 통해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었다. 기원전 1000년대에 크레타 섬의 미노스 문명이 동지중해 무역에 참여했으며 그리스, 레바논, 이집트, 북아프리카 연안에 코즈모폴리턴 풍의 항구가 들어서고 활발한 무역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연안 무역은 여유롭게 돌아가는 영구 운동 기관 혹은 짐배들의 발레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양 일대를 항해하고 있는 다우선(dhow)의 모습. 대형 삼각돛의 기다란 활대가 인상적이다. 인도양 일대에서 무역에 종사한 뱃사람들은 안 가까이 붙어 부드러운 몬순 계절풍을 받으며 항해했는데, 대형 삼각돛은 바람에 가까이 붙어서 항해할 수 있어 사각돛보다 유리했다. 


인도양을 둘러싼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강은 각기 고대 문명의 요람이었다. 뱃사람들이 인도양 바다를 해독한 것은 억누르기 힘든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각각의 고대 문명이 목재, 금속, 노예 같은 기본 상품을 다른 지역에서 수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도양 일대에 부는 몬순 계절풍은 1년 내내 대체로 온화했으며, 대체로 11~3월에 북동풍이 불고 5~9월에 남서풍이 불었다. 인도양과 예측 가능한 몬순 계절풍은 지중해 세계를 메소포타미아 및 인도와 연결했다. 기원전 100년 전후로 그리스인 히팔루스가 남서풍을 타고 아랍 해안에서 인도까지 직항으로 항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인도양의 상업적인 연안 항해는 멀리 남쪽의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이어져 유리구슬과 같은 인도의 사치품이 남아프리카의 내륙까지 들어와 코끼리 상아나 황금과 교환될 정도였다.



북대서양 - 선조들이 지배하는 바다와 노르드인이 발견한 신세계 빈란드


북해와 북대서양은 남태평양과 같이 항해하기 좋은 평온한 바다가 아니라 대단히 사납고 거친 바다이다. 여기에는 인도양의 몬순 계절풍 같은 주기적인 풍향 변화도 없었다. 대서양은 연안 바다를 항해할 때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었다. 유럽인에게 대서양은 세계의 끝이었지만 결국 인류가 바다와 친숙해지면서 두려움과 미신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9세기 아일랜드 수도사들은 신에게 헌신할 수 있는 땅을 찾아 아이슬란드를 발견했다. 그들의 신앙이 워낙 강렬했기에 너른 대양의 위험은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이후 아이슬란드를 오간 노르드인(바이킹)은 5월에 몇 주 동안 우세한 동풍이 불고 이어서 편서풍이 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항해가 실패할 경우 귀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지구 반대편에서 남태평양 뱃사람들이 미지의 해역을 탐사할 때 이용한 것과 정확히 똑같은 전략이었다. 그들 역시 나침반이 없었고 해와 별을 길잡이 삼았다. 노르드인은 고대 노르드어로 모험을 뜻하는 아이빈티르(æfintyr)의 정신을 품고, 권력과 명성 그리고 이동성을 좇아 더 먼바다로 나가 985년경에 북아메리카 동쪽 해안에 도착했다. 그들은 그곳에 자라는 머루(wild vine)를 따서 새로운 땅을 빈란드(Vinland)라고 이름 붙였다. 


노르드인들의 선장(船葬) 풍습 덕택에 우리는 바이킹 장선(長船)으로 알려진 크고 튼튼하며 빠른 스타일의 선박을 알고 있다. 이 효율적인 배는 이후 노와 돛이 결합된 외해 항해용 선박으로 개량되면서 노르드 항해의 폭발적 성장을 가져왔고, 그 대부분은 서유럽에 대한 침략의 형태를 띠었다. 노르드인의 항해 제국은 11세기 크누트 대왕에 이르러 잉글랜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일부를 아우르는 “북해 제국”으로 정점에 달했다.



