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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북스의 책/사회과학

[카플란의 현명한 정치가] - 비극으로부터 배우는 정치의 본질

카플란의 현명한 정치가

비극으로부터 배우는 정치의 본질

로버트 D. 카플란 지음 | 유강은 옮김| 252쪽 | 16,700원

 

 

불가항력이 존재하는 다층적인 세계
현명한 정치가의 절대 덕목은 무엇인가?

오만함을 버리고 비극적으로 사고하라!
우리 시대의 "현실주의자" 카플란의 뜨거운 통찰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로버트 카플란의 깊은 사유와 통찰이 담긴 에세이. 고대 그리스의 비극과 셰익스피어 등 문학 작품을 소재로 현실주의 정치철학을 풀어간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언제나 극적으로 변해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으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비극적 사고는 그러한 불안정한 세계에 대한 이해와 자기 인식이다. 또한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투쟁은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선과 또 다른 선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임을 깨닫는 것이 비극적 사고의 본질이다. 따라서 현명한 지도자라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두려움을 수용해야 한다. 오만함을 버리고 더 큰 비극을 피하기 위해 비극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 카플란은 오랫동안 국제 분쟁 지역을 취재하면서 특유의 필체와 통찰력으로 분석해온 저널리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포린폴리시』에서 선정한 ‘세계 100대 사상가’에 두 차례 올랐다. 전운을 드리우며 초강대국들이 귀환하는 시대, 우리가 읽어야 할 정치·외교의 필독서이자, 냉철한 현실주의자의 뜨거운 명상록.

 


 

왜 비극인가? 비극은 정치적 사유의 보고(寶庫)다

미국이 우월한 국력을 배경으로 전 세계에 영향력을 투사하던 단극 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초강대국들이 경합하며 대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오늘날, 국제정치 전문가이자 저명한 언론인인 로버트 카플란의 의미심장한 새 책이 나왔다. 카플란은 이 책 『카플란의 현명한 정치가』에서 정치 지도자의 오만을 경고하며, 더 큰 비극을 피하기 위해 “비극적으로 사고하라”고 말한다. 비극적 사고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두려움과 불안에 근거한 선견지명을 갖추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카플란은 지리와 지정학을 강조해왔으나, 이 책에서는 인간의 마음과 행위를 파고들었다. 지리는 인간의 삶에 한계를 부과하고 토대를 이루지만, 인간의 본성과 행위, 고유한 역사적 경험은 예측 불가능한 혼돈을 만들어내며 지리와 상호작용한다. 이 두 요소가 하나로 통합하여 문명의 서사시가 만들어지는데 그러한 양상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 바로 ‘비극’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비극적 사고의 모범이자 정수로서 고대 그리스의 비극과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분석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정치적 통찰의 길로 안내한다.

 

폭정보다 무정부가 더 나쁘다

극악무도한 독재자가 억압하는 ‘폭정’과 질서조차 없는 ‘무정부 상태’ 중 어느 것이 더 최악일까? 기본적인 평화와 질서를 공기처럼 누리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폭정이 더욱 사악한 것처럼 느껴지기 쉽다. 20세기 최악의 독재자들인 스탈린과 히틀러의 가공할 산업적 폭정을 경험한 후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실제로는 질서가 자유보다 앞선다. 질서가 없으면 그 누구도 자유나 자유권을 누릴 수가 없다. 질서가 없으면 자유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도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고대 페르시아의 철학자 아부 하미드 알가잘리는 이를 “무정부 상태 1년이 폭정 100년보다 더 나쁘다”는 한마디로 요약했다. 홉스는 “질서가 없으면 정의도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괴테 역시 “불의는 일시적이고 고칠 수 있는 반면 무질서는 인간 진보의 가능성 자체를 파괴한다”며 질서의 절대적 필요를 인정했다.

