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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북스의 책/사회과학

[신냉전에서 살아남기] -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을 위한 12가지 질문

신냉전에서 살아남기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을 위한 12가지 질문

최용섭 지음 | 256쪽 | 15,800원

 

동맹에게 버림받을 것인가?
분쟁에 연루될 것인가?

가속하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 외교는 어떻게 자율성을 획득할 것인가?

 

한국은 초강대국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한국에 안전보장과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던 한미동맹은 지금 한국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격화되는 미중 패권 경쟁이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을 크게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에게 버림받을지, 아니면 중국과의 분쟁에 연루될지 선택을 강요당하는 ‘방기와 연루의 딜레마’에 빠져든 형국이다.

이 책은 한국이 처해 있는 국제정치적 입지와 나아갈 바를 밝힌 외교 전략서이다. 이 책의 저자 최용섭 선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12가지 질문’을 통해 어떻게 하면 한국이 ‘방기와 연루의 딜레마’ 늪에서 빠져나와 외교적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 대답한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오래된 동맹조차 가차 없이 내팽개치는 냉혹한 외교 지형 속에서 ‘분단블록’을 ‘평화블록’으로 바꾸고, 평화경제공동체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 공동 번영을 현실화하는 미래 전략을 제시한다.


'방기와 연루의 딜레마'에 빠진 한반도

본질적으로 동맹에는 안보와 자율성 사이의 상충관계가 존재한다. 동맹을 통한 안보협력으로 자국의 안보를 강화할 수 있지만 동시에 자국의 정책, 특히 대외정책의 자율성에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미동맹에도 이러한 상충관계가 존재한다. 게다가 한미동맹은 동등한 지위에서 서로의 요구 사항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닌 비대칭적 동맹이다. 북한이라는 존재와 양국의 현격한 군사력 차이 등으로 인해 주로 미국의 전략적 고려에 따라 한미동맹의 양상이 결정된다.

최근에는 이에 더해 미국과 중국이 치열하게 패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라 한국은 어떤 선택지를 취하느냐에 따른 방기와 연루의 딜레마에 놓여 있다. 여기서 ‘방기(abandonment)’는 동맹국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며, ‘연루(entrapment)’는 동맹관계로 인해 원하지 않은 국제 갈등이나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의미한다. 방기의 위험과 연루의 위험은 서로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동맹에서의 안보 딜레마를 야기한다. 즉 방기의 위험을 줄이는 정책은 연루의 위험을, 연루의 위험을 줄이는 정책은 방기의 위험을 높이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방기와 연루의 딜레마를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에 적용해보면 한국은 미국이라는 동맹국으로부터 버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미중 패권 경쟁에 연루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은 초강대국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군사적으로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영토를 지켜낼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수출을 통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었지만, 안전보장과 막대한 부를 가져다준 한미동맹이 오히려 지금은 한국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변심과 일본의 우경화, 한반도 사드 배치는 모두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늘 내 편을 들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나와 사이가 나쁜 아이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궁금하지만 친구는 쉬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내가 잘못했다고만 한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기분이지만 화를 낼 수도 없다. 친구에게 버림받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일본군위안부나 강제징용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일본 편들기가 이런 꼴이다.

미국은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의 의견을 확고하게 지지해주었고 심지어 일본과 외교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워싱턴의 기류는 바뀌고 있었다. 이미 일본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사과했는데도 한국이 계속해서 딴지를 걸며 문제 해결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주로 미국의 극우단체나 친일본 단체들에서 이런 주장을 폈는데 이제는 미국 정부, 그것도 민주당 정부의 국무부에서 공개적으로 그런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어떤 이유로 불과 몇 년 사이에 급격하게 바뀐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그 짧은 기간에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전면적으로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의 급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을 핵심 동맹 파트너로 삼고, 그 실행 전술로 중국에 대한 ‘균형’에 보다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되는 한미일 삼각동맹 체제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의 우경화와 군사력 증강 방침을 지지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 변화 속에서 일본 정부의 우경화는 폭주하다시피 했다. 이는 일본 정부의 인적 구성을 봐도 알 수 있다. 현 기시다 내각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두고 “사실 관계를 무시한 근거 없는 비난”이라고 주장하는 일본회의 출신 각료만 전체 20명 중 14명에 달한다. 이러한 비율은 10년 가까이 유지되어온 것으로 아베 내각에서도 20명 중 14~15명, 스가 내각에서도 20명 중 14명에 이르렀다. 일본회의 소속이 아니면 고위층을 바라보기 힘든 게 일본의 현 정치 상황이다. 아베 시대부터 현재까지 우익 또는 극우라고 할 수 있는 일본회의의 영향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극우 세습의원들이 좌지우지하는 일본 정치 상황과 맞닿아 있다. 일본의 세습의원 비율은 중의원의 경우 약 26%, 집권 자민당으로 좁히면 약 40%에 달한다. 게다가 세습의원 대부분이 그들의 할아버지 시대인 제국주의 시기부터 정치에 몸담은 집안 출신이다. 따라서 할아버지 때부터 가지고 있던 세계관이 상당 부분 이어져오고 있다. 즉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의 구세주’이며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 역시 매우 자랑스러운 역사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역사는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그러니 사과할 이유도 없다.