북동태평양 - 완벽히 바다에 적응한 인디언의 해양 사회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먼바다로 나가지 않았다. 유럽인이 도착하기 전까지 아무도 돛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북태평양의 먼바다를 탐험할 유인 동기나 강력한 사회적 이유가 없었다. 북동태평양의 알류샨 열도와 북아메리카 북서부 해안의 인디언은 가시거리 안에 있는 연안 바다에 정통했다. 알류트족의 선조는 적어도 기원전 7000년에 알류샨 열도 바깥쪽 섬에 정착해 있었다. 거칠고 흐린 북태평양에서 지구 상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완전한 형태의 해양 사회가 발전한 이유는 이 지역에 바다사자, 고래, 대구, 연어 등 각종 해양 자원이 매우 풍부했기 때문이다. 알류트족은 수천 년에 걸쳐 환경에 적응하면서 바다에 떠내려 온 유목과 바다사자의 가죽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효율적이고 세련된 수렵용 운송 수단 중 하나인 바이다르카 카약을 만들어 냈다. 바이다르카를 탄 항해자는 신화 속 켄타우로스처럼 배와 한 몸이 되어 거친 북극 바다를 종횡무진할 수 있었다.


▲ 바이다르카 카약에 탄 알류샨족 사냥꾼의 모습.


북아메리카 북서부 해안은 빙하에 깎인 계곡과 무수한 섬, 내륙의 짙은 숲과 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연어를 비롯한 풍부한 해양 자원 덕택에 통나무 카누로 오가는 해양 사회가 번창했다. 이곳 해안은 11가지 어족과 39가지 언어가 분포한, 놀라운 문화적, 언어학적 다양성을 간직한 지역이었다. 18세기 후반 유럽인이 도착할 당시 2만 5천 명의 인디언이 해안을 따라 살고 있었다. 북서부 해안 인디언에게 수평선 너머로 배를 타고 나갈 만한 사회적 강제는 없었다. 부족 간의 분쟁과 불신이 팽배했음에도 새로운 정착지와 식량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다만 어느 사회도 완전히 자급자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찍이 기원전 5000년 이후부터 복잡한 교환 네트워크가 해안 부족 간의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고 있었다. 인류학 현지 조사로 유명해진 인디언의 의례적 축제 포틀래치(potlach)가 이 지역에서 발전했다. 포틀래치는 족장 및 그 친족이 다른 족장들과 부족 구성원을 접대하며 베푸는 행사였다. 부를 독차지하고 싶은 유혹이 충분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포틀래치는 부를 사회 곳곳으로 분배하는 역할과 함께 친족 내에 강한 통합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동태평양 - 바다를 두려워한 고대 문명 마야, 남아메리카 발사 나무 뗏목의 항해


고대 마야 문명은 태평양과 카리브해로 둘러싸여 있었다. 대부분의 마야인이 내륙 고지대에서 바다와 멀리 떨어진 채 살았지만 그들의 정신 세계에서 바다는 우주가 유래한 곳, 초자연적인 힘이 머무르는 ‘불타는 웅덩이’였다. 마야인은 소라고둥과 가시국화조개를 성스러운 물건으로 여겼다. 두 물건이 내는 소리는 마야 문명과 공연과 제의에서 핵심적인 요소였다. 마야인은 이것을 연안 바다에서 채집해 미로처럼 얽힌 수로를 따라 내륙으로 들여왔다. 마야의 연안 무역 네트워크는 북아메리카 남서부에서 터키석을, 중앙아메리카 저지대에서 금을, 멕시코 중부에서 흑요석을 가져왔지만 가장 긴 거리를 이동한 것은 역시 가시국화조개이다. 가시국화조개는 심지어 남아메리카에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멕시코 서부 해안까지 이동했다.


가시국화조개 교역은 일찍이 기원전 3000년에 시작되어 2천 년 정도 후에 크게 확장되었다. 안데스인은 오늘날의 에콰도르 해안에서 발사 나무로 만든 뗏목을 타고 수천 킬로미터를 항해해 멕시코로 갔다. 뿐만 아니라 안데스 지역은 고대 세계에서 금속 가공 작업을 발명한 단 두 곳 가운데 하나인데(다른 한 곳은 메소포타미아이다) 발사 나무 뗏목을 탄 안데스인이 중앙아메리카로 건너가 구리 야금술을 전하기도 했다. 이들은 놀랍게도 동쪽 수평선 너머에 긴 해안선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대양을 탐험하는 일에 나서지 않았다. 



