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知 - 세상 읽기2012.09.14 21:00

인도에는 마오주의자들이 삽니다. 지금 인도에는 최소한 수백만의 사람들이 “낙살라이트” 또는 “마오주의자”란 이름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열대는 왜 죽음의 땅이 되었나>에도 소개된 바로 그 인도의 “마오주의자”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인도에는 행정구역상 28개 주와 600여 개의 지구가 있습니다. 그중 10여 개 주, 180여 지구가 낙살라이트라고 불리는 반군의 영향 아래 놓여 있습니다. 주마다 또 시기마다 반군의 영향력에 차이가 있지만, 70년대 이래 그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 지도는 2007년 당시의 반군 현황입니다.

 

 

지도를 보면, 인도 안에 모종의 지정학이 펼쳐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인도 남동부의 커다란 붉은 지역은 안드라프라데시 주입니다. 거의 주 전체가 붉은 세력 아래 있습니다. 또 북동부의 자르간드 주와 서벵골 주, 비하르 주 일부에 걸쳐 붉은 지역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붉은 지대를 중심으로 인도 남부와 동부를 잇는 전역에 걸쳐 붉은 기운이 번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붉은 지대를 일러 “붉은 회랑(the Red Corridor)”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회랑 지대가 인도의 마오주의자들을 품고 있습니다.

 

 

 

 (왼) 낙살라이트의 영향권 / (오) 붉은 회랑 또는 낙살라이트 회랑

 

이들은 반란군입니다. 인도 정부와 전쟁 중인 무장 집단입니다. 또한 이들은 게릴라입니다. 일부 해방구에서는 대로를 활보할지 몰라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숲과 정글에 몸을 숨긴 채 지하에서 게릴라 투쟁을 하는 집단입니다. 또한 이들은 마오주의자입니다. 인도에 웬 마오주의냐고 반문할 분들이 있을 텐데, 이들은 분명히도 1960년대부터 마오의 이념을 이상으로 삼아 투쟁해 온 마오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며, 그들도 인도 정부도 서방 언론도 그들을 낙살라이트 또는 마오주의자라고 부릅니다.

 

 

  

 (왼) 마오쩌둥 문양이 그려진 깃발을 든 인도 청년 / (오) 마오쩌둥의 사진

 

낙살라이트라는 이름은 인도 서벵골 주의 낙살바리(Naxalbari)라는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낙살바리는 서벵골 주 다르질링 지구에 속하는 마을로 플랜테이션 농업이 이뤄지던 곳이었습니다. 이곳의 농업 노동자들은 토지와 소출에 관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곤 했는데, 그러다 사건이 터졌습니다. 1967년 5월 25일 경찰이 실탄을 발포하여 9명의 농민과 2명의 어린 아이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마른 장작에 불이 붙은 것처럼 이 사건은 향후 낙살라이트 운동이 인도 전국으로 확산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낙살바리 마을은 인도 서뱅골 주의 북쪽 끝에 있다.

 

낙살리즘을 관찰할 때 이 1967년은 여러모로 중요한 해입니다. 왜냐하면 1967년의 이 사건을 기점으로 인도 공산당이 대대적으로 분기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인도 공산당-마르크시스트(the Communist Party of India-Marxist, CPI-M)는 점차 정당을 통한 의회 정치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더욱이 서뱅골 주와 케랄라 주에서의 선거 승리에 힘입어 그러한 추세가 강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전년의 중앙위원회에서는 반동 정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을 아우르는 선거 동맹체를 구성하자는 등의 내용을 논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편에 이러한 합법 노선을 '개량주의'라고 비판하며, 무장 혁명 노선을 주장하는 강경 세력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낙살바리 봉기를 이끌었던 사람들입니다. 낙살바리 봉기는 강경파들이나 중국 공산당의 눈에 “터질 게 터진” 것으로 보였고, 그들은 조만간 봉기의 물결이 전 인도를 휩쓸게 될 것으로 보았습니다. 인도 정부는 곧바로 낙살라이트를 불법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고 진압에 나섰습니다. 낙살바리 봉기는 일단은 불과 몇 달 만에 진압되었습니다.

 

여기서 이들이 왜 '마오주의'인지 알기 위해 차루 마줌다르라는 지도자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 마오주의의 원류가 그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독립 운동에 참여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살인적인 노동 조건으로 고통 받던 다르질링 차 플랜테이션의 농업 노동자를 비롯한 최하층의 농민들을 조직하고 그들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는 인도를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로 규정하고 미국의 원조를 받는 것은 미 제국주의에 예속되는 길이며 오직 농민에 의한 농업 혁명을 통해서만 인도의 식량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음을 제시했습니다. 흐루쇼프의 수정주의 노선이 지배하는 소련 또한 제국주의로 규정하고 소련의 지원도 거부했는데 그는 당시 중·소 논쟁에서 철저하게 중국의 편에 섰습니다. 그들의 슬로건은 ‘마오쩌둥은 우리의 의장’이었습니다.

