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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북스의 책/사회과학

[지리의 복수]-지리는 세계 각국에 어떤 운명을 부여하는가?

 

『지리의 복수』

지리는 세계 각국에 어떤 운명을 부여하는가?

 

로버트 D. 카플란 지음 | 이순호 옮김 | 미지북스 | 548쪽 | 20,000원

 

 

세계적인 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플란의 21세기 권력 판도 분석

트럼프 시대, 미국의 전략은 무엇인가?

 

모든 역사는 지리 위에서 완성되었다.

21세기 역사는 그 역사의 반복일 뿐이다.

 

유럽, 러시아, 터키, 이란, 인도, 중국 등 유라시아 주요 세력들의 한가운데에는 유라시아 심장지대가 있다. 20세기 초엽에 지리학의 거두 핼퍼드 J. 매킨더는 이런 말을 남겼다. “유라시아 심장지대를 차지하는 자가 유라시아 전체를 지배하고 나아가 세계를 지배한다.” 일찍부터 ‘지리’의 중요성을 간파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되살려 도구로 삼은 이 책의 지적 여정 끝에, 로버트 카플란이 도달한 결론은 매킨더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가까운 미래에 유라시아의 모든 곳은 하나로 연결되어 점점 좁아질 것이고, 세력들은 공식처럼 유라시아 심장지대로 쇄도할 것이다. 세계 육지의 3분의 2는 아프리카를 포함한 유라시아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아메리카이다. 유라시아가 특정 패권국의 손에 넘어갈 경우, 유라시아 바깥 세력인 미국에게는 묘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국이 생각하는 전략은 무엇인가? 또 우리는 국제정치의 큰 흐름을 어떻게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 헨리 키신저 추천도서 ★★★

 

"이 책은 지리야말로 국가들의 운명을 결정지은 지배적 요소였다는, 오랜 진실을 일깨워준다."

 


  

모든 역사의 무대, 지리
영원한 것은 지도상에 나타난 인간의 입지뿐이다. 야심찬 지도자는 죽어 없어지고, 찬란한 문명은 닳아 쇠락하기 마련이지만, 산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인구가 희박하던 시기부터 인류는 그들의 입지에 적응하며 공동체를 이루었고, 이런 의미에서 지리는 모든 문명과 역사의 주요 기원이기도 하다. 세계 각지의 인류는 지리와 강고하게 결합하여 고유한 정체성을 일구었고 이것이 오늘날 민족들인 것이다. 한편으로 지리는 수십 년 안에 업적을 이루는 ‘영웅’이나 ‘인류 집단’과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이루는 맨 아래쪽에 자리한 채 감지하기 어려울 만큼 서서히 작용하는 역사의 ‘장기 지속’ 요소이기도 하다.
지도자들은 역사적 경험과 사상을 동원해 통치 철학을 고민하겠지만, 엄밀히는 ‘지리’가 그보다 먼저 그들의 나라를 규정하는 첫 번째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어떤 포악한 독재자나 제국의 황제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자연 장벽’을 만나는 법이고, 모든 인류에게는 기본적으로 비슷한 잠재력이 있지만 때로 그들을 각기 다른 역사적 경로로 이끄는 명백한 지리적 현실이 존재하는 것이다.

 