15세기 유럽인의 대항해 시대 이전에 인류의 대항해가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미지의 대양을 향해 나아간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인, 인도양 무역을 휘어잡던 아랍의 선장, 포세이돈이 호령한 지중해 바다를 순환한 이집트와 그리스의 배, 약탈거리와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선 노르드인, 황제의 위엄을 알리려 세상에서 가장 큰 배를 타고 출항한 중국의 제독, 바다사자 가죽으로 만든 카약을 타고 북태평양을 누비던 알류트족 사냥꾼, 대구와 청어를 잡기 위해 거친 대서양 바다를 마다하지 않은 유럽의 어부…… 그들은 모두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간 위대한 항해자였다. 『인류의 대항해』는 15세기 유럽인들의 대항해에 가려 역사가 미쳐 조명하지 못한, 광대하면서도 소박한 바다 풍경을 고고학과 인류학을 통해 생생하게 복원해 낸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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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브라이언 페이건(Brian Fagan)

고고학과 인류학계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펨브로크칼리지에서 고고학과 인류학을 전공했다. 1967년부터 2003년까지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바버라캠퍼스에서 인류학 교수로 있었고 현재 명예 교수로 있다. 학생과 일반인을 상대로 수많은 고고학 개론서와 교양서를 집필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중세 온난기를 다룬 『뜨거운 지구, 역사를 뒤흔들다』(2008년)는 『뉴욕 타임즈』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크로마뇽』(2009년), The Attacking Ocean(2013년) 등의 책을 썼다. 

고고학자인 저자가 바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여덟 살 때 어부였던 아버지의 친구로부터 항해술을 배웠고 이후 바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혼자서 GPS 없이 영국에서 미국까지 대서양을 횡단하기도 했다. 『인류의 대항해』에서 저자는 그 자신이 수십 년 동안 뱃사람으로서 대양을 항해한 경험을 곁들여 인류가 왜 바다로 나아갔는지, GPS와 디젤 엔진, 나침반도 없이 어떻게 대양의 머나먼 섬들을 정복했는지를 풍성하게 설명한다. 


옮긴이

최파일

서울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과 서양사학을 전공했다. ‘바른번역’에서 번역을 공부했고, 역사 분야를 중심으로 해외의 좋은 책들을 소개하려는 뜻을 품고 있다. 축구와 셜록 홈스의 열렬한 팬이며, 제1차 세계대전 문학에도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는 『시계와 문명』, 『대포, 범선, 제국』, 『아마존』, 『근대 전쟁의 탄생』, 『십자가 초승달 동맹』,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등이 있다.



추천사


항해가이자 고고학자, 역사가로서의 재능을 종합해 브라이언 페이건은 대양과 먼바다를 건넌 최초의 뱃사람들이 세계 곳곳의 해안을 펼쳐 보이는 매혹적인 현장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누구든 더 매력적인 선장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지중해사 교수 데이비드 아불라피아, 『위대한 바다』 저자


아주 재미있다. 페이건은 그 자신의 해박한 항해 경험에서 얻은 관찰을 이 책 곳곳에 효과적으로 배치해 놓았다. 그는 고대 뱃사람들이 바다의 다양한 상태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들을 처음으로 바다로 이끈 것이 무엇인지를 심사숙고했다. 페이건은 해상 문화가 발달한 세계 각지에서 바다와 기후, 인간이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매우 매혹적으로 그렸다. 고고학과 역사학을 조금이라도 알고 흥미를 느끼는 독자라면 누구든 이 훌륭한 책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라이브러리 저널(Library Journal)』


초창기 인류에 관한 일화, 고고학적 해석, 먼 과거로부터 재구성한 소설적인 장면 사이를 항해하면서, 역사적 상상력이 보태진 이 소금기 어린 작품은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 모아이 조각가를 이스터 섬으로 실어 나른 미크로네시아의 아웃리거, 레바논의 삼나무를 파라오에게 가져다준 이집트의 목재 바지선, 트로이 성문으로 그리스 영웅들을 데리고 간 검은 배…. 페이건은 이 책에서 선조들의 성취에 애정 어린 찬사를 보낸다.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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