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았던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의 기원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남아프리카의 흑인과 유색인종은 어떻게 압제로부터 떨쳐 일어나 해방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일까요?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의 도화선이 된 197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웨토 항쟁에 관한 두 번째 글입니다. (첫번째 글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이 글은 오준호 작가님의 『반란의 세계사』의 일부를 인용한 것으로 저자님의 허락을 받고 게재하였습니다.

 


 

남아공 소웨토 항쟁 (2)

- 한 소년의 죽음이 아파르트헤이트의 조종을 울리다

 

소웨토 봉기

 

소웨토 시는 아파르트헤이트의 결과로 생긴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의 흑인 거주지였다. 1970년대에 120만 명의 흑인이 수도도 전기도 나오지 않는 아파트에 빽빽하게 살았으며, 이곳의 평균 수명은 40세에 불과했고, 인구의 절반은 실업 상태였다. 술과 마약과 폭력이 판을 쳤으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곳에서 아이들의 유일한 희망은 학교였다. 흑인 아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백인 아이의 10분의 1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배움을 통해 더 나은 아프리카 인이 되고자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백인 정부는 지금까지 영어와 아프리카 부족어로 교육하던 학교에 아프리칸스어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아프리칸스어를 가르칠 교사도 교재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 언어는 남아프리카의 백인들 말고는 아무도 쓰지 않는 언어였다. 한마디로 이 조치는 흑인들에게 ‘너희는 이 나라 백인의 하인 외에는 될 수 없다.’고 하는 권력의 독선이자 조롱이었다.

 

1976년 4월, 올랜도웨스트 학교의 흑인 학생들은 아프리칸스어 수업을 보이콧하기로 하고 등교 거부 운동을 펼쳤다. 등교 거부는 인근 학교로도 퍼져 나갔고 학생들은 아프리칸스어 교재를 불태웠다. 6월 16일에 올랜도웨스트를 선두로 한 1만여 명의 학생이 교육청에 항의하기 위해 평화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은 전통 춤과 노래가 섞여 아프리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축제 같았다. 아이들은 플래카드를 들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화이트시티 교차로로 향하고 있었다.

“배우려고 학교에 들어와, 하인이 되어 나간다!”

“아프리칸스어를 타도하자!”

“백인에 의한 반투 교육은 지옥으로 보내자!”

 

그러나 교차로를 지키고 있는 것은 중무장한 진압 경찰이었다. 학생들은 ‘신이여 아프리카를 보호하소서’라는 영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경찰은 경고도 없이 학생들을 향해 최루탄을 쏘았고, 이에 맞서 돌이 날아오자 곧바로 실탄 사격을 가했다. 방금 전까지 춤과 노래로 채워졌던 거리는 비명과 신음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경찰은 자기 앞의 시위대를 학생으로도, 인간으로도 보지 않았다. 그들은 백인을 위협하는 짐승에 지나지 않았다.

 

시위 도중 13살 소년 헥터 피터슨이 진압 경찰이 무차별 발포한 기관총에 가슴을 맞았다. 그의 형이 양팔에 소년을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피터슨은 사망하고 말았다. 헥터 피터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소웨토의 흑인 전체가 들고 일어났다. 파업이 시작되었으며 도시 곳곳에서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었고 경찰서와 공공 기관이 공격당했다.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고 요하네스버그의 백인 대학생들까지 아이들을 살해한 정부에 항의하는 행진을 벌였다. 존 포르스테르 수상은 소요를 용납하지 않겠다며 소웨토에 경찰력을 수천 명이나 추가로 투입하고 길에 세 명 이상 모이는 것을 금지했다. 경찰은 이 사태로 176명이 죽고 1139명이 부상했다고 집계했지만 실제로는 600~7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4000명 이상 부상당했다. 그중 다수가 어린 학생들이었다.

 

 

▲ 총에 맞은 헥터 피터슨. 20세기의 피에타라고까지 불리는 이 사진이 세계에 준 충격은 엄청났다. 사진은 남아공 반아파르트헤이트 투쟁이 격렬히 타오르도록 했고, 전 세계 문명국과 지성인들이 남아공 정부를 규탄하도록 만들었다.

