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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북스의 책/경제

[에르고드 이코노미] - 물리학과 경제학의 신선한 만남

에르고드 이코노미

왜 경제학은 우리의 삶을 반영하지 못할까?

권오상 지음 | 284쪽 | 16,800원

 

물리학에서 찾은 경제학의 미래

생존을 확보하고 장기적 성장을 극대화하라!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에르고드 경제학

 

경제학을 보다 인간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반전의 기회는 뜻밖에도 물리학에서 왔다. 바로 “에르고드 경제학”이다. 이 새로운 경제학은 영국의 응집물질 물리학자 오울 피터스의 주도로 최근 정립되고 있으며, 경제학이 우리의 삶을 제대로 반영하도록 만들려는 진지한 시도이다. 이 책 『에르고드 이코노미』의 저자 권오상 박사는 공학을 전공하고 금융권에서 일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물리학과 경제학을 가로지르는 광범위한 이론적 시야를 바탕으로 국내 최초로 에르고드 경제학을 소개한다. ‘에르고드’는 19세기 물리학자 볼츠만이 제안한 열역학 개념으로, 시간 평균과 앙상블 평균(상태 평균)이 같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기존의 경제학이 “세상이 에르고드하다는 잘못된 전제” 위에 이론을 전개했음을 비판하고, 새로운 경제학적 패러다임을 통해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에르고드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극단적인 실패의 위험을 최소화하여 생존과 안전을 확보하고, 장기적인 성장을 극대화하며, 다원화된 가치를 지향하고, 모두의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21세기의 새로운 경제학, 에르고드 경제학의 기초를 놓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경제학은 왜 우리의 삶을 반영하지 못할까?

경제학이 금전적 이익이라는 일차원적 목적만을 추구하지 않고 여러 다양한 가치들을 추구할 수는 없을까? 단기적인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안전과 생존을 보장하며 장기적인 성장을 극대화하는 경제학을 창안할 수는 없을까? 경제학이 불평등에 무관심하지 않고 모두를 위한 성장을 가능하게 할 수는 없을까? 이러한 문제에 답하고자 새로운 경제학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에르고드 경제학이 추구하는 길이다.

저자 권오상 박사는 기존 경제학이 세상을 에르고드한 것으로 잘못 전제함으로써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은 우리의 실제 삶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며, 소시오패스나 마찬가지인 경제적 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이론의 기초로 내세워 공동체의 안녕을 돌보지 않고 극단적인 불평등을 용인하는 도구가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경제학의 이론의 기초를 다시 제대로 세울 수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에르고드하게 만들 수 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들을 인정하고, 생존과 안전을 확보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을 도모하며, 불평등을 줄이는 길로 말이다.

 

수익률 5퍼센트의 게임을 계속하면 정말로 부자가 될까?

기존 경제학은 언제나 기댓값 최대화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이 주장에는 경제학의 모든 전제들이 축약되어 있고, 효용을 극대화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기본 행동 원리가 담겨 있다. 우리는 흥미롭고 단순화한 도박 모델로 이 주장이 가진 문제점을 곧바로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억 원을 걸어 이기면 6000만 원을 받고, 지면 5000만 원을 잃는 돈내기 게임이 있다고 하자. 이 게임에서 이기거나 질 확률은 반반, 즉 50퍼센트라고 하자. 이 게임의 기댓값은 500만 원이며, 기대 수익률은 5퍼센트다. 수익률이 5퍼센트인 게임을 장기간 계속한다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경제학은 매번 기댓값을 최대화하는 선택을 하라고 조언하므로 우리는 이 게임을 해야 한다. 만약 100명의 사람이 각기 1억 원의 돈을 갖고 이 게임을 두 번 연속으로 하면 어떻게 될까? 참가자의 4분의 1인 25명은 원금보다 많은 2억 5600만 원을 갖게 되지만, 절반인 50명은 8000만 원, 나머지 4분의 1인 25명의 수중에는 2500만 원만이 남게 된다. 4분의 3이 원래의 돈보다 적은 돈을 갖게 되었다. 경제학은 기댓값 최대화의 선택이 “장기적으로는” 더 나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렇다면 더 장기적 결과는 어떻게 될까? 게임을 30번을 하게 되면 원금 1억 원 이상을 가진 사람의 비율은 더 줄어 18퍼센트에 그치게 되고, 100번을 하게 되면 원금 이상을 가진 사람이 2.9퍼센트로 줄어든다. 경제학이 추천하는 기댓값 최대화의 원리를 따른다면 부자가 되기는커녕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전도 찾지 못하는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세상이 에르고드하다고 전제’하는 경제학의 잘못된 관점 때문이다.