지리라는 무대 위의 주체, 인간

하지만 지리가 역사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주체는 결국 인간이다. 일을 꾸며나가는 것은 인간이고 그 배경에 지리가 있을 뿐인 것이다. 로버트 카플란은 지리의 중요성에 방점을 찍은 이 저작에서, 지리결정론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걸출한 자유주의자(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들을 소환하여 그들 사상의 공통분모를 확인한다. 예를 들어, 냉전 시대에 활약한 이사야 벌린은 ‘인간의 동기’를 강조하며 지리, 환경, 인종적 특성과 같은 거대한 비인간적 힘이 우리의 삶과 세계 정치의 방향을 결정짓는다는 믿음은 그 자체로 부도덕하다고 말했는데, 하지만 이는 ‘인간의 동기’가 비인간적 힘을 넘어설 수 있다는 의미이지 비인간적 힘 자체를 경시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른 한편에는 ‘인간의 의지’를 경시하고 ‘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핼퍼드 J. 매킨더 같은 이도 있다. ‘지정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매킨더는 ‘결정론자’의 대부라는 공격을 받았으나, 카플란에 의하면, 그는 “지리적 요소는 인간적 요소로 극복될 수 있다”는 명제를 제시함으로써 ‘인간의 힘’에 신뢰를 보낸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카플란이 향해가는 목적지는 꽤 뚜렷하다. “결국에는 환경적 힘과 조화를 이룬 인간이 환경적 힘에 맞서 싸운 인간을 이기게 될 것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힌두쿠시 산맥은 여전히 난공불락으로 남아 있다."

 

세계화와 지리의 복수

오늘날 기술의 발전은 ‘거리’를 소멸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화의 첫 단계가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경제로 연결하는 것이었다면, 오늘날 세계화는 질적 차원에서 세계를 더 좁게, 더 빠르게 연결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세계화는 확실히 ‘지리’나 ‘국경’의 중요성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지리는 잊힐 수는 있어도 없어지지는 않는다. 카플란은 이를 역사적 사례로 확인시켜 준다. 
아직 세계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양분된 냉전 시기, 1980년대에 서구 지식인들은 ‘중부 유럽’이라는 말을 새롭게 부활시켰다. ‘중부 유럽’은 실제 존재하는 지리적 현실이라기보다, 여러 민족이 공존하며 제국을 이루고 문화를 꽃피웠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제국 시절의 추억에 의존한 이상주의의 산물이었다. 말하자면 ‘개념’으로서의 지리였다. 그리고 이 개념에는 ‘동유럽’이라는 용어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중부 유럽’의 나라들이 소련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담겨 있었다. 그러다가 1989년,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고 ‘중부 유럽’ 국가들이 속속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나 서구의 품에 안기는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인위적 장벽인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이지만 사람들은 이제 넘지 못할 벽은 없는 것같이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서구의 이상주의는 폭발했다.
하지만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2년 뒤인 1991년 발칸 반도에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등 ‘중부 유럽’ 국가들이 연루되어 수십만 명이 인종 청소를 당한, 끔찍한 참극이 벌어진 것이다. 서구인들은 순식간에 ‘발칸’을 ‘중부 유럽’에서 분리하여 다른 지역, 즉 새로운 근동 혹은 옛 근동의 일부로 규정하는 자신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틀린 게 아니었다.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서구인들은 깨닫지 못했지만, 발칸과 유럽 중심부 사이에는 오래도록 두 공간을 분할해온 카르파티아산맥이 존재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발칸’은 유럽보다는 오히려 옛 오스만제국이나 비잔티움제국에 더 가까웠다. 이것이 탈냉전 이후 서구가 목격한 첫 번째 ‘지리의 복수’였다.
이후 서구는 자신들이 2차 대전 당시 ‘뮌헨’의 실수를 반복하여 나치독일 이후 최악의 학살 사태를 방치했다는 반성 아래 인도주의적 개입에 나섰다. 1995년에 보스니아, 1999년에는 코소보에 군사 개입을 하여 성과를 거두었다. ‘인도주의적 개입’은 이후 소말리아, 아이티, 르완다로 이어졌고 모두 성공적이었다. 그러자 서구는 계속된 성공에 도취되어 이번에는 ‘지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인간의 도덕성은 구김 없이 실현될 수 있다는 판단에 경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감은 미국이 실행한 2000년대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전쟁에서 여지없이 박살났다. 그와 함께 1990년대의 착시도 드러났다. 1990년대의 개입은 진보한 공군력에 힘입은 이차원 평면에 진입하는 문제였다면, 2000년대의 산악지대투성이의 아프가니스탄과 위험한 샛길이 즐비한 이라크에서는 전쟁이 이내 삼차원의 모습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미국과 서구는 이러한 ‘지리의 복수’에 의기소침해졌고 이후 군사 개입에 대한 열정은 빠른 속도로 식었다. ‘지리의 복수’의 진짜 위험은 바로 이것, 이상의 후퇴일 수 있음을 카플란은 거듭 확인한다.
‘지리의 복수’에 관한 보다 최근의 예로는 ‘아랍의 봄’ 당시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꼽을 수 있다. 튀니지를 기점으로 민주주의 열풍이 주변 국가들을 휩쓴 이 격변의 첫 단계에서 지리는 새로운 통신 기술의 힘에 밀려 패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혁명의 열기는 곧 분절되어 나라별로 특유의 내러티브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그 내러티브는 다분히 지리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유럽과 러시아가 만들어지다