 

 

 

(왼) 차루 마줌다르 / (오) 마오쩌둥과 차루 마줌다르의 흉상

 

1967년 봉기가 진압되었지만, 차루 마줌다르 등 지도자들 다수는 살아남아 흩어졌고, 이는 인도 "붉은 회랑"에서 동시다발적인 무장 투쟁이 벌어지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1969년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한 인도 공산당-마르크스레닌주의(CPI-ML)을 창설하며 기존의 인도 공산당과 완전히 갈라서게 됩니다. 그리고 1972년 차루 마줌다르가 인도 당국에 의해 죽은 후, 이 CPI-ML은 수십 개 분파로 갈라져 지하 투쟁을 전개하게 됩니다.

 

인도 정부는 이미 낙살라이트 운동이 출현한 이래 이들을 불법 세력으로 규정하고 집요하게 진압해왔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도 정부는 1967년의 낙살바리 봉기 때부터 대대적인 진압을 실시하고, 또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만, 그러한 성공은 한시적이었습니다. 이들은 항상 다시 돌아왔습니다. 좀 더 조직화되고, 영리해지며, 은닉한 상태로 돌아와서 저항하였습니다. 이것은 70년대, 그리고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복되는 양상입니다. 2005년 인도의 만모한 싱 당시 총리는 한 연설에서 낙살라이트를 일러 "인도 국내 안보상의 가장 심대한 위협"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위협 인식에 준하는 진압 작전을 예고하는 말이기도 하였지만 말입니다.

 

낙살라이트가 면면히 그 흐름을 이어지는 데는 여러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전통적인 요인으로 인도 농민들의 상시적인 빈곤과 중앙 정부에 통합되지 않는 숲과 정글을 배경으로 생활하는 부족 집단들의 존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인도 농민들의 빈곤 문제는 대단히 심각한 상태입니다. 크리스천 퍼렌티는 <왜 열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나> 책에서 인도 농민들이 맞은 구조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인도 농민들은 정부로부터는 외면당하고, 지주와 고리대금업자 사이에 치여 빚의 족쇄에 걸려 움쭉달싹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들은 미친듯이 물을 빨아대는 유전자 조작 목화의 포로가 되어 다른 종자를 키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채무자이고, 채권자인 고리대금업자들이 목화 재배를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채권자들은 채무자들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을 수 없는 작물이자 언제 어디서든 교환이 가능한 목화를 대출의 조건으로 내겁니다. 그리하여 농민들은 목화에 물을 댈 우물을 파기 위해 돈을 빌립니다. 정부는 경제 자유화 원칙 아래 관개수로 사업을 지방 차원에서는 사실상 방관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농민들은 자비로 우물을 파야 합니다. 한편 목화가 지력을 흡수해 황폐해진 토지에 뿌리기 위해 화학비료도 구입해야 합니다. 지하수 우물은 점점 수위가 낮아지고, 땅의 지력은 점점 더 쇠약해집니다. 빚은 점점 늘어나고, 다시 돈을 빌려야 하는 악순환에 갇힙니다. 그리하여 많은 농민들이 생계를 위한 사투 끝에 자살하거나 혹은 이웃한 숲에 있는 낙살라이트가 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립니다.

 

한편 부족 집단들의 존재도 꼽을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빈곤했으며, 영국 식민지 시기부터 영국 정부에 저항해 온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중앙 정부의 개발이 그들의 이주와 격리를 의미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토대 위에 마오주의가 스며듭니다. 마오주의자들은 그들을 해방시켜줄 거라는 믿음을 주는 한편, 중앙 정부에 저항할 능력을 제공합니다. 이렇게 변두리 부족민들이 낙살라이트화하면서, 인도 정부의 개발을 통한 통합 전략이 숲과 정글 곳곳에서 좌초됩니다. 결국 인도 정부는 국가 권력의 본능과 자본가 개발업자들의 요구에 부응해 다시 무력 진압의 수단에 손을 가져가게 됩니다.

