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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북스의 책/사회과학

[천관율의 줌아웃]-암울하고 위대했던 2012~2017

 

 

『천관율의 줌아웃

암울하고 위대했던 2012~2017

 

천관율 지음 | 미지북스 | 372쪽 | 16,000원

 

데이터 저널리즘의 선구자

 <시사IN> 천관율 기자가 목격한

가장 암울하고 가장 경이로운
한국 사회의 결정적 분기점에 관한 이야기

 

 “한국 보수는 왜 권위주의로 미끄러졌나? 이것은 박근혜라는 기괴한 지도자의 일탈인가, 한국 보수 전체의 속성인가? 진보는 한동안 왜 속수무책이었나? 그리고 어떻게 힘을 되찾았나? 2016년 대분기 이후 유권자 지형은 진보 우위로 재편되었나? 이제 냉전적이고 권위적인 전통 보수가 다시 다수파로 돌아올 길은 막혔는가? 만약 그렇다면, 보수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우리 시대를 압축해 보여주는 27편의 기사를 모으고 새로 쓴 글을 덧붙여 책으로 엮었다. 기사는 2009년부터 2018년 사이에 작성되었지만, 책이 집중하는 시기는 2012~2017년 5년, 가장 암울하고 가장 위대했던 그 5년이다. 이 경이로운 시기를 통과한 우리는 이제 민주정의 주권자가 된다는 게 얼마나 두근거리는 경험인지를 알아버렸다. 우리가 이 놀라운 2016년 겨울 이전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가장 최근 우리가 겪은 거대한 분기에 관한 이야기
이 책은, 우리가 지나온 거대한 분기점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 보수는 왜 몰락했을까? 그리고 촛불 이후 한국 사회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이행하게 될 것인가? 데이터 저널리즘의 선구자 <시사IN> 천관율 기자는 이 책에서 지난 10년을 복기하며 우리에게 열린 미래를 조심스레 조망한다.
 『천관율의 줌아웃』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2016년 겨울 광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주권자들이 수행한 고도의 전략과 인내, 위대한 승리의 순간을 확인한다. 국민은 원했던 대로 자격 미달의 통치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그렇다면 통치자는 어떤 의미에서 결격이었던 것일까? 2부는 시간을 거슬러 보수의 몰락 과정을 소개한다. 보수의 거침없는 퇴행은 진보의 지리멸렬과 동전의 앞뒤를 이루고 있었다. 3부는 야권이 김해 봉하에서 그들의 지도자를 떠나보내던 장면에서부터 권토중래하기까지의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 저자는 촛불이 열어젖힌 이 시대를 ‘촛불체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며 우리에게 열린 여러 가능성을 타진한다.

 

천관율의 줌아웃

- 최대한 멀리서, 구조와 맥락을 드러내는 글쓰기
보통 좋은 기자란 줌인(zoom-in)을 잘하는 기자를 말한다. 피사체, 즉 취재 대상을 가까이 잡아당겨서 독자에게 상세히 보여줄수록 훌륭한 기자가 된다. 하지만 저자는 그 반대편에서 자신의 재능을 찾았다. 저자가 택한 전략은 줌아웃(zoom-out)이다. 피사체, 즉 취재 대상을 최대한 멀리서 최대한 다른 시야로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접근법이다. 줌아웃이 잘된 기사는 마치 드론으로 찍은 영상 같아서, 피사체의 디테일은 흐릿한 대신 그것이 어떤 구조와 맥락에 있는지 더 잘 보여주는 강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구조와 맥락은 사건과 디테일보다 느리게 변한다. 특히 중요하고 뿌리 깊은 구조일수록 더 느리게 변한다. 느린 문제를 다루려면 느린 저널리즘이 필요하고, 잘 수행된 느린 저널리즘은 그만큼 시간을 견뎌내는 힘이 있다. ‘줌아웃’은 저자가 자신의 느린 저널리즘을 일컫는 특유의 표현이다.

 