지리는 세계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20세기 초의 학자 핼퍼드 J. 매킨더는 일찌감치 지리적 관점에서 ‘유럽의 형성’을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유럽은 아시아로부터 절구질을 당하면서 형성되었다. 유럽은 동쪽을 제외하고는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을 갖고 있고, 오로지 동쪽으로만 육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로마 제국이 수립한 질서 속에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아온 제국과 변방은 중앙아시아 스텝 유목민들의 서진에 짓눌려 다른 대륙보다 일찌감치 압착되는 형세가 되었고, 이는 오늘날 복잡한 민족 구성의 토대가 되었다. 중세의 암흑기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노르드인들(바이킹)과 사라센(이슬람교도), 무어인들에 의해 바다를 차단당한 가운데, 아시아의 투르크족이 들이닥친 것이다. 이렇듯 유럽은 절구질 속에서 탄생했고, 절구의 공이는 바로 유라시아 심장지대의 육지세력이었다.
그런 와중에 16세기가 되면 스텝 민족을 피해 북부 삼림 지대에 숨어 있던 러시아가 바깥으로 나와 유럽의 동쪽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때는 서유럽이 대항해 시대를 연 시대이기도 했다. 이후 서유럽이 바다를 덮고 희망봉을 도는 동안 러시아는 육지로 맹렬하게 세력을 팽창하여 동쪽으로는 시베리아, 남쪽으로는 캅카스산맥에 이르렀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한, 유럽의 해양세력과 러시아 육지세력의 대결 구도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의 전개는 두 세력의 정체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해양세력은 머나먼 항구들로의 접근이 가능하여 코즈모폴리턴적 힘을 가지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데 필수 요건인 국경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반면, 러시아는 육지 너머 보이지 않는 적을 의식하며 상시적인 안보 불안에 시달렸고, 끝없는 팽창으로 이를 만회하는 역사를 써나갔던 것이다.

 

매킨더의 유라시아 중심 이론

19세기에 육지세력은 해양세력에 비해 세계적 차원의 영향력이 현저히 낮았다. 하지만 19세기를 끝으로 유라시아가 더 이상 정복 가능한 곳이 남지 않은 ‘폐쇄적 지형’으로 변모하면서, 해양세력과 육지세력의 관계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유럽이 고대에 기마 유목민에게 노출되어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면, 철도망으로 뒤덮인 20세기 또한 그와 비슷한 지정학적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매킨더의 유라시아 중심 이론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일단 ‘폐쇄적 지형’이 된 다음부터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는 10년, 20년 시간이 감에 따라 더욱 응집력 있는 단위가 되어 결국 ‘세계 섬’을 형성하게 될 것이며, 그중 철도망으로 뒤덮인 거대한 유럽-아시아 지역이 세계 정치의 중추지대가 된다는 것이 매킨더의 생각이었다. 매킨더의 이 이론은 최대한 ‘지리’에 천착하여 도출된 것으로, 당시 러시아의 철도망은 아직 부실했고,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러시아를 격파하는 등 해양세력이 곳곳에서 육지세력인 러시아를 좌초시키던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었다. 매킨더의 유라시아 중심 이론은 단 몇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의 대양(하나로 연결된 바다)이 지구의 12분의 9를 차지하고, 하나의 대륙(세계 섬, 즉 유라시아-아프리카)이 12분의 2를 차지하며, 그보다 작은 다수의 섬들이 있는 가운데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가 나머지 12분의 1을 차지한다. 그리고 동유럽을 통치하는 자가 심장지대를 지배하고, 심장지대를 통치하는 자가 세계 섬을 지배하며, 세계 섬을 통치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미국은 아메리카의 나라이지 유라시아의 나라가 아니다.

