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M. 치폴라 Carlo M. Cipolla (1922~2000) 

 -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유럽 근대사의 거장

 

 

오늘은 미지북스의 신간시계와 문명의 저자인 카를로 M. 치폴라에 대해 소개할까 합니다.

카를로 치폴라는 저명한 이탈리아의 역사학자로, 경제와 역사, 유럽과 아시아, 미시사와 거시사를 넘나드는 방대한 연구와 뛰어난 필력으로 유명한 유럽사의 거장입니다. 아직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럽사학계에서 치폴라의 위상은 대단히 높습니다. 그는 "자신의 세대에서 가장 뛰어난 경제사가"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1995년에는 “동료학자들에게 혁신 정신의 귀감이 된 역사학자”로서 노벨상에 버금가는 발잔상(Balzan Prize)을 받았습니다. 치폴라는 영어와 이탈리아어 두 개의 언어로 저작을 썼고,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대서양을 마주한 두 대륙의 많은 대학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이번시계와 문명도 영어로 먼저 쓰고 이탈리아어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치폴라의 주된 문제 의식 중 하나는 ‘서양의 발흥’인데요, 아시다시피 중세에만 해도 가장 후진적이었던 유럽 문명이 근대에 들어와서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지배적인 세력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치폴라는 이러한 서양의 발흥에 대해 유럽 문명의 연속성과 특수성에 주목하는 학자중 한명입니다. 그는 유럽 문명이 오래전부터 다른 문명권과 비교해 인력을 기계의 힘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기계지향적 경향이 훨씬 강했다고 파악합니다. 다시 말해 치폴라는 근대를 열어젖힌 기계 문명과 기계적 세계관이 중세 말인 1300년경에 이미 유럽에서 태동하고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서양의 근대를 단절이나 혁명으로 보기보다는 연속으로 본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서양의 고유하고 특수한 역사적 결과라고 보는 시각 때문에 치폴라는 유럽중심주의 역사가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2010년 미지북스에서 출간된 치폴라의 대포, 범선, 제국시계와 문명과 쌍둥이와 같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세 시대에 이슬람 제국이 맹위를 떨칠 때, 유럽은 말 그대로 “지중해에 판자 조각 하나 띄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유럽이 아시아로 가는 동방항로를 개척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그리하여 우리가 아는 이른바 ‘대항해시대’가 개막되었다고 하죠. 치폴라가 대포, 범선, 제국에서 다루는 대포와 원양 선박도 애초에는 아시아의 발명이었습니다. 화약은 중국에서 처음 발명되었고, 선박도 아랍의 것이 더 진보했으며, 원양 항해의 역사도 정화 함대의 모험에서 보듯이 중국이 먼저였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후진성은 오히려 대포나 선박 분야에서 근대적 기술 혁신을 추동하였고, 효율적인 대포를 탑재한 원양범선이라는 혁신의 결정체가 대해(大海)에서 유럽에 결정적인 군사적 우위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대포, 범선, 제국이 서양 기계 문명의 태동이라는 관점을 군사 기술적 부문에서 조명했다고 한다면, 시계와 문명은 17세기 과학혁명과 18세기 산업혁명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 기계식 시계의 역사를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두 책 모두 서양의 근대 기계 문명의 태동이라는 점에서 같은 관점을 갖고 있지만, 놀라운 점은 최초의 시계 제작자들이 바로 대포 장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비유로 표현하자면 손목시계와 유도미사일을 같은 가게에서 판다고 할까요?

 

시계와 문명은 한편으로는 명백하게, 한편으로는 뜻밖의 방식으로 대포, 범선, 제국을 보완한다. 즉 대포와 시계의 발전을 선도한 수공업자들이 흔히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비록 이제는 손목시계와 유도미사일을 동일한 가게에서 구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둘을 고찰하는 눈길에는 알아차릴 수 있을 만한 친연 관계가 드러난다.

-리처드 올러드 Richard Ollard


 

  

 

 

미국의 역사학자 앤서니 그래프턴은 치폴라를 미시사와 거시사 모두를 아우르는 보기드문 역사가로 평가했는데요, 프랑스 역사학자 르 루아 라뒤리의 구분법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르 루아 라뒤리는 역사가를 두 부류로 분류했다. 한 부류는 높은 곳에 떠서 풍경을 살펴보고 가장 전반적인 특징들을 묘사하는 낙하산 부대원이다. 다른 한 부류는 문서고의 개별 사료들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송로버섯 채취인이다. 이러한 큰 틀의 설명은 둘 다 어느 정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어떤 역사가들은 특히 종합에, 즉 커다란 역사적 문제들을 설정하고 해결하는 데 능하다. 또 어떤 역사가들은 한 개인이나 가족, 작은 공동체의 삶을 애정을 담아 재구성하면서, 지엽적이고 세세한 수준에서 가장 잘 작업한다. 2000년에 작고한 카를로 치폴라는 이런 구분이 결코 들어맞지 않는 극소수의 20세기 역사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문서고의 기초 작업에서 나온 미시적 연구부터 1천 년의 이탈리아 역사를 아우르는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준에서 뛰어난 연구를 보여주었다.

-앤서니 그래프턴Anthony Grafton

   

또한 역사학자 피터 버크는 카를로 치폴라를 추모하면서 쓴 글에서 “미시사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에 이미 미시사적 저서를 내놓은 학자”라고 평하고 있으며, 치폴라 또한 생전에 역사가의 임무란 “거대하고 위대한 프레스코화 한 점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살아 숨 쉬던 인간의 삶을 사료에 근거해 재구축하는 것이다.”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각주:1] 세계 최고 권위의 서평지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는 “치폴라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근대사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유럽 근대사의 거장, 기술사의 선구자, 미시사 이전의 미시사학자,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의 신간 시계와 문명이 이제 여러분을 만나러 갑니다!

 

 

 

시계와 문명

1300~1700년, 유럽의 시계는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카를로 M. 치폴라 지음 |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2013년 | 244쪽 | 13,000원

 

 

 

 

 

 

  1. 『중세 유럽의 상인들』, 카를로 치폴라 지음, 김위선 옮김, 길출판사, 2013년, 17~18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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