2016년 겨울, 광장에 선 주권자들의 선택
1부에서 저자는 독자를 2016년 겨울의 광장으로 데려간다. 암울했던 시기의 끝자락에서 광장의 시민들은 기로에 서 있었다. 가정해보자. 만약 그해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이겼다면? 촛불집회가 격해지면서 중산층이 이탈했다면? 만약 대통령이 새누리당에 대한 장악력을 유지하여 탄핵안이 부결됐다면? 만약 대통령이 2선 후퇴와 거국내각 구성을 받아들였다면? 이러한 가능성은 수없이 존재했고 어느 것이든 일어났다면 결과는 퍽 달라졌을 것이다. 달리 말해, 광장에 선 주권자들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길은 선택지가 매우 좁은 길이었다. 시민들은 지도부도 없이 고도의 전략을 마련해야 했고, 인내심 있게 대오를 유지해야 했다. 그때 거기서 그들은 어떤 길을 발견했던 것인가?
 2016년 겨울 광장의 목표는 ‘혁명’이 아니라 ‘체제의 복원’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광장이 선택한 무기는 횃불과 단두대가 아니라 입법부와 헌법이었다. 저항권의 직접적 행사, 폭력을 동반하는 혁명적 수단은 기각되었다. 광장의 목표가 혁명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승리는 거의 초현실적인 성취가 되었다. 광장의 시민들은 집요하게 입법부를 움직이고 헌법을 통해 명령을 도출했으며, 결국 체제로 하여금 주권자의 의지에 복무하게 만들고 통치자를 해고하는 데 성공하였다. 언뜻 당연해 보이지만 이는 지구에서 극소수 국가만이 도달한 경지이자, 이전까지 한국 현대사가 증명한 적 없는 명제였다.
 무엇보다 이로써 한국인들은 원했건 아니건 ‘체제의 복원’을 넘어, 1987년 힘으로 체제를 때려눕혔던 경험에서 다시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나아갔다. 익숙했던 광장 대 정치의 대립을 깨고, “광장이 정치를 발견한 것이다.”

 

한국 보수는 왜 몰락했는가?
2부는 한국 보수의 몰락과 파산에 관한 이야기다. 광장의 촛불과 입법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박근혜 정부는 줄곧 그들의 시선에 의지하는 객체로만 등장한다. 말하자면 그다음 ‘줌아웃’의 대상은 박근혜 정부와 보수이다. 도대체 박근혜 정권의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박근혜 정권의 문제는 단순히 리더만의 문제였던 것인가 아니면 보수 일반의 문제였던 것인가?
 남북 정상회의록 공개 파동을 시작으로 세월호 참사를 거쳐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정부는 보수의 가치와 정면 대결하는 보수 정부였다. 한국에서 보수의 세계관은 체제 경쟁을 전제했고, 북한을 주적으로 하는 대결주의는 한국 보수의 근본 정서로 자리 잡았다. 이런 관점에서 보수에게 국가란 북한과의 대결을 집행하는 총동원 기구였다. 국가의 적은 휴전선 이북에도 있지만 이남에도 있었다. 국가권력은 ‘국가의 적’을 공격하기 위해서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상상되었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이런 모습이 박근혜라는 기묘한 정치인의 일탈로 인한 결과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는 대결주의를 내면화한 한국 보수의 본령에서 곧바로 도출되는 태도였다.

 


 2016년 촛불은 박근혜식 통치를 ‘체제 밖의 어떤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이 맥락에서, 2016년 촛불은 진정으로 중대한 사건이었다. ‘국가의 적’을 상대하는 총력전 정부와 전시 사령관으로서의 대통령이라는 한국 보수의 통치 원리를 처음으로 전면 기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와 이를 옹위한 보수는 돌연 오른쪽 끝에서 주변화되었다. 과연 보수는 잃어버린 옛 영토를 회복할 수 있을까?

 