 

지리적 요인도 꼽을 수 있습니다. 인도의 텔레그라프 인터넷판 2009년 9월 3일자 기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Y.S. 라자세카르 레디가 마오주의자들을 안드라프라데시 주 바깥으로 몰아냈지만, 이런 성공은 근처 오리사 주, 자르칸드 주, 차티스가르 주, 그리고 벵골 주에 있어서 재앙과 같았다. 왜냐하면 도망친 반군들이 그곳들에다 기지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즉, '붉은 회랑'이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일거에 일소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인도 동부와 남부 전역에 걸쳐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을 소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2000년대 들어서는 한 가지 더 심각한 요인이 낙살라이트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바로 '가뭄'입니다. 다시 크리스천 퍼렌티의 견해를 빌려오자면, 그는 낙살라이트 전통이 이제 '가뭄 반란군'의 형태로 진화하여, 계급 투쟁을 넘어 '메마른 분노의 폭탄'을 던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가뭄이 들면, 은퇴했던 혹은 반쯤 은퇴했던 게릴라들이 숲으로 들어가 낙살라이트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인도는 2010년 현재 전 국토의 40% 남짓만이 관개수로 정비가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을 놓은 상태입니다. 즉, 가뭄의 충격을 완화해줄 인프라가 없기 때문에 다수의 농민들이 가뭄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됩니다. 농민들 혹은 귀향한 낙살라이트들이 다시 터전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가뭄'과 싸워 이겨야 하는데 이길 수가 없습니다. 지하수의 수위가 낮아지고,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는 요원한 사업이 됩니다. 위의 낙살라이트 영향권 지도와 아래 인도의 강우 지도를 대조해 보면, 장차 강우량이 적은 지역에 대한 정부 통제력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연간 강우 지도. 2006년 당시.

해안에 면하는 서고츠 산맥 이남과 비교하여 내륙의 강우량은 현저히 낮은 편이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인도 11개 주에서는 낙살라이트와 관련된 사상자가 주별 평균 1,500명이었다고 합니다. 11개 주이므로 곱하기 11을 하면 대략 붉은 회랑에서 15,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03년 안드라프라데시 주의 총리 찬드라바부 나이두는 클레이모어 지뢰 공격을 받았다. 사진은 그가 탔던 차.

 

2004년에 낙살라이트들은 안드라프라데시 주의 인민전쟁그룹과 비하르 주의 마오공산주의센터를 통합하여 CPI-Maoist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렇지만 낙살라이트는 그 조직의 방식도, 투쟁의 방식도 정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직은 통일되기보다 부족 단위에 충실한 분파의 형태로 거의 부족의 수에 준하는 숫자의 개별 단위가 존재한다고 하며, 투쟁의 방법도 학생과 도시 지식인의 공개적인 정치적 지지에서부터 소작농 조직들의 도로 점거 같은 비폭력 직접 행동, 게릴라 집단들의 테러 방식(암살이나 지뢰 매설) 등이 뒤섞인 특이한 운동입니다. 즉, 지식인과 도시민들과 농민과 부족민과 게릴라 어느 집단으로 특정하기가 난망하게 꼬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도에서 유명한 낙살라이트 작가 바라바라 라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의회는 달콤한 독과 같다. 과거 TDP(지역 정당) 정부는 항상 우리와의 대화를 배척했는데 현재 의회는 평화와 대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협상 테이블 마련이라는 만남을 가장하여 혁명가들을 색출하고 죽이려는 속셈이다.

 

인도는 어떻게 이 갈등을 해결해야 할까요? 크리스천 퍼렌티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칠까 합니다.

 

남부 도시에서는 정보통신 기술과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 붐으로 새로운 억만장자 계층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도 인도의 정치 지도층은 절대다수의 국민에게 전력, 물, 기본적인 의료 및 교육 서비스도 제공하지 못한다. 아니, 그러려는 의지가 없다. UN의 다차원 빈곤 지수에 따르면 인도의 여덟 개 주에 사는 빈곤 인구가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의 빈곤 인구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인도의 지배 계층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각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후 변화가 그들을 파멸로 몰아갈 것이다. 인도가 어떻게 낙살 게릴라들에 맞서 싸워야 할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경제 재분배, 사회 정의, 지속가능한 개발로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길만이 반란을 진정시키고 평화와 질서를 회복하는 길이다.

-  <왜 열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나>, 261쪽.

 

 * 최초 글 완료 시 2004년에 출범한 CPI-Maoist에 대해 합법 정당이라고 표기하였으나, 정호영 선생님(인도 자다푸르대학교 사회학 박사과정)께서 불법 단체라고 지적해주셔서 수정하였습니다. 현재 인도에서는 CPI-Maoist에서 나온 문서를 소지하거나 읽는 것만으로도 처벌이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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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지북스