기존에 미국은 동아시아 동맹국에 대해 나토와 같은 집단안보체제가 아닌 허브앤스포크 방식의 양자간 동맹 체제를 구축했다. 미국을 축으로, 미국의 동맹국을 바퀴살로 하여 각각의 동맹국들이 미국과 직접 연결되는 체계를 뜻한다. 이 체제에서는 동아시아 동맹국들간에는 상호협력할 의무가 없다. 그러나 최근 미국은 이를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재편하면서 한미 동맹을 미일 동맹의 하위 구조로 편입하려고 한다.

 

일본은 이제 미국의 지지를 받으며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이는 2차대전 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세 가지 목표 중 하나인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막는’ 일과 상충되는 정책이다. 과거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일본 사회에서 군국주의가 부상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평화헌법의 무력화와 강력한 군사력을 주창하는 일본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화당 정부건 민주당 정부건 한미동맹을 미일동맹에 종속화하는 것을 가시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에 과거사 문제를 덮어두고 일본과 군사협력을 강화할 것을 촉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한국을 비난하고 일본에는 오히려 군사 강국화에 대한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용이라고 했던 사드(종말단계고고도지역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었다. 한국의 현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이야기했듯 사드가 대북한용이 아니라는 것은 한국을 방어하는 데 사드의 효용성이 낮다는 미 국방부의 보고서뿐만 아니라 사드 배치 찬성론자 역시 사드로 수도권 방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드 배치의 실제 목적은 무엇일까? 한국에 배치된 사드는 북한과 중국의 장거리 탄도미사일로부터 미국 영토를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만해협을 포함한 동중국해에서 미국과 일본의 해상 군사력을 무력화하는 중국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봉쇄할 수 있다. 결국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기로 결정한 것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대중국 재균형 전략)과 그에 수반된 동아시아 한미일 MD 체계 구축의 필요성에 당시 한국 정부가 한미동맹 강화를 목적으로 호응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탄도미사일 요격 고도 구분 개념도. 기존의 지대공미사일과 패트리엇미사일은 종말단계인 저고 도에서 적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대공 방어 체계이다. 그에 반해 사드는 중간단계 대공 방어를 보완하기 위한 고고도 요격 미사일 체계이다.

 

갑작스러운 미국의 변심, 일본의 우경화 폭주, 난데없던 사드 배치는 모두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한미일 삼각동맹을 통한 대중국 봉쇄다. 이는 향후 더 극명화될 수 있는 미중 대립에서 한국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뿐만 아니라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와도 관계된 사안이다. 다른 무엇보다 통일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핵과 미사일을 가진 북한이라는 존재와 이웃하고 있다는 지정학적 제약, 그로 인해 미국과의 군사적 동맹에 의지하는 정도가 클 수밖에 없는 지금 한국의 대외정책은 그 자율성에서 심각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중국의 반발에도 전격적으로 배치된 사드는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향후 미국이 대중국 균형정책을 강화하거나 대중국 봉쇄정책을 시도할 경우 한국 정부를 크나큰 딜레마에 빠뜨릴 수 있는 문제이며, 그러한 상황이 도래할 경우 한국이 겪을 피해는 사드 배치로 겪었던 수준을 훌쩍 상회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 제약의 근본 원인은 북한 문제이다