카플란은 취재원으로 살아온 생애 전체를 통틀어 자신이 경험한 가장 최악의 독재국가는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였으며, 그 극악한 폭정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지만 그 결과는 최악의 무정부 상태를 초래한 것이었다면서 자신의 실패를 고백한다. 그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비극적 사고와 감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이러한 실패가 벌어졌다고 진단한다. 즉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세상의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열정과 오만에 빠져 더 큰 차원의 힘과 혼돈의 위력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비극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태가 언제나 잘못될 수 있으며 우리의 행동은 종종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혼돈을 두려워했지만 수용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혼돈, 즉 무정부 상태를 두려워했다. 현대 문학이 직업적 삶과 계급, 사소한 일상과 로맨스에 탐닉하는 것에 비해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들은 질서와 혼돈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질서가 종종 억압적이고 잔인하지만 질서 이외에 다른 인간적인 대안은 존재하지 않으며, 질서가 없으면 문명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인들은 워낙 합리적이었던 까닭에 문명 반대편에 놓인 비합리적인 것의 힘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광신과 혼돈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디오니소스를 창조했고, 비극을 썼다. 디오니소스는 혼돈의 신이다. 디오니소스는 혼돈과 생명, 열정과 광신, 환상과 황홀경의 신이며 비극의 수호신이다. 그렇다고 고대 그리스인들이 혼돈을 옹호한 것이 아니다. 다만 지평선 너머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하나의 현실로서 혼돈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리스인들은 비합리적인 것에 적절한 자리를 내주지 않으면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비극은 선이 악에게 패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선과 또 다른 선의 싸움이다. 그렇기에 비극에서 인간이 내리는 어려운 결정은 고통을 야기한다. 비극은 세계를 바로잡으려는 용감한 시도와 관련되어 있지만 그 노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혼돈과 맞서 싸우지만, 결국은 혼돈이 승리하며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고통 속에서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 비극의 장엄한 미학이다.

디오니소스는 혼돈과 광기의 신이었다. 테바이의 왕 펜테우스는 디오니소스의 섬뜩한 새로운 종교가 퍼지는 것을 막기로 결정하지만 오히려 박코스 여신도들에게 끔직하게 살해당한다. 펜타우스가 저지른 최악의 죄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는 자만심이었다. 신들은 인간이 확실하다고 여기는 것을 무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인간의 오만을 징벌한다. 그리스인들은 이 세상에 비합리적인 것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불안한 선견지명: 상황이 갑자기 나빠질 수 있다는 인식

비극적 정신을 계승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후예들은 많았다. 인간의 본성과 내면에 천착한 희곡을 쓴 셰익스피어는 말할 것도 없고, 도스토옙스키와 콘래드, 니체와 카뮈, 그리고 『페더럴리스트 페이퍼』를 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도 그들 중 하나다. 그들은 혼돈의 힘을 알고 있었고, 인간의 지혜와 의지 너머에 있는 더 높은 차원의 힘을 인정하며 불안해했다. 그들은 혼돈을 존중했기 때문에 항상 잘못될 수 있는 가능성을 걱정하며 ‘의도적인 불안’을 구축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선견지명을 가질 수 있었다.

카플란은 이를 ‘불안한 선견지명’이라고 부른다. 불안한 선견지명이란, 우리가 놓인 상황이 언제나 극적으로 변할 수 있고, 나빠질 수 있다는 혹독한 인식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오만을 경계하고, 환상에서 벗어나 겸손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은 비겁함이나 패배주의가 아니다. 비극은 숙명론이 아니며 절망도 아니다. 비극은 이해다. 세상에는 언제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과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극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한계를 깨달으며, 따라서 더 효과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비극은 하나의 선과 또 다른 선의 고통스러운 싸움이다

위대한 정치가는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 불안한 선견지명을 갖추고 미리 생각한다. 그들은 항상 정의를 추구할 수만은 없으며 다루기 힘든 세계에서 악을 줄이기 위해 더 나은 악을 택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안다. 저명한 현실주의 정치학자 한스 모겐소는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의 가장 비열한 힘들에 “맞서는 게 아니라 그것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플란에 따르면, 링컨, 루스벨트, 처칠, 아이젠하워, (아버지) 부시는 비극적 감성이 풍부했던 위대한 정치가들이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북전쟁을 결정적으로 끝낸다는 더 큰 선을 달성하기 위해 남부의 민간인들에게 의도적으로 끔찍한 고통을 안겼다. 1864년 북군의 서부전역 총사령관 윌리엄 셔먼은 남군의 전쟁 수행 능력을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 남부의 여러 주를 초토화시키는 무자비한 작전을 실행했다.

윈스턴 처칠은 미국이 참전하기 전까지 홀로 나치 독일에 맞서 싸웠는데, 역사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식민지 전쟁에 참전한 경험 덕분에 히틀러라는 괴물을 일찍 간파했고, 1938년 뮌헨 협정의 유화정책이 (또 다른 세계 대전을 막을) 합리적 결정이 결코 아니며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량 학살자 히틀러를 물리치기 위해 역시 대량 학살자인 스탈린에게 군사원조를 보냈다. 그는 스탈린과 동맹을 맺으면서 무기대여법을 통해 113억 달러의 물자를 소련에 공급했다.

