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평생을 흑백 차별과 싸우고 민주 정부를 세우는데 헌신한 위대한 정치가 고 만델라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악명 높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의 기원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남아프리카의 흑인과 유색인종은 어떻게 압제로부터 떨쳐 일어나 해방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일까요?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의 도화선이 된 197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웨토 항쟁을 소개합니다.

*이 글은 오준호 작가님의 『반란의 세계사』의 일부를 인용한 것으로 저자님의 허락을 받고 게재하였습니다.

 


 

남아공 소웨토 항쟁 (1)

- 남아공은 어떻게 백인들의 땅이 되었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역사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약 5백만 명의 백인과 2천 5백만 명의 흑인 및 유색인이 공존하는 나라다. 이곳에 백인이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지시로 얀 반 리베이크가 희망봉에 항해 기지를 세우면서부터다. 당시 네덜란드와 인도, 인도네시아를 오가던 무역선의 선원들은 오랜 항해로 비타민 섭취가 부족하여 괴혈병에 걸리곤 하였다. 괴혈병은 잇몸에서 피가 나고 사지가 퉁퉁 부어 죽어가는 무서운 병이었다.

 

얀 반 리베이크의 임무는 괴혈병을 막기 위한 조치로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재배하여 선원들에게 공급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더 많은 네덜란드 인이 항해 기지로 이주해왔고, 그들 일부는 대륙 안쪽을 개척하여 자유 농부가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네덜란드인이 아닌 ‘아프리카너’라고 불렀고, 네덜란드어에 뿌리를 둔 일종의 방언을 만들어 썼는데 이것이 아프리칸스어다.

 

19세기 초, 세계를 제패한 영국은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을 점령하여 식민지로 만들었다. 네덜란드 계 아프리카너들과 영국인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고, 아프리카너들은 수레에 짐을 싣고 내륙의 더 안쪽으로 '대이주'를 감행했다. 그들은 호전적인 줄루 족과 싸우면서 오렌지공화국과 트란스발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독립 자치국을 만들었다. 아프리카너들은 철저한 칼뱅주의자이었고 아프리카를 신이 그들에게 내려준 선물로 보았다. 하기에 아예 헌법으로 ‘흑인은 공화국의 시민이 될 수 없음’과 ‘백인과 흑인은 절대로 평등할 수 없음’을 못 박았다.

 

그런데 오렌지 공화국의 킴벌리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트란스발의 요하네스버그에서 금맥이 발견되자 영국은 두 공화국과 영국령 케이프타운을 강제로 합병시키려 했다. 이에 반발한 아프리카너들이 영국과 전쟁을 벌였으니 이것이 보어전쟁(1899~1902)이었다. '보어(boer)'란 네덜란드 말로 농부(부르)라는 뜻이며, 아프리카너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사실 이 전쟁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보기에는 똑같이 기독교를 믿고 똑같이 흰 피부를 한 인종들끼리 금과 다이아몬드 때문에 죽고 죽이는 황당한 상황이었다. 어째든 전쟁에서 2만8천명이 전사하고 영국이 승리하여, 이 땅 전체가 영국이 지배하는 남아프리카연방이 되었다.

 

 

▲ 아프리카너 유격대. 영국군은 맥심 기관총을 가진 이 하얀 피부의 "원주민들"과 거친 대게릴라전쟁을 벌여야 했다. 결국 우수한 화력을 보유한 영국군이 승리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프리카너 민간인들을 무수히 학살했다.  

 

흑백 분리 정책의 대두

 

20세기 초 영국은 대외 정책이 변함에 따라 남아프리카에서 서서히 물러나고 아프리카너들이 권력을 잡았다. 아프리카너의 엘리트들은 기독교 근본주의자이자 백인 우월주의자들이었고, 영국이 남긴 천연자원 독점권을 이어받아 부를 쌓았다. 이들은 남아프리카를 백인들의 나라로 만들고 싶었고 이를 위해 원주민토지법과 도시구역법 등을 만들어 흑인의 권리를 박탈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인종 분리는 그렇게 철저하지 않았고 위반도 잦았다.

 

1940년대에 정치인 다니엘 프랑수아 말란이나 젊은 지식인인 헨드릭 페르부르트 등 인종 분리 운동의 새로운 기수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나치 독일에서 그 전례를 찾았다. 민족의 영광과 순수함을 끝없이 반복해 세뇌시키는 나치는 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은 독일과는 달랐다. 독일에서 유대인은 상대적으로 소수였기 때문에 수용소에 몰아넣고 심지어 ‘말살’해버릴 수 있었지만, 남아프리카 인구의 절대 다수는 흑인과 혼혈인이었다. 이들을 몽땅 제거할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했다간 생산 현장이 돌아가지 않아 백인들이 그 일들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면 흑인들이 백인의 기득권과 생존까지 위협할 거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유색인들과 공존해야 하오. 그러나 공존하되 철저히 분리되어야 합니다! 유색인들은 백인의 남아프리카와 절대로 섞여서는 안 됩니다!”