급변하는 역내 정세 속에서 한국의 선택지가 줄어들고 미중 패권 경쟁에 연루될 위험이 높아지는 주요한 원인은 바로 북한의 존재다. 많은 외국 학자와 정책결정자가 한국을 북한에 납치된 ‘인질’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따라서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해선 북한 문제를 먼저 해결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지금까지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중시해왔다. 그러나 분단 당사자가 아닌 일본과 중국으로부터 큰 도움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들은 한국을 위해서도, 북한을 위해서도, 나아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도 아닌 자국의 국가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친중국 편향 외교’라는 미국 일각의 우려 속에서도 북한 문제 해결에 도움을 받기 위해 중국 인민해방군 열병식에 참석하는 성의까지 보였지만 돌아온 성과는 없었다. 오히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중국의 거친 반발을 무릅쓰고 사드 배치를 결정함으로써 한중 관계를 파국으로 이끌어갔을 뿐이다. 일본 역시 자국의 이익과 연관되었을 때만 북한 문제에 관심을 보일 뿐이다.

결국 우리 스스로 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 사회는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북한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두고 둘로 나뉘어 있다. 이것은 북한 문제 해결이 어려운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작동한다. 하지만 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 확대 및 확보는 기대하기 힘들다. 따라서 국내적으로는 북한 문제를 두고 나뉜 여론을 하나로 모으고, 국외적으로는 북한 문제 해결에서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한국이 외교적 자율성을 획득하는 첫 단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금의 북한에 대한 충실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미국을 포함한 외국은 북한 핵・미사일 같은 군사적 측면에는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현재 북한 사회가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핵 협상에 임하는 북한 집권자들의 진정한 의도를 알기 위해서라도 개혁개방에 대한 그들의 진정성을 파악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오늘날 북한 사회의 변화를 파악하는 것은 미래의 한반도 모습을 설계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바탕 위에서만 한국은 북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북한 사회는 빠른 속도로 시장경제화되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씨 가문 독재자들에게 불쌍한 주민들이 다른 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살며 억압받는 곳,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가야만 목격할 법한 발전이 매우 더딘 곳, 얼마 전까지 수십만 명의 주민이 굶어 죽을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곳 등 고립되고 정체되었으며 매우 빈곤한 사회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실제 북한은 과거와는 상당히 다르고, 많은 부분에서 매우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사회이다. 이러한 변화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구체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예컨대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김정일 시대의 북한과 어떻게 다른가?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앞선 김정일 시대와 달리 시장 억제 정책 대신 지속적으로 시장의 양적, 질적 확산을 도모했다. 그러는 동안 북한산 소비재 공급이 크게 늘어났고 경공업, 즉 식품가공업, 의류, 기타 공산품 부문에서 상당한 실적 개선이 이루어졌다. 특히 농산물 부문의 경우에는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협동농장의 생산 단위 규모를 3~6명으로 줄이는 포전담당제를 실시하고 생산물의 자율 처분권을 대폭 늘리면서 획기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북한이 코비드-19 상황에서 스스로 국경을 봉쇄했음에도 각지 시장의 쌀 가격이 큰 차이 없이 상당한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식량 사정 역시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가장 큰 특징은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달리 이데올로기 주입을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강제하는 대신 시장경제를 활성화해서라도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정권의 정당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주입과 시장경제는 서로 상충되는 면이 많다. 이데올로기 주입을 위해서는 주민들에게 다양한 활동에 참가하도록 강제해야 하는데, 주민들이 시장경제에 참여하는 정도가 크다보면 이데올로기 주입에 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이러한 딜레마 앞에서 전자를 선택했다. 이데올로기 주입을 통한 주민 통제가 김일성 시대 이래로 북한 통치에서 가장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김정은이 실행하고 있는 지속적인 시장화 촉진은 김정은 시대의 북한이 김정일 시대뿐만 아니라 김일성 시대의 북한과도 구별된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여러 경제정책, 김정은의 연설 내용 등으로 미루어보아 사상보다 경제적 성과를 핵심 동의기제로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즉 이데올로기의 자리를 경제성장으로 채우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관건은 경제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경제적 성과가 미흡하다면 이전으로 돌아가 다시 이데올로기를 동의기제로 삼으려고 애쓸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성과가 뚜렷하다면 이데올로기는 지금의 북한 모습에서 보듯이 점점 더 전면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서 마오쩌둥 사상이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크게 강조되지 않듯 말이다. 즉 현재의 북한은 사회의 탈이념화가 가속화되면서 실용주의적으로 바뀔 수 있는 분수령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평양의 미래과학자거리. 북한에서는 개인 자본가인 '돈주'가 국가기관의 명의를 빌려 투자하고, 중국에서 신속하게 건축자재를 조달하여 신도시를 완성하는 등 다양한 시장 기반의 경제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북한 경제가 발전하면 핵 보유 대가가 커진다

