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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知 - 세상 읽기

큰 국가, 작은 국가, 그리고 브렉시트(Brexit)


 

큰 국가, 작은 국가, 그리고 브렉시트

 

유럽연합에서 탈퇴할지 의사를 묻는 영국의 국민투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탈퇴를 주장하는 쪽은 영국이 독자적인 길을 걷던 시절의 옛 영광을 그리워하는 노년층이 중심이며, 이들은 이민자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주권국으로서의 통제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잔류를 주장하는 쪽은 주로 젊은 세대로서, 유럽연합에 속함으로써 얻는 경제적 안정과 번영을 중시하고, 유럽이라는 새로운 통합 체제의 미래적 비전에 더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영국의 주류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 지식인들은 탈퇴시 영국의 쇠락을 우려해 잔류에 투표할 것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심지어 프랑스 경제장관(에마뉘엘 마크롱)은 브렉시트가 되면 영국은 변방의 작은 섬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브렉시트는 유럽연합을 둘러싼 구심력과 국민주권이라는 원심력이 작용하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만약 영국민이 브렉시트를 선택하게 된다면 유럽연합이라는 큰 국가 연합체를 버리고 영국이라는 작은 나라로 돌아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스코틀랜드까지 독립해버리면 영국은 정말로 유럽 변방의 왜소한 나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리처드 로즈크랜스 교수(하버드대)는 『서양의 부활』(미지북스, 2015년)에서 시대별로 유리한 국가의 크기가 달랐다고 이야기합니다. 크게는 큰 나라(제국이나 왕국)가 유리한 시대와 작은 나라(도시국가나 무역국가)가 유리한 시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크기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국제 상업의 개방성이었습니다. 교역이 자유로운 시대일수록 작은 나라가 유리했고, 그렇지 않은 시대는 영토가 크고 자원이 풍부한 큰 나라가 유리했습니다.

 

로즈크랜스의 기준에 따르면, 기원전 2000년에서 서기 1000년경에는 큰 나라의 시대였습니다. 고대 제국의 시대였죠. 그다음 500년은 다시 베네치아, 제노바,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같은 작지만 강한 무역국가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500년은 그보다는 더 큰 국민국가의 시대가 펼쳐졌고, 그러한 경향이 강해져서 20세기 초반에 대영제국을 필두로 하는 제국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20세기 중반에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양대 강국의 시대가 되었구요. 그러다가 다시 20세기 중후반에는 일본과 아시아의 호랑이들 같은 무역국가들이 잘나가는 막간극 시대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다시 영토와 인구가 광대한 대국들(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등)과 국가연합체(유럽연합)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세계사의 흐름이 상업에서 다시 정복으로 회귀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정복이 아닌 경제적 통합을 통해 몸집 불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아시아에서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무역연합이 경쟁하고 있고, 각국이 경제적 블록을 더 크게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로즈크랜스 교수에 따르면, 아무리 몸집이 크더라도 단일 국가의 역량만으로는 현재 직면한 도전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양의 부활』에서 로즈크랜스 교수는 21세기에 서양 세계가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중국과 인도 등을 필두로 한 동양의 눈부신 부상이라고 진단합니다. 떠오르는 동양과 쇠퇴하는 서양 사이의 힘의 균형이 자칫 잘못하다가는 1차 세계대전과 같은 군사적 재앙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당시에는 패권국 영국과 도전국 독일 사이의 갈등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로즈크랜스 교수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더 심도 깊은 경제적 정치적 통합을 이루어냄으로써 힘의 불균형을 창출하고, 서양이 동양을 공동 번영할 수 있는 체제 속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자의 바람과는 달리 현실은 유럽 내에서의 구심점이 와해될 수도 있는 결정적인 이벤트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과연 영국민들의 선택은 무엇이 될까요? 그들은 당면한 사회적 갈등과 문제를 유럽연합 내 잔류하면서 스스로 소화하고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유럽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꽤 험난해 보이는 독자적인 길을 가는 쪽을 택하게 될까요? 

 

 

서양의 부활

 

리처드 로즈크랜스 지음 | 유강은 옮김 | 미지북스 | 252쪽 | 15,000원

 

 

범대서양연합은 어떻게 전쟁을 방지하고 미국과 유럽을 복원할 수 있는가

 

★★★★ 유명 외교 저널 『포린어페어스』2013년 올해의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