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지북스의 책/경제

[탄소 전쟁] - 기후변화는 어떻게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가

 

탄소 전쟁

기후변화는 어떻게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가

박호정 지음 | 미지북스 | 292쪽 | 15,000원

 

 

선진국들의 '탄소 사다리 걷어차기'가 시작된다.

저탄소 혁명이 가져올 경제적 격변에 대비하라!

 

시장 경제의 원리로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탄소 배출권 거래제 이야기

 

 


 

이 책은 기후변화가 가져올 문제를 환경적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학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그것이 향후 에너지 시장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 막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선진국들은 과거 프레온 가스로 인한 오존층 파괴나 대기오염으로 인한 산성비 문제와 같은 환경 이슈를 기술 혁신과 배출권 제도 등으로 극복한 경험을 갖고 있다. 오늘날 기후변화에 대비해서도 미국, 중국, EU 같은 선도적인 국가들은 이미 에너지와 각종 산업 분야에서 저탄소 경제를 준비하고 있다. 저탄소 기술을 확보한 선도국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후발 국가들에 대해 ‘사다리 걷어차기’식 규제를 부과할 것으로 예측되는 바, 우리나라도 기후변화에 관해 막연한 우려나 부정의 차원을 넘어서 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저자는 그 첫걸음으로 ‘탄소 가격의 현실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시장 원리로 작동하는 탄소 배출권 거래제가 안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탄소 경제를 위해 적절하게 설계된 제도는 친환경 기술 혁신을 추동하고, 경제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탄소 전쟁』은 기후변화 경제학을 연구하면서 고민한 내용을 정리한 역작이다. 이 책은 우리가 적극적인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할 시점에 감축 비용을 우려하면서 소극적으로 나선다면 결국 다가오는 저탄소 경쟁에서 승기를 놓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 이회성 IPCC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의장

 


 

 

탄소 전쟁의 서막

기후변화가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환경주의자들의 근본주의적 관점 외에 다른 방식으로 기후변화를 바라볼 수는 없는 걸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일을 시장 경제의 원리로 해결할 수 없을까?

『탄소 전쟁』은 기후변화를 막아내는 일이 결코 경제 성장과 배치되지 않으며, 그것을 가장 잘 이뤄낼 수 있는 방법 역시 시장 원리를 이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에너지, 자원, 환경경제학 분야의 전문가인 저자는 기후변화의 충격은 환경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우리의 미래를 심대하게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 중국, 유럽연합 등 선도국들은 기후변화를 대비한 저탄소 경쟁에 이미 뛰어 들고 있다. 환경 문제가 경제적 동기와 결합되면, 시간이 갈수록 저탄소 경쟁은 가속화될 것이다. 지난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선도국들은 이번에도 후발국에 대해 ‘사다리 걷어차기’식의 규제를 부과하며 자신들의 기술적, 제도적 우위를 누리려 할 것이다.

저자는 우리나라도 저탄소 혁명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며,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탄소 가격’을 시장 경제의 영역에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적정한 탄소 가격이 현실화된다면, 탄소 배출 절감을 위한 노력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인식될 것이며, 다가오는 탄소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탄소 가격의 실현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안으로서 탄소 배출권 거래제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며, 아울러 저탄소 경쟁과 맞물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지각변동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듀폰의 사례 : 오존층 파괴와 프레온 가스 금지 협약

미국의 화학기업 듀폰은 오존층 파괴 물질인 프레온 가스(염화불화탄소)를 개발한 회사이지만 그 대체 물질을 가장 먼저 개발한 회사이기도 하다. 프레온 가스에 의한 오존층 파괴는 1974년 마리오 몰리나와 셔우드 로우랜드가 <네이처>지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제기되었다. 듀폰이 상업적으로 개발한 이래 프레온 가스는 스프레이캔, 에어컨, 냉장고 등 도처에서 활용되고 있었다. 듀폰은 처음에는 프레온 가스와 오존층 파괴의 상관관계가 과학적으로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맞섰지만, 1985년 남극 상공의 오존층에 구멍이 뚫린 것이 실측되면서 국제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후 2년도 안되어 프레온 가스 사용을 제한하는 몬트리올의정서가 채택되었는데, 주목할 점은 이 시기 오존층 파괴를 부인하던 듀폰이 누구보다도 몬트리올의정서를 적극 지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는 것이다. 당시 듀폰은 대체 물질의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존층 파괴 물질의 이용을 제한하자는 듀폰의 입장 변화는 정교하게 계산된 경제적인 셈법에 따라 나온 결정이었다.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환경적인 요구와 경제적인 동기가 맞아떨어질 때,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는 구속력 있는 국제 규범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 매우 빠른 속도로 들어설 것이다. 그동안 기후변화 대처에 기업과 국가가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면 비용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저탄소 경쟁의 승부수를 먼저 던지는 쪽이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셰일 혁명으로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서 유리한 고지에 섰고, 중국도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등 저탄소 경제를 위한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두 나라 정상은 2014년 말 적극적인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 합의했다. 미국은 2025년까지 26~28퍼센트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기로 했고, 중국은 2030년까지 비화석연료 비중을 20퍼센트까지 증대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5년 말에 터진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사건은 환경 규제가 이제 단순한 비용 증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칫하면 시장 전체를 잃을 수도 있는 중대한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기후변화의 경제학

