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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知 - 책 읽기

양적완화란 무엇인가

얼마 전 자넷 옐런 신임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올해 가을쯤에 테이퍼링 종료를 선언하고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습니다. 도대체 테이퍼링이란 무엇이며 양적완화란 무엇일까요?

 

 


 

 

양적완화란 무엇인가?

 

프랑스의 신임 총리 레이몽 프앵카레는 타협하기 보다는 힘으로 배상금을 끌어내려 하는 것이 분명해졌다. 1923년 1월 프랑스와 벨기에 군대가 독일의 루르 지역을 침공했다. 루르는 독일의 석탄, 철광, 철강의 70퍼센트를 생산했으며 현물 배상의 원천이었다. (...) 독일 노동자는 점령군에 협조하기를 거부했고 독일 정부는 노동자들의 급여를 위해 천문학적인 수량의 지폐를 발행했다. 때로는 시간과 인쇄비를 아끼기 위해 지폐의 한쪽 면만 인쇄했다.

- 배리 아이켄그린,『글로벌라이징 캐피털』93~94쪽

 

 

‘테이퍼링’이란 영어의 taper에서 나온 말인데요, ‘점점 가늘어지다’, 즉 양적완화 규모를 점점 줄인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리송합니다. 양적완화를 줄인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연방준비제도(Fed)가 시중에 푼 돈을 거두어 들인다는 말일까요? 연준이 시중에 현금을 풀기라도 했다는 뜻일까요? 네, 물론 둘 다 아닙니다. 연준이 시중에 현금을 푼 것도 아니고, 푼 돈을 거둬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테이퍼링을 알기 위해서는 양적완화의 개념부터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QE)는 사상 유례가 없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뒤이은 경기침체에서 버냉키 전 의장이 시도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대중적인 용어로 일컫는 말입니다.

 

여기서 ‘비전통적’이라는 말은 중앙은행이 흔히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금리인상/인하는 전통적인 방법에 속하죠. 그리고 ‘대중적’ 용어라는 말은 언론 매체 등에서 편의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며 공식적인 용어로는 양적완화가 아니라 ‘대규모 자산 매입’이라고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대규모 자산 매입(Large-Scale Asset Purchase, LSAP)이란 무엇일까요? 아시다시피 금융위기가 터진 후에 연방준비제도는 단기간에 연방자금금리를 영(0)으로 낮추었고, 더 이상 금리 수단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었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자신의 책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2008년 12월 시점부터는 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연방자금금리를 더 이상 인하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도 경제는 추가 지원을 필요로 하는 상태였음이 분명했습니다. 2009년에 접어들어서도 경제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위축되고 있었거든요. 우리에게는 회복을 지원할 뭔가 다른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다소 전통적이지 않은 통화정책에 의존하게 된 것이지요.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해오고 있는 그런 주요 수단을 연준 내부에서는 대규모 자산매입이라고 부릅니다. 언론 등에서는 양적완화로 알려져 있는 수단이지요. 이 대규모 자산매입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통화정책을 완화하는 대안적 방식이었습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183쪽

 

양적완화가 가진 대중적 이미지는 아마도 텔레비전에서 흔히 보는 이미지, 즉 인쇄기에서 달러를 찍어내는 광경일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헬리콥터 벤’이라는 버냉키 전 의장의 별명 때문에 양적완화가 실제로 현금통화를 시중에 풀어놓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양적완화는 인쇄기에서 현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국채나 공기업채권을 연준이 매입하는 것입니다. 재무부 증권과 패니메이나 프레디맥과 같은 정부지원기업이 발행한 주택담보대출 관련 증권 같은 것 말이죠.

 

지금까지 대규모 양적완화는 세 차례에 걸쳐 시행되었습니다. QE1, QE2, QE3이 그것이죠. 그 총액은 거의 4조 달러에 이릅니다. 한국의 GDP 총액이 대략 1조 달러를 조금 넘는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연방준비제도의 대차대조표의 자산 측면으로 하단의 파란색은 연준의 전통적인 증권보유고를, 중간층의 밝은색은 금융위기 동안 연준이 행한 대출, 상단의 붉은색이 양적완화, 즉 대규모 자산매입 부분을 의미한다.