북한의 시장경제 발전은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 나아가 통일을 위한 대비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북한이 시장경제 발전을 통해 경제적으로 번영한다면 핵무기를 계속 보유하는 것의 기회비용이 너무 커져 핵은 오히려 북한에 큰 부담이 된다. 한국이 핵무기를 가지지 않는 이유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같은 맥락으로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으로 체제의 대내외적 안정성이 담보되면 핵에 더 이상 집착할 이유가 없다. 핵을 보유하는 것이 북한 정권의 절대적인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북한 정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정권 유지이며, 핵 보유는 이를 위한 핵심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북한 경제가 발전할수록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커진다.

게다가 통일 대비 차원에서도 북한의 시장경제 발전은 중요하다. 독일 통일을 지켜본 한국 국민들이 통일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비싼 통일 비용과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에 기인한 사회 혼란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통일 단계에서 북한의 경제발전 수준이 중진 산업국 정도만 되어 있어도 통일에 따른 진통은 덜할 수 있다.

결국 북한에서의 시장경제 발전은 북한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새로운 차원의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의 시장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시장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북한 내 시장 기반 남북경협의 파급효과를 극대화하며, 한국 내 혁신 기반(innovation-based) 경제성장과 남북경협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B2B(Business-to-Business) 플랫폼을 매개로 하는 남북경협’을 제시한다.

 

남북경협은 이념이 아니라 시장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기존의 남북경협은 시장성보다는 한민족의 협력이라는 당위성이 강조되면서 정부가 남북경협 전반에 깊숙이 개입했고, 그만큼 민간의 자율성은 크게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북한 역시 남한과의 경제교류가 북한 체제를 위태롭게 만들 것을 우려하여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고, ‘모기장 정책’에 입각해 남북경협에 참여하는 경제주체를 소수에 한정했다. 지역도 평양, 남포 및 그 근방이나 금강산, 개성 등 접경지역 위주로 제한했다. 그 결과 남북경협의 효율성과 파급효과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에 반해 저자가 제안하는 남북경협은 B2B 플랫폼을 기반으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남북한 모두의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방식이다.

가령 ‘남북B2B플랫폼회사’라는 플랫폼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한국의 기존 기업이나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려는 개인이 한국과 해외 시장에 판매하기 위해 자신만의 고유한 디자인이 들어간 가방을 만들어줄 북한 제조업체를 찾는다고 해보자. 남북B2B플랫폼회사는 검색을 통해 남북한에 산재해 있는 사업 파트너를 찾을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해당 플랫폼에 북한 업체들이 올려놓은 정보들을 확인한 후 적합한 업체가 보이면 해당 업체에 연락해 계약을 진행할 수 있다. 북한 기업과 개인 역시 마찬가지로 B2B 플랫폼이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한국 기업과 연락하여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다. 예컨대 어떤 북한 기업이 다년간의 위탁가공 경험으로 가방을 잘 제작할 수 있는 경우, B2B 플랫폼에 등록된 한국의 가방 판매 업체에 연락하여 합영·합작을 타진할 수 있는 것이다.

남북경협은 북한 경제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의미 있는 기여를 할 때 그 가치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새로운 남북경협 사업이 현재 한국의 저성장 기조를 바꿀 수 있도록 기존 경제성장 방식의 전환을 추동 또는 조력하는 방안이어야 한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자본주의국가가 지향해야 할 경제성장 방식 중 하나는 ‘창업이 일상화되는’ 혁신 기반 경제성장이다. 혁신 기반 경제성장 방식에서는 기업 규모가 관건이 될 수 없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굳이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중소기업 혹은 개인이 국내외적으로 쉽게 판로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B2B 플랫폼을 통한 남북경협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개인이 북한 측 파트너와 함께 자신들의 사업 아이디어를 손쉽게 현실화할 수 있게 해준다. 한국의 경제구조를 바꾸는 과정이 지난하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상황에서 B2B 플랫폼을 통한 남북경협은 그 과정을 가속화하는 추동력이 될 수 있다.

