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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북스의 책/사회과학

제국의 병기창 - 일본 제국의 유산과 북한의 군사 공업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의 긴장이 예사롭지 않게 고조되고 있습니다.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쏠려있는 이 시점에 여러분께 범상치 않은 학술서 하나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바로 2009년 벽두에 출간된 『전쟁이 만든 나라, 북한의 군사 공업화』입니다.

 

 


 

 

제국의 병기창 - 일본 제국의 유산과 북한의 군사 공업화

 

 

병합 이후, 북한의 광공업은 크게 발전했다. 특히 1940~1945년에 이루어진 군사 공업의 발전은 종래에 생각되었던 것 이상으로 급속하고 광범위했으며, 그 결과 북한은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근대 공업 지대로 변모했다. 일제가 붕괴한 후, 생산 설비는 소련 점령군의 손을 거쳐 김일성 정권으로 넘어갔다. 김일성 정권은 이것을 기반으로 전쟁을 준비했고, 곧 남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이 점에서 일제의 전쟁 준비는 김일성의 전쟁 준비로 직결된 것이다.

 

- 기무라 미쓰히코, 『전쟁이 만든 나라, 북한의 군사 공업화』 머리말에서 

 

  

두 명의 일본인 북한경제사 학자가 쓴 이 책은 일제 점령기에서 한국전쟁 발발까지 북한의 공업화 역사를 다룹니다. 이 주제는 식민지 근대화론 논쟁과 맞물려 한국에서는 일종의 금기로 여겨졌고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한 페이지라도 펼쳐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너무나 방대한 통계와 사료를 수집한 저자들의 집념과 이를 토대로 펼쳐지는 입론의 탄탄함에 놀라움과 감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된 작은 에피소드를 소개해드리자면, 당시 번역 원고를 받아든 편집자들은 놀라움을 넘어 당혹감을 느끼기까지 했는데요, 그 이유는 본문이 처음 시작되는 1장 내용이 단도직입적으로 ‘광물’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장 광업. 본 장에서는 석탄과 그 외 금속, 비금속 광물로 나누어 기술한다.” (52쪽)

 

가장 흥미진진해야 할 책의 첫머리가 광물의 분류로 시작하다니! 게다가 “1절 석탄”은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1절 석탄. 석탄은 통상 탄화도가 높은 순으로 무연탄, 역청탄, 갈탄 등으로 대별된다.” (52쪽)

 

마치 “갈리아는 세 지역으로 나뉜다.”라는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를 떠올리게 하는 무지막지한 정공법이었습니다. 네. 물론 석탄이 중요합니다. 당시에 석탄은 에너지의 왕이었고 해군 함선의 연료였다고 하니까요. 석탄 다음에는 철, 비철금속, 기타 광물 항목이 이어집니다. 끝없는 통계와 기록들의 행렬이 이어집니다.

 

이에 미지북스는 저자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전편과 후편에서 맨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던 총괄 부분을 1장으로 배치하고 원래의 1장을 2장으로 재배치하는 등 책의 구성을 조정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요청이었죠. 저자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의 한국어판 차례가 나오게 되었답니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북조선의 군사 공업화 : 제국의 전쟁에서 김일성의 전쟁으로』입니다. 한마디로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 준비가 그대로 북한의 한국전쟁 수행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명저 『강대국의 흥망』에서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산업화 이전과 이후로 나누면서, 산업혁명 이후의 시대에 세계 패권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는 군사력과 전쟁물자 보급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산업 생산력’이라고 규명한 바 있습니다. 만약 일제가 북한 지역에서 생산적 경제를 수립하지 않고 오로지 파행적인 수탈로 일관했다면, 북한을 인수한 김일성 정권은 경제적 폐허 속에서 어떻게 한국전쟁과 같은 거대한 군사적 야심을 실현할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서 민감한 ‘식민지 근대화론 대(對) 제국주의 수탈론’의 대립이 뜨거운 화두로 등장하게 됩니다. 일본은 한편으로는 제국주의 전쟁을 위한 병기창으로 만들기 위해 북한을 아시아 최고의 근대 공업 지역으로 탈바꿈시킵니다. 거대한 제철소와 화학 콤비나트, 발전소를 건설하고 각종 기계 공업과 소비재 공업을 발전시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일제가 북한의 천연자원을 적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철도나 항만, 광산과 같은 산업기반 시설을 건설했다는 것 역시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저자의 말을 한 번 들어볼까요?