 

기대수익률이 5%인 도박을 2번 했을 경우 원금 이상을 가진 사람은 4분의 1에 불과하고 나머지 4분의 3은 손실이다. 이 게임을 100번 계속하면 원금 이상을 가진 사람은 3% 미만에 불과하게 된다. 1000번을 해도 마찬가지다. 이때 원금을 넘길 확률은 0.00000007%도 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만약 어떤 주식이나 펀드의 연평균 수익률이 5퍼센트라고 하면 정확히 매년 5퍼센트씩 상승했다는 뜻일까? 주식이나 펀드의 수익률이 5퍼센트라는 말은 단지 장기적으로 평균을 낼 때 연간 수익률이 그렇다는 의미일 뿐이다. 실제 시장은 그렇지 않다. 어떤 해는 30퍼센트 상승하기도 하고 어떤 해에는 50퍼센트 하락하기도 한다. 만약 언제나 기계적으로 매년 5퍼센트씩 상승하는 시장이 있다면 그 시장은 “에르고드”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장기간의 성과를 평균한 “시간 평균”과 특정 시점의 “앙상블 평균”(상태 평균)이 같다. 그러나 우리의 삶과 현실은 전혀 에르고드하지 않다. 연평균 5퍼센트의 수익률만 믿고 투자했다가 롤러코스터 같은 시장에 넌더리를 내는 경우는 허다하다. 만약 과도한 레버리지로 투자한 사람이라면 평균의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던 큰 폭의 하락장에 전 재산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경제학은 세상이 에르고드하다고 가정한다

그렇다면 “에르고드”라는 생소한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에르고드(ergod)는 ‘에너지의 길’이라는 뜻으로 오스트리아 태생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이 1898년에 제안한 열역학 개념이다. 기체 분자의 상태에 착안하여 만든 에르고드 개념은 시간 평균과 앙상블 평균이 같음을 의미한다. 임의의 기체 분자 한 개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체 공간 중 어디로 돌아다니는지를 따라다니며 보나, 일정한 영역을 고정시켜 놓고 거기서 분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나 결과가 똑같다는 이야기다.

19세기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은 에르고덴 가설을 제시했다. 이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임의의 기체 분자의 궤적은 발생 가능한 모든 미시상태를 지나게 되고 각 미시상태가 가지는 시간의 길이는 서로 같다"는 가정이었다. 볼츠만이 만든 에르고덴(ergoden)이라는 독일어 형용사는 영어로 에르고딕(ergodic)으로 옮겨졌다.

 

무언가가 에르고드하다는 말은 다음의 두 가지 성질을 만족한다. 첫째, 전체를 구성하는 개별 구성원이 서로 구별되지 않고 꼭 같다(동질적 존재). 둘째, 각 구성원의 성질은 변화하지 않고 시간에 대해 불변한다.

가령 실린더 속의 같은 기체 분자는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또한 같은 부피 안에 같은 수의 기체 분자가 존재한다. 이러한 기체 분자의 성질은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고 시간에 대해 불변이다. 기체 분자는 에르고드한 성질을 가지므로 앙상블 평균(상태 평균)으로 시간 평균을 대신할 수 있다. 경제학은 인간과 세상을 실린더 속 기체 분자처럼 에르고드한 것으로 간주하며 앙상블 평균과 시간 평균을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에르고드 가정은 경제학의 근본에 자리 잡고 있다. 모든 사람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제적 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이라는 주장, 국내총생산과 1인당 국민소득으로 모든 국민의 경제 상태를 나타낼 수 있다는 관념, 기댓값을 최대화하는 선택이야말로 경제적 합리성의 본질이며 누구나 마땅히 그런 선택을 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그러하다.