“종교는 분리시키고 상업은 결합시킨다(Religion divides, commerce unites)”(앨리스 T. 호바트)는 명언이 있다. 여기에 종교 대신 이데올로기를, 상업 대신 경제협력를 넣으면 ‘한반도는 이데올로기로 인해 분단되었지만 경제협력을 통해 통일이 가능하다’는 명제가 만들어진다. 즉 평화와 공동 번영을 넘어 향후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도 남북 경제협력이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의 진정한 봄은 북한을 적이 아닌 파트너로 인식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북한과의 오랜 협력을 통해 평화와 공동 번영이 일상화될 때 자연스레 찾아올 수 있다. 이를 위해 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 대화나 문화·예술·스포츠 분야 등의 교류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는 경제 파트너로서 자리를 잡는 것이다. 남북한의 경제가 긴밀히 연결되는 평화경제공동체의 실현이야말로 한국이 외교적으로 자율적인 국가가 되는 길인 것이다.

 

포스트코로나와 한반도 넥스트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우리는 거의 모든 국가가 각자도생을 추구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배타성과 자국 우선주의가 팽배해지는 것을 목격했다. 동시에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이 팬데믹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전 세계적 수준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확인했다. 미국에 ‘신형대국관계’를 요구하며 태평양에서 미국과의 공동 리더십을 말해왔던 시진핑의 중국 역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책임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국제기구 또한 세계적 대위기 앞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진 유엔안보리는 코비드-19에 대한 어떠한 결의안도 채택하지 못한 채 방관하는 모습을 보였고, 여기에 무엇보다 글로벌 보건 문제를 담당하는 WHO도 코비드-19 발생 초기 안이한 태도로 악화되는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재 상황은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저자는 코비드-19가 현재의 자유주의 세계질서 자체를 급격히 전환시키지는 못할 것이며, 대신 기존에 진행되던 변화를 보다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2차대전 이후 형성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시대적으로 크게 세 개의 변곡점을 지나왔다. 첫 번째는 1971년 금과 달러의 교환 중지를 선언한 닉슨 쇼크와 이로 인한 브레턴우즈 체제의 종말, 두 번째는 1990년을 전후로 이루어진 소련의 붕괴 및 냉전의 해체, 세 번째는 현재 진행 중인 미중 패권 경쟁이다. 앞의 두 변곡점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내용을 변화시켰지만, 그럼에도 미국의 헤게모니는 유지되었다. 저자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미중 패권 경쟁도 기존 질서의 내용을 변화시키겠지만 그 방향은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계질서 재구성 또는 재정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은 그러한 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할 뿐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계질서 자체를 해체시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현재 한국은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 주도의 블록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방기와 연루의 딜레마’에서 방기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중 간의 기술 패권 전쟁에 연루되는 형국인 것이다. 그러나 블록화 참여는 곧 중국과의 경제 교류를 축소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실익은 크지 않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인데, 지금과 같이 미국 주도의 블록화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차단하는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중국이 ‘신냉전’을 현실로 인식하여 적극적으로 미국의 반대 세력들을 결집시키는 경우 현 상황에서는 북한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한국 정부의 선택은 경제적 측면만이 아닌 한반도의 안보 상황 역시 매우 엄중하게 만들 수 있다.

한국이 희망하는 미래는 남북 화해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 공동 번영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미국 주도로 동아시아를 냉전의 시대로 되돌리는 현재의 블록화 참여 대신 최선책인 블록화 저지에 힘을 모으는 외교 활동이 필요하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대립의 첨병이 아니라 중재자적 역할을 통해 둘 사이의 대립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극단으로 치닫는 대립을 완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국익을 최대한 도모하고 이를 통해 모두가 상생하는 평화로운 세계 구현에도 이바지하는 길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은 남북 화해에 기반한 한반도의 평화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견제의 첨병에 설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  최용섭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에서 국제안보를,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 정치를 공부했다. 영국 외무성장학금으로 수학한 워릭대학교 정치국제학과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The Pacific Review〉, 〈Contemporary Security Policy〉 등 다수의 유명 해외 학술저널에 기고했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강사 등을 거쳐 지금은 선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재벌을 위해 당신이 희생한 15가지』 등이 있으며, 〈Third World Quarterly〉에 게재한 「분단블록의 극복과 그 한계: 그람시 이론을 통한 한국 사회구성체 분석(Overcoming the division bloc and its limitations: a Gramscian approach to South Korean social formation)」으로 2021년 한국정치학회 학술상(논문 부문)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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