 

‘식민지 경제는 발전할 수 없다. 발전한다고 해도 파행적일 뿐이다’ 또는 ‘식민지에서는 공업화가 진전되지 않으며 이 때문에 식민지 경제의 본국 경제에 대한 종속은 시간이 갈수록 강화된다’는 것이 통설적인 주장이었고, 이러한 명제는 조선에도 타당하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 왔다. 이는 전시 북한의 군사 공업화 정도와 성격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한 잘못된 설명이다. (49쪽)

 

언제나 그렇듯 최종적인 판단은 독자의 몫이겠지요. 다만 저와 같은 평범한 독자들에게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이루는 방대한 통계의 산맥은 독서 의욕을 떨어뜨리는 장벽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일부분을 적절히 건너뛰는 방식으로 읽으신다면, 일제의 병기창 건설과 태평양 전쟁에서의 패망, 소련군의 진주와 북한 공업 재건, 다시 한국전쟁으로 치닫는 역사의 파노라마를 역동적으로 느낄 수 있는 대단히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일본의 전차 공장. 2차 세계 대전 당시 '치하 신호토'라는 일본 전차를 생산하는 모습입니다. 

 

 

국의 병기창

 

이 책의 구성은 크게 일본 패망 이전 시기(1910~1945년)를 다루는 전편과 해방 이후 한국전쟁까지의 시기(1945~1950년)를 다루는 후편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전편에 대한 사료는 주로 일본 내무성의 보고서와 일본 기업들의 자체 기록입니다. 후편에는 러시아어로 된 구소련 정부의 내부 문서를 주된 자료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후편에는 소비에트 몰락 이후 새롭게 공개된 자료들로 스탈린의 북한 점령 정책과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준비하면서 소련과 교섭한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한일병합 이후 많은 일본인 기업가들이 북한 개발에 투자하기 시작합니다. 개발은 처음에 민간 차원에서 시작되었지만 전쟁이 가속화됨에 따라 국가가 주도권을 가지게 되고, 북한은 일본의 전쟁 무기와 전시 물자를 공급하기 위한 생산 기지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됩니다. 당시 북한에 어떤 공장들이 있었는지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1920년대에 노구치 시타가우가 부전강에 대규모 댐과 발전소를 건설하고, 그 전력을 이용해서 화학 비료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사업을 확대하여 규모, 설비 면에서 세계 굴지의 화학 콤비나트를 구축했다. (29쪽)

 

미쓰비시제강 평양제강소는 육해군에 제공할 병기용 강재의 생산 공장으로 1943년에 조업을 개시했다. 항공기 기체 제조에 필수적인 알루미늄이나 마그네슘의 증산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도 설립되었다. (30쪽)

 

니혼질소의 자회사인 닛치쓰연료공업은 1943년에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카바이드 공장을 청수에 건설했다. 생산된 카바이드는 해군의 연료는 물론 그밖의 제품의 기초 원료로서 군수 공업에 널리 이용되었다. (33쪽)

 

광공업 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해 발전소, 철도, 항만의 확장도 추진되었다. 압록강 본류의 수풍댐, 철도국의 평원선, 만포선 건설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34쪽)

 

일본 총독부 자료에 의하면 1944년 조선의 기초 자재 생산 능력은 일본 제국 전체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북한에 도입된 기술이나 설비가 수준이나 규모에서 일본을 능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북한에 대한 대규모 중공업 투자의 매력을 느꼈던 것일까요? 저자는 이에 대해 북한이 전력이나 광물 등 특정 자원이 매우 풍부하게 존재했고 집약적인 사용이 가능했으며, 이는 대량생산에 유리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식민지 현지에서는 선행 기업이 거의 없어 창업자의 높은 이윤을 기대할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그럼, 여기서 북한 전력(電力)의 상징인 압록강 수풍댐 건설 장면으로 한 번 들어가 볼까요?