기후변화를 경제학적으로 평가할 때는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 들이는 현재의 비용과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미래의 편익을 객관적으로 저울질하는 것이 중요하다(반대로 탄소 배출을 감축하지 않았을 때 얻는 현재의 이익과 그로 인해 초래하게 될 미래의 피해를 평가하기도 한다). 경제학적으로 이를 ‘비용 편익 분석’이라고 한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은 미래의 이익이나 피해를 ‘할인’해서 계산해야 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이유로 지금 당장 비싼 대가를 치르며 온실가스 배출을 성급하게 줄이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2006년 영국의 니콜라스 스턴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온난화 위기가 금세기 내로 임박했으며, 이로 인해 피해 규모가 1930년대 대공황보다 크다고 한다. 기후변화 경제학의 역작으로 평가되는 스턴 보고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전 세계 GDP의 20퍼센트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예방 비용은 피해액의 1퍼센트라는 것이다. 1달러의 돈을 투자해서 그것의 20배가 되는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면, 수익률로 따지면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한 투자는 대박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그동안 기후변화에 보수적이던 기업들의 최근 행보다. 무인자동차나 연료전지 기술 등에 집중하는 자동차 회사나 구글 같은 IT기업의 이야기가 아니다. 메이저 석유 회사들까지 기후변화의 위기를 인정하고 나섰다.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이들 기업이 공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환영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이미 자체적으로는 탄소 비용을 계산해 회사의 장기 투자 의사 결정에 반영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비용 편익 분석을 할 때 엑슨모빌은 이산화탄소의 톤당 비용을 60달러, BP는 40달러를 탄소 비용으로 반영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37달러로 보고 있다). 로열더치쉘, 토털, BP 등 유럽계 석유 회사들은 2015년 6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석유 지도자 회의에서 탄소 배출권 거래제나 탄소세 도입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그 깊은 속내야 어째든 이제 메이저 석유 회사들도 부인하는 것만으로는 기후변화의 도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저탄소 경쟁에 돌입한 모습이다.

결국 다양한 에너지의 개발과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과정을 거쳐 온실가스 감축 역량을 먼저 확보한 쪽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설 것이다. 우리는 지금의 저유가로 잠깐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저탄소 경제로 어떻게 이행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바로 탄소 가격의 실현에 있다. 그 형태가 배출권 거래제든 탄소세든 탄소 가격을 실현하는 것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환경 투자를 촉진하는 중추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전세계 에너지 공급 비중에 대한 BP의 전망치. 이미 메이저 석유 기업들도 세계 경제가

점차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전망하고 저탄소 경제를 준비하고 있다.   

 

왜 탄소 배출권 거래제인가?

온실가스는 스톡 물질로 분류된다. 스톡 물질이라 함은 말 그대로 재고처럼 쌓인다는 뜻으로, 이산화탄소의 경우 한 번 방출되면 약 100년 정도 대기 중에 체류한다. 따라서 우리가 탄소배출을 저렴한 비용에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을 수십 년 내에 개발한다고 해도, 그동안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그 시점에서 기후변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티핑 포인트를 지나버릴 수 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우리가 탄소 배출을 중단한다하더라도 지구온난화는 멈추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아황산가스와 같은 대기오염 물질은 플로우 물질이다. 이는 대기중에 일정시간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특성을 가지며, 그것이 영향을 끼치는 범위도 글로벌하지 않고 국지적이다).