특히 매번 기댓값을 최대화하는 결정을 내리면 결과적으로 최선의 결과가 뒤따르기 마련이라는 경제학의 주장은 앙상블 평균(기대값)을 구해서 그것을 시간 평균으로 간주해버리는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앞서 예를 들었던 돈내기 게임의 장기적 결과(시간 평균)는 게임의 기댓값(앙상블 평균)과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기댓값으로는 한 번 돈내기를 할 때마다 5퍼센트씩 돈이 불어나야 마땅하지만, 실제로 이 게임을 연달아 1000번을 하면 100억 명 중에 6명만이 돈을 잃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손해를 본다.

 

'역사'가 중요한 경제는 에르고드하지 않다

이런 이상한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경제학이 ‘역사’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에르고드한 대상은 역사가 문제되지 않는다. 반대로 역사가 중요하다면 그 대상은 에르고드할 수 없다. 어떤 사건의 결과가 다른 사건에 영향을 끼치고 그 결과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누적되어 가기 때문이다. 경제에서는 어떨까? 경제에서 역사는 중요하다.

첫 번째 게임의 결과에 따라 두 번째 게임에 걸 수 있는 돈이 달라지는 것처럼 경제활동의 결과는 다음 상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만약 돈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방식이 덧셈 과정을 따른다면 이익의 시간 평균은 이익의 앙상블 평균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재테크 등의 돈 불리기는 덧셈 과정보다는 곱셈 과정에 가깝다. (덧셈 과정은 투자할 때마다 자본이 일정한 금액으로 정해진 방식이고 곱셈 과정은 투자할 때마다 금액이 아니라 비율이 정해진 방식이므로 이전 투자의 결과에 의해 자본의 크기가 달라진다).

에르고드한 계에서는 역사가 중요하지 않지만, '역사'가 중요한 계는 시간 평균과 앙상블 평균이 다르므로 에르고드하지 않다.

 

기업이나 산업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래된 산업이 쇠락하고 새로운 분야가 떠오른다. 무에 가까운 수준에서 시작되어 커다란 회사나 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대부분 곱셈 과정이다.

즉 경제는 에르고드하지 않다. 우리의 삶과 현실에서는 역사가 대단히 중요하며, 따라서 경제학의 에르고드한 가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기존 경제학은 개인이든 기업이든 매번 기댓값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 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방법을 따르면 장기적으로 거의 반드시 망한다. 기존 경제학이 길을 잃고 탈선한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실제의 경제에 존재하지 않는 에르고드가 존재한다고 함부로 가정한 데 있다.

 

물리학자 오울 피터스가 새로운 경제학을 재구성하다

경제학의 이러한 맹점을 지적한 사람들이 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저술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와 영국 런던수학연구소의 응집물질 물리학자 오울 피터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피터스는 보다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접근을 하여 에르고드 경제학의 이론적 기초를 세웠다. 저자 권오상 박사는 이 책에서 피터스의 연구 성과를 국내 최초로 소개하면서 기존 경제학을 대체할 새로운 경제학에 대한 상을 종합적으로 서술했다.

21세기의 새로운 경제학은 경제가 무조건 에르고드하다고 가정한 20세기 경제학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경제와 삶을 진정으로 에르고드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하고자 한다. 경제와 삶을 에르고드하게 만든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일차원적 경제학 세계관의 다차원화다. 새로운 경제학은 금전적 이익뿐만 아니라 노동, 환경, 공동체의 안녕과 복지 등 다양한 가치를 선택의 기준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둘째, 앙상블 평균에서 시간 평균으로의 전환이다. 새로운 경제학은 근시안적이고 단기적인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인 생존과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생존이 없으면 성장도 없기 때문이다. 당장의 내일이 아니라 먼 미래가 중요하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보다 큰 파이를 넘겨줘야 한다.