 

1937년에는 압록강 본류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발전은 댐식으로, 이 강 하류의 수풍에 거대한 댐을 쌓아 물의 흐름을 막고 수량을 높임으로써 낙하와 저수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공사를 담당했던 곳은 하자마구미, 니시마쓰구미, 마쓰모토구미였다. 이들 회사의 기술자는 미국의 후버댐과 그랜드쿨리댐을 시찰하고, 건설 기술 및 기기 등을 도입했다. 댐 공사에는 합계 2,500만 명의 노동자가 동원되었다. 그 대부분은 남한의 농촌에서 반강제적으로 소집되었다. 완성된 댐은 당시 세계 최대급으로 높이 106m, 길이 900m 달했다. (181쪽)

 

 

 압록강 수풍댐. 높이 106미터, 길이900미터로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급 댐이었습니다. 

 

발전 능력만 보자면 북한은 GDP규모에 비해 일본을 능가했습니다. 처음에는 설비나 기술을 일본이나 유럽 등지에서 들여왔지만, 북한의 공업은 점차 자급 정도가 높아져 전시에 대일 수입 의존에서 탈피하는 방향으로 크게 전환되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은 조선에 ‘전쟁 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본국으로부터 자립된 군사 공업 건설을 추구했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 북한은 만주와 중국에서 원자재와 연료를 공급받고 완제품과 반제품을 파는 형태로 대륙 경제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일본의 패망과 북한 공업의 재건

 

결국 일본은 제국주의 야심으로 벌였던 중국과 미국의 전쟁에서 패망하고 맙니다. 일본의 퇴각과 소련군의 진입 과정에서 북한의 산업 시설들은 많은 손실을 입게 되는데 주로 일본군의 폭파와 소련군의 약탈과 반출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소련은 산업 시설과 주요 기계 설비는 물론이거니와 저장 물자, 광물, 완제품까지 조직적으로 반출했습니다. 한 일본인 종업원의 증언에 따르면 소련군은 공장의 ‘변기’까지 뜯어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소련의 ‘전리품’ 노획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북한의 공식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소련군은 ‘해방군’으로 묘사되기 때문이죠.

 

왜 소련은 북한의 설비와 물자를 약탈하고 반출했을까요? 그것은 소련이 독일과의 전쟁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엄청난 곤경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자 부족은 극에 달했고 소련의 일반 국민들은 북한 주민 못지않은 빈곤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스탈린은 조선인의 대소 감정 악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북한의 생산품을 징발하고 반출했던 것입니다. 또한 소련의 입장에서는 일본과 전투하여 승리했고 북한은 점령지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접수한 일본인 자산은 전리품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따라서 전쟁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소련으로 가지고 간다고 하여 하등 부당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러나 저자들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일본이 북한에 남긴 산업 설비에 큰 손실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동독 지역에서 소련이 공장을 모조리 뜯어간 것에 비하면 정말 미미한 수준이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1946년에 미국의 유엔 조사단이 북한을 방문하여 소련군의 설비 반출 유무를 확인한 보고서가 있습니다. 조사단은 “설비 철거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설령 있다 해도 그 규모는 작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 이유는 소련의 정책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소련이 원하던 것은 북한의 농산품과 광산품의 지속적인 획득이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산업 설비를 오히려 보전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은 이러한 점에서 전후의 광공업 발전을 유리한 상황에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스탈린은 동유럽이나 만주에서와 달리 북한의 산업시설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었습니다.

 

 

자, 여기서 패망 이후 북한에 남겨진 일본인 기술자들을 보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중 상당수는 일본군이 퇴각하면서 공장 폭파를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고 공장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몇몇 사례를 꼽아보겠습니다.

 

닛치쓰 흥남공장: 종전 직전에 군의 명령에 따라서 폭파 준비를 하지만 공장의 간부가 이를 거부하였다.

 

호쿠센제지화학공업 길주공장: 소련군이 진주하기 전에 일본군과 경찰이 공장 파괴를 강요했으나 공장 측이 거부하였다.

 

니혼고주파중공업 성진공장: 종전 후에 취임한 조선인 공장장이 소련군 병사가 진행하고 있던 설비 철거를 저지하였다. (224쪽)

 

흥미롭게도 마지막 사례는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이네요. 이들은 아마도 자신이 만든 공장을 파괴하는 일에 대한 저항감 때문에 또는 나중에 있을지도 모를 파괴 행위에 대한 추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공장을 지켰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북한에 남아있던 일본인 기술자들은 소련군에게는 활용해야할 인적 자원이며 일제가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이었습니다. 소련은 이들을 억류시키고 (몇몇은 본국으로 탈출했지만) 생산 현장에서 사역시켰다고 합니다.