 

유라시아의 주변지대(림랜드)

유라시아의 심장지대를 모든 정치학자나 역사학자들 사이에 합의된 용어로 보기는 어렵다. 학자들에 따라 작게는 중앙아시아에서, 조금 넓게는 동유럽과 메소포타미아, 북아프리카 지역 등이 포함된다. 유라시아 심장지대는 지리적으로 유라시아의 가운데에 있으면서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을 낳고, 연쇄적으로 주변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곳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심장지대의 외곽, 즉 유라시아의 주변지대에 속하는 나라들은 비교적 분명하게 지목할 수 있다. 바로 유럽, 러시아, 중국, 인도, 이란, 터키이다. 유라시아는 이들 나라들이 심장지대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싼 형세를 이루고 있다. 카플란은 이들 ‘주변지대’를 설명하기 위해, 육지세력에 의한 패권의 등장을 호언한 매킨더에게 의존하기보다 1943년에 타계한 니컬러스 스파이크먼을 더 자세히 소개한다. 스파이크먼은 ‘바다’를 중시함으로써 ‘미국’의 지정학적 운명을 드러내는 한편, 바다와 인접한 유라시아 주변지대에 높은 가중치를 부여해 국제정치의 요체는 심장지대가 아니라 ‘주변지대’에 있다고 파악하였다. 그는 주변지대들이 ‘지리’를 배경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서 심장지대와 다른 주변지대들과 끊임없이 분쟁을 벌이게 될 것으로 보았다. 즉, 해양세력에 의한 유라시아의 세력균형이라는 아이디어가 스파이크먼(덧붙여 해군의 중요성을 역설한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을 통해 구체화된 것이다.

 

오늘날 지리는 세계 각국에 어떤 운명을 부여하는가?

카플란은 세계 주요 국가들의 역사를 ‘지리’의 관점에서 새롭게 요약해서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유럽은 지리에 분열과 통합의 요소가 배태되어 있어 쉽게 어느 한쪽으로의 귀결을 논하기 어렵다. 분열의 배경에는 산맥과 강, 계곡들로 자잘하게 분절된 유럽의 지리가 있다. 역사적으로 독일은 해양세력의 성향과 육지세력의 성향을 함께 가진 국가로서 유럽 통합의 미래는 독일이 유럽연합의 무게중심을 자국 쪽으로 끌어올 수 있느냐 그리고 ‘중부 유럽’을 건설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때 ‘중부 유럽’은 그리스를 포함한 유라시아 심장지대를 제어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 요충지가 된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1682~1725년) 시기에 ‘지리적 부적합함을 무릅쓰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러시아의 수도로 건설하였다. 유럽을 지향하기 위해서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단기적으로 승리를 거두어 유럽에 치우쳤음에도 광활한 제국을 통치하는 수도로 기능했으나, 결국 볼셰비키가 집권하면서 내륙 도시인 모스크바에 수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볼셰비키는 앞선 시대 차르들의 딜레마를 보았던 것이다. 이후 소련은 다시 완고한 육지세력으로 환원되었고,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는 유럽과 섞이지 못한 채 남고 말았다. 러시아는 한때 심장지대를 품었던 나라의 후신으로 여전히 그 지역에 대한 높은 근접성을 갖고 있다. 구소련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심장지대에 중요한 압력을 형성할 것은 분명하다. 한편으로 러시아는 언제나 그랬듯 바다로의 출로를 찾고 있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극명하게 보여주었듯, 그 유력한 경로는 심장지대에 존재하고 있다.