셋째, 평균의 함정에서의 탈출이다. 불평등의 실체를 가려버리는 평균의 함정은 소수가 더 많은 부를 가지고 다수가 빈곤해져도 효율을 달성하고 성장한 것으로 규정한다. 새로운 경제학은 모두의 성장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목표와 기준을 가진 새로운 경제학을 “에르고드 경제학”이라고 정의한다.

 

실제 인간은 경제학이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기존 경제학은 보통의 사람들이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잘 설명하지 못했다. 합리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면 딱히 손실에 더 예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행동경제학은 “손실 혐오”라는 편향을 추가했다. 손실 혐오는 똑같은 금액이어도 이익보다 손실을 더 크게 느끼는 심리적 성향을 가리킨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이익의 크기가 손실의 2배는 되어야 사람들이 돈내기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경제학자들은 실제 사람들의 우둔함에 진저리를 쳤다. 그들에게 손실 혐오 편향은 비합리적인 현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에르고드 경제학의 렌즈로 바라보면, 손실 혐오는 사람들이 생존의 중요성을 본능적으로 인식한 결과이다. 단기적 이익에 앞서는 장기적 생존의 중요성을 사람들이 알기 때문이다. 이익은 생존이 전제되어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손실을 이익보다 크게 느끼는 것이다. 현실의 인간은 경제학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현명하다.

손실혐오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편향이 아니라 생존의 중요성을 본능적으로 인식한 결과다. 인간은 경제학이 생각하는 것보다 똑똑하다.

 

경제학은 한 가지를 더 가정한다.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지언정 그 어리석음이 한결같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즉 경제학은 상황에 따라 사람이 선택의 기준을 바꾸지 않는다고 전제한다. 로그 효용을 최대화하는 사람은 어김없이 로그 효용을 최대화하고 선형 효용을 최대화하는 사람은 언제나 선형 효용을 최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로그 효용을 최대화한다는 말은 자산 변화의 장기적인 시간 평균을 극대화한다는 뜻이고, 선형 효용을 최대화한다는 말은 매 시기마다 기댓값 최대화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2019년 코펜하겐대학의 올리버 훌메가 행한 실험을 근거로 기존 경제학의 주장을 반박한다. 훌메는 사람들이 선택할 때 일관된 전략을 쓰는지 그때그때 다른 전략을 쓰는지 실험을 했다. 덧셈 과정과 곱셈 과정을 번갈아 하는 돈내기 실험이었다. 이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효용함수를 바꾸었다. 즉 돈내기가 곱셈 과정일 때는 장기적인 로그 효용 최대화를, 돈내기가 덧셈 과정일 때는 선형 효용을 최대화(기대값 최대화)하는 선택을 했던 것이다. 이는 기존 경제학의 전제가 잘못되었으며 에르고드 경제학이 옳음을 증명하는 결과다.

 

에르고드 경제학은 모두의 성장을 추구한다

이 책은 경제학의 주요 개념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에 주목하면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고, “효용”이라는 경제학의 핵심 관념이 어떻게 우연과 오해를 거쳐 미시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되었는지를 살핀다. 또한 물리학과 기계공학이 어떻게 경제학의 주요 개념인 “균형”과 “효율”에 영향을 끼쳤는지 설명한다. 특히 경제학 개념의 물리학 및 공학적 연원을 추적하는 과정은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미시경제학의 균형은 사실 19세기 열역학에서 유래했다. 볼츠만은 에르고드 가정을 도입해 열역학적 평형이라는 개념을 수립했는데, 경제학의 균형은 열역학적 평형을 좇아 만든 개념이었다.

경제학이 상상한 경제는 비유하자면 증기기관의 실린더에 갇혀 있는 증기와 같다. 그것은 에르고드하며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성장이라는 측면 때문에 실제 경제는 다르게 움직인다. 실제의 경제는 비유하자면 반응 속도가 조절된 핵분열 반응과 같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평형 시스템이 아닌, 불안정한 비평형 시스템이다. 핵분열 반응과 중성자의 관계는 경제와 돈의 관계와 같다. 중성자 수 조절에 실패하면 핵폭발이 나듯이 돈 수량 조절에 실패하면 자산 버블이 생긴다.