 

 

전쟁 국가의 탄생

 

북한의 공업 재건은 이처럼 소련의 전략적인 이유로 추진되지만 그 성과는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습니다. 북한의 공업 생산 수준은 1948년에 들어서도 전쟁 전의 정점으로 복귀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원료와 부품을 입수하기 어려웠고 기술상의 문제 때문에 설비 가동률이 충분히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소련은 북한에 원유 등 각종 자원을 지원했지만 생산에 필요한 다양한 물자를 넉넉하게 공급하지는 못했습니다. 소련 자신도 전쟁의 영향으로 심각한 물자 부족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중국에서는 국공 내전이 재발하여 대륙에서의 원료 수입이 두절되었습니다. 노동자들 대부분은 남한 출신이어서 그들 역시 일제 붕괴 후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 버려 인력이 부족했습니다. 한 마디로 북한은 일제의 산업 유산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 자체로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김일성은 한국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모두가 알다시피 탱크에서부터 전투기에 이르기까지 각종 전쟁 무기를 소련으로부터 공여 받았기 때문입니다.

 

철수 당시 소련군은 보유하고 있던 모든 무기, 장비를 조선인민군에게 양도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T-34형 전차 60량, 자주포, 사이드카, 차량, IL-10형 폭격기, 야크-9형 전투기 등 공군기 100기. (…) 근래에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인도한 병기(1949년 분)는 폭격기, 전투기, 전차, 중화기, 상륙용 보트, 어뢰, 통신기기 등 광범위하게 걸쳐 있었다. 이 결과 한국전쟁 개전 시기까지 조선인민군은 공군기 192기, 전차 173량, 박격포 1300문 등을 보유하기에 이르렀고, 그 장비를 비약적으로 강화했다. (291쪽)

 

물론 이것은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스탈린은 대가를 요구했습니다. 스탈린에게 병기 공여는 원조가 아니라 사업이었던 겁니다.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얻는 대신 철, 비철금속(특히 금과 전략물자였던 베릴륨), 화학제품, 쌀을 제공했습니다. 그것은 북한에게는 가혹하리만치 냉정한 거래 조건이었습니다. 북한은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에도 소련에 무기 대금으로 수출을 계속했습니다. 사생결단의 전쟁 와중에도 쌀을 실은 배는 소련을 향해 출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일제가 남긴 산업적 유산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해 북한에게 현대전을 수행할 정도의 능력은 제공해주지 못했지만 소련제 무기를 수입하기 위한 대금을 지불하고 기관총이나 탄환, 군복 정도는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정도의 과업은 받쳐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김일성 정권이 군비 확충을 최우선으로 생산물을 분배하였으므로 북한 주민의 물자 결핍은 당연히 심각했습니다. 김일성은 일제의 중화학 공업 유산을 투기적인 전쟁 기획에 소모하였고 결국 그러한 산업 기반조차 한국전쟁 과정에서, 특히 미군의 공중 폭격에 의해 심대하게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북한 정권의 기본적인 통치 기조는 3대에 걸쳐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일성은 1949년 여름부터 “인민군에 비행기, 전차, 함정을 보내기 위한 기금 헌납 운동”을 추진했다. 공장 노동자, 농민 등 전 주민이 여기에 참가해서 같은 해 말까지 현금 2억 8,100만원과 양곡 4만8천 가마니가 그의 앞으로 모였다. 김일성은 이렇게 인민 우선이라는 슬로건과는 정반대로 주민 생활을 희생하면서 새로운 전쟁을 준비했던 것이다. (307쪽)

 

 

  전쟁이 만든 나라, 북한의 군사공업화

기무라 미쓰히코, 아베게이지 지음 | 차문석, 박정진 옮김 | 미지북스 | 2009

 

 

*** 추천사 ***

이 책은 북한 체제 형성기의 경제적 기반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들을 담고 있다. 저자들은 통념과는 달리 일제의 지배 체제와 김일성 체제가 '전체주의'라는 측면에서 연속성을 갖고 있음을 주장한 적이 있는데, '군사 공업화' 또는 '기술'의 측면에서도 또한 그러하였음을 실증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 김낙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주체의 나라' 북한을 후기 식민주의(postcolonialism)의 시각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이 책은, 기술사라는 미시적, 실증적 접근을 통해, 일제의 전쟁 준비가 북한의 전쟁 준비로 이어졌다는 논쟁적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새로운 논쟁의 서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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