노르망디 침공을 진두지휘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야심뿐만 아니라 두려움에도 지배된 인물이었으며, 거대한 핵무기를 사용하는 재량권을 부여받은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몇 차례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라는 고문들의 조언을 물리침으로써 이후 수십 년을 위한 선례를 남겼다. 아이젠하워는 한국전쟁에서 전면적인 승리를 위해 싸우는 것을 거부하고 대신 휴전을 받아들였다. 또 그는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교착상태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알았기 때문에 1956년 헝가리혁명을 짓밟은 소련에 맞서 개입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는 톈안먼 학살 사태 이후 일시적으로 중국과 냉각기를 가졌지만, 당시 언론인과 지식인들이 열정적으로 요구하던 외교관계 단절은 수용하지 않았다. 그는 소련의 군사적 대응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의 붕괴에 대해서도 의도적으로 침묵했다. 제1차 걸프전쟁 때 부시는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쫓아냈지만 바그다드까지 밀고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군사력을 사용하면서도 이에 관해 신중하고 비극적으로 사고한 마지막 미국 대통령이었다.

 

오만함을 버리고 비극적으로 사고하라

카플란은 21세기판 디오니소스적 힘이 도처에 여러 얼굴을 가지고 우리 앞에 당도했다고 이야기한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공할 기후 위기,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표면화된 사회적 무질서와 전복의 기류, 핵무기와 정밀유도 무기로 무장한 초강대국들 사이의 긴장 고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가들은 이러한 위기에 대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2차 대전 후 태어난 현재의 미국 지도자들과 중산층은 자신의 삶에서 전쟁의 참화를 겪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미국의 힘으로 세계를 바로잡는 것이 가능하다는 도덕주의와 야심을 갖고 있다. 그들은 선배 정치가들과 달리 비극적으로 사고하지 못한다.

과도한 낙관주의나 도덕적 열정은 지식인이나 언론인에게는 어울릴지 모르나, 관료적 책임과 전쟁 수단을 가진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지식인들은 현존하는 악폐(폭정)에 독설을 퍼붓는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편리한 입장이다. 지식인들은 언제나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지 않은 채 옳음의 편에 서며, 도덕적 이상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긴다. 대중은 인도주의적 관점과 윤리적 주장에 종종 매혹되며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관료적 책임은 그 반대다. 고위 권력자에게 흑과 백이 분명한 해결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현실은 내키지 않은 타협을 요구하고, 정책은 때때로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 정치가에게는 광대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모든 권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적고 선택지는 좁으며, 이 모든 것은 규율과 어려운 결정을 요구한다.

비극에는 이런 모든 정치적 통찰로 가득하다. 카플란은 미국, 러시아, 중국이 전쟁을 벌이는 일, 그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금 비극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비극적 사고는,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히듯, 서태평양에서 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오늘날 한국의 정치가들이 외교의 난제를 헤치고 나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 오만함을 버리고 비극적으로 사고하라!

 

 


 

지은이  로버트 D. 카플란 Robert D. Kaplan

오랫동안 국제 분쟁 지역을 취재하면서 목격한 국제정치와 외교 문제를 특유의 필체와 통찰력으로 분석해온 저널리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다. 대외정책연구소FPRI의 로버트 스트라우스-후페 지정학 책임 연구원이며, 『포린폴리시』에서 선정한 ‘세계 100대 사상가’에 두 차례 올랐다. 수십 년간 『애틀랜틱』에 칼럼을 기고했으며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뉴리퍼블릭』, 『월스트리트저널』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2001년 탁월한 국제 보도로 그린웨이윈십상을 수상했고, 2016년에는 스페인왕립지리학회 국제상을 받았다. 『지리의 복수』, 『지리 대전』, 『몬순』, 『무정부 시대가 오는가』, 『21세기 국제정치와 투키디데스』, 『유럽의 그림자』, 『발칸의 유령들』, 『제국의 최전선』을 포함해 수많은 저서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옮긴이  유강은

국제 문제 전문 번역가. 『미국의 반지성주의』로 제58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신체설계자』, 『빚의 만리장성』, 『도덕의 기원』, 『신이 된 시장』, 『자기 땅의 이방인들』, 『E.H.카 러시아 혁명』, 『물러나다』, 『위어드』, 『타인의 해석』,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불평등의 이유』 등 인문 사회부터 정치까지 폭넓은 분야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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