 

말란과 페르부르트 무리가 지닌 이 광기 어린 신념은 집권 국민당에 의해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구제적 조치로 실현되었다. 1948년 이후의 아파르트헤이트는 말 그대로 철저하고 무자비한 분리 정책이었다. 국민당 정부는 자그마치 1750여 개의 악명 높은 법률들, 기막힌 명령들을 쏟아냈다.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불과한 백인들, 그 가운데에도 절반이 투표하여 나라 안 모든 인종들의 운명을 좌우할 법을 통과시킨 것이었다.

 

그들은 집단지구법을 만들어 인구 75퍼센트를 차지하는 흑인과 혼혈인을 전 국토의 13퍼센트에 불과한 벽지에다 몰아넣었다. 여러 인종이 섞여 살고 있던 디스트릭스 식스나 소피아타운 같은 곳에서 흑인을 분리해내기 위해 경찰은 하루 이틀 전에 통보하거나 심한 경우 통보조차 없이 불도저로 밀고 들어왔다. 저항하는 흑인들은 경찰이 개를 풀어 물어뜯게 했다. 흑인들은 새벽에 옷가지를 겨우 챙겨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이름도 기상천외한 부도덕법과 이민족혼인금지법은 다른 인종 간의 성관계를 금지했고 적발되면 최고 7년형에 처해졌다. 이 법의 가장 사악한 부분은 ‘현장 검거’를 위해 경찰이 밤중에 아무 집이나 영장 없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백인·흑인·혼혈인·아시아 인 가운데 하나에 등록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 인종분류위원회가 활동했는데, 이 위원회가 “너는 백인이 아니라 사실은 혼혈인”이라고 결정하기만 하면 졸지에 멀쩡한 부부가 불법화되고 아이들은 고아가 되었다. 1950년대 초 초등학교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산드라 랭은 부모가 백인 부모를 둔 백인 아이였으며 자신이 백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제보로 인종분류위원회가 학교에 찾아와 조사한 결과, 랭은 혼혈이라고 판정을 받아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 조사라는 것은, 머리의 가르마에 연필 한 자루를 눕혀 놓고 그것이 모발을 따라 흐르다 땅에 떨어지면 백인, 떨어지지 않고 곱슬머리에 걸리면 혼혈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이었다.

 

 

▲ (좌)아파르트헤이트 당시 백인 전용 시설임을 알리는 간판. (우)아파르트헤이트 반대 포스터

 

시설분리법에 따라 식당, 카페, 극장, 화장실, 공원 벤치, 역 대합실 심지어 바닷가에 이르기까지 백인과 유색인 전용이 따로 만들어졌으며 흑인이 백인 전용 벤치에 앉기만 해도 감옥에 갈 수 있었다. 반투자치법에 의해 흑인들은 이 나라에 살면서도 이론적으로 ‘다른 나라 국민’이 되었고, 따라서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공공 의료나 수도, 전기 서비스도 거의 누릴 수 없었다. 반투교육법은 흑인과 백인의 분리 교육을 정당화했다. 또한 백인 병원이 혼혈인 환자를 받으면 형사 범죄에 해당했으므로, 교통사고 중상자를 앞에 두고 구급 요원이 그가 백인인지 혼혈인인지 따지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길에서 죽게 만든 일도 있었다.

 

흑인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단 한 평의 땅도 구매할 수 없었으며, 언제나 통행증과 신상 정보를 적은 수첩을 소지해야 했고, 만약 지정된 거주지를 벗어나 도시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자기 숙소에 아내와 자녀를 사흘 이상 재울 수 없었다. 심지어 18세 이상의 자녀와 동거하는 것만으로도 불법이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경찰은 어느 때고 흑인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결국 백인 엘리트들이 말한 ‘분리’는 절대로 공존의 조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백인들이 사회의 부를 독차지하기 위해 흑인들에게 가한 비인간적인 차별과 억압일 뿐이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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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세계사

이오니아 반란에서 이집트 혁명까지

오준호 지음 | 미지북스 |2011년 | 16,000원

 

 

최강의 제국에 맞선 고대 그리스 자유민들의 반란에서 21세기 아랍 민주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이집트 혁명까지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2500년 역사를 모자이크처럼 채워온 자유와 해방을 향한 투쟁의 드라마!

 

역사를 공부하며 우리는 한 가지 기쁨을 얻는데, 그것은 저 사파티스타 반군이 3천 킬로미터의 평화 대행진을 마치고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에 입성했을때 시민들이 그들을 반기며 외친 말 속에 들어 있다.

 

"당신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의 시대와 치열하게 싸우는 최초의 사람도 아니며 마지막 사람도 아니다. 우리는 그들 중 하나다.

 

 

 

지은이 오준호

 

노동자의 변호사들』, 반란의 세계사』, 소크라테스처럼 읽어라』, 『진짜 민주주의』 등을 쓰고, 『보이지 않는 주인』,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 등을 번역했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역사, 민주주의 등 여러 주제에 대해 책을 쓰고 번역하고 있으며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저항과 혁명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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