 

이렇게 정부보증증권들을 정부가 대규모로 매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자율이 낮아집니다. 이미 제로금리 상태인데 금리가 더 낮아진다고요? 네. 시중에는 여러 종류의 금리가 있으니까요. 버냉키 전 의장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이 접근의 기본 개념은, 연방준비제도가 국채나 정부지원기업의 증권을 사들여 대차대조표 상에 보유하게 되면 시장에서는 이들 증권의 가용 공급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지요. 투자자들이 그 증권을 원한다면 낮은 수익률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장기 국채 및 정부지원기업 증권의 이자율도 실제로 낮출 수 있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시장에 남아 있는 국채 및 정부지원기업 증권의 수량이 점차 줄어들면서, 투자자로서는 이들 증권을 획득하여 자신의 포트폴리오에서 보유하는 일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회사채와 같은 여타 종류의 증권 쪽으로 눈을 돌려 옮겨가도록 부추겨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회사채 등 증권의 가격은 올라가고 그 수익률은 낮아집니다. 결국 다양한 증권 전반에 걸쳐 수익률이 인하되는데, 이것이 대규모 자산매입 조치의 순효과입니다. 이제, 낮은 금리는 흔히 그렇듯이 경기 부양 및 진작 효과를 가져오게 되지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187쪽

 

버냉키 전 의장은 이러한 접근 방식을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통화주의자들이 논의해온 접근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전통적인 방식이나 금리를 낮춰 경기를 진작한다는 측면에서 기본 논리는 통화정책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연준은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자산들에 대한 매입 대금을 지불할 수 있는 걸까요? 대금을 지급하기 위해 인쇄기에서 돈을 찍어냈던 것일까요? 

 

인쇄기에서 돈을 찍어내는 것보다 훨씬 마술적인 방법입니다. 연방준비제도는 은행들의 은행(즉 중앙은행)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은행이 연준에 예금 계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예금 계좌를 지급준비금 계좌(reserve accounts)라고 합니다. 준비금은 은행이 고객들의 돈을 예치받고 다른 고객에게 대출해주면서 꼭 보유하고 있어야할 돈을 말합니다. 예금을 맡긴 고객이 돈을 찾을 때 지급해줄 수 있어야 하니까요. 연준이 대규모 자산매입을 할 때 정부증권들을 구입한 사람들(은행)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은 바로 이 지급준비금 액수를 늘려주는 것입니다. 버냉키 전 의장을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증권 매입 활동에 의해 영향을 받은 부분은 현금 통화층 바로 위의 지급준비금 잔액 부분입니다. (아래 그림 참조) 이것은 연방준비제도에 개설된 상업은행 보유 계좌입니다. 이 계좌의 잔액은 은행시스템에는 자산이자 연준에게는 부채가 됩니다. 원칙적으로 이 계좌를 통해 우리가 증권 매입 대금을 지급하는 것이지요. 은행시스템은 거액의 지급준비금을 보유합니다. 그런데 이 지급준비금은 연준 대차대조표 상에 그대로 적혀 있을 뿐, 실제로 유통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급 준비금은 어떤 광의의 통화량 지표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급준비금은 소위 본원통화의 일부분이긴 하지만, 현금은 분명 아닙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189~190쪽

 

연방준비제도의 대차대조표 부채 측면으로 최하층이 민간이 보유하는 현금통화이며, 상층부는 연준에 예치한 상업은행의 지급준비금 잔액이다. 


이 그래프에서 보듯이 양적완화는 현금을 인쇄기에 돌려서 찍어내는 것이 아니며 지급준비금 잔액이 늘어나는 것이다.
편집자는 이 부분에서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여러분은 안 그러신지요? 전자적으로 기입했을 뿐인데 4조 달러라는 돈이 생겨났고, 시중의 현금 통화량에 변동을 주지 않은 채로 이자율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버냉키에 따르면 양적완화 이후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4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졌는데, 이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낮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또한 각종 회사채 금리도 하락했습니다.

 

양적완화의 또 한 측면은 이것이 재정지출이 아니라 자산매입이라는 것입니다. 재정지출은 정부가 실제로 돈을 써버리는 것이지요. 대규모 자산매입에서 사들인 자산은 미래에 다시 시장에 되팔 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재정지출과는 분명히 구분됩니다. 흥미롭게도 매입한 자산에서 이윤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2009~2012년까지 약 2천억 달러의 이윤을 재무부로 양도했고, 이 돈으로 재정적자를 줄이는데 직접 사용한다고 합니다.