 

 

소웨토 항쟁은 백인들이 흔히 말하는 난동이 아니었다. 이것은 인간다운 교육을 받고 싶다는 정당한 요구에서 출발한 투쟁이었으며, 흑인들은 항쟁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했다. 흑인들은 술병을 거리에 깨부수며 “술은 됐다. 학교를 늘려라!”고 소리쳤다. 또한 이 항쟁은 전 세계 시민들로 하여금 아파르트헤이트를 경멸하게 만들었다. 각국 정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투자를 동결했으며 유명 운동선수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경기에 출전을 거부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의식 있는 백인들 역시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소웨토 항쟁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심장을 때린 반란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종말로 치달았다.

 

넬슨 만델라의 투쟁과 화해

 

소웨토 항쟁을 경험한 학생들은 ANC(아프리카민족회의. 넬슨 만델라가 주도한 반아파르트헤이트 저항 단체)의 특공대가 되겠다며 몰려들었다. 그들은 국경 밖 기지에서 훈련을 받은 후 국내로 들어와 각종 테러와 게릴라 투쟁을 벌였다. 1980년대 요하네스버그의 정유 공장이 폭파되는 등 이들이 주도하는 테러가 연일 터지고 대중들의 파업과 시위가 격화되자 정부는 계엄령까지 선포하여 더 잔학하게 탄압했지만, 솟구치는 흑인 운동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결국 정부는 최악의 사태인 내란을 막기 위해 태도를 바꾸게 되었다. 그래서 28년이나 구금했던 흑인 지도자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여 그와 평화 협상을 진행시키고자 했다. 넬슨 만델라는 한때 변호사였다가 ‘민족의 창’이라는 무장 저항 단체를 창설하고 백인 기관을 수백 차례 공격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알제리에 군사 지원을 요청하러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체포되어 로벤아일랜드에서 1964년부터 구금되어 있었다.

 

백인들을 힘으로 몰아내고 흑인 독립국을 세우자는 과격파들도 있었으나 만델라는 통합과 공존을 원했다. 백인 정부의 협상 끝에 마침내 1994년 4월, 민주적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가 치러졌다. 넬슨 만델라와 2000만 흑인들은 생전 처음 주어진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로 향했다. 마을마다 끝없이 이어진 투표 행렬을 찍은 사진은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그리고 투표 결과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만델라가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수백 년에 걸친 백인들의 지배와 최악의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기념 집회에 모인 남아공 사람들

 

백인 극우주의자들은 흑인이 집권하면 “그들이 보복으로 백인을 학살할 것”이라고 선동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만델라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의 의견에 따라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치했다. 아파르트헤이트 기간의 인권 유린에 대해 가해자가 직접 잘못을 고백하기만 하면 사면을 해주기로 한 것이다. 이는 반투 족의 전통인 ‘우분투’ 정신에 따른 것이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도 모두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면 공동체의 일원으로 다시 받아주는 것이다.

 

약 7000명의 가해자가 자신이 한 일을 고백했고 2500명의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일을 증언했다. 흑인 운동가를 악어 밥으로 던졌거나 산 채로 불태워 죽인 끔찍한 일들이 낱낱이 공개되자 당시의 권력자들도 더 이상 “그런 일은 있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었다.”며 발뺌할 수 없게 되었다. 많은 백인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누린 기득권이 얼마나 참혹한 인권 유린 위에 가능했던 것인지 진심으로 반성했다. 백인들은, 비록 원수일지라도 진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용서하는 흑인들 앞에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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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세계사

이오니아 반란에서 이집트 혁명까지

오준호 지음 | 미지북스 |2011년 | 16,000원

 

 

최강의 제국에 맞선 고대 그리스 자유민들의 반란에서 21세기 아랍 민주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이집트 혁명까지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2500년 역사를 모자이크처럼 채워온 자유와 해방을 향한 투쟁의 드라마!

 

역사를 공부하며 우리는 한 가지 기쁨을 얻는데, 그것은 저 사파티스타 반군이 3천 킬로미터의 평화 대행진을 마치고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에 입성했을때 시민들이 그들을 반기며 외친 말 속에 들어 있다.

 

"당신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의 시대와 치열하게 싸우는 최초의 사람도 아니며 마지막 사람도 아니다. 우리는 그들 중 하나다.

 

 

 

지은이 오준호

 

노동자의 변호사들』, 반란의 세계사』, 소크라테스처럼 읽어라』, 『진짜 민주주의』 등을 쓰고, 『보이지 않는 주인』,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 등을 번역했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역사, 민주주의 등 여러 주제에 대해 책을 쓰고 번역하고 있으며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저항과 혁명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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