 

 

기복 지도를 보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

 

중국 황허 강과 웨이허 강을 중심으로 중원 통일의 도정에 오른 이래, 진시황이 최초의 통일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후 중국은 러시아나 유럽과 마찬가지로 스텝 유목민에 의한 절구질을 당했기 때문에, 폐쇄된 지리를 구축하기 위한 긴 여정에 오른다. 그리하여 청나라 시기에 오면 오늘날과 거의 일치하는 확대된 국경선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20세기의 중국은 육지로는 유라시아의 심장지대로 향하고 있고, 바다로는 대만과 남중국해, 인도양으로 물길을 내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일대일로).
인도는 통일의 역사가 극단적으로 짧은 나라로 이는 지리 때문이었다. 인도의 수도인 델리는 역사적으로 인도아대륙에서 기원한 도시가 아니라, 중앙아시아를 통해 들어온 침략자들의 도시였다. 인도아대륙은 중앙의 고원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분단된 형세이고, 인구 분포를 결정하는 강줄기 또한 동서로 공간을 갈라놓아서, 지리적 차원의 구심점이 없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인도의 영토는 해양세력(영국)에 의한 결과임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는 오늘날 인도가 겪고 있는 지정학적 어려움도 상당 부분 설명해준다. 인도의 지난날 역사의 단층선은 오늘날 인도의 국경선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란은 중동의 이란 고원을 온전히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다. 게다가 북쪽으로 카스피해와 남쪽으로 페르시아해, 아라비아해와 면해 있어 육지와 해양 어느 쪽으로도 경로가 자유롭다. 인구가 많은 데다 자원 강국으로서 앞으로 유라시아의 교통과 자원은 이란에서 출발하고 이란을 거치게 될 것이다. 이란은 시아파 종교국가로서 중동의 여러 테러 단체의 배후국가이지만, 국민들은 그런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지는 않는다. 카플란은 이란이 앞으로 서구적 가치에 포섭될 가능성이 있다고 점친다.
터키는 오스만제국의 붕괴 후 태어난 나라지만 서구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케말 아타튀르크의 영도 아래, 다문화주의적이고 세속주의적인 나라로 새 역사를 시작했다. 아타튀르크는 수도를 유럽 지향적인 이스탄불에서 소아시아(아나톨리아)의 중심지인 앙카라로 옮겼는데, 이 때문에 터키는 서서히 소아시아에 깊숙이 뿌리박힌 이슬람 문명을 더 중시하게 되었다. 정기적으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는 와중에 민주주의가 들쭉날쭉 발전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오히려 반미, 반이스라엘 정서를 강화하고 터키를 이슬람 문화권에 결속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오늘날 터키가 에르도안 대통령을 중심으로 이슬람 종교국가로 회귀하는 듯한 모습은 지리에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미래에 관하여 이 책은 어떤 힌트를 줄까? 그는 엄청난 군사력과 증오가 밀집한 한반도의 군사분계선 역시 지리의 힘을 무시하고 인간적 힘으로 형성된 장벽이므로, 결국은 20세기의 베를린 장벽처럼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리는 이미 통일 한국(Greater Korea)을 예고하고 있다. 분단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든 통일의 힘은 결국 예기치 않게, 또 때로는 폭력적이고 매우 빠른 속도로 개가를 올릴 것이므로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트럼프 시대, 미국은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21세기 초 9.11 사태 이후 사람들은 향후 세계가 미국에 의한 단극 질서로 나아가는 것인지, 미국은 ‘제국’인지 아닌지 궁금해했다. 미국이 제국의 전범인 로마와 비교되는 건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십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나온 이 책에서, 카플란은 미국의 운명에 관한 두 가지 치명적인 선고를 내린다.
카플란이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인정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의 관심사는 미국 국력의 구체적인 쇠퇴의 증거를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미국의 외교적 자원이나 군사력, 보편적 가치에는 여전한 신뢰를 보낸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미국의 ‘지리’ 자체다. 미국이 축복받은 입지에서 일찌감치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팽창을 마치고 대양에서 우월적 지위를 누렸다면, 이제 유라시아가 긴 시간에 걸친 ‘세계섬’으로서의 대두를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카플란은 유라시아가 단독 패권 세력의 손에 넘어가는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철도, 도로, 파이프라인들이 중앙아시아와 특히 아프가니스탄 허브를 통해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모든 곳을 연결할 것이고, 통합에는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만약 유라시아가 유기적으로 통합된다면, 미국은 그에 발맞추어 일종의 균형추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제 미국 단독으로 그것이 가능한 시대는 끝났다. 카플란은 미국이 이 위협을 상쇄하려면, 무엇보다 아메리카에서 ‘통합세력’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멕시코와 중남미 등의 주변국을 조화롭게 포섭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장벽은 자연 앞에서 한없이 초라하다

