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북스 소식2014. 6. 26. 12:06

한국 음악사에 빛나는 대중가요의 고전 전시회 한 곳을 미지북스가 다녀왔습니다. 전시회의 정식 명칭은 <한국 대중가요 고전 33선-원로 예술인의 증언으로 보는 그때, 우리 노래>로 현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아르코미술관 1층에서 진행 중입니다.

 


 

 

한국 대중가요 고전 33선 전시회

- 원로 예술인의 증언으로 보는 그때, 우리 노래

 

 

전시회에서는 불멸의 고전이 될 초창기 대중가요들을 엄선해서 그 실물 음반과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유관한 가요계 원로들의 구술 영상을 상영하고 있습니다. 또 전시회장에서는 무료로 자료집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비교적 짧은 기간의 전시인데,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아마 자료집만으로도 방문할 가치가 충분할 것입니다. (행사는 6월 30일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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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벼운 질문을 몇 개 던져 봅니다.

 

  한국의 대중가요는 언제 시작된 것일까?

  당대의 스타는 누구였을까?

  무슨 노래들이 유행했을까?

  그 시대를 살아가던 대중, 즉 우리 한국인은 어떻게 그것들을 향유했을까?

 

 

히트 가요는 공히 한 시대에 한 공간을 가득 메우는 소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노래, 우리의 히트곡을 잘 기억해둔다면, 그것들은 아마 수십 년 세월이 흘러 오늘을 다시 불러내는 데 굉장히 유용한 매개가 되어 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감정에 젖어 있었는지 단박에 복원해줄 자료가 되어 주겠죠.

 

 

이 가요의 역사를 상상하며, 천천히 앞선 시대로 거슬러 가 봅니다. 거칠게나마 흐름을 가늠해보면, 지금의 아이돌그룹의 시대에서로부터 소울 창법의 시대, 댄스 가수의 시대, 락발라드의 시대, 인디 밴드의 시대, 서태지의 시대, 발라드의 시대, 트로트의 시대, 락의 시대, 대학 가요의 시대, 조용필의 시대, 건전 가요의 시대가 나올 테고, 이런 식으로 몇 세월 더 건너고 나면, 이미자, 나훈아, 남진 등의 시대가 나옵니다. 물론 이런 요약이 참 부정확하기 그지없습니다만, 어쨌든 거슬러 가면 결국 원류가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일종의 기억의 '벽'을 만납니다.

 

 

지금 환갑을 넘긴 기성 세대 가운데서도 '최초 가요'에 대한 뚜렷한 기억을 갖고 계신 분은 많지 않습니다. 주로는 나훈아, 남진, 이미자 등이 기억의 중심에 있고, 그 앞선 시대의 인물로 남인수, 이난영, 고복수 같은 이름을 떠올려 내곤 하지만 이내 파편적인 기억만 확인하고 도로 해방 이후 세대의 이야기로 넘어가곤 합니다. 즉, 정확히 짚어낼 수는 없지만, 특정 세대를 기준으로 초창기 대중 가요에 대한 기억이 단절됩니다.

 

어느 시대부터인가 대중문화가 시작되었으며, 둑이 터진 것처럼 번성하였고, 한국인들의 감성에 스며들었음은 분명합니다. 한국인이라면, <목포의 눈물>(1935년), <홍도야 울지 마라>(1939년), <번지 없는 주막>(1940년), <신라의 달밤>(1949년), <이별의 부산정거장>(1954년) 같은 노래를 한번쯤은 들어보았으니까요.

 

 

세월이 흘렀지만 그 당시 노래와, 그 노래를 향유하던 당시의 문화를 온전히 되살리고, 후대에도 전하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옛 가요 사랑 모임인 <유정천리>의 회장 이동순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렵던 시절, 주린 배를 채워 허기를 달래주었던 보리밥이 요즘은 오히려 쌀밥보다 더 대접을 받는 경우도 있답니다. 지난 세월에 대한 애틋한 마음 때문이기도 하겠고, 세월의 흐름에 따른 이른바 '웰빙'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그 보리밥이 몸의 허기를 달래주었던 것처럼 지난 날 우리 마음의 허기, 정신의 허기를 달래주었던 것이 바로 노래였습니다. 그야말로 노래는 대중과 고락을 함께했던 중요한 삶의 양식이었습니다.

_이동순 (옛 가요 사랑 모임 유정천리의 회장)

 

 

 

그렇지만, 노래란 모쪼록 흥겨워야 제맛이고, 노래가 좋지 않다면 이런 사업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조금만 정성을 들여 들어보면 노래들이 좋습니다. 옛 가요도 일단은 과거에 인기곡이었고, 흥겹지 않은 노래가 인기곡이 될 수는 없었을 겁니다.

 

노래 이야기를 하는 글에 실제 음악이 빠질 수 없겠죠. 전시회 개막일에 있었던 아코디언 연주 일부를 공유합니다.

 

 

전시회장 입구. 아르코미술관 1층.

 

    

▲ 가수 장세정의 사인이 적힌 <연락선은 떠난다>(1937년) 재판 음반. 1940년대 초 제작. 지금까지 발견된 최초의 사인 음반이다.

 

<나그네 설움> 가사지 (1940년).

 

<낙화유수> 음반(1924년).  <고향설> 음반(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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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개막일에는 옛 가요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한국 대중가요 150년 역사를 원고지 6000매 분량(단행본 1500페이지)에 집대성한 『한국 가요사 (전2권)』(미지북스, 2009년)를 쓰신 박찬호 선생님께서도 멀리 일본 나고야에서 오셔서 행사를 축하해주셨는데요, 특히 박찬호 선생님은 이번 행사의 보배라 할 수 있는 귀한 SP음반들을 대량 기증하셨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박찬호 선생님이 평생에 걸쳐 애써 모으지 않았더라면 소실되어 영영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를 한국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박찬호 선생님 본인은 밝히길 원치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한국 가요사』 인세 일부를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데 후원해오셨다는 것을 편집자는 밝혀두고 싶습니다.  

 

또한, 박찬호 선생님을 도와 『한국 가요사』를 만드신 이준희 선생님께서도 오셨습니다. 이준희 선생님은 <유정천리> 모임 안에서도 옛 가요에 '미친' 분이라고 애정 어린 놀림을 받고 계시기도 한데, 이 전시회에도 직접 자료도 제공하시고 많은 공을 들이셨습니다. 이준희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내년 봄쯤에 한국 대중 가요사의 최초의 전성 시대를 다루는 『조선악극단』(제목 미정)이라는 책을 미지북스에서 출판할 예정입니다. 조선악극단은 1930년대 후반 조선 최고의 음악인들로 구성된 일종의 밴드로,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만주 등에서도 최고의 인기와 스터덤을 누렸던 한류의 원조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조선악극단 창립 80주년이 되는 해로 관련 행사와 전시들이 여러 차례 있을 예정입니다.  

 

 

박찬호 저자.

▲ 『한국 가요사』의 저자 박찬호 선생. 자신이 기증한 일제시대 음반을 관람객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준희 선생님.

▲ <유정천리>의 총무이자, <가요무대>의 고문인 이준희 선생. 조선악극단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Posted by 미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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