스톡 물질인 온실가스는 배출된 후 전 지구를 오랜 시간에 걸쳐 돌아다니기 때문에 배출을 줄이는 곳이 어느 지역이든 그 효과는 전 지구적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서로 미루게 되는 무임승차의 문제가 나타난다. 어느 한 나라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도 그 이익은 다른 모든 나라가 누리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온실가스 문제는 누가 얼마나 많이 배출하는가를 감시하고 규제하는 것보다는 배출 총량 자체를 줄이는데 집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도덕성에 호소하거나 경제성장을 부정하는 근본주의적 태도는 현실성도 없거니와 배출 총량을 줄이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시장 제도를 통해 적절한 탄소 비용을 부과함으로써 배출 총량을 줄일 수 있다. 1970년대 초에 하버드대학교 몽고메리의 연구는 배출권 거래제가 오염 물질 감축 측면에서 정부의 직접 규제 방식보다 비용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실제로 미국은 20세기 말에 배출권 거래제를 통해 산성비의 원인이 되는 아황산가스 배출 감축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배출권 거래제는 시장 경제의 원리를 통해 기업이 배출량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할뿐만 아니라 배출 감축의 노력에 유인을 제공하고, 결과적으로 배출 총량의 감소를 가져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배출권 거래제의 가장 큰 장점은 환경 투자를 촉진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배출권 가격을 통해 전달되는 탄소 가격의 시그널은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장 기술, 차세대 자동차 등의 기술 혁신을 자극한다.

물론 탄소 배출권 거래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신중하게 잘 설계될 경우에 효과적으로 작동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특히 배출권의 할당 규모를 정하는 것은 배출권 시장의 유동성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할당이 너무 많으면 가격이 폭락하고 너무 적으면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배출권 가격이 너무 낮으면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 동기를 갖지 못하게 되고, 배출권 할당이 너무 엄격하게 이루어지면 거래가 없어 시장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 vs 탄소세

배출권 거래제는 탄소세와 마찬가지로 저탄소 사회를 이루기 위한 경제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두 제도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탄소세와 비교할 때 배출권 거래제는 배출권 가격이 경기 변동에 따라 등락하지만 온실가스 배출 수준은 정해진 총량 범위 내에서 안정화된다. 그에 비해 탄소세는 세율이 고정적이기 때문에 탄소 가격은 안정적이나 온실가스 배출이 얼마나 이루어질지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탄소세 체제에서는 배출 총량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국가가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결국 배출권 거래제냐 탄소세냐 하는 선택 문제는 ‘탄소 가격 안정화’와 ‘배출량 안정화’ 가운데 무엇을 택하느냐의 문제가 된다. 온실가스 감축을 실질적으로 이끌기 위한, 그래서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라면 배출권 거래제가 훨씬 효과적이다. 201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장 티롤 교수는 총량 제한 방식의 배출권 거래제가 탄소세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고, 하버드대학교의 바이츠만 교수도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에너지 시장의 지각변동과 저탄소 시대의 개막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저유가로 인해 신재생에너지 개발이 불필요하거나 더 늦춰질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셰일가스 혁명으로 미국이 탄소 배출량을 크게 감축함으로써 온실가스 규제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는 더 가속화되고 있다. 저유가와 저탄소 경제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시장의 지각변동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초 고유가와 함께 풍미했던 ‘석유 피크론’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석유 피크론의 주요 내용은 고갈 자원인 석유의 생산 비용이 점차 증가하므로, 항구적인 고유가 시대에 진입하게 되며, 이는 곧 세계 경제의 추세적 하락과 산업 시대의 종말을 고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고유가는 생산 비용 증가와 함께 신흥국의 수요가 늘어난 측면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저금리 상황 때문이었다. 저금리가 유가 상승을 견인한다는 것은 이미 경제학계에서는 ‘호텔링 규칙’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석유 가격 상승률이 금리 상승률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되면, 미래에 더 많이 생산하고자 현재의 생산량이 줄어들게 된다. 이는 곧바로 현재의 석유 가격의 증가로 귀결된다. 생산 비용의 상승이 핵심적인 원인이라면 유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해왔어야 했는데 역사적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유가는 1990년대에는 거의 변동 없이 안정적이었다가, 2000년대 초중반을 지나면서 폭등했다. 이는 1990년대부터 이어온 전반적인 저금리 기조가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투자 의욕을 감소시켰고, 이로 인해 생산 시장의 잉여 공급 능력이 한계에 봉착해 시장의 조그만 변동에도 취약해졌고, 투기적인 자금까지 상품시장에 몰리면서 국제 유가의 폭발적인 증가세로 이어졌던 것이다.

 

국제 유가와 미국 연방금리의 상관관계. 21세기 초 사상 초유의 저금리는 고유가를 견인했다.  