 

카플란의 다른 한 가지 치명적인 선고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과 관련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멕시코와의 국경지대에 ‘장벽’을 세우려는 것일까? 세계 전역에서 경찰 역할을 자임하던 미국이 왜 갑자기 멕시코 문제에 그렇게 집착하게 된 것일까? 이 또한 지리가 미국에 부여한 ‘운명’과 유관하다. 답은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은 인간이 얼마든지 넘을 수 있는 ‘인위적 국경’이라는 것이다. 일부 미국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멕시코인들의 이주는, 과거 미국에 빼앗긴 지역들에 대한 일종의 레콩키스타(영토 회복 운동) 성격마저 띠면서 미국-멕시코 국경을 더욱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한편으로 멕시코인들의 이주는 멕시코 정부가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만약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에서 갱단이 이긴다면 “미국은 초국가적 마약 카르텔의 통제를 받는 마약 국가와 3,200킬로미터 길이의 국경을 공유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로마 제국을 무너뜨린 것 같은 일이 미국의 뒷마당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국경 장벽 건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카플란은 미국이 자신의 힘을 과신하여 미국의 이상을 전 세계를 상대로 투사하는 일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인식을 공유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국경 장벽 건설은 아메리카의 통합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단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카플란이 제안하는 방향과는 반대된다고 할 수 있다.
카플란은 미국이 유라시아에서는 균형화 세력, 아메리카에서는 통합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유라시아 지리가 야기하는 연쇄적인 효과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유력한 결론이 될 것이다. 덧붙여 카플란은 말한다. 미국은 역내 세력 통합이 달성된 후에는 해양세력으로서, ‘중부 유럽’의 자유주의적, 지적 대의 못지않은 대의를 지구 전역에 투사해야 한다고. 결국 ‘지리의 복수’를 피하거나, 피하지 못하더라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중요한 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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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로버트 D. 카플란(Robert D. Kaplan)

외교 문제와 여행 관련 저작 14권을 저술한 미국의 저명한 작가 겸 저널리스트. 2011년 <포린폴리시>에 의해 ‘세계 100대 사상가’에 선정되었으며,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의 해외 특파원으로 25년 이상 활동한 제3세계 전문가이기도 하다. 2006~2008년에는 미국 해군사관학교의 특임 객원교수로 국가 안보를 강의했고, 2009년에는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에 의해 국방정책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되어 2011년까지 활동했다. 2008년 이래 워싱턴에 본부를 둔 신미국안보센터의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한 그는 현재 전략정보전문 분석업체 스트랫포의 지정학 담당 수석 애널리스트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발칸의 유령들』, 『로버트 카플란의 타타르로 가는 길』, 『무정부 시대는 오는가』, 『제국의 최전선』, 『승자학』, 『몬순』 등 다수가 있고, 이 중 많은 책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옮긴이  이순호

전문 번역가. 홍익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였으며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서양사를 공부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 『로버트 카플란의 타타르로 가는 길』, 『제국의 최전선』, 『살라미스 해전: 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 『살라딘』, 『위대한 바다: 지중해 2만 년의 문명사』, 『발칸의 역사』, 『완전한 승리, 바다의 지배자: 최초의 해상 제국과 민주주의의 탄생』, 『로마 제국과 유럽의 탄생』, 『비잔티움』, 『현대 중동의 탄생』, 『이슬람 제국의 탄생』, 『다이너스티: 카이사르 가문의 영광과 몰락』 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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