 

버냉키는 경제사가로서, 특히 대공황 전문가로서 디플레이션으로 빠져들 위험에 대해 늘 언급했으며, 이러한 시기에는 통화완화로 경제가 지나치게 허약해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제로금리 상태에서 금리를 더 인하하여 디플레이션을 피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 바로 양적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방준비제도는 지금도 매달 수백억 달러의 자산을 매입하고 있습니다. 양적완화는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죠. 테이퍼링은 바로 그러한 양적완화의 규모를 축소하는 것입니다. 즉, 시중에 푼 현금을 거둬들이는 거라든지, 매입한 자산을 되파는 것이 아닙니다. 2014년 1월부터 테이퍼링이 시작되어, 자산매입 규모가 기존의 매월850억 달러에서 2014년 1월에는 750억 달러로, 2월에는 650억 달러로 각각 줄어들었습니다. 2014년 3월에 자넷 옐런 의장이 이를 다시 550억 달러 축소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이런 추세로 테이퍼링이 진행되면 결국 올해 가을에 양적완화가 종료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양적완화라는 방법에 대해서, 또 양적완화의 축소 시점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경악하고 한편으로는 찬사를 보내며, 뜨겁게 논쟁했습니다. 크루그먼 같은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은 양적완화와 재정지출을 더 확대하라고 주문한 반면, 밀턴 프리드먼과 『대공황, 1929~1933년』을 공저한 안나 슈워츠 같은 학자들은 양적완화의 축소 시점이 너무 늦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중국과 같은 신흥국들은 미국의 통화완화정책이 금융위기의 책임을 신흥국으로 전가하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고 비난했고, 실제로 아르헨티나에서는 테이퍼링의 후폭풍으로 외환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논란 속에 진행되고 마무리되는 벤 버냉키의 역사적 양적완화 정책, 여러분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더 많은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           *          *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벤 S. 버냉키 지음 | 김홍범, 나원준 옮김 | 미지북스 | 2014년 | 246쪽 | 16,000원

 

 

지은이

벤 S. 버냉키 (Ben S. Bernanke)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14대 의장이다.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대학교와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2년 9월부터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위원을 근 3년간 역임한 후 2005년 6월부터는 백악관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이후 2006년 2월 앨런 그린스펀의 뒤를 이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 취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인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서 세계 경제를 진두지휘했다.

버냉키 전前 의장은 역사상 유례없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와 뒤이은 대침체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다고 평가받으며, 2009년에는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4년 1월 자넷 옐런 신임 의장의 취임과 함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직

에서 퇴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Essays on the Great Depression, Inflation Targeting: Lessons from the International Experience(공저), Principles of Economics(공저) 등이 있다.

 

옮긴이 

김홍범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은행 조사제2부행원을 지낸 후,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에서 화폐경제학 전공으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 금융감독의 정치경제학』, 『한국 금융감독 개편론』과『화폐와 금융시장』(공저) 등이 있고, 찰스 굿하트가 지은 『중앙은행의 진화』와 앨런 블라인더가 지은 『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공역) 및 『소리 없는 혁명—중앙은행의 현대화』(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신용평가(주)에서 구조화금융 평가실무를 수행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거시경제학 전공으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에는 SK텔레콤 경제연구실에서 장단기 환율 전망을 담당했다. 밀턴 프리드먼과 안나 슈워츠가 공저한 『대공황, 1929~1933년』(공역)을 우리말로 옮겼다.

 

 

추천사 

“걸출한 현역이 들려주는 현대 중앙은행에 관한 유용한 입문서”

-포린 어페어스 (미국 외교전문지)

 

“버냉키의 강의는 한결같이 명료하고 친절하다. 지적인 날카로움이 번뜩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그리고 연방준비제도가 상황의 악화를 어떻게 저지해냈는지에 관하여, 이보다 더 간결하면서도 쉬운 언어로 말해주는 책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로버트 솔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MIT명예교수)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과거를 돌아보며 연준의 조치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을 기회란 참으로 드물다. 버냉키에 따르면, 연준이 금융위기 동안 내린 결정들은 중앙은행의 오랜 역사와 관례에 부합하는 일관성 있는 것들이었다. 이 가치 있는 책과 함께 그의 설명은 하나의 중요한 역사적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앨런 블라인더 (연방준비제도 전 부의장, 프린스턴대학교 교수)

 

“정교하게 준비한 이 책에서 버냉키는 연방준비제도의 창설에서부터 최근의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연방준비제도가 맞닥뜨리고 수행한 역할을 이야기한다. 그의 설명은 실로 응집력 있고 강렬하다.”

-배리 아이켄그린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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