 

또한 고유가는 전 세계 석유 공급의 열쇠를 쥐고 있는 OPEC(석유수출기구)의 시장 전략과 맞지 않으므로 끝없이 유지될 수 없다. 고유가는 OPEC에 많은 이익을 주기도 하지만 시장 점유율을 하락시키는 양날의 검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OPEC은 상당한 크기의 시장을 비OPEC국가들에게 빼앗겼다. 오일쇼크 이전에는 OPEC 대 비OPEC 점유율이 6 대 4였지만 오일쇼크 이후에는 3 대 7로 역전되었다. 고유가는 해양 유전 등의 개발을 부추겼고, 천연가스와 원자력 같은 대체에너지의 개발도 가속화했던 것이다. 따라서 유가가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하면 OPEC은 석유를 증산해 가격 하락을 유도한다.

셰일가스 혁명으로 OPEC은 이제 제2차 오일게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1일 석유 생산량은 900만 배럴로 증가했는데, 이는 사우디의 1000만 배럴에 바싹 근접한 수치이다. 지금은 시장점유율을 두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져 국제 유가가 매우 낮게 형성되어 있지만, 저유가 상태가 영원할 수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생산 비용에 있어서는 비교 우위를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국가 재정을 운영하는데 있어서는 저유가를 계속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 재정 문제는 사우디 국가의 존립을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유가는 다시 오를 것이며 대체에너지의 복귀 역시 시간문제일 뿐이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도 오일머니 수입으로 석유 시대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사우디 스스로 그들 국부의 원천이었던 석유의 운명이 조만간 바뀔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세계적으로 석유 의존도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석유 매장량이 다했기 때문이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같은 대체에너지 개발이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사한 에너지 전환을 우리는 이미 20세기 초의 석탄에서, 그리고 1970년대 오일쇼크에서 경험했다. 저탄소 시대로 가는데 있어서 고유가는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전제가 더 이상 아닌 것이다. 

 

 유가가 급등하면 OPEC은 석유시장에서 점유율을 급격하게 상실했다.

 

탄소 사다리 걷어차기에 대비하라

선진국들의 ‘탄소 사다리 걷어차기’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2005년 초, 기아자동차와 쌍용자동차는 한국자동차공업협회로부터 유럽 수출을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받았다. 그해 발효된 교토의정서에 따라 EU에서 강화된 온실가스 규제 정책의 결과였다. 한국차들은 대당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EU 집행위가 권고하는 수준보다 높았기 때문에 수출 자제를 요청받았던 것이다. 이제 환경 규제는 글로벌 기업의 생사를 좌우하는 문제가 되었다. 2015년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배출량 조작 사건은 클린 디젤이라는 핵심이미지 뿐만 아니라 독일차 전반의 명성을 훼손하였다. 폭스바겐 사태는 글로벌 1위 자동차 회사의 존망을 결정할만큼 큰 사안이었고, 친환경 전기차에 대한 자동차 회사들의 투자가 더욱 본격화될 것을 예고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비롯해 환경 문제와 시장이 직결되는 일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한국이 저탄소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잘 설계된 탄소 배출권 거래제의 확립과 더불어, 경제의 기초 체력을 튼튼하게 다져져야 한다. 첫째, 우리가 처한 상황에 맞게 신재생에너지, 원자력, 화석연료 등 에너지 공급의 다양성을 갖추어야 한다. 에너지를 착한 에너지와 나쁜 에너지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관점은 소모적인 논쟁만 일으킬 뿐 저탄소 경제로 가는데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정치나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에너지 자원 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셋째, 서구의 높은 기준이 아니라 우리의 경제력에 맞는 감축 목표와 이행 계획을 세워야 한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산업 경제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 경제에서도 선진국과 신흥국, 선도국과 후발국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와 냉엄한 현실 논리가 존재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넷째, 에너지와 환경에 대한 전문화된 인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다섯째, 금융시장이 선진화되고 관련 서비스 산업이 고도화되어야 한다. 여섯째, 기후변화를 지나치게 종말론적인 언어로 포장하거나 대안 없이 에너지 정책에 반대하는 식의 여론몰이보다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시민사회 내에 의제화해야 한다. 

 

새로운 에너지 시대, 저탄소 경제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이제 비용이 아니라 투자의 관점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      *      *

 

지은이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농업자원경제학과에서 ‘환경 투자’를 주제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일했으며, 전남대학교 경제학부에서 조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KU-KIST 그린스쿨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비롯하여 자원 경제, 에너지, 투자 이론(실물 옵션), 위험 관리 등이다.

지은 책으로는 『경제성장을 선도하는 인구전략』(공저, 2011년), 『헨리 조지 100년 만에 다시 보다』(공저, 2002년)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The Oil Factor: 고유가 시대의 투자전략』(공역, 2005년)이 있다.

 

 

 

2015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콘텐츠 선정작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인터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