진보가 지나온 긴 터널
보수의 거침없는 퇴행은 분명 진보의 좌충우돌과 갈지자걸음의 도움을 받은 결과였다. 이 책의 3부는 진보가 그들의 지도자 노무현을 떠나보내던 장면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곳에는 노무현 100만 명이 있었다.”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기까지 진보는 두 번의 대선 패배를 포함하여 긴 터널을 지나야 했다.
 2012년 대선이 끝난 후 저자는 윤여준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인터뷰에서 이 보수주의자는 진보 일각에 존재하는 선악의 세계관을 일축하고, 대선의 패배는 차라리 진보의 ‘자기 정립’ 실패에 있다는 답을 내놓는다. 저자가 왜 박근혜가 아닌 진보 쪽의 문재인을 지지했는가라고 묻자 이 원로는 ‘체제의 지속 가능성’을 생각했을 때 문재인이 더 나은 후보였다는 답을 내놓는다.
 이어지는 글은 이를테면 진보가 왜 ‘자기 정립’을 해내지 못하는가에 관한 보고서이다. 여기서 저자가 내린 중요한 결론은 결국 진보가 집권하기 위해서는 안정된 리더십 창출을 위한 ‘제도화’와, ‘제도에 대한 신뢰’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지금의 대통령이 이 과업에 성공하고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2014년 8월 당시에는 그것이 가능할 것인지, 누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어떤 국민도 정치인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2017년 대선은 정초 선거였나?
유권자의 투표 행태는 늘 요동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지속성과 복원력이 강하다. 한번 정착한 기본 구도는 여간해선 바뀌지 않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첫 대선과 1990년 3당 합당을 거치면서, 한국 정치는 지역 구도를 바탕에 깐 진보·호남당과 보수·영남당의 경쟁으로 고착됐다. 이처럼 기본 구도를 짜는 선거를 정치학자들은 ‘정초 선거(founding election)’라고 부른다.
 2017년 대선은 한국 정치의 기본 구도를 다시 재편하는 정초 선거가 될 가능성이 있다. 보수 블록이 구조적으로 쪼개지고, 쪼그라들었다. 보수를 대표하는 두 후보의 득표율 합은 30.8%에 그쳤고, 지지의 보루였던 수도권의 자산 소유 중산층, 영남 보수 연합의 한 축인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장·노년 보수 동맹의 한 축인 50대, 이 세 축이 동시에 흔들렸다.
 저자는 묻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루스벨트의 길과 이명박의 길 중 어느 곳을 향하게 될까? 1932년 당선 이후 유권자 지형의 구조 변동을 안착시켜 ‘뉴딜체제’를 완성해낸 루스벨트의 길을 간다면, 2017년 대선의 선거 구도는 지속될 것이고 훗날 이 선거는 정초 선거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반면 무너진 상대 진영을 재건시켜주는 이명박의 길을 간다면, 2017년 대선은 마치 2007년 대선이 그랬듯 단순한 막간극이 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촛불 이후 대두한 ‘적폐 청산’과 ‘협치’ 담론을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촛불이 열어젖힌 시대의 여러 가능성
4부는 책 전체에서 가장 독특하다. 저자는 2014년에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를 분석한 기사를 쓴 이후로 온라인 공간의 담론 지형을 꾸준히 탐색해왔다. 여성 혐오, 세월호 유가족 혐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불공정 논란까지, 한국 사회를 뒤흔든 폭발력 있는 담론들을 추적한 이 부의 이름은 결국 ‘공정의 역습’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들의 ‘공정에 대한 감각’이 갈등의 전선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촛불집회는 최순실 국정 농단과 정유라 특혜 논란이라는 희대의 불공정 사태로 폭발했고, 그 흐름에서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를 가장 괴롭힌 주제도 바로 이 ‘공정’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공정인가? 사람들은 어떨 때 공정하다고 느끼고 무엇을 불공정하다고 느끼나? 사람들의 ‘공정에 대한 감각’은 노력에 따른 공정한 보상을 중시하는 ‘비례 원리’와, 보편적으로 평등한 상태를 지향하는 ‘보편 원리’ 두 가지로 나뉜다. 어느 것이 더 강하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사안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다. 의미심장한 부분은 다른 잣대에 의거해 다른 결론을 내린 양자 모두가 스스로를 ‘공정’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양자의 차이는 이성의 차원보다 더 깊은 직관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로서, 나아가 정치적 입장의 차이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비례 원리의 극단에서는 ‘일베’가 스스로를 ‘공정’의 보루로 자임할 수 있게 된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이 ‘공정’ 화두가 ‘체제 복원’ 이후 시대정신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 사상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신뢰와 공동체 의식과 감시와 처벌이 뒤섞여 연대를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4부에서 저자는 기자로서 명성의 중요한 부분인 데이터 저널리즘을 솜씨 있게 펼쳐보이며, 온라인상의 수십만 건 게시글과 댓글들을 직관적인 자료로 정리하여 제시한다. 보수의 재건을 고민하는 지도자와 기획자라면 4부에서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 사회의 진보를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4부를 통해 주어진 과제를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      *      *

 

지은이  천관율

<시사IN> 기자.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2008년부터 기자로 일했다.
기자가 글 쓰는 직업이라고 잘못 알고 골랐다. 되고 보니 사람 만나는 직업이었다.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받는 타입이 있고 고갈되는 타입이 있다. 전적으로 후자에 속한다. 청중 서른 명이 넘어가면 마이크도 못 잡는다. 방송은 이제 거절하는 멘트도 입에 붙었다. “흥미로운 기획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울렁증이 심해서….” 그런 주제에 11년째 기자를 하다니 스스로 놀랄 때가 많다.
2008년부터 주로 정치 기사를 썼다. 하도 낯을 가리니 정치권 네트워크가 경력 대비 알량하다. 2011년부터 데이터 저널리즘을 비교적 일찍 시도해 이런저런 강연 연사로 불려다녔다. 정작 쓸 줄 아는 프로그램은 워드프로세서 하나다.
의사소통 도구 중에 그나마 멀쩡하게 다루는 도구가 글이다. 영상이 지배하는 시대에도 활자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다닌다. 할 줄 아는 게 그거 하나라 예측이라기보다는 염원에 가깝다.
기자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디테일에 약하다. 턱밑까지 파고드는 인파이터도 못 된다. 사안의 구조와 맥락을 드러내는 접근법, 드론으로 항공사진을 찍듯 뒤로 쭉 빠져서 보여주는 접근법을 더 좋아한다. 그런 걸 ‘줌아웃’이라고 혼자 부르곤 했다. 그게 첫 책의 제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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