 

경제학은 인간과 세상을 실린더 속 기체 분자처럼 에르고드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역사'를 가지는 경제적 현실은 비유하자면 반응속도가 조절된 핵분열 반응과 비슷하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평형이 아닌, 불안정한 비평형 시스템이다.

 

경제의 거시 변수가 시간에 대해 불변이 아니라는 사실은 또 다른 함의가 있다. 바로 거시 변수 속에 뭉뚱그려진 개인의 경제 상태다.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이 변하면서 개인의 재산과 소득이 변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불평등이 증가한다. 마찬가지로 시간이 감에 따라 극소수 기업의 시장 독점이 나타난다. 에르고드 경제학은 경제를 실린더 속에 갇힌 기체와 같은 상태가 아니라 반응로의 핵분열 상태로 본다. 그대로 두면 불평등과 독점이 계속 증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국내총생산이나 1인당 국민소득과 같은 경제학 지표들로는 전체 속의 개인의 상태, 즉 불평등의 정도를 알 수 없다. 그래서 평균의 함정에 숨은 불평등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필요로 한다. 이에 런던수학연구소의 오울 피터스는 성장과 불평등을 함께 측정할 수 있는 “국내민주생산”이라는 지표를 만들어냈다. 국내민주생산은 각 국민이 1년간 번 소득을 기하 평균하여 구한다. 쉽게 말해 각 개인이 번 돈을 모두 곱한 후 국민 수의 역수를 지수로 가지면 된다. 국가 경제가 양적으로 성장해도 소수만이 그 혜택을 보고 다수 국민의 소득이 줄어들었다면 국내민주생산은 양수가 아니라 음수로 나온다.

1인당 국민소득은 한 사람의 소득 증가분이 매우 크고 나머지 사람들의 소득이 오히려 줄어들어도 증가한 것으로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국내민주생산은 그럴 경우 음수로 나온다. 즉 전체 국가 경제가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이 확대된 것을 알 수 있다.

 

에르고드 경제학은 소수 부자들의 성장이 아니라 모두의 성장을 추구한다. 즉 재분배를 통해 불평등의 증가를 완화하고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요청한다. 재분배의 효과는 비유하자면 현대 방탄복의 효과와 같다. 중세 시대에 판금 갑옷은 탄환의 운동에너지가 작용하는 국부적인 충돌 지점의 소재가 충격에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쉽게 말해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반면 ‘케블라’라는 인장강도가 매우 높은 합성 섬유로 만드는 현대의 방탄복은 총탄의 운동에너지를 방탄복 전체로 분산시킨다. 그래서 같은 무게의 판금으로 만든 중세 갑옷에 비해 성능이 더 뛰어나다. 다른 말로 공존동생(共存同生)이다. 재분배는 현대의 방탄복과 같이 충격을 분산시키고 흡수하며 이익을 함께 나누는 특성을 가진다. 혜택과 위험을 모두가 나눌 때 우리의 삶은 진정으로 에르고드해질 수 있으며 장기적 관점에서 안전과 번영을 누릴 수 있다. 새로운 경제학의 정립은 단지 그 시작일 뿐이다.


지은이 권오상

 

벤처캐피털회사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의 공동창업자이자 공동대표. 금융감독원 복합금융감독국장과 연금금융실장, 도이체방크 홍콩지점과 서울지점 상무, 영국 바클레이스캐피털 런던지점과 싱가포르지점 매니저, 차의과학대학교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술경영학과 겸직교수, 삼성SDS 수석보, 기아자동차 주임연구원을 지냈고, 고려대학교와 중앙대학교에서 금융을 가르쳤다.

서울대학교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에서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 기계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금융 분야의 저서로 『투머치머니』, 『혁신의 후원자 벤처캐피털』, 『신금융선언』, 『오늘부터 제대로, 금융 공부』, 『돈을 배우다』, 『고등어와 주식,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 『돈은 어떻게 자라는가』, 『파생금융 사용설명서』, 『기업은 투자자의 장난감이 아니다』 등이 있다. 이외에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2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인 『억만장자가 되려면 대학을 중퇴해야 할까』를 비롯해 『세 가지 열쇠』, 『이기는 선택』 등 의사결정 분야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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